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자는 좋은 것이고 조합원 차입은 나쁜 것인가?

장종익(한신대학교 사회혁신경영대학원 교수)

지난 8월 말 시사저널은 아이쿱생협이 조합원으로부터 큰 규모의 자금을 차입하는 것이 유사수신행위에 해당하고 문제 발생 시 조합원 피해가 클 것이라는 기사를 게재하였다. 이에 아이쿱생협은 이 기사가 악의적이고 편파적인 보도라고 항의하고 배포금지 등 가처분신청을 하고 현재 가처분신청 재판이 진행 중이다. 아이쿱생협의 조합원으로부터의 자금 차입이 유사수신행위인지의 여부는 금융산업에서의 소비자보호 측면에서 법적으로 검토할 부분이 있고 협동조합의 원칙 측면에서 논의할 부분도 있다.
필자는 오래전부터 아이쿱생협의 조합원 차입을 금융기관의 수신과 유사한 행위가 아니라 기업 혹은 비영리조직, 정치조직, 혹은 개인의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과 다를 바 없는 협동조합의 멤버십 크라우드 펀딩(membership crowd funding)으로 이해하였다. 아이쿱생협이 조합원으로부터의 차입을 2000년부터 시작하였기 때문에 아이쿱생협을 우리나라 크라우드 펀딩의 선구자로 평가하였다. 우리는 정치인이 선거운동비용을 조달하기 위하여 지지자들로부터 이자지급을 조건으로 자금을 빌리는 행위를 유사수신행위로 비판하지 않는다. 오히려 대기업 등 음성적 정치자금 조달에 비하여 수많은 개미군단으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크라우드 펀딩은 유권자들로 하여금 선거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참여민주주의를 촉진하는 제도로 평가하고 있다. 필자는 이러한 관점에서 아이쿱생협의 조합원차입을 혁신적인 시도로 평가하였다. 2000년 아이쿱생협연합회 물류창고 화재로 인한 건물 복구자금 2억 6천만원을 조합원으로부터 차입에 성공하고 이후 차입금에 대한 원리금 상환에 성공하면서 향후 아이쿱생협의 물류시설 및 클러스트 사업에 필요한 큰 규모의 자금을 차입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점은 일정한 기간 동안 차입과 상환이 반복되면서 차입규모가 확대되었다는 점과 조합원들의 협동조합에 대한 ‘신뢰’가 높아지게 되었다는 점이다. 아이쿱생협의 조합원으로부터의 차입은 조합원이라고 하는 한정된 특정 다수가 자신들이 구매하고자 하는 제품과 서비스의 품질 및 경제성을 제고시키기 위한 자기자본 조달(self-financing)이기 때문에 이를 유사금융기관의 수신행위와 동급으로 취급할 수 없다는 점이 필자의 견해이다. 만약 현행 금융규제법 및 협동조합관련 법이 조합원으로부터의 차입을 합법적으로 허용하지 않는다고 법적으로 해석된다면 차제에 이렇게 해석되는 법 조항을 개정해야할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동안 협동조합섹터 및 관련 당국에서는 협동조합의 자본조달문제에 관하여 큰 관심이 없었던 것이 사실인데 차제에 협동조합의 자본조달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는 방향으로 제도 및 정책적 정비가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현재까지 국내외 협동조합들이 개발한 자본금의 조달방법에 대한 조사결과, 협동조합의 자본금 조달은 크게 조합원으로부터의 조달과 외부로부터의 조달로 나누어진다. 조합원으로부터의 조달은 출자금(가입출자금, 임의출자금, 의무출자금, 이용출자금과 같은 의무적 자본유보), 조합원으로부터의 차입, 조합원 대상의 채권 발행, 잉여금의 일부를 회전출자금화 하는 방법과 불분할적립금화 하는 방법, 그리고 협동조합 간 연대기금으로부터의 차입 등 크게 5가지, 작게는 9가지로 나누어진다. 또한 비조합원으로부터의 자본조달은 투자조합원제도 혹은 우선주의 발행, 금융기관 등으로부터의 융자, 사회적채권이나 회사채의 발행, 자회사나 합작회사를 설립을 통한 주식의 발행 등 4가지 방법이 있다.

생협뿐만 아니라 협동조합기본법에 의하여 설립된 협동조합은 법적인 제약이나 정책적 지원의 결여로 위의 13가지 자본금 조달방법을 자유롭게 채택하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면, 투자조합원제도나 채권의 발행 등은 사실상 허용되어 있지 않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 협동조합이 자본금 조달의 다양한 방법에 대한 창의적 노력이 아직은 부족하여 가입출자금이나 임의출자금, 혹은 적립금 등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대규모 자본투자가 많이 요구되지 않는 단순 유통업에 종사하는 생협의 경우에는 자본금 조달의 필요성이 크지 않지만 대규모 유통자본과 차별화된 유기농식품의 개발, 그린투어리즘 및 실버산업의 개발 등을 통하여 부가가치를 제고하고 지역의 고용을 창출하는데 기여하는 친환경식품클러스터를 추진하는 아이쿱생협이나 대부분의 체인형 사업자협동조합 및 노동자협동조합은 가입출자금 이외에 다양한 방법의 자본금 조달이 성장과 발전을 위하여 필수적이다.

협동조합에서도 이렇게 자본조달 방법이 다양해지는 이유는 자금공급자와 자금 수요자 간에 자금의 거래에 있어서 직면하게 되는 거래비용, 위험, 유동성(liquidity) 선호 등의 문제에 대하여 각자의 처지와 조건 및 태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많은 조합원들이 추가 출자를 기피하는 반면에 조합에 자금을 선뜻 빌려주는 조합원들이 많은 이유는 후자가 전자에 비하여 유동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출자금 방식만 고집하게 되면 조합원으로부터 충분히 자본을 조달할 수 있음에도 이를 실현하지 못하게 된다. 더 나아가 조합원의 수가 많아지게 되면, 3년 혹은 5년 만기 채권을 발행하고 조합원 간에 채권을 사고 팔수 있게 허용하면 유동성이 크게 높아져 채권 발행을 통한 자본금 조달이 보다 용이해질 수 있다. 그러나 출자금은 차입이나 채권에 비하여 조합원들의 조합에 대한 책임감을 높이고 조합의 장기적 발전에 대한 관심을 높여주는 자본조달이라는 장점이 있다.

이러한 점은 자본조달의 다양한 방법이 각각 장점과 단점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 주식회사와 마찬가지로 협동조합도 필요한 사업이나 투자의 규모 및 성격에 따라 최적의 자본조달방법의 구성(optimal portfolio of financing)이 요구된다. 다만 협동조합이 주식회사와 달리 지켜야할 원칙은 자본조달방법과 상관없이 조합원의 민주적 통제권은 유지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번 사건이 협동조합섹터 내에서 창의적 자본조달방법을 실천하기 위한 계기가 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