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혁신 기반으로서의 민주주의

김종걸 한양대 글로벌사회적경제학과 교수

1. 퍼펙트 스톰이 다가온다

대한민국은 지금 거대한 시대적 전환의 한복판에 서있다. 전 세계적으로 경제적, 사회적 위기가 심화되고 있는 것은 시대전환의 창조적 파괴가 이미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위기의 시대는 기존에 믿어왔던 모든 것을 근저로부터 뒤흔들고 있다. 이 시대적 전환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은 위기의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에 직면할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아주 바쁘게 달려왔다. 뜨거운 중동에서, 구로/울산/포항의 공단에서 굵은 땀을 흘렸었다. 그러면서도 미래에 대한 희망은 놓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 한 순간 그 모든 희망이 사라지고 있다. 경제사회는 불평등하며, 권력은 무능한 대한민국인 것이다. 항간에 회자되는 ‘헬조선’이라는 말 속에는 “개천에서 용 나오는 것이 불가능한 새로운 신분제사회”에 대한 원망, 공동체에 대한 신뢰가 바닥으로 떨어진 한국사회의 적나라한 모습을 보여준다.
단언컨대 재벌 대기업의 성공은 우리의 성공이 아니었다. 성장의 군불이 ‘아랫목’에서 ‘윗목’으로 전파되지 않았다. 낙수효과가 의미가 없다는 것은 이미 여러 곳에서 확인 가능했다. 가령 국제통화기금(IMF)의 최근 보고서 “소득불평등의 원인과 결과(2015년6월)”에서는 상위 20%의 소득비중이 1% 포인트 증가할 때 국민소득은 0.08% 포인트 감소한다고 말한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폴 크루그먼 교수는 “자유주의자의 양심(2007년)”이라는 저서에서 심지어 낙수효과란 거짓말이라고도 단언한다. 경제학적 논리가 아니라 정치적 선동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과거의 산업화 모델과 결별해야 한다. 승자독식의 재벌주도 성장, 권위주의적 관치, 재벌기업의 제왕적 의사결정, 군대식 일사불란한 실행력은 자유로운 사고실험과 창조적 혁신의 숨통을 죄고 있다. 수도권 중심의 성장은 지역의 다양한 가능성을 죽이며 결국 나라 전체의 혁신역량을 하락시키고 있다. 이제는 정치적 민주화와 경제적 권위주의화가 동거하는 그런 과거의 산업화모델에서 벗어나야 할 때가 온 것이다.

2. 새로운 발전모델: 민주주의에 의한 혁신의 확산

1) 민주적 경제운영의 3대 원리

대한민국의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힘은 바로 민주주의에 있다. 민주주의의 원리를 경제정책에도 전면화 시켜가는 것이다. 그것이 새로운 시대 혁신의 기반이다.
민주적 경제운영원리의 첫째는 “참여와 공정”이다.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생산요소가 참여를 통해 스스로의 능력을 배양하는 것, 즉 참여의 확대가 혁신의 시작이다. 공정함은 참여를 이끌어내는 기반이다. 승자독식의 불공정사회에서는 다양한 참여가 일어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둘째는 “연계와 협력”이다. 다양한 네트워크가 형성되고 서로 경쟁하고 협력하는 구도, 이것이 21세기형 혁신의 근간이다. 우리는 그것을 소위 ‘생태계’라고 부른다. 벤처생태계, 사회혁신생태계, 정책생태계 등 다양한 생태계를 논의하는 이유는 그 시스템의 성과가 참여와 연계, 그리고 협력을 통해 발현되기 때문이다. 셋째는 “혁신과 책임”이다. ‘혁신’을 통해 우리사회의 가능성을 최대로 끌어올리며, 그것을 ‘책임’(accountability) 있게 수행할 수 있는 정부를 구성하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공정’은 ‘참여’의 기반이다. ‘참여’, ‘연계’, ‘협력’은 ‘혁신’의 원동력이다. 그리고 그것을 ‘책임’있게 수행하는 것, 그것이 새로운 경제정책의 내용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2) 경제혁신과 사회혁신

한 가지 주의할 점은 혁신의 개념이다. 혁신은 단순한 경제혁신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혁신은 경제, 사회 등 다양한 영역으로의 확산되어야 한다. 경제혁신은 다양한 벤처기업의 창출로 가능해 진다. 혁신적 중소·중견기업에 대한 지원강화, 독립적 과학기술 전담부서 설치, 국가 R&D 사업에 대한 전면재편 등 할 것은 많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마을기업, 골목상권, 협동조합, 사회적기업 등 다양한 영역으로 혁신이 확산되어 가야 한다. 그래야만 5,000만 인구의 안정된 먹거리와 일자리를 확보할 수 있다.
사회도 혁신되어야 한다. 핵심은 사회의 자기복원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우리는 노동하고 소비하는 단순한 호모에코노미쿠스가 아니다. 때로는 무상노동의 자원봉사자이며 좋은 일에 대한 기부자이기도 하다. 다양한 시민참여를 잘 조직해야 한다. 청년들의 혁신적 참여를 독려하는 청년국가봉사단 구상(미국의 AmeriCorp), 시민사회의 투명성을 확대하기 위한 시민공익위원회법(영국의 Charity Commission), 사회적경제 관련 정책의 통합적 관리를 위한 사회적경제기본법 등은 모두 다 시민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한 장치들인 것이다.

3) 지방분권과 혁신의 확산

또 하나 강조하고 싶은 것은 지방분권이다. 참여를 통한 혁신이 벌어지는 공간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경제활동의 주체이며, 복지의 수혜자인 지방주민 스스로가 경제 및 복지행정에서의 자기결정권을 확대시키는 것, 이것이 지역차원에서 새로운 혁신의 기반이 된다.
그러한 면에서 중앙의 행정 및 재정권한은 지방으로 대폭 이양되어야만 한다. 재정과 사무의 지방이양 목표치를 50대 50으로 설정하며, 분권 확대에 따른 지방 책임도 강화해야 한다. 가장 필요한 것은 마을과 기초지자체 주민 스스로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다. 마을 주민 스스로 마을경제와 복지의 발전 계획을 세우는 것, 그리고 기초지자체가 각각의 계획을 종합하는 것이 지방 발전의 선결과제다. (가칭)지방발전법의 제정까지 포함한 새로운 토론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방분권의 또 하나의 장점은 거대한 관료국가 대한민국을 뿌리부터 바꾸게 한다는 점이다. 경제와 복지정책의 구상 및 실행권한의 상당 정도가 기초 혹은 광역지자체로 넘어간다면, 그리고 정책결정 및 실행과정에 시민참여가 활발히 된다면, 대한민국의 관료체계는 밑동부터 바뀌게 된다.
청년실업대책의 예를 들어보자. 청년실업 종합대책은 지난 14년간 모두 18번 발표되었다. 그러나 문제해결은커녕 더욱 악화되고 있다. 지난해 실시된 청년일자리 지원사업만 중앙정부만으로 총 224개다. 여기에 각 광역 및 기초지자체 차원의 대책까지 포함시키면 우리의 청년들 머리 위에는 수백개의 정리되지 않은 정책이 혼잡하게 널려있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청년문제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노인, 장애인, 여성, 새터민, 마을진흥 등 거의 모든 정책분야에 공통된다. 대한민국의 시대적 과제는 새로운 정책을 만드는 것에 있지 않다. 오히려 일정한 원칙에 따라서 정책을 통폐합 시키고 효율화시키는 것에 있다. 그 최대의 비법은 정책의 수요자가 정책의 내용을 결정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이다. 지방분권의 최대 의미다.

4) 공정함(equity)의 추구: 기울어진 운동장의 시정

이상과 같은 이야기는 좌파 우파 상관없이 당연히 해결해야 할 당면과제다. 그것이 세련된 좌파, 우파의 세계적인 추세다. 정부와 시장이라는 2분법 구조로는 더 이상 문제를 풀어갈 수 없다. 21세기 형 좌파와 우파는 시민의 자발적 참여의 힘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를 심각히 고민한다. 영국 노동당 토니블레어의 “제3의 길”과 보수당 데이비드 캐머런의 “big society” 정책은 그런 면에서 고민의 지점이 같다. 오히려 혁신, 분권, 참여, 시민 등의 단어는 ‘우파’에서 더 많이 사용한다. 좌파의 관성은 국가의 역할을 더욱 강조하기 때문이다.
사실은 이제부터가 문제다. 공정함(equity)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에 대한 논제다. 공정함이란 공정(fair)한 경쟁의 룰의 확립을 포함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격차를 그대로 놔 둔 채 벌이는 경쟁이 아니라(소위 fair competition), 약자의 능력을 끌어올려 ‘실질적’으로 기회의 평등을 만들어 가는 것이 바로 공정함(equity)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공정거래법은 당연히 강화해야 한다. 공정거래정책의 운영을 강화함과 동시에 징벌적 배상제도 등 법제도의 보완은 필요하다. 그러나 불공정거래에 대한 행위규제만 가지고는 지금의 경제력 격차를 완화할 수 없다. 보다 강력한 결과지향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중소기업적합업종의 재설정, 경제력집중완화 목표치의 설정, 성과공유제의 확산 등의 정책이 그것이다.
고용전반에 대한 노동보호도 강화해야 한다. 체불임금, 산업안전, 부당해고, 근로시간 등 여러 사안에 대한 노동보호 입법조치가 필요하며,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 해소방안 마련도 시급하다. 10%에 불과한 노조가입율의 획기적 증가, 공공기관 및 일반기업에서의 노동자 등 이해관계집단의 경영참여 확대도 고려해야 한다.
개천에서 용도 나와야 한다. 부와 지위와 능력이 대물림되는 신분제사회를 시정방법은 간단하다. 가장 불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좀 더 많은 기회를 주는 것이다. 20세기 최고의 정치철학자 존 롤즈가 “최소 수혜자의 최우선 배분의 원칙”이라고 말했던 내용이다. 미국의 적극적 시정조치(affirmative action)도 이러한 사고방식에 입각하고 있다. 한국판 적극적 시정조치를 펼쳐야 한다. 농어촌, 저소득, 새터민, 다문화 등 다양한 영역에서 누구도 기회의 불평등을 이야기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5) 증세와 시민참여의 결합

그러나 이 모든 것을 국민 세금으로 할 수는 없다. 미래 한국의 고령화 인구비율은 일본과 함께 세계 최고가 될 것이다. 생산 가능인구 10명이 8명의 노인과 2명의 어린이를 부양하는 그런 세계 말이다. 당연히 사회복지 지출의 수요는 폭증한다. 충분하지도 않은 지금의 복지제도를 유지한다고 할지라도 2040년에는 OECD의 현재 평균인 국민소득 대비 22.1%를 넘어설 것이라는 연구결과가 일반적이다. 노무현 정부 시기 “비전 2030”에서도 OECD 평균수준의 복지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2006∼2030년 최소 1100조 원이 필요하다는 추정을 했었다. 인구추세 등 아주 낙관적인 시나리오에 입각한 최소한의 비용추정인데도 그랬다.
앞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3가지다. 첫째는 노인, 장애인, 결식아동 등 가장 복지가 필요한 사람들, 즉 가장 약한 자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이다. 기본소득, 보편복지 등의 논리는 현재 한국의 상황에서는 너무 앞서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현실은 가장 약자에게 조차 돌아갈 복지예산도 턱없이 부족하다.
둘째는 복지재원을 다원화하고 그 전달체계를 효율화 하는 것이다. 시민의 다양한 기부, 자원봉사, 새로운 사회혁신의 다양한 움직임(협동조합, 사회적기업, 소셜벤처 등)의 활용은 복지확충의 중요한 수단이 된다.
셋째는 중장기적으로 증세에 대한 필요성을 천명하는 것이다. 지난 9년간 우파정부에서 강조한 것과 같이 지하경제 양성화와 경제성장률 제고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최소한 중복지=중부담의 증세가 필요하며 소요예산 및 조달방법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