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 가치를 클릭하는 사회적 경제
김찬호 (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 연구위원)
불황의 그늘이 길어지고 깊어지는 요즘, 자영업자들의 고통은 점점 가중되고 있다. 손님 한 명이라도 더 붙잡으려는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진다. 그런데 이따금 손님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갖는 식당이 있다. 종업원이 나를 환영하기는커녕 오히려 귀찮아하는 듯한 표정을 짓는 것이다. 그 심정이 적나라하게 표출되는 경우도 있다. 나의 어느 지인은 스무 명 정도의 일행을 데리고 어느 음식점에 들어갔는데, 종업원이 당황하면서 왜 이렇게 많이 들어오느냐고 짜증을 내는 바람에 기분이 나빠서 도로 나왔다고 한다.
그런데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면 이해가 갈 만도 하다. 그는 손님이 많든 적든 상관없이 똑같은 급료를 받는다. 손님이 많아지면 주인은 신이 나지만, 종업원은 일만 많아지기에 반갑지 않다. 합리적인 고용주라면 일이 늘어나는 것에 따라서 일꾼도 늘이겠지만, 욕심 때문에 또는 불가피한 사정 때문에 그렇게 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장사가 잘 되고 일감이 늘어날수록 종업원은 고되다. 이것은 자본주의 사회의 소외된 노동 현실을 함축하고 있다. 일이 오로지 밥벌이의 수단으로 전락했을 뿐 아니라, 고용주의 이윤 증가와 거기에서 비롯되는 즐거움을 공유하지 못하는 것이다.
식당 주인이 현명하다면 매출이 늘어나는 것에 비례해서 일정 부분 성과급을 줄 것이다. 그것은 경영상 절대로 손해가 아니다. 종업원이 손님을 대하는 태도가 매출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상식이기 때문이다. 서비스업이 아니라 해도 사원들의 마음을 업주의 이해관계에 최대한 근접시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대기업이 연말에 전체 실적에 따라서 일괄적으로 보너스를 지급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시키는 대로만 일하는 수동적인 자세가 아니라 주인 의식을 가지고 근무할 때 인지의 폭이 넓어지고 일에 대한 감수성이 섬세해진다.
사회적 경제는 그러한 주인의식을 더욱 분명하게 지향한다. 그것은 단순히 초과 이윤을 공정하게 분배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자본가나 고용주의 무한정 이윤 극대화를 추구하지 않는다는 협동조합의 원칙은, 경제의 근본적인 목적을 돈벌이가 아닌 더 좋은 사회와 삶에 두는 것에서 비롯된다. 일의 궁극적인 의미를 제로섬의 이해관계를 넘어서 공공선의 추구에 두는 것, 그리고 그 보편적인 운동성을 조합원들이 학습하고 공유하는 것에서 대안적인 경제가 실현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마음이다. 사람들 사이의 협력을 통해 보다 나은 삶을 창조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최근에 일본에서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제빵사가 있다. 현재 주문이 1만 건 정도 밀려 있고, 그의 빵을 받아먹으려면 무려 9년을 기다려야 한다. 그 만한 인기라면 대량생산 체제를 가동시키거나 프렌차이즈점을 낼 만도 한데, 그는 결코 그렇게 하지 않는다. 모든 빵을 혼자서 구울 뿐 아니라, 빵 하나 굽는 데 세 시간이나 걸린다. 그 주인공 타이라 씨는 원래 경륜 선수였는데, 2005년 경기 도중 큰 사고를 당해 거의 전신 마비 상태로 전락했다. 그런데 결혼한 지 4개월밖에 되지 않았던 아내가 극진하게 간호하면서 몸이 조금씩 회복되었다.
빵과의 인연은 재활 치료 프로그램이 계기가 되었다. 점토를 반죽하면서 손가락 운동을 하는 남편을 보면서 아내는 그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고 여겨, 점토 대신 밀가루 반죽이면 더 좋지 않을까 상상하게 되었고 과감하게 제안을 한다. 선수 생활이 불가능해진 타이라 씨는 전혀 새로운 세계에 도전하는 즐거움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빵에 관련된 재료와 기술에 대해 공부를 하고, 자신이 만든 빵에 이름을 붙이는 등 낯선 영역을 개척해가는 보람으로 하루하루를 채워갔다. 그 빵을 먹어 본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뜨거워서 더욱 격려가 되었다.
그의 빵에 관한 소문이 서서히 퍼져나가던 중 2009년 신문과 방송을 통해 소개되었고, 전국에서 격려의 편지와 주문이 쇄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주문들에는 저마다의 사연이 담겨 있었다. 타이라 씨는 그 편지를 읽고 보낸 이를 생각하면서 몇 시간 동안 반죽을 한다고 한다. 이 세상에 오직 한 사람을 위해서 재료를 선별하고 온 마음을 다해 밀가루를 주무르는 것이다. 그 정성이 오롯이 담긴 빵을 받아 먹어본 사람들은 그런 맛을 처음 접하게 되었다고 감탄한다. 그가 만든 빵에는 ‘천사의 빵’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그의 아내가 쓴 <행복을 나르는 천사의 빵>이라는 책에 실려 있다.
수요가 아무리 넘쳐나도 대량생산을 마다하고 빵의 의미와 제조의 원칙을 절대 양보하지 않는 그는 바보다. 하지만 그래서 살아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절망의 나락에서 새로운 인생의 길을 열어젖힐 수 있었다. 그는 말한다. “빵은 제 삶의 보람입니다. 제가 만든 빵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고 기뻐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 그것이 제 삶의 힘이자 원동력입니다.” 돈을 넘어선 생의 기쁨과 보람을 발견했기에 자본주의의 유혹을 가뿐하게 물리칠 수 있는 것이리라. 사람이 빵만으로 살 수 없음을 빵을 통해서 확인하고 그 위대한 경지에 수많은 사람들을 초대할 수 있었다.
그러한 기적에는 본인의 분투와 깨달음도 있었지만, 아내의 헌신 그리고 통찰력이 절대적이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갈채와 호응도 빼놓을 수 없다. 돈의 논리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시대에 우리는 자신의 쓸모를 노동 시장에서의 위치로만 평가하려 한다. 그래서 그렇게 공부를 많이 한 엘리트들이 자괴감에 시달린다. 왜? 자신의 유일하고 진정한 가치를 발견하고 표출할 수 있는 기회를 제대로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혼자만의 힘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다른 누군가가 나의 보물을 알아봐주고, 그것이 빛을 발할 때 긍정의 피드백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사회적 경제의 궁극적인 핵심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존재 가치를 만나는 것에 있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무형의 자산을 탐구하고 개발하는 힘을 사회적으로 실현해야 한다. 타이라 씨처럼 엄청난 호응을 얻지 못한다 해도, 자신에게 주어진 일들에 충실하면서 그것을 통해 삶을 고양시킬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상생의 경제라고 할 수 있다. 물건이든 서비스든 그 안에 정성을 담고 고유한 스토리를 실을 수 있다면, 단순히 교환이나 돈벌이 이상으로 삶 그 자체의 창조가 될 수 있다. 그러한 의미를 공유하는 세계, 서로의 잠재력을 클릭할 수 있는 관계를 얼마나 든든하게 구축하느냐가 사회적 경제의 열쇠가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