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의 경제학과 협동1)
정광민 (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 연구위원)
얼마 전 신자유주의 개혁의 효시였다고 이야기되는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수상이 세상을 떠났다. 신자유주의의 신봉자들은 그녀의 업적을 높이 평가할지 모르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게다. ‘보리밭에 부는 바람’의 켄 로치 감독은 “대량해고, 공장폐쇄, 공동체 파괴, 이것이 그녀가 남긴 유산”이라면서 “현대 영국 총리들 중 가장 분열적이고 파괴적인 사람”이었다고 회고했다.
지난 30여년간 전 세계를 휩쓴 신자유주의 개혁은 작은 정부라는 이름 하에서 실업과 기아의 공포를 부활시켜 그것을 채찍으로 삼아 경제적 활력을 높인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두운 과거로 역사의 시계바늘을 되돌리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신자유주의는 빈곤과 격차를 양산하고 말았다.
신자유주의의 파국은 사람들로 하여금 신자유주의를 창도했던 주류경제학에 대한 비판적 문제인식을 환기하였고 대안적인 경제모델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주류경제학의 전통적인 인간관은 호모 에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다. 인간은 자신이 얻을 이익과 손해를 순식간에 계산해 합리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이다. 시장 적합적인 인간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경제인 관념은 자기 이익의 최대화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이기적 행동을 전제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인간이 이기적이라고만 말할 수는 없다. 인간이 이기적인 일면이 있지만 이타성을 갖는 존재라는 것은 사회생물학이나 행동경제학의 선행 연구에서 이미 밝혀진 사실이다.
사람들이 타자의 이익을 고려하고 서로 협동하는 존재라는 것은 협동조합을 하는 사람에게는 상식적인 이야기다. 이탈리아의 위대한 협동조합 운동가 이바노 바르베리니는 “협동은 인간의 DNA에 내재되어있다.”고 말하였다.
시장원리주의적인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 비전이나 대안경제는 모두 이러한 협동하는 인간관을 기초로 하고 있다. 연대경제나 공유경제, 행복의 경제학은 협동에 기초한 대안경제의 비전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이다. 나눔의 경제학 역시 이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나눔의 경제학이 온다』의 저자, 진노 나오히코 동경대 명예교수는 “인간은 슬픔이나 인정을 서로 나누면서 살아온 동물”이라고 하면서 “인간은 연대와 협력에 기초한 나눔의 욕구를 지닌 존재”라고 규정하였다. 나눔의 경제학이 상정하는 인간관은 이것이다. 인간은 혼자서는 살 수 없고 공동체를 이루어야 생존할 수 있다. 나눔 덕분에 다른 사람의 삶도 가능해지고 자기의 삶도 가능해지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다른 사람의 이익이 곧 자기의 이익이 된다. 이것을 지탱하는 것이 바로 나눔의 원리이다. 진노선생은 나눔의 원리를 협력원리 혹은 협동원리라고 부른다.
협력원리에는 세 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는 자신을 포함해 다른 사회 구성원 모두가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상호 확인하는 것이다. 즉 어떤 인간도 사회에서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존재며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서로 필요로 한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슬픔이나 고통을 ‘나누어 가질’ 때 자신이 사회 구성원에게게 반드시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확인한다. 슬픔이나 고통으로 지새우는 사람과 그것을 ‘나누어 가지면’ 그는 자신이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존재라고 느끼게 된다. 나눔은 사람들에게 삶의 보람을 주고 다른 사람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자기 삶의 기쁨이라는 것도 가르친다.
둘째는 공동 책임의 원칙이다. 즉 모든 사회구성원이 공동으로 책임을 지는 것이다. 사회가 공동으로 책임을 진다는 것은 사회 구성원이 각각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자신만의 능력을 가지고 협력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누는 것’은 사회 구성원이 공동 책임을 져야 할 대상이므로 사회 구성원이 협력해서 실시해야 하는 공동작업이 된다.
셋째는 평등의 원칙이다. 모든 사회 구성원이 평등한 권리와 책임을 지는 것이 나눔의 전제조건이 되는 것은 자명하다. 물론 평등이란 공정함을 의미하는 것인데, 인간이 각자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면 서로 다른 대우가 필요하다. 그러한 공정의 배후에는 동질적이고 공통적인 권리와 책임이 존재한다는 전제가 있다. 나눔이란 그러한 공통적인 권리?책임에 대한 인식을 전제로 한다.
진노교수는 신자유주의가 초래한 위기의 시대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나눔의 원리, 협력원리에 기초한 사회, 즉 나눔의 사회로 가야한다고 주장한다. 진노교수는 산업혁명 이후 확립된 근대 공업사회는 인적 환경과 자연환경을 파괴하고 서로 빼앗는 강도문화의 시대였다고 지적한다. 오늘의 세계적인 위기도 따지고 보면 나눔을 빼앗긴데서 기인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나눔의 사회란 어떤 사회인가? 나눔의 사회는 무엇보다 나눔의 경제가 실현된 사회이다. 재정사회학적 관점에서 시장사회는 정치시스템, 경제시스템, 사회시스템의 세 개의 서브시스템으로 구성된다. 토탈 시스템으로서 시장사회는 경쟁원리에 기초한 시장경제와 협력원리에 기초한 나눔의 경제로서 성립되는데 경쟁영역과 나눔의 영역의 적절한 균형 하에서 나눔의 경제가 빛을 발한다. 나눔의 경제를 구현하는 데는 정치시스템(=정부)의 경제활동인 재정의 역할이 중요하다. 재정이란 공동의 어려움을 공동 부담을 통해 공동 책임으로 해결하기 위한 경제다. 즉 재정이란 본래 나눔의 경제이고 또 그러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나눔의 경제에서 중요한 것은 사회시스템에 속하는 가족, 지역공동체, 협동조합, 그리고 비영리 시민조직의 경제이다. 진노교수는 빈곤과 격차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서 사회시스템의 재활성화 전략을 지지하고 있는데 여기서 협동경제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 부분은 나중에 다시 언급하기로 한다.
나눔의 사회는 노동시장의 양극화를 극복하는 사회이다. 신자유주의 정책과 함께 노동시장의 규제가 완화되면서 기업은 저임금과 함께 해고가 용이한 비정규직을 대거 고용하였고 이로 인해 노동시장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분단되고 말았다. 진노교수는 이처럼 양극화하는 노동시장을 극복하기 위한 기본전략으로서 세 가지 동권화 전략을 제시한다. 세 가지 동권화란 임금의 동권화, 사회보장의 동권화, 노동시장 참가의 동권화를 말한다. 동권화는 나눔이며 협력원리를 의미한다.
나눔의 사회는 지식사회로의 비전을 갖는 사회이다. 중화학공업을 기축 산업으로 하는 공업사회는 이미 낡은 시대가 되었다. 포스트 공업사회는 지식사회이다. 지식사회는 지식산업을 기축으로 하는 사회이다. 공업화 시대는 인간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자연이 서로 어울리면서 충족되는 욕구, 즉 나눔을 통해 충족하는 욕구인 존재욕을 희생하며 소유욕을 추구해온 시대였다. 지식사회는 공업사회에서 희생해온 고차적인 존재욕을 추구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공업사회가 임금을 ‘당근’으로 빈곤과 실업을 ‘채찍’으로 삼아 인간을 단순노동이라는 비인간적 사용방법으로 몰아갔다면 지식사회는 그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사용하는 방법’을 실현하는 사회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편에서 산업구조 전환을 추구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노동시장 참가를 정책적으로 보장하는 슘페터식 워크페어 국가로 전환해가야 한다. 아울러 정치시스템에서는 나눔을 강화하여 대인 사회서비스를 확충하고 사회적 안전망을 새롭게 정비해야 한다. 이것을 위한 세 가지 전략이 인간능력 향상 전략, 생명활동 보장 전략, 사회자본 배양 전략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나눔과 협동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하자. 나눔의 경제학은 지식사회로의 비전을 갖는 협동론이라고 할 수 있다. 나눔의 경제학에서 협동은 크게 보면 두 가지 차원에서 이야기되고 있다. 나눔이란 거시적인 정치, 경제, 사회시스템의 개조를 함축하고 있는데 그 방향성이 협력원리(협동원리)에 입각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거시적 차원의 협동론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미시적인 차원에서 협동조합 조직의 미션이 강조되고 있다는 점이다. 전자와 관련해서는 이미 살펴보았기에 재론하지 않는다. 나눔의 경제학에서는 사회시스템으로서의 협동조합과 같은 자발적인 기능조직의 역할을 중시한다. 진노교수의 협동조합론으로서는 2011년에 쓴 「더불어 사는 사회 만들기를 향하여―새로운 시대는 협동조합으로부터」라는 논문이 있다2).이 논문에서 진노교수는 신자유주의의 ‘정부 축소―시장 확대’ 전략은 대실패로 끝났다고 진단하고 ‘정부 축소―시민사회 확대(less state, more civil society)’ 전략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것을 사회시스템의 재활성화 전략이라 부르고 있다. 사회시스템의 재활성에서 중요한 것은 ‘더불어 사는 공생의식’과 ‘민주주의의 재창조’이다. 여기서 협동조합은 각별한 의미가 있다. 협동조합은 상호부조 기능을 목적으로 하는 기능집단인 동시에 사회적 집단의 어려움을 해결하여 사회적 통합을 도모하기도 한다. 협동조합이 활성화된다는 것은 사회시스템이 경제시스템의 방향으로 외연적으로 확대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생활기능이 영위되는 사회시스템이 생산과 분배를 담당하는 경제시스템을 그 내부에 끌어들이는 것이다. 또한 육아, 돌봄, 교육 서비스를 협동조합이 담당함으로써 사회시스템은 정치시스템의 방향으로서 확대된다.
결국 사회시스템의 재활성화 전략은 경제시스템의 재편을 의미함과 동시에 정치시스템에 맡겨온 임무(=복지 관련)를 분임하고 재포섭하는 것을 의미한다. 공생의식에 기초한 민주주의의 재창조는 바로 이 부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아무튼 경제시스템의 재편과 정치의 재포섭, 이것이 사회시스템 재활성화 전략의 핵심이고, 오늘의 협동조합의 미션은 이런데서 찾아야한다는 것이 진노선생의 협동조합론의 요지이다.
전체적으로 본다면 나눔의 경제학은 협력원리에 입각하여 토탈 시스템을 보다 인간적인 사회로 재편?강화하는 방향성을 가지고 있고 사회 재편의 주요한 담당자를 협동조합, 협동경제로 설정하고 있다. 이점에서 나눔의 사상은 정병호 선생의 말씀처럼 협동조합운동의 개념적 전선을 확대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1) 이 글은 진노 나오히코 교수의 『나눔의 경제학이 온다』(푸른지식, 2013)를 중심으로 기술한 것인데 아래에서는 인용 부분의 표기는 생략한다.
2) 「「共に生きる」社?づくりに向けて─新しき時代は協同組合から─」(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