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 싶은 길과 가야 할 길
주세운(전국사무연대노조 동작신협지부 지부장)
협동조합이란 무엇일까. 다른 여느 조직이 그렇듯이 세상에 존재하는 협동조합의 모습도 다종다양할 것이다. 다만 협동조합을 협동조합이게 하는 본질이 무엇일까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협동조합의 7원칙을 꼽고 싶다. 자발적이고 개방적인 조합원제도, 조합원에 의한 민주적 관리와 자본에 대한 공정하고 민주적인 통제 등. 그러한 협동조합의 정체성이 독특하면서도 매력적이었기에 우연한 계기로 시작된 신협과의 인연을 지금까지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적자생존의 시장경제 안에서, 보다 인간적인 경제활동을 찾고자했던 나의 순진무구한(?) 기대는 직장생활 초반부터 보기 좋게 배반당했다. 물론 이상은 이상일뿐 현실의 적용은 다를 수 있다고 이해한다 해도, 그 격차가 너무 심했다. 업무적으로는 신협의 자본을 통해 사회적경제기업의 자금조달을 지원하는 사회적금융을 담당하며 나름의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독단적인 업무지시와 보험판매에 대한 실적강요, 불필요한 조기출근과 야근의 생활화 등 부조리한 내부의 조직문화를 감수해야 했다. 대외적인 사회적 가치추구에 자부심을 느끼면서도 근로기준법이 존재하지 않는 듯한 일상의 부조리함에 자괴감을 많이 느꼈다. 단적으로 타 협동조합에 대한 대출을 심사할때는 임직원간의 급여차이가 적은 임금체계를 우대하는 사회적가치 평가를 사용했지만, 실제 내가 근무하는 조합 내부의 임금제도는 상고하저의 거꾸로 된 임금인상 방식을 강요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직장생활의 경험이라고 나름 감수하려고도 했다. 하지만 연차가 쌓이면 쌓일수록 내면에서 느끼는 인지부조화가 커져갔다. 같은 이유로 많은 선배들이 먼저 조직을 떠나갔다. 어느새 내 차례도 오는 듯 했다. 그런 비자발적 퇴사를 고민하던 순간, 같은 고민을 함께 하는 동료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리고 노동조합을 통한 조직문화 개선이라는 선택지를 발견했다. 작다면 작고 크다면 큰 몇 년간의 노조활동을 통해 과다한 보험판매 강요를 멈추고, 근로기준법에 의한 주40시간 노동을 보장받게 되었다. 하후상박의 협동조합다운 임금인상제도도 도입할 수 있었다.
어느덧 노동조합 지부장도 3년차가 되니 조금은 담담하게 지난 시절을 담담히 회고할 수 있게 된다. 처음엔 신협 활동가, 그리고 사회적금융 종사자를 꿈꾸었고, 그 길을 가고자 했다. 그런데 알 수 없는 인생의 경로 앞에서 어느덧 내게는 노동조합 활동가라는 직책이 추가되었다. 원하고 애정했던 사회적금융 업무에서는 배제되었지만, 신협 내부에서라도 나름의 사회적가치를 추구하고자 했다.
지금도 직장인 익명커뮤니티에서 신협을 검색하면, “신협 탈출은 지능순…” 과 같은 자조 섞인 멘트가 다수다. 물론 이는 특정 신협만의 고민은 아닐거다. 어디선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을 협동조합과 사회적경제 활동가들의 연대를 바라며 이 글을 띄운다. 협동조합과 노동조합이 상호 배치되는 길은 아니라고. 같은 가치를 조직의 안팎에서 추구하는 것 뿐이라고.
누가 그랬던가. 인생이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가고 싶은 길과 가야 하는 길 사이에서 울고 웃었던 지난 몇 년 간을 추억하며 작은 기록을 남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