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적 만남이 낳은 구례 ‘자연드림파크’
이윤성(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 객원연구원)
내가 아이쿱생협과 만난 것은 구례군 도시경제과장으로 부임한 2010년 하반기였다. 당시 나는 함평군에서 구례군으로 갓 전근을 한 터였고, 때마침 도시경제과에서는 용방농공단지 투자기업 유치 활동을 벌이고 있었다. 구례군 용방면 죽정리 일대 4만 5천여 평의 부지에 126억 원을 들여 조성된 용방농공단지는 전라남도의 심사와 산업자원부 등 4개 부처 합동 타당성 조사를 거친 ‘2008년도 농림식품부 신규 농공단지 조성사업’ 가운데 하나였다. 그런 만큼 구례군으로서는 매우 중요한 사업이었다.
용방농공단지는 새로 난 고속도로와 인접해 있으면서도 지리산 노고단이 마주 보이는 천혜의 친환경 요지였다. 애초에 구례군은 거기에 공해를 유발하지 않는 식품, 전기?전자 등 친환경 기업 16개 업체를 우선 유치할 방침을 세워둔 터였다. 그에 따라 수개월 전부터 분양공고를 내놓은 상태였고, 이런저런 기업들이 투자 의사를 보이고 있었다. 닭 가공으로 유명한 어느 기업은 농공단지 전체를 모두 분양받겠다는 뜻을 나타내기도 했다. 거기에 솔깃해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찌 보면 한 번에 농공단지 분양을 완료할 수 있는 기회였다. 하지만 투자유치 업무를 지휘 관리하는 도시경제과장으로서 나는 기업 선정에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매연이나 오폐수 등 공해를 유발하는 업종은 단호하게 유치 대상에서 제외시켰다. 그러다보니 지역에 도움이 될 만한 기업이 하나도 없었다.
단순히 일자리 몇 개를 만드는 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청정한 구례의 환경과 이미지를 해치지 않고 장기적으로 지역 주민의 삶에 도움이 될 진짜 친환경 기업을 찾기로 방침을 정했다. 그것이 농공단지 조성의 진정한 의미라고 믿었다. 투자유치를 담당한 일선 직원들은 내 뜻에 충분히 공감을 해주었다. 물론 단지 분양 문의를 해오는 업체들 가운데서 우리 뜻에 맞는 기업을 찾는 게 쉽지는 않았다.
그러던 2011년 2월 어느 날. 아이쿱생협 순천물류센터 민경진 센터장이 불쑥 나를 찾아왔다. 소탈한 작업복 차림의 민경진 센터장은, 물류센터를 새로 지을 부지가 필요하다며 용방농공단지 두 블록을 분양 받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아이쿱생협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한 상태였다. 다만 주주들의 이해관계에 얽매이는 일반 기업이 아니라 비영리 협동조합법인이며, 친환경 유기 농산물을 소비하는 조직이라면 구례 군민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겠다 싶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로부터 며칠 뒤, ‘답은 현장에 있다’는 지론에 따라 나는 투자유치계 담당 직원들을 이끌고 순천물류센터를 방문했다.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밝은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우리 뜻에 맞는 투자자를 비로소 찾은 느낌이었다. 내친김에 나는 물류센터뿐만 아니라 아이쿱생협의 더 많은 사업부문을 용방농공단지로 끌어오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했던가. 나는 센터장에게 아이쿱 경영진을 만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 사이에 몇몇 일반 업체들의 분양 문의가 있었으나 협의를 전면 중단시켰다. 그리고 아이쿱생협과의 협상에만 집중했다.
2011년 4월 19일. 드디어 아이쿱생협 경영진을 대상으로 투자유치 설명회 형식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나는 구례군과 용방농공단지에 대한 전반적인 브리핑을 하면서 더 많은 투자를 권유했다. 우리의 적극적인 투자유치 활동에 대하여 아이쿱 경영진은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설명회 며칠 뒤에 아이쿱생협의 신성식 경영대표가 용방농공단지 현장을 답사했고, 이어서 나는 서기동 군수와 서은식 군의회의장 등을 모시고 아이쿱생협 본부를 공식 방문했다.
그처럼 서로 오고가는 동안 구례군과 아이쿱생협 사이의 투자 협상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더불어 2011년 5월 31일에 있었던 ‘구례용방농공단지 투자유치를 위한 아이쿱생협연대와 구례군의 사전협의회’에서 주요 협상은 사실상 마무리되었다. 아이쿱생협은 용방농공단지 4만 5천여 평, 13개 블록을 45억여 원에 분양을 받고, 구례군은 아이쿱생협의 성공적인 투자를 위해 행정적, 재정적 지원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한편 아이쿱 생협연대는 고용 창출, 지역 업체 참여 등 지역경제 활성화 측면을 배려하여, 우리밀과 산수유 등 구례의 특산물을 이용한 특화 단지를 조성하는데 적극 노력하고, 구례군의 친환경농산물 판로 확보에 적극 앞장선다는 등의 세세한 부속협약 내용도 합의되었다. 사실은 이러한 부속 협약사항이야말로 용방농공단지 조성의 의미를 살리는 알짬이었다.
그로써 물류센터뿐만 아니라 라면공장, 제분공장, 베이커리 등 식품가공시설을 집약한 ‘자연드림파크’의 청사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침내 6월 29일에는 서기동 구례군수와 아이쿱생협 신복수 회장이 투자계약서에 서명을 했다. 그에 앞선 6월 22일에는 남원생협 자연드림 매장 개소식을 마친 아이쿱생협 경영진과 활동가들이 빗속을 뚫고 용방농공단지를 방문함으로써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띄우기도 했다. 또한 10월 22일에는 전남 동부, 경남 서부 권역 조합원들이 대거 참여하는 아이쿱생협 축제가 구례에서 열렸다. 많은 조합원들이 용방농공단지를 답사한 뒤, 지리산 둘레길을 걸었다. 그 분위기를 이어 10월 25일에 ‘자연드림파크’ 기공식이 열렸다. 첫 삽을 뜨기도 전에 이미 구례 용방농공단지는 아이쿱생협 활동가와 조합원들의 순례지가 되었던 것이다.
한편 2011년 8월에 나는 지방서기관으로 승진을 하면서 기획감사실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나 형식적인 자리 이동일 뿐, 여전히 나는 자연드림파크 설립과 관련한 행정 지원을 주된 업무로 삼았다. 사실 기초단체인 군에서 4만 5천여 평의 풀밭을 가공생산단지로 만든다는 것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상급 행정기관이나 관련기관과 까다롭고 복잡한 절차를 일일이 협의하여, 수십 가지의 기반시설을 한 치의 차질 없이 구축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과정에서 늘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하기 마련이었다. 자연드림파크 공사에서도 기공식 직후부터 그런 문제가 불거져 나왔다.
2011년 9월의 일이었다. 용방농공단지는 기반 공사가 마무리되었는데, 폐수처리장이 미비한 상황이었다. 난관이었다. 폐수처리장 예산은 전액 국비로 지원하는 항목이었는데, 그 소관부처인 환경부에서 4대강사업의 영향으로 예산 지원을 미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공장이 완성되어도 가동을 할 수 없는 지경임을 뜻했다. 그러자 공사장에서는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연드림파크 유치를 주도한 나는 그 사태에 대해 막중한 책임을 느꼈다. 그래서 현장을 관할하던 아이쿱생협 실무자를 안심시키느라 “도저히 해결이 안 되면 우리가 차로 날마다 퍼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큰소리는 펴놓았지만, 실상은 참으로 막막한 일이었다. 나는 무조건 부딪혀 보기로 했다. 그래서 만사를 제쳐두고 폐수처리장 예산 집행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만한 중앙부처인사들과 국회의원들에게 일일이 사정을 호소했다. 특히 국회예결위 위원인 김영록 의원이 진도에 내려와 있다는 말을 듣고는, 투자유치계장과 함께 곧장 진도로 달려가서 점심 때 간신히 10분가량의 면담시간을 얻어내어 도움을 청했다. 그처럼 발품을 파는 노력 끝에 예산이 확보되었다. 더구나 폐수처리 규모가 애초보다 두 배나 늘어난 500톤 용량의 시설 예산을 가져오게 된 것이다. 다만 그 일에 누가 얼마만큼의 도움을 주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었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에게 부탁을 해놓은 까닭이었다.
그런 곡절을 거친 끝에 구례군과 아이쿱생협은 동반자가 되었다. 그간 구례군이 자연드림파크의 성공적인 안착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은 만큼, 아이쿱생협 또한 보조금 사업의 성과를 장기적으로 지역에 환원하겠다는 약속을 잘 지키고 있다. 실례로 아이쿱생협은 구례군과 ‘씨앗장학금’ 지급협약을 체결하고, 2012년 7월에 구례군 학생들에게 3천만 원의 장학금을 지급한 바 있다. 또 지난 연말에는 2천2백만 원어치에 상당하는 물품을 불우이웃들에게 제공했다. 이런 활동은 대부분 아이쿱생협 활동가들과 접촉하던 초기에 소주한 잔 기울이며 사심 없이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이야기된 내용들이다. 당시에 투자유치 실무담당 직원들 사이에서는 “아이쿱생협 같은 곳에는 농공단지를 공짜로 줘버려도 된다. 그래도 장기적으로 구례에 도움이 될 것이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물론 행정적인 규정이나 구례군의 형편상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지만, 적어도 우리는 그런 마음으로 다가갔고, 아이쿱생협의 실무 활동가들 또한 사업성과를 지역에 환원하는 길을 우리보다 먼저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다가왔다.
사실 지방자치단체의 입장에서 보면, 용방농공단지처럼 적잖은 규모의 투자유치사업에는 여러 가지 잡음이 발생하기 십상이다. 더러는 사업과 관련된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개입되어 일을 엉뚱한 방향으로 몰고 가기도 한다. 하지만 윤리성과 사회적 책임을 중시하는 아이쿱생협과 구례군은 서로를 존중하며 함께 사는 길을 모색했다. 또한 지역 전체의 이미지와 주민 전체의 실익을 고려한 장기적 전망을 설정했다. 그러다보니 계산기를 두드리는 투자협상이 아니라 진심어린 대화를 통한 만남을 추구해왔다. 구례 자연드림파크는, 그처럼 구례군과 아이쿱생협의 윤리적인 만남이 낳은 결실이었다.
사람이 관계를 맺을 때는 만남의 방식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단체와 단체 사이에 상생의 인연을 맺는 데도 만남의 방식이 중요하다. 그리고 만남의 방식도 윤리적이어야 한다. 올해 2월. 나는 구례군 기획감사실장 근무를 마지막으로 공직에서 명예퇴직을 했다. 34년 공직생활의 대미를 아이쿱생협과의 인연으로 장식한 것이다. 덕분에 나는 협동조합에 대해 새롭게 이해하게 되었다. 더불어 지금은 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 객원연구원으로 활동하면서, 농촌 지역과 소비자협동조합과의 다양하고 새로운 만남을 꿈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