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세의 공룡
김민아(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 이사)
“우리는 이제 홀로세가 아니라 인류세에 살고 있습니다”지구환경 관련 국제 회의에서 나온 선언이다. 홀로세와 인류세를 구분하는 것은 바로 ‘인류’의 생존방식이다. 그리고 그 결과가 인류세의 지층을 덮었다. 단적으로 미세 플라스틱 입자가 지층을 만든 것이다. 아마 절판되었을 < 홀로세의 공룡 >이란 책이 있다. 홀로세의 공룡이라면 ‘둘리’아닌가. 그 제목에 이끌려 책을 구매하고 읽었다. 나는 홀로세의 홀로를 둘리처럼 지구의 유일한 지적 생명체로서 인간이 겪는 고독을 드러낸 단어라 착각했다.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돈다는 착각 말이다. 약간의 진화론과 철학과 지질학이 ‘통섭’된 책이라 지레짐작했는데, 아니었다. 지구의 생태학적 질서파괴를 초래한 인간이 공룡처럼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예언서였다. 중생대의 공룡은 몸집을 거대화시켜 사라졌고, 신생대의 인간은 머리를 극대화시켜 공룡의 운명을 따르고 있다고 냉정하게 풀어갔다. 호모사피엔스는 그 지혜로 급속하게 절멸할 수도, 극적인 자기조절능력으로 좀 더 오래 살아남을 수도 있다. 아이쿱의 많은 노력들은 자기조절능력으로 그 절멸시기를 다소나마 연장해서 건강하게 살아가자, 죄 없는 후세대를 위해서라도 뭔가를 해야 한다는 책임에서 시작되었다.
아이쿱의 이러한 노력들을 10여년 활동가로서 겪은 자잘한 경험에 비추어 일별하고자 한다. 지역에서 활동하면서 부딪히는 갈등과 모순을 보자는 취지다. 개인적인 단상이나 오래 고민한 내용이다. 그리고 고민은 현재진행형이다.
밀양 송전탑으로 시끄러울 때였다. 조합에서 에너지관련 전문가를 모셨다. 전문가는 당시 화석연료를 이용해 전기에너지를 얻기에 당연히 가스레인지가 인덕션류의 전기기기보다 에너지 효율면에서 더 낫다고 설명했다. 그날 강의의 만족도는 높았다. 에너지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 주었다. 그러나 강의는 강의고 생활은 달리 갔다. 곧 활동가들 사이에는 주방에 인덕션을 들이는 게 유행이 되었다. 그렇다면 강의가 뒤쳐진 것인가. 지금은 아무도 이런 고민을 하지 않고 전기기기를 들인다. 전기차까지. 결국 원자력에서 우리는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가 있다. 아마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일본의 전기공급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면서 당시 신길동 강의실의 형광등을 끄고 강의를 들은 적이 있었다. 불편했지만 이 정도는 감수해야지 하는 동참의 의미였다, 이후 10년, 점점 편리를 추구하고 에너지는 더더 요구된다. 정말 지구는 이대로 지속가능한가?
아이쿱은 ‘NO!플라스틱 캠페인’을 전파하고 있다. 과거 기름 용기에 말이 많았다. 한살림처럼 유리병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 거셌다. 플라스틱 사용에도 불가피한 이유가 있을 텐데 도외시되었다. 플라스틱은 악이었다. 물류비용도 만만치 않고 위험하기도 하고 재활용도 어렵고 관리에도 애로가 많은 유리병을 고집하는 것에 대한 고민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지금은 다시 종이팩으로 돌아갔다. 종이팩 재활용을 위해 남은 기름을 닦고 세제로 씻고 말리면서 의문이 든다. 모든 이들이 이렇게 할까? ‘NO!플라스틱 캠페인’으로 기픈물은 아이쿱과 약간의 연이 있는 곳에선 흔한 물이 되었다. 이제 어디서든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물에서마저 미세플라스틱이 검출되어 미세먼지와 더불어 미세플라스틱의 공포가 기픈물을 더 찾게 한다. 그런데 그 종이팩의 회수는 얼마나 만족스러운가? 21년 내가 사는 도시에 50만개 기픈물 캠페인을 펼치며 제일 많이 찾았던 곳이 환경과였다. 공무원들의 진부함을 탓하려는게 아니라 아직은 우리가 느끼는 체감온도가 그만큼 낮다는 것을 대면한 순간이었고, 아이쿱이 가지고 가는 방향성이 제대로 빛을 보려면 후속 작업이 좀 더 철저히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친한 지인은 인터넷공급을 주로 받는데 그 종이팩을 돌려주려고 버스를 타고 20분을 간다. 집에 쌓이는 종이팩은 스트레스 거리라고 한다. 마일리지 필요 없고 거듦손 없게 처리할 테니 제발 공급자 편에 반납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을 계속한다. 물론 그 불편은 감수할 만하다. 그 종이팩으로 만든 재생휴지는 자원순환을 확인하는 구체적인 물품이라 참 뿌듯하다. 재활용 물품은 단계별 많은 공정이 필요하므로 엔트로피증가는 불가피하지만 회수율과 재활용률이 비례함을 조합원들에게 계속 알리는 노력이 필요하다.
빨래를 자주 하는 게 옳은 행동인지, 한 번 더 헹구는 행위가 물을 낭비하는 것은 아닌지, 잔류농약 제거를 위해 물을 30초 동안 흘려보내는 것이 과연 얼마나 타당한 건지, 면행주를 쓰면서 닦고 삶고 헹구는 과정의 엔트로피 증가가 일회용 행주를 쓰고 버리는 엔트로피 증가와 정말 유의미한 차이가 있는 건지, 활동 중에 생겨나는 쓰레기는 그를 상쇄할 만한 가치를 지니는지 등등을 계속 고민하며 홀로세를 동시에 인류세를 살아간다. 이런 자잘한 고민을 일으키는 행동들이 쌓여서 지구 생태계는 균형을 잃었다.
영국의 화학자, 제임스 러브록에 따르면 지구는 생물, 대기, 바다, 육지 등으로 이뤄져 있고 이들의 상호작용으로 생물이 살아가는 데 가장 적합한 환경을 유지하는 자기조절기능을 갖춘 거대한 살아있는 유기체다. 바로 ‘가이아론’이다. 그러나 곧이어 러브록은 지구가 이제 불행하게도 자정 능력을 상실했다고 주장했다. 더 늦기 전에 인류가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경고한다. 한반도의 삼한사온은 이제 희미한 옛 기억이 되었다. 삼한사온이 되풀이되던 겨울이 자정능력을 가졌던 지구의 모습이었다. 한반도가 다시 삼한사온을 찾아올 수 있을까? 가마솥에 있던 개구리가 서서히 끓어오르는 물에 죽는다는 이야기는 이제 인류의 이야기가 되었다. 인류세의 공룡으로 멸종하지 않으려면 고민하고 생각하고 실천해야 할 때이다. 이제 라이프케어로 거듭나는 아이쿱의 현 모습이 이 모든 고민을 들어주는 방안이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