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경제 기본법’ 논란을 보면서

이일영, (재)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 연구위원

작년부터 정치권에서 ‘사회적경제 기본법’이 논의되었다. 법안이 추진되는 과정은 국민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고, 반대 운동과 정치적 파동이 부각된 측면이 많다. 마침 일간지에 기고할 기회가 있었는데, 협동조합의 입장에서도 함께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다.

유승민 새누리당 전 원내대표가 혜성처럼 등장했다가 사라졌다. 많은 국민들의 유승민 의원에 대한 한 여름 밤의 꿈은 오히려 박근혜 대통령에 의해 시작되었다. 박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다음과 같이 일갈했다. “정치적으로 선거수단으로 삼아서 당선된 후에 신뢰를 어기는 배신의 정치는 … 반드시 선거에서 국민들이 심판해주셔야 할 것이다.” 연금개혁이나 국회법 개정 같은 이슈는 사라지고 배신자로 찍힌 유 의원이 박 대통령의 맞상대로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결국 유승민 의원은 2주일 만에 물러섰다. 단기적으로는 박근혜 대통령이 승리했지만, 대통령과 친위 그룹의 리더십은 손상되었다. 이제는 여권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집권 세력의 능력, 자질, 지도력, 통솔력에 대한 기대는 사라져가고 있다. 유 의원은 후퇴했지만 ‘따뜻한 보수’와 민주공화국의 수호자라는 장기적 브랜드를 축적했다. 그에 대한 국민적 지지는 박 대통령과의 대립 속에서 반사적으로 형성된 것이므로 아직 단단하지는 않다. 그래서 유 의원의 정치적 장래에 대한 궁금증들이 많지만, 그것은 그가 구체적 현실에 뿌리를 내린 판단과 행동을 지속적으로 보여주는가에 달려있다.

최근 유승민 의원의 정책활동과 관련해서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 작년 4월 그가 대표 발의한 ‘사회적경제 기본법안’이다. 이는 유승민 의원의 정책 포지션을 구체적으로 나타내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유승민 의원을 공격하는 구보수 세력이 ‘사회적경제 기본법안’을 쟁점으로 집결하고 있다. 진작부터 자유경제원, 어버이연합 등에서는 사회적경제 기본법안을 비판하는 캠페인을 벌인 바 있다. 최근에는 일부 지식인과 보수 언론에서 유승민 의원과 사회적경제를 ‘이념적 배신’으로 함께 묶어 공격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유 의원의 입장에서 보면 극우 보수세력과 각을 세우는 것이 정치적으로 꼭 불리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가 주장하는 신보수 입장에서는 국가가 지원하여 사회적경제를 육성하는 논리가 성립할 수도 있다. 어쨌든 이번 파동을 통해 법안 통과는 어려워졌고, 사회적경제에 대한 집권세력의 거부감이 커졌다고 한다. 사회적경제는 국민들 인식에서 큰 타격을 입었다. 사회적경제의 본질이 왜곡되고 엉뚱한 이념투쟁과 정쟁의 대상으로 전락하였기 때문이다. 차제에 한숨 돌리면서 지금까지 추진되었던 법안이 사회적경제의 자생력과 지속적 발전에 도움이 되는지를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법안 제안 이유를 보면, 국가가 책임지는 복지와 자유시장경제가 만들어내는 성장을 추구하면서 이를 보완하는 차원에서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사회적 가치에 주목한다는 것이다. 이는 현실에서 존재하는 자본주의 혼합경제 시스템의 전형적인 모습을 추구하는 것으로, 극우적 시장만능주의자가 아니라면, 크게 문제 삼을 것은 없다. 이미 사회적경제 조직으로 협동조합, 사회적기업, 마을기업, 자활기업, 농어촌공동체회사 등이 다양하게 발현하고 있다. 이들의 활동과 관련된 규칙 제정과 지원·감독을 행하는 정부기능이 어수선하게 흩어져 있는 것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주요 내용으로 가면 공동체주의나 혼합경제를 지지하는 입장에서도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대목들이 많다. 법안에 의하면, 국가가 사회적경제 발전을 위한 종합적인 시책을 세우도록 했었다. 더 구체적으로는 기획재정부장관이 사회적경제 발전에 관한 기본계획을 5년마다 수립하고 이 기본계획에 따라 주요 시책의 시행계획을 매년 수립·시행하도록 했다. 또 기획재정부장관은 사회적경제 활성화 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한국사회적경제원을 두도록 한다. 새누리당의 법안 내용은 국가기구를 통해 자원을 동원하겠다는 성장지상주의의 발상을 느끼게 한다.

올 봄 여야 합의 과정에서는 협동조합기본법 이전에 설립된 농협과 수협 등 대규모 협동조합들도 기본법 적용 대상에 포함시키기로 했다고 한다. 또 대통령 직속으로 사회적경제위원회를 설치하되 사무국을 기획재정부에 둔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관련 정부 부처 장관, 17개 광역시장과 도지사를 당연직 위원으로 하고 기금도 설치한다고 하니, 무슨 대형 국책사업을 추진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회적경제의 입장에서 보면 자생적 발전을 왜곡시킬 수 있는 과도한 국가개입은 조심해야 한다. 사회적경제가 고립된 존재는 아니지만 그 본질은 국가와 시장과는 구분되는 결합과 연결의 원리를 지닌 공동체사회다. 국가주도의 하향식 계획과 보조금은 사회적경제에 자칫 독약이 될 수 있다(경향신문, 2015.7.30).

여기에 몇 마디 덧붙여보자. 협동조합은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서는 조직이다. 그러나 시장주의와 국가주의는 모두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어 협동조합은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기 쉽다. 특히 동아시아에서는 국가주의의 영향력이 강하다. 한국은 동아시아 모델의 전형적인 사례인데, 국가가 경제와 사회에 깊숙이 개입해왔다. 한국에서의 대형 협동조합들이 국가기구처럼 작동하는 것이 우연이 아니다.

박정희 모델은 1970년대에 확립되었지만 그 뿌리는 1930년대에 있다. 1931년 9월 일본 관동군은 만주사변을 일으켜 중국 군벌정부를 몰아내고 만주국을 수립했다. 만주국에서는 근대 발전국가 형성이 목표로 설정되었다. 만주국은 당시 일본을 제외하고는 가장 산업화된 지역으로 부상했지만 경제발전의 이면에는 국가에 의한 억압과 통제가 자행되었다. 만주국의 경험은 이후 일본, 한국, 중국 등의 산업화에 참고가 되었다.

개발을 위해 통제(독재)를 행하는 근대 발전국가의 이중성은 파시스트 이탈리아, 나찌 독일, 스탈린의 소련, 군국주의 일본에도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바였다. 특히 1930년대의 소련에서 자생적 공동체들은 비참한 상황에 처했다. 국제적으로 명망이 높았던 협동조합주의자 차야노프는 유배되었다가 결국 처형되었고, 집단화 과정에서 협동조합의 자생성은 철저히 말살되었다.

생각해보면 새누리당과 같은 보수정당이 사회적경제를 국가 관리의 틀 속에 두고자 하는 것은 그 나름대로 역사적 맥락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협동조합 본연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사람들은 국가와 먼 거리에서 자신들의 ‘작은 세계’를 만들고 싶어 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도 기억해 두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