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으면 득이 되는 책

『세상을 바꾸는 소비자의 힘, 2009 윤리적 소비 체험수기 공모전 수상집』. ?iCOOP생활협동조합연구소 저. 한겨레경제연구소 역. 한겨레출판사. 2009.12.22.

이선옥, 생협평론 편집위원

2010년도에 윤리적 소비 공모전 실무를 맡아 일했다. 학생과 일반 부문으로 나눠 응모한 수기들을 분류하고, 1차 심사작을 걸렀다. 윤리적 소비라는 개념이 아직 일반 사람들에게 널리 인식되지 않았기 때문에 학생들의 글은 선생님이 권해서 쓴 것 같은 ‘공모전용 글쓰기’의 냄새도 많이 풍겼다. 윤리적 소비일 것 같은 경험을 조금은 억지스럽게 갖다 붙인 글들도 있었지만, 돌이켜보면 사실 나조차도 윤리적 소비가 무엇인지 정확히 잘 몰랐다. 물론 지금도 다 안다고 할 수 없다. 그저 지향해야 할 생활의 방식이라는 생각을 할 뿐이다.

체험수기 공모전 수상집은 사실 널리 읽히는 책이 아니다. 공모한 곳에서 형식적으로 내는 경우가 많고, 그 공모에 응한 사람들에게 관심 있는 주제인지라 많이 팔리는 경우도 드물다. 윤리적 소비 공모전 수상집도 그렇다. 책을 많이 팔기 위해 냈다기보다는 윤리적 소비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경험을 모았으니 이를 묶어 자료를 축적하는 과정이랄까, 나는 그렇게 여겼다.

책을 읽다 보면 의식 있는 사람들이 하는 특별한 사회운동으로 여기던 윤리적 소비가, 어떻게 평범한 시민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아주 쉬운 생활 습관의 하나로 인식되는지, 그 변화의 지점들을 알 수 있다. 사소한 말 한 마디, 글 한 줄, 사진 한 장 등에서 시작한 윤리적 소비의 경험. 이 책에 나오는 사례들은 그렇게 시작한 ‘작은 변화’가 가져온 ‘큰 기쁨’을 가르쳐 준다.

하지만 여전히 윤리적 소비에 대한 아쉬움과 의문은 남는다. 윤리적 소비는 어떤 면에서 보면 수동적인 개념이다. 예전에 윤리적인 덕목이라 여겼던 것들이 지금은 그렇지 않듯, 사회적인 규율은 그 사회의 변화와 함께 바뀌는 법이다. ‘윤리’라는 단어가 가진 느낌은 사회의 규율에 맞게 움직여야 한다는 수동적인 행위의 느낌이다. 소비도 마찬가지다. 소비는 이미 만들어진 상품에 대한 불매, 구매 등의 행위다. 비윤리적인 행동이 일어난 후에 사후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행동이다. 보다 능동적인 주체라면 사회가 규정하는 윤리의 틀에 갇히기보다 더 적극적인 사회 정의를 구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최근에는 윤리적 소비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정의로운 소비’를 하자는 움직임도 있다.

윤리적 소비는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개인들의 힘으로 바꾸고자 한다. 거기에 장점과 한계가 다 있다. 파편화된 개인들이 할 수 있는 최상의 행동이지만, 구조의 문제를 바꾸는 데는 또 다른 노력이 필요하다는 데서 그 한계를 본다. 가령 아동노동 기업의 제품을 불매해서 해당 기업의 아동노동을 근절 할 수 있다 해도, 지구상의 아동 노동이 모두 윤리적 소비 운동으로 근절될 수는 없다. 이는 정치권력의 문제, 노동운동의 문제, 국제연대의 문제까지 모든 힘이 모아져야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윤리적 소비는 그런 구조의 변화를 만드는 마중물이 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그 개념이 더 적극적이고, 능동적이고, 계속 확장된다는 점에서 또 다른 희망의 운동이기도 하다.

우리가 한 발을 디디면 기업은 두세 발 앞선다. 정보력과 자본력, 미디어 장악력 등 모든 면에서 우리는 기업에 대항하기 어렵다. 우리가 비윤리적인 기업의 상품을 보이콧하거나, 윤리적인 기업의 제품을 구입하는 것에 들이는 시간과 노력보다, 마케팅으로 비윤리성을 가리거나, 윤리적 소비를 마케팅에 이용하는 기업의 행동이 더 빠르고 더 효과가 있기 쉽다. 그게 자본주의의 힘이다. 하지만 그런 어려운 상황에서 성과를 거두고 있는 윤리적 소비 운동은 그래서 더 값지다. 이 책에 나오는 사례들처럼, 아무것 아닌 개인들이 서로가 발 딛고 선 생활의 터전에서 만드는 작은 움직임들이 결국은 어느 지점에선가 서로 공명한다. 이 지구에 함께 살아가는 한 우리는 모두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2008년에 처음 시작해 지난해까지 시민들 1천여 명이 참여했고, 계속 확장되고 있는 윤리적 소비 공모전. 2009년 수상집에는 윤리적 소비에 대한 연구 섹션이 있어 짧고 알찬 상식들도 전해준다.(본문에 삽입한 흑백 사진들의 질이 낮아 눈에 거슬리는 게 단점이라면 단점)

올해도 어김없이 2013 윤리적 소비 공모전이 시작되었다. http://www.ethiconsumer.org/ 이 수상집을 먼저 읽어본다면 윤리적 소비가 아주 쉬울 뿐만 아니라, 그 경험을 응모하면 뜻밖의 선물도 받을 수 있다는 아주 유용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윤리적 소비는 버릴 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