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04월 칼럼]경제민주주의
정승일 (사회민주주의센터)
경제민주주의와 시장 자본주의
민주주의가 국가의 통치구조(지배구조)에 관한 담론이라면, 경제민주주의란 경제의 통치구조에 관한 담론이다. 경제민주주의는 기업의 통치(corporate governance)와 산업의 통치(industrial governance), 그리고 경제의 통치(economic governance)에 관한 담론을 포함한다.
주류 신고전파 경제학은 ‘시장 원리 및 사유재산권의 합리성’ 또는 ‘자본주의 시장 경제의 합리성’을 금과옥조처럼 신봉한다. 주류 경제학에 따르면, 기업은 주주들(오너 및 소수주주 투자자)의 수익 극대화를 위해 통치되어야 하며, 산업은 독과점 및 경제력 집중 없이 완전경쟁 시장으로 운영되어야 ‘공정한 시장질서’이다. 또한 국민경제 역시 세금과 국가규제는 적고 기업들 및 투자자들이 자유기업(free enterprise)이 자유시장(free market) 원리에 따라 자유롭게 활동하는 ‘보이지 않는 손’의 경제를 이루어야 한다. 주주권(사유재산권)과 ‘시장 원리’가 유일무이한 기업 통치(기업지배) 및 산업과 경제의 통치 원리로 등장하는 기존의 주류 경제학에 따르면 노동자-직원들과 일반 국민들은 기업과 산업, 그리고 국민경제의 주인이 될 권리도 자격도 없다.
하지만 민주주의란 민(people) 평민들이 국가와 정치의 주인으로서 통치하는 평민통치체제이다. 그렇다면, 경제민주주의란 재산도 돈도 없는 평범한 노동자와 직원들, 그리고 평범한 소비자들과 시민들이 기업과 산업, 국민경제의 주인이 되고 또한 기업과 산업, 국민경제가 그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운영되어야 한다는 개념이다.
1주1표 주주민주주의와 총수 자본주의
이에 반해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논의된 경제민주주의는 주주민주주의였다. 소수주주(minority shareholders)와 기업사냥펀드 역시 기업의 대주주와 동등권 권리를 가지고 주주총회와 이사회에서 동등한 1주1표를 행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소수주주는 엄밀하게 말해서 ‘뜨내기 소유자’일 뿐이다. 영어로도 소유주(stock owners)가 아니라 보유자(shareholders)라고 부른다. 주가가 하락하면 언제든지 주식을 팔고 떠나면 그 뿐인 유한책임의 포트폴리오 투자자일 뿐이다. 현재 국회의원들이 이른바 ‘촛불 입법’ 제안으로 국회에 입법 상정한 경제민주화 입법 제안의 한결같이 이런 뜨내기 투자자들에게 대주주와 똑같은 권리를 부여하자고 하고 있다. 그런데 그 경우 그들 뜨내기 투자자들의 투기성과 약탈성이 경제 전체와 기업세계를 지배하는 질서가 만들어진다. 그것이 주주자본주의이다.
주식투자자와 펀드들은 이 회사 저 회사,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돌며 일확천금을 노리는 이들이다. 마치 과거 16-19세기에 아프리카와 남미, 아시아를 떠돌며 일확천금의 은광을 찾아 헤매던 식민지 약탈자들과 비슷하다. 그들은 대박 투자처를 발견하지 못하면 언제든지 자국으로 돌아가 버린다. 그런 자들에게 대주주와 동등한 의결권을 주자는 것은 마치 잠시 한국에 업무차 방문한 외국인에게 우리나라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동등하게 주어야 한다는 것과 같다. 이치에 맞지 않고 정의롭지 못한 주장이다.
주식투자자만이 경제민주화의 주체로 등장하는 주주민주주의는 대한민국 상위 1%의 부자들만의 민주주의 즉 귀족민주주의이다. 주주민주주의를 경제민주주의로 이해하는 정치인들과 경제학자들의 요구는 결국 우리 사회 1%의 주식부자 귀족들만이 주인이 되는 경제이다. 귀족 중의 귀족인 최상위 0.001%의 재벌 일가들이 독점해온 경제 권력을 상위 1%의 부유층 자산가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갖게 하자는 것이 주주민주주의다. 주주민주주의를 명문으로 주주자본주의와 총수 자본주의가 서로 야합하여 종업원과 국민들을 등쳐먹는 것이 헬조선이다.
이 나라의 정치인들은 여당이건 야당이건, 보수건 진보건 모두 할 것 없이 모두, 뜨내기 주식투자자들에게는 대주주와 동등한 투표권과 피선거권을 주자고 애쓰면서 정작 자기 회사에서 수년, 수십 년간 묵묵히 일 해온 종업원들에게는 일체 그런 제안이 없었다.
참된 경제민주주의는 직장 민주주의
이에 반해 참된 경제민주주의에서는 민주주의의 원칙이 직장생활에서 관철된다. 1주1표(1원1표)의 원리 즉 돈 많은 ‘자본가 및 투자자들 주인’이라는 원리(자본주의의 제1원리)에 맞서, 1인1표의 민주주의의 원리가 회사에서도 작동하는 것이다. 독일과 스웨덴, 덴마크, 네덜란드 등에서는 부장급 이하 전체 종업원의 직접 선거에 의해 선출된 대의원들이 자기 회사 이사회에 이사로서 진출한다. 독일에서는 1940년대 말부터 노사 공동결정제를 시행하고 있다. 60년 넘게 정착된 제도이다. 대기업의 경우 이사의 절반이 노동자-직원의 대표이다. 스웨덴에서는 이사의 1/3이다.
경제민주주의의 본질을 산업민주주의 또는 노사 공동통치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 세계역사상 처음으로 논의된 경제민주주의는 1920년대에 유럽에서 시작된 노사 공동통치의 담론이었다. 그리고 68혁명 이후 1970년대에 서구에서 다시 부활한 경제민주주의 논의 역시 공정한 노사질서 또는 산업민주주의(industrial democracy)에 관한 담론이었다. 1주1표 또는 1원1표라는 자본주의의 룰(rule)에 맞서 1인1표라는 민주주의의 룰(rule)이 기업과 산업, 경제의 3차원에서 관철되어야 한다고 본 것이다.
회사에서는 주주(오너 및 소수주주 투자자)가 독점한 이사회 권력과 각종 의사결정 권력을 해체하여 노동자-직원 대표들도 1인1표 원칙으로 공동통치하는 기업지배구조(corporate governance)를 구축한다. 산업 차원에서는 사내외 하청 노동자 및 비정규직을 포괄하는 진실한 1인1표 원칙의 산업별 연대의 노동조합을 만들어 산업별 사용자단체와 함께 해당 산업을 공동통치하는 지배구조(industrial governance)를 구축한다. 또한 국민경제를 관리하는 경제기관인 한국은행과 금융위원회, 소비자보호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방통위원회 등등에 노동운동과 소비자운동 등이 사회공동체의 대표로서 참여하여 공동통치하는 경제적 지배구조(economic governance)를 구축한다. 참여민주주의의 원리가 경제영역에서 뿌리내리는 ‘실질적 민주주의’가 본래의 세계보편적 경제민주주의의 기획이다.
경제민주주의의 궁극적 목적은 직장과 산업, 국민경제 전체에서 노동권과 인권이 신장되고 건강한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재벌그룹 개혁과 대중소기업 동반성장은 그 목적의 구현을 위한 수단, 그것도 여러 수단의 일부일 뿐이다. 늦었지만 이제부터라도 우리의 경제민주주의의 담론과 전략이 세계사적 보편성을 지니는 진짜 경제민주주의로 힘차게 전개되어야 하겠다.
사회연대 정신의 노동운동이 절실히 필요
재벌그룹 개혁 및 대중소기업 간 상생(둘 다 공정거래법상의 규제)에 국한된 경제민주화보다 훨씬 넓고 훨씬 깊은 경제민주주의 담론과 전략이 절실하다. 궁극적으로 직장 생활에서의 인권과 근로소득(월급)을 높이고 근무시간을 줄여 저녁과 휴가, 여가가 있는 삶으로 귀결되는 경제민주주의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모든 직장인들, 노동자들의 힘과 권리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또한 기존의 경제민주화론자들이 중시하는 대중소기업간 동반성장 역시 턱없이 부족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 경제민주화론을 대표하는 장하성 교수 스스로 자신들이 말하는 경제민주화, 즉 ‘공정한 시장질서’ 위주의 경제민주화로는 연 7.6조 원의 소박한 금액이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임금인상(근로소득 상승)으로 트리클다운 될 수 있을 뿐이라고 자신의 책 『왜 분노해야 하는가』에서 고백하고 있다.
재벌그룹 개혁(공정거래법 규제)에 국한된 경제민주화보다 훨씬 넓고 훨씬 깊은 경제민주화가 절실히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경제민주화의 내용과 방향을 질적으로 일신해야 한다. 노동권과 근로소득을 높이는 것을 그 핵심으로 하는 새로운 경제민주주의 담론이 절실히 필요하다.
경제민주주의의 본질적 과제는 알바·비정규직, 그리고 미조직 중소벤처기업 노동자들의 노동권과 노동조합 결성권이며, 이들의 임금을 획기적으로 높이고 알바·비정규직의 숫자를 대폭 줄여나가는 것이다. 알바·비정규직과 중소기업 종업원을 모두 포괄하는 노동운동, 그들이 하나의 가족처럼, 하나의 형제·자매처럼 서로 상부상조하면서 협력하는 진정한 형제자매애(fraternity) 정신의 산별 노동조합운동과 그리고 그것과 긴밀하게 결합된 협동조합 운동이 새로이 시작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대중소기업간 임금격차와 사내복지 격차를 넘어서려면 프랑스대혁명이 제시한 3번째 가치인 형제자매애(fraternity)의 정신을 가지고 고임금의 대기업 노동자와 저임금의 중소·영세기업 노동자들이 하나의 가족, 하나의 형제·자매처럼 단결하고 서로 상부상조하는 업종별 연대와 지역별 연대, 전국적 연대정신이 필요하다. 그것을 보장하고 촉진하는 노동조합법과 협동조합법 제도가 필요하다. 이것이 진정한 경제민주주의이다. 이것이 자유(liberty)와 평등(equality), 형제자매애(fraternity)라는 프랑스대혁명의 3대 가치가 정치 영역만이 아니라 경제영역, 우리들의 일상생활에서도 확보되는 진정한 민주공화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