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것들과의 만남에 익숙해진다는 것
정현곤,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정책위원장
시민운동과 자원봉사와의 만남을 추진한 적이 있다. 자원봉사(volunteer)가 사회문제에 눈을 돌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발성이 주창운동(advocacy)과 만날 수 있을 때 문제 해결의 힘이 생긴다고 봤다. 그 문제의식으로 1박 2일의 공동 워크숍을 기획했는데, 제목이 ‘똑똑똑, 서로에게 말 걸기’였다.
그런데 만남 시작부터 둘 사이에 감성의 차이가 살짝 드러났다. 시민운동을 오래 한 강사가 ‘공공성’을 시민의 지향으로 강조하면서 자원봉사의 방향을 제언했는데, 자원봉사자와 공공성을 가진 시민이 서로 다른 사람인 듯한 느낌을 준 모양이었다. 자원봉사 측에서 당장, ‘공공성은 내면화된 자발성과 자기 이해속에서 나올 때 진정한 힘을 지닌다’는 비평이 나왔다. 늘 지향성을 앞세우고 사람도 거기에 맞출 것을 요구하는 것이 시민운동의 습성(?) 아니냐고 지적하는 듯했다.
그리고 본격적인 대화시간.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내 놓은 협력 사례 속에서 차이의 좀 더 구체적인 실체는, 이렇게 표현되었다. “대전환경운동연합은 청소년들이 지역 사회 환경문제에 대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대안을 생각해 보는 점에 초점이 있었고, 유성구자원봉사센터는 환경자원봉사 활동에 방점이 있었던 것 같다.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대전환경운동연합은 환경을 가치로 받아들였고 센터는 환경을 (자원봉사활동의) 도구로 활용했다.” 두 단체 협력 사업으로 진행한 청소년 대상 ‘하천의 참 모습 찾기’ 평가서의 한 대목이다.
당시 워크숍에 참석한 사람들은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보였지만 ‘자원봉사운동은 공적 지향 수준이 낮은 것이 아니냐!’는 발언과 ‘시민 없는 시민운동 얘기가 괜히 나왔겠느냐!’는 발언 대목에 가서는 극적인 순간을 맞기도 했다. 그 때의 워크숍을 기록한 나의 회의록은 두 영역의 타협점을 이렇게 적어두고 있다. 인식의 차이와 관심의 다양성을 구분할 필요가 있는데, 적어도 사회적 문제 해결에 대한 공감이 있다면 시민운동과 자원봉사운동의 차이는 관심의 다양성으로 이해할 수 있다.
자원봉사와 시민운동이 만난 이 행사는 1년 전 쯤인 2014년 8월의 일이다. 새삼 그 일을 떠 올리는 것은 사회혁신에 대한 요즘의 생각이 거기에 닿아 있는 탓이다. ‘사회혁신이 뭔가?’라는 질문 앞에 그것은 ‘서로 다른 것과의 만남과 수용이다’라는 답변이 마음에 다가왔다. 사실 이 문제의식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미 ‘시민운동에서 시민사회로!’라는 구호를 내 건지도 4년이 넘어가고 있다. 마을, 협동조합, 사회적 경제 등 시민사회의 기획이 속속 성과를 내고 있었고 전통적인 자원봉사 영역에서도 ‘사회적 문제 해결’이라는 문제의식이 대두되었다. 시민사회 전반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 흐름을 타고 시민운동에서도 상대에 대한 개혁만이 아니라 나 스스로의 대안을 운동 속에 내재해야 한다는 성찰이 있었다. 그 목표는 강한 시민사회를 구성하여 문제해결 능력을 갖자는 것이었다. 그러자면 사람과 자원이 더 많이 연계되어야 했고 그것은 오직 다른 영역과의 협력(collaboration)에서만이 생성되는 것이었다.
협력의 흐름은 2015년 들어 시민사회와 공공영역 사이에서, 나아가 시민사회-공공-기업의 3자간 파트너십으로까지 상승하고 있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사회문제가 정부나 시민사회가 단독으로 해결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고 광범위한 범위에 걸쳐서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빈곤의 문제, 에너지 위기, 도시재생, 건강과 안전 등이 그런 예일 것이다.
그러나 경계를 넘는 마음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협력의 되뇜이 늘어날수록 차이를 좁히는 데 드는 피로감도 덩달아 커졌다. 서로의 장점을 보고 그 힘을 보태고자 하는데, 자원이 쉽게 움직이지 않으니 협력의 실체가 여전히 공허하다. 최근에야 협력의 본질이 새로운 공동의 가치 창출(co-creation)에 기초해야 함을 지적하고 이를 위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어 다행이긴 하다. 말하자면 단지 공공성이라는 개념어로서만이 아니라 가치의 원천과 가치의 유형을 세밀히 살펴 “협력적 가치 창출”의 프로세스를 단계별로 짜 들어가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는 마치 좀 더 진보적인 마인드와 기술로 정돈된 리더십이 있어야 실질적인 협력이 가능해진다는 의미로도 읽힌다. 말하자면 협력도 단순한 합침은 아님 셈이다.
협동조합과 지역사회 소통이 늘어나는 추세다. 여기서도 협력이 과제일 것이다. 서로 다른 것과의 만남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결국은 적응이 아니라 새로운 가치의 창출이라는 생각이다. ‘협력적 가치 창출’의 문제는 이제 시민사회 전체의 문제의식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