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변화

이현숙 한겨레경제연구소장

“하루 세 끼 먹는 나라보단 하루 두 끼를 먹더라도 안전하고 행복한 나라에 살고 싶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이 한 말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의 바람이기도 하다. 세월호 참사로 대한민국호는 총체적 부실을 그대로 드러냈다. 우리가 얼마나 위험한 나라에서 살고 있는지 온몸으로 확인하며 절망감에 빠졌다. 세월호 참사는 아직 진행 중이다. 사고 직후에 원인진단과 처방제안이 넘쳐났다. 하지만 그 절박함이 어느덧 시간의 흐름 속에서 옅어지고 있다. 분명한 것은 이대로는 우리 누구도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안전한 사회에 살기 위해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현대 산업사회를 위험사회라고 말했다. 근대화의 원동력이자 핵심성과인 과학기술과 산업시설 등이 날로 발전하면서, 한편으로는 환경오염, 산업재해, 대형사고, 핵 관련 재난사고 등 오히려 치명적인 위협요소를 만들어 위험사회에 빠져들게 한다는 것이다.

그의 말처럼 위험은 성공적인 근대화가 초래한 딜레마다. 근대화에 내재되어 있는 모순의 결과인 셈이다. 산업사회에서 경제가 발전할수록 위험요소도 증가한다. 무엇보다 예외적 위험이 아니라 일상적 위험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우리에게는 지금 이런 위험사회를 안전사회로 바꿔가야 하는 절박한 과제가 있다. 벡 교수는 위험사회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난 근대화과정의 반성을 통해 위험요소들을 줄여가는 성찰적 근대화를 제안한다. 성찰적 근대화는 산업사회를 지탱하는 여러 가지 원리를 되돌아보고 산업사회를 해체해 새로운 사회를 구성하는 과정이다.

산업사회에서는 경쟁과 효율로 최대한의 이윤창출을 지향한다. 결국 돈이 중심이다. 사람의안전은 뒷전이다. 세월호 참사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났다. 20년 된 중고선의 무리한 선실 증축, 선장과 선원의 열악한 처우, 무리한 운항, 안전교육과 설비 미비, 화물 과적 등은 탐욕이 낳은 결과들이다. 게다가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도 횡령, 배임, 국외재산도피 등 물불 가리지 않고 재산을 불렸다. 비단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예산문제로 공무원들은 움직이기를 꺼려한다. 잘못하면 책임을 짊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적극적인 재난대응보다는 윗사람 눈치만 살핀다.

대안적인 경제문법을 찾아야 한다. 단기적인 성과만 쫓는 돈이 지배하는 상황에서 안전은 있을 수 없다. 사람이 중심이 되는 경제로 변해 가야 한다. 탐욕 대신 이타심, 상호성, 협동, 사회적 목적 같은 동기가 지배하는 경제문법을 만들고 제도화해야 한다. 그래서 기존 시장경제의 한계를 보완해 가야 할 것이다.

다행이 우리 사회에서도 최근 몇 년 사이에 사람 중심의 경제가 싹을 틔우고 있다. 사람 중심의 경제 원리를 지향하는 사회적 경제 조직이 곳곳에서 생겨났다. 사회적기업, 사회적 협동조합, 마을기업, 자활기업 등은 사회 서비스를 늘리고 일자리를 만들며 지역 공동체 발전과 공익을 추구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서울에만 해도 올해 3월 기준으로 전체 1788곳의 사회적경제 조직이 있다. 이 가운데 393곳은 사회적기업, 180곳은 자활기업, 111곳은 마을기업, 1104곳은 협동조합이다. 지난 6?4 지방선거에서도 전국 사회적경제 매니페스토 실천협의회가 정치권, 시민단체, 전문가들의 협력으로 만들어져 사회적경제 공통정책안을 내놓았다. 공약권고안은 사회적 경제 지원체계 강화, 사회적 경제 조직 역량강화와 기반 조성, 사회적 경제를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와 지역재생, 지역사회 안전망 구축과 사회서비스 제공, 사회적 경제 교육과 인력 양성 등의 내용을 담았다. 여야 후보 269명이 참여해, 권고안을 토대로 사회적경제 공약을 내놓고 당선 후 공약을 적극 실천할 것을 약속했다.

사회적 경제가 사람 중심의 경제로 지속가능한 대안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회적 경제 생태계 내 내발적 발전의 노력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사회적 경제의 밑바탕에는 협력과 연대, 자기혁신과 자발적 참여를 깔고 있어야 한다. 사회적 경제 안에서의 협력과 연대를 구체화하고 가시화하면서, 우리 사회가 적절한 욕구로 가치 있는 삶을 살려는 사람들이 표준이자 다수가 되도록 변해야 한다. 우리 사회의 경제문법이 사람 중심으로 바뀌어 갈 때 비로소 우리는 안전사회로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