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한 지구를 응원하니? 그럼, 멸균팩 재활용, 알아보자.

전복경(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 이사)

2022년 9월 어느 날 아침이었다. 출근 직후 오는 전화라면, 통상적으로 화면에 떠야 할 이름은 몇 사람 정해져 있는데, 휴대폰 화면에 뜬 이름을 보는 순간. ‘이렇게 이른 아침에, 이분이? 뭐지?’

소비자기후행동 대표의 급보를 받은 아이쿱생협연합회 상무이사의 연락이었다. 소비자 활동 영역과는 업무적으로는 접점이 많지 않은 내게 이른 아침부터 전화가 왔으니 뭔가 급한 일일 것이었다. “환경부가 갑자기 멸균팩 분리수거를 안하겠다고 입법고시 예고를 했어. 이번 달 멸균팩 재활용 건축자재 보러 뉴질랜드 다녀왔던 내용 정리해서 공유 좀 해줄 수 있을까?”

이게 갑자기 무슨 뜬금없는 소리인가? 멸균팩 분리 수거를 열심히 해보기로 했고, 목하 열심히 하던 중 아니었던가? 이렇게 잘 분리 수거된 멸균팩을 재사용하여 환경에 도움이 되는 사업을 해보자며, 사업 준비 중에 있던 우리 법인 입장에서는 대체 무슨 상황인지 어리둥절할 수 밖에! 멸균팩 그리고 살균팩, 이들 종이팩 재활용 분야에는 뭔가 사연이 많은 듯 한데… 이 참에 마음을 먹었다. 뭐가 문제인지 나도 공부 좀 해보기로.

종이팩 재활용이 잘 안되고 있나요?

결론은, 잘 안되고 있다. 기후위기, 탄소중립과 같은 구호와 외침이 전혀 낯설지 않은 세상에 살고 있으니 어느 분야든 조금씩은 나아지고 있겠거니, 최소한 답보 상태는 유지하고 있겠거니 생각했는데, 그런 내 안일한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세상은 정반대로 가고 있었다. 2016년에는 25.7%였던 종이팩 재활용률이 2020년에는 15.8%까지 감소했다는 것이다.폐지 회수 선별사들의 육성을 들어보면 멸균팩을 별도 분리하는데 인건비가 더 들어가고 해당 비용을 판매단가에 반영하면 제지 회사들이 계약을 안하려 들기 때문에 그냥 선별하지 않고 폐기해버린다는 것이다. 갑자기 이 맥락에서 왠 멸균팩? 뭔가 잘 납득이 가지 않는다. 정말 살균팩과 멸균팩을 선별하기 힘들다는 것이 종이팩 재활용율 하락의 진짜 원인이라는 말인가? 그래서 지금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서 이런 참담한 결과가 있다는 것인데. 그 문제가 정말 해결 못할 문제라는 말인가?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멸균팩 사용이 늘어나서 문제라고요?

한국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에 따르면 우유, 쥬스 등 냉장 음료를 담을 때 사용하는 살균팩 출고량은 2014년 66,082톤에서 2018년 71,250톤으로 정점을 찍은 뒤 지속 감소하여 2022년 67,826톤을 나타내고 있다고 한다. 그에 반해, 두유나 소주팩처럼 상온 보관이 가능한 멸균팩 출고량은 2014년 16,744톤(종이팩 출고량의 25.3%)에서 2022년 32,128톤(종이팩 출고량의 47.4%)으로 2배 가량 증가했다고 한다.살균팩 사용량은 조금씩 줄어들고, 멸균팩 사용량은 급격하게 늘어나는 추세인데, 2025년이면 전체 종이팩 출고량 중 멸균팩이 차지하는 비율이 절반을 넘고, 2030년이 되면 65% 가까이 도달할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전망도 있다.

그런데, 멸균팩 사용량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살균팩 포장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흰우유 소비는 지속적인 학령인구 감소와 소비 취향 변동으로 급감하고 있다. 그러나 보관이 용이하고 장기간 변질에서 안전한 멸균팩에 대한 소비자 선호도는 오히려 상승하여, 멸균팩을 사용한 음료의 종류도 두유류, 쥬스류, 주류는 물론 플라스틱 사용을 배제한 생수까지 확대되고 있다. 결국 멸균팩 사용량 증가의 이면에는 소비자의 선택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 그 핵심이다. 자원을 재활용하겠다는 상위 목적을 달성하려면, 반드시 소비되고 있는 자원에 대한 특성을 파악하여 하위 목적과 세부 방안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제는 살균팩보다 멸균팩이 더 선호되는 세상이다. 특히 플라스틱 환경 오염에서 지구를 구할 대체 포장재로써 100% 재활용이 가능한 종이팩의 사용은 오히려 독려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소비자의 멸균팩 사용 선호도가 높아지는 건, 방향이고 흐름이라고 해석이 된다.

멸균팩하고 살균팩하고 뭐가 그렇게 다르길래요?

멸균팩도 종이고 살균팩도 종이라는 점은 같지만, 아무래도 내용물에 대한 보존력을 높이기 위해 멸균팩은 알루미늄 호일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 다르다. 종이팩을 재활용하는 과정에서 거치게 되어 있는 해리(解離 : 종이팩을 물 속에 풀어 뭉쳐있는 부분이 풀려 떨어지게 함) 공정에서 다소 차이가 있다. 멸균팩의 해리 속도가 살균팩보다 빠른데 적정 해리 시간을 거쳐야 양질의 펄프와 그 외 성분(알루미늄, PE)을 제대로 깔끔하게 분리해낼 수 있다. 살균팩 해리 속도에 맞추어 장시간 해리를 하다 보면 알루미늄 성분들이 펄프에 녹아들 수 있고, 알루미늄이 섞인 펄프로 만든 재생펄프 휴지는 품질이 떨어지는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해리 공정에서도 살균팩과 멸균팩의 구분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러니 제대로 자원을 재활용하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이것 저것 다 섞여 있는 폐지를 수거해서 멸균팩, 살균팩, 기타 종이 등을 분리하는 작업을 거치는 것이 매우 번거롭고 돈이 많이 드는 공정임을 금세 알 수 있게 된다. 처음부터 분리 배출하면 되는데, 그 앞단이 되지 않아 회수 선별에 비용이 많이 들어 못하겠다는 말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종이팩을 잘 분리 배출하면 되겠네요! 그런데어디에다?

종이는 나무로부터 온 정말 소중한 자원이다. 특히 멸균팩은 대표적인 플라스틱 대체재로 언급될 만큼 탄소배출 절감 효과가 우수한 소재다. 소비자기후행동에 따르면 종이팩 생산과 폐기 시 발생하는 탄소 발생량은 플라스틱의 3분의 1 수준이라고 한다.그 멸균팩의 사용량이 증가하고 있다면 그에 걸맞는 자원 재생 시스템을 짜서 소중한 자원이 쓰레기로 버려지는 일을 방지해야 할 것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회수, 선별 업체의 불필요한 공정을 없앨 수 있는 방법. 바로 소비자들의 분리 배출이 자원 재생 시스템의 출발선이다. 그러나 당장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만 해도 종이팩을 분리배출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전혀 없다. 나조차도 다 먹은 우유팩과 멸균팩은 씻고 말려서 자연드림 매장에 갖다 준다. 그 외 종이팩을 별도로 분리배출할 수 있는 곳이 어디 있는지 알지 못한다.

종이팩을 별도 분리 배출할 수 있는 곳이 없다는 현실도 당황스러운데, 심지어 지난해 12월부터 일부 공동주택 단지를 대상으로 살균팩과 멸균팩을 분리배출하는 시범사업 운영에 나서면서 사업 규모를 전국 공동주택 대상으로 확대하겠다고 약속까지 했던 환경부가, 갑자기 멸균팩을 ‘재활용 어려움’으로 표시한다는 ‘포장재 재질·구조등급표시 기준’ 일부개정고시안을 행정예고 했다. 국내 종이팩 재활용 체계가 미흡하다는 이유를 들어, 2021년 기준 전체 종이팩 출고량 중 43%에 달하는 멸균팩을 모두 쓰레기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예고한 것이다.갑작스런 행정부의 예고에 놀란 소비자기후행동에서, 종이팩 재활용 사업을 준비, 검토 중이던 우리 법인으로 급히 연락이 온 것이 이 글을 쓰게 된 계기가 되었다.

자원 재생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이 쉬운 것은 아니겠지만, 이처럼 그 첫 단계인 소비자 분리 배출부터 제동을 거는 이유는 무엇이고, 이것이 왜 현 상황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취해져야 할 조치인 것일까? 다시 한번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재생 펄프 마저 수입하는 현실을 아시나요?

멸균팩을 사용하여 재생 휴지를 만들고 있는 삼영제지와의 동아일보 인터뷰 기사를 확인해보면, 한달 필요 물량이 100톤이지만 가동하는 물량은 30톤이 되지 않는다는 내용이 있다. 멸균팩만이 문제가 아니다. 살균팩 재생 원료를 사용하는 부림제지의 경우도 연간 3000천톤이 필요하지만 국내에서 조달되는 재생펄프 비중이 30%이내 이고 나머지는 수입 재생펄프에 의존하고 있다고 한다. 혹자는 재생 펄프로 만든 휴지가 소비자에게 외면받기 때문에 소비가 되지 않는 것을 문제라 말하기도 하지만, 재생펄프를 수입까지 하여 공장을 돌리고 있는 현실을 안다면 그렇게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른 나라는 재생펄프를 수출까지 할 정도로 자원 재생을 잘 하고 있는데 왜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을까? 또한 규모가 큰 시설은 아니지만, 종이팩 재생 시설을 갖추고 있어도 원료를 조달받지 못해 가동률 30% 로 운영 중인 현실은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 것인가?

지속가능한 미래 - 기존 프레임에 갖힌 몇 몇 주체의 힘으로는 더 이상 불가능합니다.

‘탄소중립 실현으로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겠다. 과학적인 탄소중립 이행과 녹색 경제 전환, 기후 위기에 강한 물 환경과 자연 생태계 조성, 미세먼지 걱정 없는 푸른 하늘, 재활용을 통한 순환 경제 완성 등 주요 환경 과제들을 책임 있게 해결해 나가겠다.‘ 바로 환경부 홈페이지에 있는 장관 인사말이다. 물론 환경부도 정책을 실행함에 있어 여러 현실 앞에서 고민이 많겠지만, 그러나 몇 장 되지 않는 이 글에도 도대체 왜? 라는 질문이 수두룩한 이유에 대해 진심으로 숙고해 봐야 한다.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는 각 실행 주체들이 머리를 맞대고 로드맵과 방안을 만들고, 이를 실천해나가기도 사실 바쁜 시국이다. 그런데 자원 재생 흐름과 역행하는 정책 -점점 사용이 늘어나는 종이팩 자원을 쓰레기로 만들겠다- 의 갑작스럽고 일방적인 공표는,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주체는 오직 환경부와 회수.선별업체들 뿐이고, 다른 주체들은 들러리라는 메시지마저 읽혀져 씁쓸하다. 바라보는 국민들로 하여금 환경부가 정말 지속가능한 미래에 관심이 있는 것인지를 걱정하게 만들고 있다.

해외의 종이팩 재활용 사례만 잘 살펴보아도

종이팩의 분리배출이 잘 되어 회수.선별사들의 부담이 줄어든다 하여도, 종이팩 재활용사가 턱없이 부족하고, 재활용된 종이팩을 이용한 상품이 재생 화장지 정도로 한정적이라는 지적은 타당하다. (물론 그 한정적인 품목인 재생 화장지에 조차 수입 재생 펄프가 사용되고 있을 정도로 국내 재활용율이 미미함은 이미 기술하였다.) 그래서 해외 사례에 대해 연구하고 벤치마킹을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해외에서는 이미 다양한 종이팩 자원의 재생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멸균팩 재활용율이 99.4%라는 벨기에의 경우, 재활용 가치가 높은 음료 용기를 PET/METAL/DRINK(PAPER) 로 나누어 소비자가 분리배출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생산자의 재활용분담금은 재활용협회에 납부되고, 협회는 지자체, 수거자, 분리자에게 비용을 지급한다. 분리수거된 용기들은 재활용업체에 무상으로 지급되며, 재활용업체의 판매 수익금 중 일부가 협회에 납부되는 형태라고 한다. 종이팩 재활용율이 80%라는 스웨덴의 경우, 신문과 잡지 등의 폐지류와 달리 음료팩, 종이포장재류 등을 별도로 분리하여 다시 종이포장재를 생산하는 재활용 기업(대표적, Fisky Board)으로 보내진다고 한다. 재활용 기업에서는 종이 포장재 폐기물을 원료로 사용하는 각종 식품이나 생활용품의 종이 포장재 원단을 생산한다. 생산 공정에서 펄프 성분 외에 멸균팩 등의 폐기물에 포함된 각종 알루미늄, 접착제, 이물질 등은 열병합발전소로 보내어 공정에 필요한 열로 사용한다.

앞에서 언급한 삼영제지 외에도 최근 멸균팩 재생펄프를 사용한 화장지를 시범적으로 만들기 시작한 쌍용C&B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멸균팩 해리 과정에서 분리된 알루미늄과 PE 폐기물을 회수.선별사에서 일정량 이상 가지고 가지 않기 때문에, 멸균팩 재생펄프 함유량을 높일 수 없다고 한다. 기존에는 해당 폐기물을 중국에 수출해왔지만, 중국에서 폐기물 수입을 전면 금지한 이후로 이에 대한 재활용 방안이 현재는 국내에 없기 때문이란다. 이미 중국의 쓰레기 수입 금지 조치는 2017년(1차 수입금지 조치 예고)부터 예정되어 왔으며, 중국에 쓰레기를 수출하던 다른 나라들은 그 직후 대비책을 만들어 대응해왔다. 그런데 그 이후 수년이 지난 2022년 우리나라에서는 중국의 쓰레기 수입금지 조치 때문에 처리 방안이 없다는 답변이 아직도 나오고 있는 것이다.

종이는 나무이고, 나무는 지구와 그 위에서 살아가는 우리 인간에게 중요한 자원입니다.

우리 자연라이프 법인은 종이팩 재활용사로서 자원 재생 방안을 검토 중이다. 벤치마킹의 대상은 미국의 Continuus Materials LLC (기존 이름 리월(REWALL)로 잘 알려져 있음.) 및 뉴질랜드, 호주의 SaveBoard 이다. 이들은 모두 멸균팩을 이용한 친환경 건축자재를 만드는 곳으로, 멸균팩의 분쇄 후 열과 프레스를 이용한 압축을 통해 건축용 합판을 제조하고 있다. 다양한 멸균팩 패키징 디자인을 이용한 인테리어 마감이 가능한 합판부터, 보온, 방수, 방음 기능의 중간재와 천장재까지 갖가지 건축자재 생산이 가능하다. 본 사업은 재생펄프 공정에 꼭 필요한 해리 과정이 없기 때문에 더욱 친환경적이다. 본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멸균팩이 잘 회수되어야 할 것이다. 멸균팩이 잘 회수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법령이 일련화되고(환경부), 소비자들에 대한 홍보활동(재활용협회, 소비자기후행동) 등 해야 할 일이 많은데, 최근의 멸균팩 재활용어려움 등급 표시 입법 예고가 당황스러운 이유다.

이처럼 종이라는 소중한 자원을 쓰레기로 버리지 않고 재생하기 위해서는, 별도 분리배출 ? 회수.선별 ? 재활용.재사용 ? 재사용품 소비 라는 사슬을 튼튼히 연결하기 위한 큰 그림이 필요하다. 그 안에서 각 주체의 역할을 정하고, 구멍이 있는 부분을 메워나가기 위한 협의와 협력을 통해야만 이 중요한 미션이 완성될 수 있다. 현재 발생하고 있는 문제만을 확대하여 단편적인 정책을 내놓는 것은 각 주체간 갈등을 더 부추기고, 소비 현장의 큰 흐름에 대한 통찰을 단절시켜 앞으로 나아가는 발목을 움켜쥔다. 그보다는, 더 큰 그림을 제시하고, 함께 그려나가기 위한 장을 마련하는 것이 훨씬 중요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