[청년,협동조합에 로그인하다] 3. 협동조합의 가치와 원칙보다 중요한 것

이예나 (경남과학기술대학교 사회적경제 전문인력양성사업단 전담교원)

 

 

 

 

지난 겨울, 일본의 사회적경제 사례를 탐방하는 연수를 진행하기 위해, 학생들과 사전모임을 진행했다. 청년문제와 고령화문제 등, 여러 사회문제들과 사회적경제를 연결시켜 보면서 토론을 진행하는 방식이었다. 학생들과 공유할 자료를 찾다가 모심과살림 연구소에서 진행한 대전 민들레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김성훈 부이사장의 인터뷰가 눈에 들어왔다.

“(…중략…) 어떤 거냐 하면 그게 이 사회의 논린데, 계약 관계죠. 다르게 표현하면 ‘니가 하는 거 봐서 내가 하겠다’는 거죠, 항상. 근데 연대나 나눔이나 협동은 ‘니가 하든 말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먼저 내놓겠다’ 이거에요. 그게 나부터 시작한다는 말뜻이에요. 니가 그래야지만 내가 움직인다는 것은 내 운명이 너한테 달려있는 거지 나한테 달려있는 게 아니잖아요. 니가 하든 말든 내가 하겠다 이게 있어야지 그게 주인공이지. 그러니까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이 주인공이 돼야 그 다음에 비로소 그게 독립적인 인간이고 스스로 주인이 될 수 있어야 남과 더불어 주인이 될 수가 있는 거예요.(주1) (이하 생략)”

나는 이 내용을 학생들과 공유하고,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런데 학생들은 ‘니가 하는 거 봐서 내가 하겠다’ 라는 부분에서는 고개를 끄덕거렸지만, ‘니가 하든 말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먼저 내놓겠다’라는 부분에서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쉽게 동의하지 못했다. 내가 왜 충분히 동의하기 어려운지 물어보자, 학생들은 ‘이렇게 하면 뒤통수 맞을 것 같다.’ ‘결국 내가 손해를 보게 될 것 같다.’라고 했다. 생각보다 부정적인 반응에 나는 협동조합에 대한 토론을 이어가지 못하고, ‘왜 뒤통수를 맞거나 손해를 볼 것 같다고 생각하느냐’고 질문했다. 학생들은 조모임에서 누군가가 무임승차를 해서 힘들었던 (소위 ‘독박‘썼던) 경험, 누군가를 믿었는데 실망했던 경험들을 이야기했다. 그래서 먼저 내어주고 협동하기보다는 상대가 해주는 만큼만 내어주는 것이 더 현명한 행동이라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회적 경제에서 협동의 가치와 중요성을 이야기하던 나는 갑자기 막막해졌다. 협동 자체에 대한 의구심을 품은 채로, 협동조합의 가치나 원칙이 얼마나 와 닿을 수 있을까?

사실 협동조합 관련 강의를 하다보면 수강생들이 혼자가 아니라 ‘함께’ 공동의 필요를 충족시켜 나가는 협동조합의 원리에 쉽게 동의하거나 공감하지 못하는 걸 흔히 발견하곤 한다. 그리고 질문을 던진다. ‘정말 우리나라에서 협동조합이 잘 될 수 있을까요?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오랫동안 지속가능할 수 있을까요?’ 어떤 학생은 한 학기동안 협동조합에 관한 수업을 듣고 나서, 여전히 주식회사를 설명하는 자본과 경쟁의 논리가 더 잘 이해되고 공감이 된다고 했다. 협동조합이라는 게, 좋긴 하지만 이상적이라는 것이다. 그 학생의 피드백도 충분히 그럴 만 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학교에 입학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경쟁’을 잘 하는 법은 충분히 배웠을지 몰라도 ‘협동’을 잘 하는 법을 배울 기회는 많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경쟁의 원리를 가정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시스템 속에서 학생들이 ‘남에게 먼저 내어주면 내가 손해’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학생들의 말에서처럼 먼저 내어주는 것은 어느 순간 미덕이 아니라 어리숙한 행동으로 여겨지는 듯하다. 주변의 사람들은 착한 심성을 칭찬하면서 한편으로는 그이의 세상살이를 걱정한다. 치열한 경쟁체제가 공동체를 와해시키고, 경쟁 그 자체가 내면화되면서, ‘느슨하게 연결되는’ 호혜적 관계들은 우리에게 점차 낯선 것이 되어가는 것 같다. 가족을 포함한 혈연관계, 또는 친밀한 연인이나 친구관계가 아닌 나머지 관계들을 ‘거래(계약)관계’라는 표현으로 쉽게 이분화하지만, 그렇다고 정말로 법적인 ‘계약’은 아닌 관계들은 어떻게 다루고 얼마나 믿어야 하는지 종종 혼란에 빠지는 것이다. 그 속에 현저히 저하된 사회 전반의 신뢰수준이 드러나 있다.

협동조합이 쉽지 않은 이유는 철저한 계약관계도 아니고, 철저한 친목관계도 아니면서, 협동이라는 방식으로 그 둘을 잘 융해해야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 방법을 충분히 체득하지 못한 우리는, 협동의 안 좋은 결과들을 크게 두려워하면서, 협동이 일으키는 긍정적인 시너지는 잘 믿지 못하는 것 같다. 협동이 실패했을 때의 리스크는 확실하다고 느끼지만, 협동을 통해 얻는 긍정적 감정은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고 여기곤 하는 것이다. 그것이 정말 냉정한 현실일지 모르나, 한편으로 우리 사회가 얼마나 경쟁논리에 사로잡혀 있는지를 느낀다. 경쟁에 관한 학습은 정규교육시스템을 비롯해 일상 속 어디에서나 일어난다. 주위의 소위 ‘성공’ 사례들은 ‘경쟁력’, 즉 ‘남과 다른 무엇’ ‘남보다 잘하는 무엇’ ‘남이 못하지만 나는 해내는 무엇’을 강조한다. 그러나 같이 이루어낸 성과’에 주목하는 이야기는 많지 않다.

그래서 협동조합의 단순한 양적 증가가 아니라, 좋은 협동조합의 사례들이 다양해지고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것이 중요하다. 사회적경제 영역의 성장을 위한 제도적 환경이 개선되고, 관련 교육이나 정보 창구들이 늘어나는 것은 물론 필요하지만, 사회적경제가 본질적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함께 해낼 수 있어서, 함께 살 수 있어서 행복한 것이 ‘성공’인 사회, 함께 무엇인가를 시도하는 것이 혼자일 때보다 두렵지 않은 사회가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청년들이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고 무엇인가 함께 할 힘을 실어줄 수 있도록,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을 찾을 수 있도록 창의성을 더하는 것이 사회적경제 영역이 가진 의미 있는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각주>

1. 모심과살림 연구소 홈페이지 중 “살림의 새로운 길을 찾아서 ⑥ 나의 건강을 지키며, 건강한 지역사회를 만드는 돌봄 공동체의 실험” 인터뷰 글 중 발췌. 해당 내용은 대전 민들레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김성훈 부이사장의 인터뷰 내용. (원문 링크 http://www.mosim.or.kr/bbs/sub4_1/674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