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조합의 진면목을 찾아서]

칼럼 연재를 시작하며:인도네시아의 유니버설 협동조합이라는 모델

 

김형미(전 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장, 상지대 사회적경제학과 부교수, 제21대 한국협동조합학회장)

 

 

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의 웹사이트를 빌려 협동조합에 관한 칼럼을 게재할 기회를 얻었다. 전업 연구자의 환경에서 벗어난 필자에게는 감사하고 자극적인 일이다. 한편, 노동 소득으로는 자산을 형성하기 어려워 주식 및 암호화폐를 통한 자산 부양이 ‘새로운 표준’처럼 침투하고 있는 현시대에서, 출자지분의 거래도 할 수 없고 자산 형성의 수단으로 활용할 수 없는 협동조합은 미래를 향한 실질적인 선택으로서 매력적일까. 이런 의구심도 많아진다. AI가 산업과 생활을 극적으로 바꿀 듯한 격변기에 협동의 필요는 어떻게 달라질지 아직 가늠하기 어렵다. 이런 정세 속에서 감히 짧은 칼럼으로 협동조합을 더 깊고 넓게 탐색할 수 있을지 걱정도 앞선다.

필자는 ‘연구자는 실천을 뒷받침하고 미래를 설계할 때 지원하는 존재’라고 스스로 다짐해 왔다. 아직도 이러한 자세는 변함없기에 이 칼럼을 통해서 동시대 협동조합에 관심을 지닌 시민들과 다양한 생각의 씨앗을 풍부히 나누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

칼럼은 연재 형식이라 제목을 고심하다가 대담하게도 ‘협동조합의 진면목을 찾아서’라고 정해 보았다. 필자는 진면목(眞面目)이 불교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이란 용어에서 유래한 줄 몰랐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 태어나기 전부터 본래 가졌던 모습(본질)을 나타내는 이 불교 용어를 우리가 자주 쓰는 진면목으로 바꾼 이는 북송의 시인이자 학자, 정치가였던 소식(蘇軾, 1037~1101)이라고 한다. 유배 가던 도중 여산의 수려한 모습에 감탄한 그가 남긴 시(제서림벽)에 나오는 구절 “여산의 참모습을 알지 못하는 것은, 단지 이 몸이 그 산속에 있기 때문이다(不識廬山眞面目 只緣身在此山中)”(「금강신문」, 여산진면목)에서 처음 등장했다. 하여, 진면목은 정작 안에만 있으면 보이지 않고 바깥으로 나와봐야 보인다는 지혜도 전하는 말이다. 어쩌면 필자처럼 여러 협동조합의 평조합원으로 가입해 있지만 활동하지 않으며, 또 연구의 현장은 벗어났으나 연구 활동은 계속하며, 한·일을 오가며 양쪽 사회를 관찰하는 처지에서 보면 이 제목이 필자에게 동기부여가 될 것 같아 선택했다.

인도네시아에서 펼쳐진 유니버설 협동조합 모델

2025년 10월16~17일. 오사카 간사이대학교 우메다 캠퍼스에서 <오사카국제협동조합연구 심포지엄(IYC2025 Osaka Symposium)>이 열렸다. 일본협동조합학회와 한국협동조합학회가 공동으로 주최한 이 심포지엄에 14개국에서 100명 정도가 참석했다.

이 심포지엄에서 필자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내용은 다나카 나오(田中直)박사가 발표한 인도네시아의 유니버설 협동조합(Universal Co-op) 사례였다. 유니버설 협동조합이란 용어는 다나카 박사가 개발한 협동조합 모델을 표현한 개념으로, 실제 사례는 인도네시아에서 적정기술을 사용하여 도시 폐기물을 처리하는 자원순환 협동조합 Koperasi Jasa Multi Pihak PUSTEKLIM (족자카르타 소재)였다. 이 협동조합은, 2023년 7월에 쓰레기 분해처리 기술자와 투자자가 공동으로 출자하여 설립한 다중이해관계자형 협동조합으로, 폐수처리, 쓰레기 소각, 재생에너지 발전, 인재훈련 사업을 영위한다. 동남아시아 도시에서 방치되는 쓰레기 더미, 불법투기는 매우 큰 사회, 환경문제인데 이 문제를 적정기술을 사용한 소각로를 개발하여 환경 부하를 줄이는 폐기물 처리 모델을 보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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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Koperasi Jasa Multi Pihak PUSTEKLIM 의 웹사이트

https://pusteklim.com/

다중이해관계자형 모델은 우리나라나 이탈리아에서는 사회적협동조합이 주로 채택하고 있는 모델로서, 실제 이용이나 노동으로 참여하지 않더라도 후원 조합원 형태로 재정에 기여할 수 있다. 따라서 그 자체는 특별하지 않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다중이해관계자형 협동조합과 다른 점은 이들이 실천하는 민주적인 운영방식이었다. 유니버설 협동조합 모델은, 국제협동조합연맹(ICA)의 협동조합 원칙 및 우리나라 협동조합 관련 법률에서 명시하는 ‘1인 1표’의 조합원 단일 의결권이 아니라 차등의결권을 도입한다.

유니버설 협동조합의 원칙은 첫째, 돈이 있는 사람은 투자로, 기술을 가진 자는 기술로, 마케팅에 유능한 자는 마케팅으로, 신체 능력이 강한 자는 힘이 필요한 일로 협동조합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한다.

두 번째 원칙은, 조합원의 기여도에 따른 의결권 도입. 이 기여도는 금전적인 기여도와 비금전적인 기여도를 포함하며, 어느 쪽에 가중치를 둘 것인지에 대해서는 조합원 합의로 결정한다. PUSTEKLIM 협동조합은 비금전적인 기여도에 가중치를 둔다. 즉, 비금전적인 기여도가 크면서 금전적인 기여도 수반한 조합원의 의결권이 가장 많고, 이어서 금전적인 기여도가 크면서 비금전적인 기여도 한 조합원의 의결권이 많다.

세 번째 원칙은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표로 구성된 조합원 평정 위원회에서 이 기여도를 평가한다는 점이다. 유니버설 협동조합이라는 용어는, 이렇게 설계한 협동조합에서는 조합 구성원 모두가 다른 역할로 참여하더라도 자신의 재능과 역량대로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보편적이라는 의미로 붙인 이름이라고 덧붙였다.

다나카 박사는, 실제로 조합원 기여도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그 기준도 보여주었다. 협동조합 기여도(금전·비금전), 역량·기술·경험, 성과, 조화로운 협력이 평가 기준이었고, 투자자·기술자·마케팅 소그룹이 나누어져서 각 소그룹에 속한 조합원의 기여도 총합에 따라서 차등의결권 크기가 정해진다.

왜 이러한 협동조합 모델을 고안하였을까. 다나카 박사는 전통적인 협동조합의 장점과 단점을 짚었다. 협동조합의 장점은, 뭐니 뭐니해도 공동출자로 창업하여 민주적으로 통제되는 기업으로서 많이 가진 자와 없는 자 사이의 괴리를 해소할 수 있는 인간다운 기업이라는 점이다. 한편, 각 조합원의 기여도와 참여 수준이 다른데도 불구하고 동등한 의결권만을 세팅하여 책임적인 운영보다 다수의 입장대로 흘러가기 쉽고 이에 투자 유치가 어렵다는 점을 지적했다.

우리나라 농협도 이러한 한계를 돌파하고자 조합공동사업법인인 경우, 회원농협의 출자액에 비례한 의결권을 도입하기도 했다「농업협동조합법」제112조의 4의 ③). ICA도 연합 단계의 협동조합에 대해서는 동등한 투표권이라고 명시하지 않고 ‘다른 연합 단계의 협동조합도 민주적인 방식으로 조직된다.’고 하여 차등의결권 여지를 남겨 두었다. 하지만, 개인 조합원을 조직한 일차 협동조합 차원에서 이처럼 조합원 그룹에 따라 의결권의 차이를 두는 사례는 우리나라에선 없을 뿐 아니라 법 제도로도 불가능하다.

인도네시아의 다중이해관계자형 협동조합(KMP)의 특징

인도네시아는 2021년 협동조합법 개정 및 시행령(협동조합·중소기업부령 8)을 통해서 다중이해관계자형 협동조합(KMP)을 허용하였고 의결권도 이해관계자별 소그룹을 만들어서 가중치를 둘 수 있도록 하였다. 이해관계자 종류에 생산자, 소비자, 노동자, 투자자, 파트너가 명시된 점도 인상적이다. 우리나라 협동조합 법률에서 투자자는 늘 협동조합 외부의 존재였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 협동조합혁신 컨소시엄(ICCI)에 따르면, 2025년 기준 이러한 다중이해관계자형 협동조합은 373개 조합이 정부에 등록되어 있다.

작동 가능한 민주주의 방식은 다양할 수 있다

유니버설 협동조합이라는 개념은 우리나라 실정에서는 낯선 개념이다. 그렇지만 이 개념과 사례가 참신했던 점은, 협동조합의 민주주의가 1인 1표로만 소개되는 평등한 의결권 구조만을 반복강조하는 담론 차원에 갇혀 있는 듯한 답답함 때문이다. 협동조합의 민주주의는 초석이 되는 원칙인데 그게 실제로 잘 작동하기 위해서는 협동조합의 규모나 성장 이력, 조합원의 참여 수준, 협동조합이 영위하는 사업의 성격 등을 고려하여 작동 가능한 방식을 찾는 게 타당하다. 이러한 상상력조차 제한해 버리면, 실제로는 참여하지 않는 조합원과 일부 임직원 중심의 운영이라는 괴리 속에서 협동조합의 민주주의는 부서지기 쉽고 외피로만 남을지도 모른다.

(김형미) 메이지대학교 정치경제학연구과에서 협동조합 전공으로 경제학박사 취득. 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장, 상지대 사회적경제학과 부교수, 제21대 한국협동조합학회장을 역임하고 현재는 사회적경제연구소 이사, 사단법인 노동공제연합 풀빵의 정책위원으로 비상근 연구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