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르르?푸리에(Charles Fourier)와의 회견
정병호, (재)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 상임고문
- 선생님이 사시던 시대에도 부정부패가 있었다던데 그 때 부패상을 말씀해 주시지요.
「언젠가 파리의 한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을 때, 옆자리의 손님이 사과 하나를 먹고 그 값을 치룬 것을 보았는데 그 사과는 산지에서 백 원 한 것을 식당에서는 천원을 받고 있었습니다. 나는 놀랐습니다. 장사란 것은 천 원짜리를 백 원에 사기도 하고, 백 원짜리를 천원에 팔기도 한다는 것을 알았지요. 나는 그 때 그 사과를 보고 내 사상의 기초를 이루는 “정념인력론”을 세웠지요. 마치 뉴턴이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정립했던 것처럼 말이지요.」
- 선생님께서 곡물상의 종업원으로 일할 때도 주인의 악덕을 보았다면서요?
「내가 27살 때인데 그 곡물상 주인은 밀가루 값을 올리기 위해 밀가루를 바다에 버린 것을 보았지요. 굶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곡물을 버린 사람도 있는 것이 세상인심 이였습니다.」
- 세상은 무엇인가 지켜야 할 가치가 엄존해야 합니다. 가령, 다 팔려도 인간의 양심은 팔려서는 안 된다든지, 인간의 신념은 훼손돼서는 안 된다든지 하는 것들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지켜져야 할 인간의 도덕률이 파괴될 때 사회는 흔들리게 되는 것이 아닙니까? 선생님께서 당시 세태를 보고 가슴 아팠던 또 다른 이야기 거리는 없으신지요?
「돈이면 최고라는 생각이 만연해 있었습니다. 돈이 양심과 신의자리로 올라간 셈이었지요. 온통 질서가 거꾸로 서 있었습니다. 거꾸로 선 세계(Perverted society) 이었지요. 양심을 지켜야 할 사회적 지도층이 먼저 부패해가고 있었습니다. 의사들은 전염병이 돌기를 원했고, 검사들은 싸움으로 송사가 벌어지기를 원했으며, 건축가는 도심의 집들이 화재를 만나기를 바랐고, 유리점 상인들은 유리창이 깨어질 태풍이 불기를 기다렸습니다. 한심한 세상인심 이였지요.」
- 도대체 왜 그런 범죄적 생각이 만연된다고 보았습니까?
「돈을 쥐면 만사를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 때문이지요. 문제는 개개인의 욕정을 합리적으로 다스릴 제도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항상 개인의 이익과 사회적 이익이 충돌되고 있었는데 저는 이것을 정념(情念)의 충돌 사태로 보았지요. 정념은 전사회적 이익과 항상 조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 선생님이 목격한 이러한 사회를 보고 인간의 구제사상으로 무엇을 생각하셨습니까?
「저는 정념인력(情念引力)이란 이론을 바탕으로, 사람들 간의 욕망의 충돌은 협동사회에서 만이 치유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전도된 소비, 전도된 유통, 전도된 경쟁은 전체이익과 불일치 될 수밖에 없는 “전도된 사회”라고 보았습니다.」
- 선생님은 독특한 역사 발전단계를 제시한 것으로 압니다만
「저는 역사의 발전단계를 산업발생?전기를 지나, 분열?허위?모순의 산업기가오고, 그 다음 협동 사회적 산업기로 된다고 보았지요. 협동적 사회의 모델로 제시한 것이 “파란쥬(phalange)라는 협동조합 이였습니다.」
- 지금 보기에 선생의 “파란쥬”는 당시 사회적 모순을 바로 잡기 위한 설계로서, 함께 사는 윤리적 강령을 표방하고 있습니다. 시대가 다른 오늘날에도 타당한 이론이라고 생각하시는 지요?
「다소 사회적 사정이 달라졌다고는 하나, 지금도 여전히 개인들이 정념의 노예가 되어있는 것을 보면 나의 이론은 아직도 쓸모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오늘날 한국사회에서도 잃어버린 양심 때문에 세상이 시끄럽습니다. 선생님께서는 한국사회를 보고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대학교수가 매수되고, 검사가 수뢰죄로 형무소에 가고, 성직자가 떼돈을 벌고, 정치인이 표를 사고, 돈이 되는 것은 무엇이든 가리지 않은 것은 내가 살던 불란서 시민혁명 후 19세기 초엽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심연에 다다르면 위기를 느끼고, 그 위기는 새로운 삶의 지혜를 주게 됩니다. 나는 한국사회가 희망적으로 개혁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이런 잘못을 개선하는데 협동조합 운동 같은 양심의 거점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협동조합은 조그마한 경제 사업이나 하는 단체가 아니라, 잘못 굴러가는 사회전체를 빠르게 끌고 가는 해방적 사회운동체적 기능을 갖고 있음을 때달아야 합니다. 특별히 지금 한국에서는 협동조합 기본법이 제정 운용되는 전기를 맞고 있어 큰 기대를 갖게 합니다. 」
- 지금까지 이야기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선생님의 소개를 잊을 뻔 했습니다.
「저는 1772년 프랑스에서 태어나 활동하다가 1837년에 세상을 떠났지요. 내가 아홉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어렸을 적엔 남의 집 점원노릇도 했고 퍽 고생도 많았지요. 그러나 학문에의 열정과 그 실천에 관심이 깊었지요. 프랑스 산업자본주의가 여러 가지 모순을 보이자 그 구제활동으로 협동조합운동을 폈지요. 나를 세계 삼대 공상적 사회주의자로 평가한 모양입니다만 이 “공상적”이란 접두어는 기분 좋지 않습니다. 내 후배들이 내가 세상을 떠난 뒤 『평화적 민주주의』 란 책을 내서 내 사상을 널리 알려주었다는데 이 점은 고마운 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회견문은 묵은 서재에서 푸리에 선생을 만나 회견한 것이다. 한국의 협동조합운동이 크게 발전해 가는데 푸리에의 고귀한 사상이 접목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