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곳으로부터의 연대와 혁신(9): 촛불혁명 10법 구상

 

김종걸 한양대 글로벌사회적경제학과 교수

1. 비정상의 일상화

누계 1,000만개의 촛불이 광장을 밝힌 이유는 보수정치에 염증을 느껴서도 개헌을 원해서도 아니었다. 파렴치하고 몰상식한 행위에 대한 저항이었으며 무능과 무책임에 대한 질타였다. 단언컨대 박근혜 정부는 너무나 무능했다. 경제가 특히 그렇다. 취임 후 발표된 경제혁신 3개년 계획에서는 4% 잠재성장률, 70% 고용률,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 시대의 초석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실패했다. 국가부채는 2008년 300조원에서 600조원을 넘어섰고, 민영화로 팔려간 국가재산까지 포함해 엄청난 자금이 투여됐다. 그런데도 경제는 여전히 그 모양이었다. 정책의 중심이었던 창조경제는 여전히 애매했으며, 노동개혁과 규제완화를 통한 일자리 확대논리도 설득력이 거의 없었다.

정작 개혁되어야 할 것은 그대로 온존되거나 더욱 강고해졌다. 재벌경제는 변화할 조짐조차 없었으며 오히려 권력과의 유착을 통해 더욱 공고화되어 갔다. 그 엄청난 세월호 참사를 겪고도 1년 뒤 메르스 사태 때도 위기대처능력의 부재는 똑같았다. 전염력이 낮다고 했으나 4차 감염은 현실화됐다. 교육부는 휴교를 말하고 복지부는 등교를 말했다.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 민관합동종합대응팀, 범정부메르스대책지원본부, 즉각대응팀 등 컨트롤타워는 어지럽게 난립했다. 누가 결정하고 책임지는지 오리무중이었으며, 당연히 신속한 결정은 불가능했다. 그 지경이 되도록 대통령은 느지막이 나타나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문형표 복지부 장관은 매뉴얼에 따라서 잘 대응했다고 뻔뻔스럽게 대답했다. 국민여론에 밀려 퇴임하고 나서도 4개월 뒤에는 국민연금 이사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그리곤 “대통령의 명을 받아” 국민의 귀중한 자산으로 삼성 재벌가 경영권 승계과정에 특혜를 주다 감방으로 직행했다.

도대체 이 정부에서는 자신의 무능에 대한 일말은 책임감도 느끼지 않는 듯했다. 경제파탄은 오로지 야당의 책임이었다. 지난해 3.1절 기념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노동개혁과 서비스산업 육성 등 혁신과제들이 “기득권과 정치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고 역설했다. 자신이 그 기득권과 정치권의 정점인데도 말이다. 국정원 대선개입, 세월호침몰, 메르스사태, 최순실 국정농단 등 그 어디에도 자신의 잘못은 없었다. 국정원 대선개입의 수사과정에서 갑자기 검찰총장의 혼외자 문제가 불거지며, 세월호 유족에게는 모욕적인 언사의 선동이 이어졌다. 최순실 국정농단 국정조사특별위원회에 참석한 그 많은 고관대작들이 모두 “모르거나 기억이 안 난다고” 발뺌했다. 정유라의 부정입학 사실은 존재하는데 이화여대 총장도 입학처장도 잘 모르는 일이라고 말했다. 박근혜표 무책임의 DNA는 어느새 이 정부의 중추부만이 아니라 한국사회 곳곳에 전파되고 있었던 것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가장 확실하게 발동시켰던 에너지는 바로 증오의 에너지였다. 그들은 국민을 개혁의 동반자로 생각하지 않았다. 개혁의 대상이며 그것에 저항하는 사람들은 종북좌파, 때로는 “혼이 비정상적인 사람”으로 몰고 갔다. 문화예술계의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국민을 파란색과 빨간색으로 구분시켰다. 해묵은 진영논리로 모든 경제사회적 논쟁들을 가두어버린 것이다. 최장집 교수는 『민중에서 시민으로』라는 저서에서 다른 나라에서는 탈냉전이 “사회경제적 문제를 둘러싼 합리적인 대안들 간의 경쟁구도”를 가져왔으나 우리나라는 여전히 “냉전반공주의와 그에 대응하는 급진적 민족주의 간의 갈등구도”를 가진다고 말했다(39쪽). 틀린 말은 아니다. 적어도 박근혜 정부가 낡은 냉전반공주의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점은 확실했다. 그들은 때로는 같은 편에 대해서도 편 가르기와 증오의 에너지를 동원했다. 친박, 진박, 비박, 반박 등 뜻 모를 이합집산을 거듭했으며, 그들만의 권력투쟁과 일자리창출 경쟁에 막대한 에너지를 낭비해 갔다.

 

2. 중산층경제학(Middle-class Economics)

보수라고 다 같은 것은 아니다. 많은 나라의 보수는 좀 더 실용적이고 새롭다. 영국의 예를 들어보자. 2010년 12년 만에 정권을 탈취했던 영국 보수당 정부는 젊고 신선했었다. 39세에 보수당 당수, 43세에 영국총리가 된 데이비드 캐머런(66년생) 만이 아니다. 연립정권 파트너인 자유민주당 당수(67년생) 재무장관(71년생) 국방장관(61년생) 외무장관(61년생) 등 내각의 주요멤버는 40대였다. 이들은 스스로를 ‘새로운 보수’라고 일컬었다. 전통적인 보수당 정책이었던 ‘시장’의 확대가 아니라 ‘사회(시민사회)’의 확대에 의한 정부 기능 축소로 정책을 변화시켰다. 압승했던 2016년 선거에서도 공공병원 및 아동보육에 대한 지원확대, 무상학교 증설, 최저임금 인상, 남녀 임금격차 해소를 약속 하는 등 진보적 색채의 정책을 많이 발표했다.

이에 비해 한국의 보수는 기본적으로 ‘공부부족’이었다. 머릿속에는 종북좌파와 친미우파의 이분법밖에 없었으며 현재사회가 제기하는 정책의 고차방정식을 이해할 능력을 애초부터 결여했었다. 그러니 사회적경제기본법을 ‘사회주의적’ 기본법으로 잘못해석하고 ‘헌법질서’에 어긋난다고 흥분하는 사태가 난 것이었다. 영국에서는 최신의 보수당의 정책이 한국에서는 ‘사회주의’ 정책으로 둔갑해버리는 난감한 현실이다.

이제는 그만 낡고 무능하고 몰염치한 보수와 결별해야 한다. 최소한 상식적인 논쟁이 가능한 사회가 되어야 한다. 필자는 “중산층 복원”이 한국경제의 최대 정책목표이며 지향점이어야 한다고 본다. 그만큼 중산층의 무너짐이 너무나 심하기 때문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016년 연두교서에서 중산층 복원을 위한 지원 정책을 발표한 것, 미국 민주당의 대선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대선 공약이 ‘중산층 임금 인상’에 집중돼 있는 것도 바로 전 세계적인 중산층 몰락의 현실을 감안한 것이었다. 낙수효과에 의존하지 않는 중산층 강화 정책, 서민과 중산층을 직접적인 대상으로 하는 지원 정책, 즉 한국형 중산층경제학이 필요한 시기인 것은 분명하다.

일부 식자들은 경제가 성장하면 좋아질 것이라고 말한다. 때로는 낙수효과를, 때로는 쿠츠네츠(Kutznet) 가설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거의 모든 실증연구들은 이 모두를 부정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최근 보고서 ‘소득불평등의 원인과 결과’(2015년 6월)에서는 상위 20%의 소득비중이 1% 포인트 증가할 때마다 국민소득은 0.08% 포인트 감소한다고 말한다. 부시 행정부 시절 2003~2005년까지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던 하버드대학의 멘큐(N. Gregory Mankiw) 교수는 자신의 경제학원론 초판에서 감세를 중심으로 한 공급경제학파를 ‘괴짜 사기꾼들’이라고 말한바 있었다. 정책성과를 증명할 수 있는 연구결과가 거의 없었던 것이다.

 

3. 혁신과 분권

이제는 해묵은 낙수효과론에서 벗어나 ‘혁신과 분권’에 입각한 새로운 성장방식을 강구해야 한다. 경제혁신을 통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출하고, 사회혁신을 통해 상부상조의 자립형 사회로 변화해야 한다. 지방혁신을 통한 권한과 책임의 지방분권을 완성하고, 재정세제혁신을 통해 지속가능한 복지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정부혁신을 통해 이 모든 것을 효율적으로 실행해가야 한다.

경제혁신의 관건은 재벌규제를 강화하는 것,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는 것, 성장전략을 다면화시키는 것, 이상의 3가지로 요약된다. 재벌규제강화, 4차 산업혁명 대응은 시급히 정비되어야 할 과제임에 틀림없다. 이와 함께 강조되어야 할 것이 바로 성장섹터의 다면화다. 멀리서 보면 한국경제는 대기업과 금융기관의 화려한 모자이크로 보인다. 하지만 가까이 갈수록 모습은 달라진다. 한산한 재래시장, 고단한 노점상, 활력 잃은 농어촌이 산재한다. 성장의 온기는 사회 전체로 퍼지지 않으며, 대기업의 혁신은 국민경제 성장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한국경제를 구성하는 기초단위 하나하나에서 새로운 혁신의 경로가 설계 않은 한 한국경제의 희망은 없는 것이다.

사회혁신의 과제도 중요하다. 핵심은 사회의 자기복원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협동조합, 사회적기업 등 사회적경제영역을 확대하고, 기부, 자원봉사 등 자발적 영역을 잘 조직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회적경제에 대한 통합적인 지원체계를 정비한 사회적경제기본법의 제정, 시민사회단체의 모든 활동 및 재무정보를 수집, 공개, 규율하는 영국의 자선위원회(charity commission)와 같은 시민공익위원회 설치가 시급한 이유다.

중앙에서 지방으로의 권력이양도 과감히 추진해야 한다. 이것만이 지역 주민의 자기결정권을 확대시키며 참여를 통한 새로운 활력을 불러올 수 있다. 가장 필요한 것은 마을과 기초지자체 주민 스스로 자신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다. 산업, 교육, 복지, 의료, 문화 등에서 지역 단위의 해결권한을 확대하는 것이 중요하다. 중앙정부는 지자체의 성과에 따라 지방교부세 및 보조금 배분을 차등화하는 견제 수단만 가지고 있으면 된다. 이 모든 것을 “지방발전법”이라는 형태로 정리해야 한다. 당연히 지방자치의 정치형태도 지역민 스스로 결정하도록 하는 것이 좋다. “지방자치법”의 전면 개정을 포함한 새로운 토론이 필요한 시점이다.

중앙정부의 조직도 대폭 개편되어야 한다. 대한민국 정부는 너무 많은 정책을 남발한다. 만약 지방정부로 중요한 정책이 이관된다면 중앙정부의 정책남발문제는 상당히 해소될 것이다. 정책이 좀 더 수요자에게 가까이 가 주민맞춤형으로 만드는 것이 효율적이다. 중앙정부가 하는 일은 국가전체의 기획과, 조직, 사업에 대한 평가, 그리고 재정자원 등의 배분 등에 한정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공무원조직에 대한 수술도 불가피할 듯하다. 유능한 공무원 조직으로 환골탈태시키기 위한 방책이다. 필자가 알고 있는 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장차관의 상당수를 공무원으로 임명하는 나라는 없다. 고위 공무원, 하급 직원 모두 시선이 바로 윗사람에게만 가 있는 것, 그것이 문제인 것이다. 공무원 인사 제도를 개혁하고, 장차관 및 고위공무원단의 외부 충용을 전면 확대해야 한다. 그래서 그들만의 리그에서 벗어난 가장 유능한 집단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국민과의 소통경로의 재정비도 시급하다.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권익위원회, 인권위원회, 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 등 소통을 담당하는 조직과 직제는 많다. 그러나 억울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재대로 전달되는 것 같지도 않다. 개개인의 억울한 사연들이 전달되며 그것이 해결될 수 있다는 게 납득될 때 주권자인 국민을 중시하는 정부라 할 수 있다.

 

4. 분배와 사회적 책임

재정세제혁신도 피할 수 없는 과제다. 재정은 집행 효율성을 높여야 하며 재정지속성을 위한 증세 논의는 불가피하다. 민주국가의 기본원리는 누구나 평등해야 한다는 점에 있다. 기회의 평등이 바로 공정함의 기초인 것이다. 현대국가에서 이 문제를 푸는 방식은 바로 ‘복지국가’였다. 부자의 세금과 가난한 자의 복지가 교환된다. 그것이 사회를 안정시키고 민주주의를 발전시킨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나라는 이미 개천에서 용 나오기 어려운 사회가 되어 버렸다. 복지국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조세부담율은 거의 최하위며, 정부가 돈이 없으니 당연히 개개인의 출발점 격차를 시정할 방법도 없다. 복지예산이 부족하다면 당연히 늘려야 하며 세금이 부족하다면 걷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까마득하다. 재정지출의 소득 재배분 효과는 OECD 내에서 한국이 단연 꼴찌다. 한국의 조세부담률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17.8%로 OECD 평균인 25.8%보다 한참 작다. 2013년을 기준으로 한다면 같은 경제규모의 다른 나라들보다 매년 114조원 덜 징수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모든 정권마다 중산층을 살려야 한다고 계획만 거창했었다. 그러나 좌파 정권이든 우파 정권이든 결국은 실패했다. 이제는 ‘계획’이 아니라 ‘결과’로 보여줘야 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최소한 증세를 통해서 해결해야 한다.

또 하나 강조하고 싶은 것은 한국사회 개개인의 사회적 책임의 강화다. 특히 지도층의 책임성 강화는 사회정의 차원에서 강조해야 될 사항이다. 재벌 및 고관대작의 자제들이 군대를 버젓이 면제되고 있는 현실은 이 사회가 정의롭지 않음을 나타낸다. 사회지도층 자제들의 군복무 강화, 상속/증여/양도세의 철저납부를 위한 세법 개정, 기부문화의 활성화를 위한 기부활성화법(세법개정 혹은 제정법 구상), 사회봉사제도의 활성화(사회자본축적)을 위한 국가봉사법 제정(미국의 Americorps) 등이 지도층 및 한국민 전체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기 위한 방책이 구상되어야 한다.

 

5. 촛불혁명 10법 구상

그 어떤 통계를 열거해도 대한민국의 불행확대는 현재진행형이다. 소득불평등의 증가, 노동소득분배율의 하락, 비정규직 비율의 증가, 가계소득과 기업소득 간의 격차확대, 절대빈곤율의 상승 등 한국 땅에서 벌어지는 현실은 중산층이 몰락하고 빈곤이 대물림되는 세상이다. 문제가 심각하니 이에 대한 해법 또한 당연히 논의된다. 공교육의 강화, 청년일자리 확대, 공공주택의 보급, 보육시설의 확대 등 소위 흙수저 대책은 많다. 집단소송과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비업무용 계열사주식의 보유금지 등 대기업의 부당내부거래 및 지배구조 민주화를 위한 대책 또한 구체적이다. 복지를 강화해야 한다는 인식도 거의 모두 동의한다. 그러나 말일 뿐이다. 복지는 재원부족이라는 이유로 뒤로 밀리며, 재벌개혁은 경제살리기란 미명하에 좌절된다. 그러다 선거 때만 되면 유령처럼 나타난다. 경제민주화도 복지도 한국에서는 선거 때만 출몰하는 ‘임시직’ 유령에 불과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정책 아이디어가 아니다. 그 정책을 실현시키겠다는 구체적인 약속이다.

필자는 다음선거에 입후보하는 사람들이 후보 공약집이라는 황당무계한 공상소설이 아니라 최소한 정책을 실현시킬 법과 조직의 구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 정책의 최우선 목표는 중산층의 복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사회의 ‘혁신과 분권’을 확대해야 한다. 경제혁신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경제민주화의 추진목표를 설정한 새로운 법률체계가 필요하다(①경제민주화기본법제정). 기존의 공정거래법이 주로 불공정거래에 대한 행위규제인 것에 반해 경제민주화기본법은 보다 넓은 범위의 성과를 의무화시켜야 한다. 대기업-중소기업협력, 경제력집중완화의 목표치 등이 실행조직체계와 함께 정리되어야 한다. 사회혁신을 위해서는 사회적경제정책의 공통의 법적기초를 정비하고(②사회적경제기본법), 시민조직의 투명성을 강화하는 것(③시민공익위원회법제정)이 중요하다. 지방혁신을 위해서는 지자체 스스로가 발전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며(④지방발전법제정), 지방자치체계의 선택권한을 주는 것(⑤지방자치법개정)이 초점이다. 예산과 조직, 그리고 행정업무의 대폭 지방이전은 중앙정부의 조직 및 기능에 대한 대대적인 재편을 필요로 한다. 중앙정부조직 관련법의 정비(⑥정부조직법개정)가 필요한 이유다.

‘혁신과 분권’의 확대와 함께 요구되는 것이 ‘분배와 책임’의 확대다. 상속/증여/양도세를 포함한 전반적 증세를 실현하며(⑦세법개정), 노블리스오블리제를 확대하기 위해 사회지도층자제들의 군복무강화(⑧병역법개정), 기부문화의 활성화(세법개정)와 사회봉사제도의 활성화(⑨국가봉사법 제정) 등이 고민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모든 정책의 목표는 GDP가 아니라 국민행복에 두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 둔다. 경제성장과 국민행복의 연결고리가 명확하지 않다는 이스털린의 역설(Easterlin Paradox)은 경제학의 핫 이슈 중 하나였다. 프랑스의 대통령 니콜라 사르코지가 2008년 국민행복을 규정하기 위한 특별위원회를 만든 것, 일본 독일 영국 등에서 국민행복과 관련된 다양한 지표가 발표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중요한 것은 GDP가 아니라 삶의 질, 국민행복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에 따라 정책의 우선권도 달라져야 한다. 국민행복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행복관련 사회통계를 정비하고, 국민행복에 맞추어서 경제정책을 펴야 함을 강조한 법률(⑩국민행복촉진법)도 필요할 것이다.

그나마 대한민국에 새로운 희망을 다시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1,000만 촛불 덕분이다. 박근혜와 필자가 같은 점이 있다면 기본적으로 정치인을 불신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배경은 천지차이다. 그녀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정당한 정치행위 조차 폄하하고 분열시킨다. 필자는 우리 촛불의 염원이 또 다시 배반당할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불안감의 반영이다. 촛불혁명 10법을 실현하고 거기에 겸손의 미덕까지 겸비한 정치인이라면 어찌 열과 성의를 다해 존경하고 지지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