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보이는 협동조합을 꿈꾸자!
이필구, 한국YMCA전국연맹 정책사업국장
추석명절 고향에 다녀왔다.
평균 10시간 이상 운전을 해야 갈 수 있는 고향길이다 보니, 고생길이란 말이 절로 나온다. 고향을 가기위한 준비도 만만치 않다. 올 추석은 어떤 선물을 드릴까를 생각하면 머리가 복잡해진다. 없는 돈을 쪼개서 부모님과 형제들의 선물을 마련해야하는 부담감도 마음 한 켠을 무겁게 한다. 하지만 고향 가는 길은 이런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하는 즐거운 길이다. 왜 일까?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곳에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10시간 이상 운전을 해야 하는 고생스러움은 반갑게 맞이하는 부모님과 형제들의 미소를 보는 순간 눈 녹듯 사라져버린다. 선물을 마련해야 하는 부담감도 있지만 오히려 더 좋은 선물을 드리지 못하는 미안함이 더 크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추수한 농산물을 바리바리 싸서 한가득 차에 실어주시고, 자식을 배웅하며 한없이 손을 흔드시는 부모님의 모습은 늘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추석 귀향길을 경제적으로만 생각해보면, 크게 손해 보는 장사다. 한마디로 돈쓰는 고생길이다. 하지만 손익계산을 넘는 더 큰 가치가 존재한다. 묘하게도‘사람살이’는 사고파는 경제생활을 넘는 더 큰 가치가 작용될 때 사는 맛을 느끼게 한다. 프랑스의 인류학자이자 사회학자인 마르셀 모스는 선물의 경제학을 이야기 했다. 북서부 아메리카의 포틀랫치(potlatch) 전통을 소개하면서 “이들 사회 어디에서나 사람들은 주려고 안달한다.”고 말하고 있다. 선물은 참 기분 좋아지는 단어다.
선물을 받으면 기쁘지만, 주는 것도 기분이 좋다. 돈을 쓰는 일인데도 기분이 좋아진다. 참 이상한 일이다. 선물이 즐거운 일이 되는 원리는 증여가 의무가 아닌 자발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주는 것이 즐거워서 선물하는 것이다. 그래서 결코 답례를 바라지 않는다. 답례가 의무가 되면 교환이고 투자가 된다. 교환이나 투자가 아닌 진심을 담은 선물의 힘은 사회 곳곳에 작동하면서 사회를 지탱하는 원동력이 된다.
‘협동조합이 대세다.’고 한다. 서울시의 경우 2030년까지 사회적 경제 일자리 비율을 현재 1.6%에서 15%까지 끌어 올린다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하였고 그 원동력으로 협동조합으로 생각하고 있을 정도로 협동조합이 주류 경제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통계 자료만 봐도, 2013년 8월 31일 기준으로 2,530개의 협동조합이 신고 되었다. 설립지역별로 보면, 서울, 경기가 1,052개로 비교적 많긴 하지만, 나머지 권역에서도 협동조합 설립이 꾸준히 늘고 있어, 전국적으로 협동조합 바람이 불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협동조합설립을 돕는 다양한 중간지원체계도 만들어졌고, 협동조합과 관련된 책, 교육이 쏟아지고 있다.
최근 협동조합과 관련된 교육을 다니다보면‘협동조합을 설립하려면 어떤 절차가 필요한가요? 협동조합을 만들면 어떤 해택이 있나요?”같은 기능적인 질문을 가장 많이 받는다. 협동조합을 마치 도깨비 방망이처럼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아 졌다. 법이 정한 절차를 통해 협동조합만 만들면 성공할 것처럼 생각한다. 결국 협동조합을 이야기 하면서 협동조합의 가치와 사람은 빠져있는 느낌이다.
마르셀 모스가 선물이 담고 있는 가치에 집중하듯, 지금의 협동조합도 가치와 사람에 집중해야 한다. 협동조합 설립을 통해 사회적 일자리를 늘려내는 것만이 아닌 협동사회라는 큰 가치를 떠 꿈꿔야 할 때이다.
‘주려고 안달하는 사회’가 현대를 살아가는 지금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대부분은 불가능한 일처럼 생각할 것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에서는 선물에도 가격표가 붙어 있고, 등가 교환이 되지 않으면 밑지는 장사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살이를 잘 살펴보면, 선물에 담겨진 가치와 힘은 여전히 작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상생활에서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선물의 가치가 작동하게 하는 힘을 키워내는 것, 협동조합이 꿈꿔야 할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