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조합의 진면목을 찾아서]

조합원 가치 실현과 협동조합연합회(2)

 

 

 

김형미(전 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장, 전 상지대 사회적경제학과 부교수, 제21대 한국협동조합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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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연합을 넘어 복합생태계를 갖춘 협동조합 그룹: 몬드라곤

스페인 바스크 자치주에 소재한 몬드라곤 그룹은 일하는 사람들이 출자하고 노동하는 노동자협동조합 기업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몬드라곤은 약 90여 개의 협동조합과 관련 사업체, 심지어 재단과 대학까지를 포함하는 법인들의 협동조합으로 사실상 연합회3이다. 몬드라곤은 약 7만 명의 임직원과 150여 국에서 영업하고 있으며 스페인 7대 기업 정도의 규모인데, 1956년 최초의 노동자협동조합 기업(Ulgor, 오늘날 Fagor 전기) 이후 여러 번의 경제 위기 속에서도 개별 기업은 실패하면서도 전체적으로는 더욱 고도화하고 있어 경제경영계의 주목을 받아 왔다. 이들은, 시대에 따라 몬드라곤 협동조합 집단, 몬드라곤 복합체, 몬드라곤 기업이라고 표현하면서도 협동조합 연합이 그 근간에 있음을 놓치지 않는다.

몬드라곤은 스스로 제정한 <협동조합 10원칙>을 연합의 운영원리로 삼고 있으며, 그룹 내 협동조합 기업 간에 상호 지원과 협력을 지렛대로 성장해 왔다. 공통의 금융기관과 공제(보험)를 이용하고, 인재를 육성하여 순환 인턴십을 운영하며, 경기 침체기에는 조합 기업 간 일자리도 순환한다. 각 협동조합은 자율적으로 운영되지만, 몬드라곤의 법인 조합원으로서 반드시 지켜야 할 약속이 있다. ① 이익 전환(순익의 13% 이상을 그룹 공동기금으로 전환하여 위기 시 연대기금으로 사용), ② 협동조합 기업의 노동자 재배치(개별 기업이 도산하거나 축소하면 타 협동조합 기업에 재배치하여 해고를 최소화), ③ 상호 금융지원이다(몬드라곤 연차보고서 2024).

몬드라곤은 1981~84년 사이 5년간 스페인 경제 불황의 영향을 받아 매우 심각한 위기를 겪었다. 수산업협동조합 외 가구 부문 협동조합이 해산했고 협동조합 기업들은 임금 삭감과 적극적인 재배치를 통해 과잉 부문의 인력을 덜어냈다. 연대기금을 통해 이익과 손실을 공유화하는 원칙은 1970년대 후반 Fagor 전기 그룹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원칙이 몬드라곤 그룹 전체로 적용되는 과정에서 이익 성과가 높은 협동조합 기업 몇 군데는 이러한 연대 원칙에 이의를 제기하고 몬드라곤을 떠났다.

위기와 문제가 적지 않았지만, 몬드라곤은 꾸준히 성과를 냈다. 1983~2019년 사이 몬드라곤과 스페인 기업 전체의 고용 성과를 분석한 논문에 따르면, 스페인 기업 전체의 고용증가율이 75%일 때 몬드라곤 스페인 국내 고용증가율은 258%, 해외 고용까지 포함하면 335%였다.4

이렇게 강한 연대와 협력의 시스템을 운영하면서 지키려는 몬드라곤의 조합원 가치는, 일터의 민주주의(Humanity at Work)이고, 경기순환과 불확실성이 증대하는 시장환경 속에서도 조합원들의 일터를 지키는 것이다.

 

보충성의 원리와 보완 효과:생협 교리츠샤(共立社)의 연방제 구상

연합회 방식은 협동조합의 생존율을 높이는데 유효하지만, 연합회가 지나치게 강력하고 규모가 커지면 관료화와 조합원의 참여가 무력해지는 문제도 발생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를 보더라도 협동조합 중앙회는 강력하지만, 소속 지역조합은 빈약한 사례도 많다. 강한 연합회와 작은 지역조합 사이에는 연대(연합회 방침) vs. 자치(지역조합의 민주주의)라는 가치의 대립도 불거지곤 한다. 영원한 숙제일 수도 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한 경험적 지혜는 ‘보충성(보조성)의 원리’에 기초한 연합이다. 보충성의 원리는, 소규모 사회조직이 결정하거나 자치할 수 있는 일은 그 조직이 수행하고, 대규모 사회조직은 소규모 사회조직이 그 사회적 기능을 수행할 수 없을 경우에만 직접 그 사회적 기능을 충족시킨다는 원리이다. 1931년 교황 비오 11세가 반포한 사회회칙 <사십주년 Quadragesimo Anno>에서 제기하여 가톨릭 교회는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방침도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이러한 보충성의 원리는 자치조직 운영원리이자 이제는 법률적 용어로도 성립될 정도로 사회적 합의를 이루고 있다.

한편, 연합회의 역할은 연합을 통해 보완 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보완 효과는, 둘 이상의 요소가 결합했을 때 그 이상의 상승효과가 나타나는 효과를 말한다. 제철 음식 요리 동영상과 제철 농산물 주문 사이트가 결합하거나, 옷에 어울리는 가방과 모자, 신발이 제시되거나, 병원의 암 수술과 항암제 치료에 생활 치유, 명상 등의 활동이 결합되어 환자의 생활의 질이 향상되는 현상도 보완 효과이다. 종합, 통합, 상승효과라고도 하겠다. 연합회는 회원 조합들을 수직적으로만 연결하지 않고, 회원 조합들을 수평적으로 연결하는 등 중층적인 연결을 통해 사실 많은 보완 효과를 창출할 위치에 있다.

일본 야마가타현의 생협 교리츠샤는 야마가타현의 생협들을 하나로 엮으면서 ‘연방제’라는 표현으로 통합을 실현했다. 그 구상은 쓰루오카생협에서 시작되었다. 1955년 야마가타현에서 설립된 쓰루오카(月岡)생협은, 5명 이상의 조합원을 반으로 엮어서 생협의 가정배송 사업의 기초 단위이면서 조합원 조직의 기초로 세워 상향식 조합원 민주주의를 실천한 생협이다. 쓰루오카생협은 1974년 조합원 1,654명이 원고가 되어 일본석유연맹 및 석유 대기업을 상대로 소비자 배상을 청구하는 등유 소송을 일으켰다. 1973년 일어난 석유파동 시기에 등유 가격이 급등하고 춥고 교통이 불편한 동북 지역에 등유가 부족한 이유가 석유기업들이 가격을 올리기 위해 방출을 억제했기 때문이었다. 주부들이 대기업을 상대로 일으킨 이 소송은 1심 패소, 2심 승소, 1985년 대법원 패소로 막을 내렸지만, 가와사키 등유 소송과 함께 대기업의 카르텔에 맞선 소비자 권리투쟁의 서막을 열었던 선구적인 활동이었다. 쓰루오카생협은 1978~79년 야마가타현 6개 생협이 하나로 뭉쳐서 단일 생협이 되자는 생협 통합을 추진하면서 이를 “교리츠샤 연방 구상”이라고 표현했다. 유통 대기업의 진출, 인구 과소 지역사회에서 생협이 더욱 확대되기 위해서는 연합회처럼 뭉쳐서 규모의 경제를 이루되 운영은 각 지구의 문화와 조합원 활동 자치의 전통을 살리자는 것이다. 단일생협으로 통합하면서 명칭도 생협 교리츠샤로 변경한 후 이들은 통합과정에서 <조합원헌장>을 제정했다. 이렇게 뜻을 모은 후에 그동안 생협이 없었던 4개 지구에 생협 조직을 설립하여, 지금은 10개 생협이 모인 단일생협으로 운영한다. 교리츠샤의 조합원은 16만 명, 1990년대에는 의료생협과 함께 노인요양시설을 건립하여 운영하고 생협을 넘어선 지역협동을 추진하고 있다. 법인은 하나이지만 지구별 이사회가 있어 활동의 자치가 이어지는 교리츠샤의 경험은 보충성의 원리와 함께 보완 효과를 도모한 사례다.

 

드라마 같은 독일협동조합연합회의 발전 과정

19세기 독일에는 슐체-델리치(1808~1883) 방식의 신용협동조합과 라이파이젠 방식의 농촌 신용협동조합(이하 라이파이젠 협동조합)이 대조적인 조직원리로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1873년 슐체 델리치 진영에서 라이파이젠 협동조합을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출자금도 없는 조합제도라는 점, 미회수채권이 많아서 언제 도산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당시 라이파이젠 협동조합이 3개월의 해약 고지 기간을 두고 빌린 차입금을 1~10년짜리 대출로 융자에 사용하는 게 건전한 은행 운영원칙에 위반된다는 비난이었다. 단기 자금으로 빌려서 장기 대출을 하는 모양새였으니 논리적으로는 슐체 델리치 진영의 비판이 틀리지 않았다. 라이파이젠 협동조합은 그동안 조합 운영에서 부실이 없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비판을 일축했으나 프로이센 정부에서 조사단을 파견할 정도로 사태가 엄중했다. 그런데 정부 조사단은 당시 농민의 현실을 고려한 라이파이젠 방식의 성과와 운영 경험을 중시하여 호의적인 보고서를 제출하여 사태는 일단락이 되었다. 라이파이젠 협동조합은 무한연대책임제를 채택해서 조합원 가입의 장벽은 높은 편이었다. 따라서, 실제 조합원들은 만약 조합이 파산했을 때 부채를 감당할 만한 자산(마을 공동토지 용익권)을 지닌 주민층이면서도 개인적으로도 도덕성이 높은 이들이 무보수로 조합의 운영을 책임졌다. 어떤 이들에게 이러한 조합의 모습은 엘리트주의로도 보였다.

라이파이젠 협동조합은 자유롭고 상공업이 발달하는 도시에서는 적합하지 않았다. 하여, 제도적으로는 슐체 델리치가 큰 역할을 한다. 독일협동조합법은 1867년에 먼저 프로이센에서 제정되고 통일 후 1889년 독일제국의 협동조합법으로 개정되는데 조합원 출자원칙, 유한책임제가 채택된다.

한편, 다른 농촌 지역 헤센주에선 법률가인 W.하스(1839~1913)가 주창하는 공동구입·공동판매의 농촌소비자협동조합이 여기저기서 설립되었다. 이들 조합은 유한책임제를 채택하여 조합원 가입도 더욱 촉진되어 이후 독일의 농촌에는 라이파이젠 협동조합의 전국조직으로서 독일농업협동조합총연맹(1877년)과 하스계의 전국조직 독일농업협동조합제국연맹(1883년)이 양립하는 상황이 계속되었다. 1895년 프로이센 정부의 보조금을 받아 모든 협동조합금융기관의 중앙금고로서 협동조합중앙금고가 설립되고 이 중앙금고가 현재의 독일협동조합중앙은행(DZ Bank)로 이어졌다. DZ Bank는 현재 독일의 상업은행 중 자산규모로 2위 정도다.

1920년대 농촌불황과 초인플레이션, 1929년 대공황의 여파로 협동조합 금융기관들이 경영 위기에 빠지자 1932년, 라이파이젠과 하스 계의 협동조합 조직의 통합이 이루어졌다. 통합과정에서 라이파이젠 협동조합은 경제사업을 수행하는 신용협동조합으로 체제를 전환함으로써 종합농협의 성격을 지니게 되어 농촌에선 없어서는 아니 될 존재로 기여하게 된다.

2차 세계대전 패망 후 독일 협동조합은 파멸적인 피해를 입었다. 그런데 1948년 11월에 독일라이파이젠연맹(Deutscher Raiffeisenverband)이 설립되어 협동조합 재건의 등불이 되었다. 1972년 슐체 델리치 계의 신용협동조합과 조직통합이 이루어진 후 라이파이젠 협동조합은 광역 차원의 대규모 협동조합으로 거듭나면서 19세기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지니게 되었다.

독일라이파이젠연맹은 현재는 독일협동조합·라이파이젠총연맹(DGRV)이란 이름의 전국조직으로서 약 5천 개의 회원 협동조합이 회원과 2천만 명의 조합원, 100만 명의 직원을 포괄하고 있다. DGRV의 목적은 회원 및 소속 협동조합 기관의 수평적인 연계 및 협동조합 감사, 협동조합 시스템의 발전, 촉진, 대표 역할이다.

라이파이젠이 살았던 시기에 그가 추구했던 무한연대책임, 대면 차원의 유대 범위, 높은 도덕성을 지닌 봉사하는 임원, 신용사업에만 전념하는 조합의 모습은 유한책임, 유대의 확대 또는 돌파, 전임 임원, 겸업과 분화된 다양한 조합으로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천했다. 그럼에도, 자조·자치·자기책임의 협동조합 이념과 연대의 실천은 그들의 DNA로 계승되었다. ‘공통의 이익을 조직한다는 협동조합의 이념과 실천’은 독일 협동조합인들의 노력으로 2016년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인류의 공통유산으로 전승된다.5

개별 협동조합은 거대한 시대변화 속에서 사라질 수도 있다. 협동조합들이 2차, 3차로 결성하는 연합회를 통해 협동조합은 부침을 겪으면서도 조합원 가치 실현을 위해 규모의 경제를 이루고 자원을 공동 저장하며 리스크를 경감하고 이익과 손실을 분담함으로써 위기 시에 서로의 버팀목이 될 수 있었다. 연합회의 모습이 다양할 수 있다는 점도 흥미로운 점이다. 협동조합은 의외로 유연한 모델일지도 모른다.

 

* 라이파이젠 협동조합에 대해서는, 일본협동조합학회지 『協同組合硏究』第38卷 第2號 (2018년)에 실린 村岡 範男 제37회 일본협동조합학회 춘계대회 특별강연(ライファイゼンの功績から協同組合の意義を考える)을 참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