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조합의 다섯 명은 어떻게 모이나요?”
김신양(성공회대 객원교수)
며칠 전 제주도의회에서 주최한 협동조합 아카데미에서 던진 질문이다. 나의 질문에 갑자기 청중들은 벙쪄했다. 그들에게 다시 질문을 던진다. “채용광고를 통해 모집하는가요?”. 여전히 갸우뚱. 나는 이 질문이 협동조합이 어떻게 설립되는지, 그리고 일반기업과 어떻게 다른지 등 모든 것을 다 말해준다고 생각한다.
협동조합기본법상에는 5인 이상이면 누구나가 다 협동조합을 만들 수 있다고 되어 있다. 최소 300명의 조합원의 요건을 갖추어야 하는 소비자생활협동조합에 비하면 훨씬 완화된 요건이다. 그래서 마침내 원하는 이들이 자유롭게 협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는 결사의 자유가 인정되어 무척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여기에 함정이 있다. 사람들은 고작 다섯 명이라서 설립이 아주 쉬울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다섯 명은 어떻게 모이는가? 협동조합의 조합원, 그것도 최초로 결사한 조합원은 어떤 사람들인가?
안성의료생협의 예를 보자. 안성의료생협이 설립되기 전 의과대, 간호대 학생들이 안성지역 농민회와 교류를 하며 정기적으로 주민들을 위한 무료진료활동을 했다. 그 때 쌓은 신뢰와 많은 토론을 통해 의료생협이라는 주민들을 위한 병원을 설립하기로 마음을 모았던 것이다. 대전의 민들레 의료생협도 그 이전에 한밭레츠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군복무를 하러 대전에 내려간 의사선생님이 한밭레츠 회원이었는데, 다른 회원들이 그 의사선생님의 바짓가랭이를 붙들고 늘어져 우리의 의사가 되어 달라고 한 것이다.
소비자생활협동조합은 또 어떤가? 안전한 먹거리를 원하고 출자할 여력이 있는 소비자들이 그냥 모이는 걸까? 그렇지 않다. 만약 그런 것이라면 그들 중 돈 많은 사람이 가게를 열 수도 있고, 백화점이나 마트에서 유기농제품을 구매하면 된다. 단지 소비가 목적이었다면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생협은 공급품과 더불어 다른 어떤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만들어질 수 있었다. 어떤 이들은 주말농장을 하며 농민의 수고와 고통을 알고, 그들과 함께 하고자 직거래를 하며 관계를 맺기도 했다. 또 다른 이들은 동네에서 아이들을 어떻게 키울 것인지 얘기하고 공부도 하면서 건강한 아이로 키우기 위해 함께 안전한 먹거리를 구하고, 그 경험을 아이와 나누며 교육의 기회로 삼고자 했다. 이렇게 협동조합은 필요와 더불어 공동의 뜻을 나누는 과정이 선행한다. 그리고 그 듯을 나누는 이들은 협동조합 이전에 이미 다양한 경로로 만나고 관계를 맺어 온 사람들이다.
‘관계’, 사업이전에 관계가 있었고, 거래 이전에 신뢰가 있었던 것이다. 어떠한 계약도 신뢰가 바탕이 되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는다. 법을 통해 보호를 받을 수 있지만 어느 누구도 ‘저 사람은 믿지 못할 사람이야’ 라고 생각하며 계약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협동조합의 조합원들은 관계를 통하여 생겨난 신뢰를 기반으로 결사하며 조합을 설립한다. 이들은 이미 생활에서 만나고 살림으로 엮여져 있었던 사람들이다. 살림이 기반이 되니 결사가 가능하고 그래야 조합의 살림에 참여하게 된다. 나의 살림 너의 살림이 상관없이 분리되고 고립되어 있다면 협동조합이라는 공동의 살림을 만들 수 없다. 내 살림을 건강하고 윤택하게 하고자 하는 필요와 열망은 나만으로는 실현될 수 없기에 다른 이들과 만나고 뜻을 함께 하는 과정이 생기는 것이다.
협동조합은 출자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나와 너가 협동으로 만나고, 나의 능력과 너의 능력이 협동으로 만나야 한다. 그렇게 만나서 함께 지켜나가는 것이 협동조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