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조합의 진면목을 찾아서]
조합원 가치 증진, 협동조합의 목적
김형미(전 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장, 상지대 사회적경제학과 부교수, 제21대 한국협동조합학회장)
시대에 편승하지 않는 매력?
반도체 슈퍼사이클 효과와 주식시장의 활황으로 1,500만 국민이 주식투자에 열중하고 있는 2026년 5월에 주식 가치가 아닌, 협동조합의 조합원 가치에 대해 말한다면 대세를 비켜 가는 철 지난 이야기일까? 문득 5월 연휴 기간에 여행했을 때 들렸던 마쓰모토시 양식당 OKINADO가 떠올랐다. 안동, 쑤저우와 함께 2026년 동아시아 문화도시로 선정된 마쓰모토시 중심지에 있는 이 식당은 1933년 창업했는데, 지금은 “철 지난 경양식집(時代遲れの洋食屋)”을 표방한다. 그런데, 많은 여행 블로그에서 추천하고 줄을 서야 들어갈 수 있을 만치 인기가 있다. 창업자가 개발한 레시피를 계승하여 지역 식재료로 조리하여 제공한다. 필자가 들렀을 때도 외국 여행객들이 줄 서 있었다.
타이완 방문객이 그린 경양식집 OKINADO, 5월에는 시내 유치원생들이 사회학습차 들렸다.
(OKINADO 웹사이트, https://okinado1933.com/)
철 지난 식당을 표방하지만, OKINADO는 구닥다리가 아니고, 시내 중심지에서 시대와 호흡하며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맛있고 품격 있는 요리를 정직한 가격에 제공하고 있다. 이 식당의 가치는 매출액이란 경제적 가치로는 도저히 담을 수 없는 복합적인 풍요로움에 있다. 중심지 부동산 매각이라는 선택지보다 3대에 걸친 영업을 이어온 무형의 문화자산, 아담하고 고전적인 멋을 느끼게 하는 실내 분위기, 정겨운 레시피를 계승하며 마쓰모토 시민의 자랑거리이기도 하고 사회학습의 터전으로서 복합적인 가치를 꾸준히 지역사회에 제공한다. 엉뚱한 비유 같지만, 협동조합이 만들어내는 조합원 가치도 이런 종류에 가깝다. 중장기적인 호흡, 복합 가치 창출, 고유의 역할 계승, 이윤보다 서비스라는 점에서.
조합원 가치란 무엇인가
조합원 가치(member value)란 경제학 용어를 빌린 표현으로, 조합원이 협동조합 활동과 사업을 통해 누리는 가치를 말한다. 주주가치(shareholder value)가 기업이 창출한 이익 중 주주에게 돌아가는 몫(배당)의 크기를 말한다면, 조합원 가치는 협동조합에 출자하고 이용하는 조합원이 누리는 혜택의 크기와 다양함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실은, 주주가치나 조합원 가치라는 표현은 법률상 용어가 아니다. 직관적으로 쉽게 수용되는 언어라 관습적으로 사용하는데, 법률이나 협동조합 교재에는 ‘조합원의 지위 향상’이란 표현이 쓰이고 있다.
협동조합의 목적은 조합원의 지위 향상?
그렇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협동조합 법률은 협동조합 결성의 목적 조항에 조합원의 ‘지위 향상’을 명시하고 있다.
| 농업협동조합법 제1조(목적) | …농업인의 경제적ㆍ사회적ㆍ문화적 지위를 향상… |
| 수산업협동조합법 제1조(목적) | …어업인과 수산물가공업자의 경제적ㆍ사회적ㆍ문화적 지위의 향상… |
| 새마을금고법 제1조(목적) | …회원의 경제적ㆍ사회적ㆍ문화적 지위의 향상… |
|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 제1조(목적) | …조합원의 소비생활 향상… |
| 신용협동조합법 제1조(목적) | …그 구성원의 경제적ㆍ사회적 지위를 향상… |
| 중소기업협동조합법 제1조(목적) | …중소기업자의 경제적 지위의 향상… |
| 협동조합기본법 제2조(정의) 제1항 | …조합원의 권익을 향상… |
이 ‘지위 향상’이라는 표현의 유래를 찾으면, 「독일협동조합법」에서 협동조합의 본질로서 명시했고 이게 영어(promotion)→일본어(地位向上)→한국어로 정착한 것이다.
「독일협동조합법」제1조 (협동조합의 본질) (1) 구성원 수를 한정하지 않고, 조합원의 사업, 경제활동 또는 (협동조합적) 공동사업을 통해서 사회적·문화적 이익 향상(frdern)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는 이 법률에 근거하여 ‘등기협동조합’의 권리를 취득한다. (2) (협동조합이) 단체 또는 기타 인적비영리조직, 공익단체에 출자하기위해서는 다음에 기여하는 경우여야 인정할 수 있다. ① 조합원의 사업 또는 경제 촉진, 또는 조합원의 사회적·문화적 이익의 촉진(Frderung), ② 유일한 목적이거나 고유목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협동조합의 공익 목적 실현1
이 법에 나오는 frdern, Frderung에서 유래한 member promotion이란 표현은 영어권에서 오래전부터 사용한 듯하다.1959년 인도 캘커타에서 출간된 협동조합 관련 책에서도 member promotion이란 표현이 쓰였다.2일본의 농협법에선 “농업인의 경제사회적 지위향상”(제1조), 「중소기업등협동조합법」에서도 “경제적 지위향상”이라고 명시했다.
그러면, 근대 협동조합의 모델을 확립했던 로치데일 공정선구자협동조합에선 어떻게 표현했을까? 1844년 규약에 등장하는 이 조합의 목적은, “조합원의 금전적인 이익과 사회적, 또한 가정의 상태를 개선(improvement)하기 위한 제도를 갖추는 것”3이라 했으니 조합원의 더 나은 생활을 목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조합원의 지위 향상 = 조합원 가치 증진
한편, ‘조합원의 지위 향상’이란 표현은 오해를 부르기도 한다. 협동조합은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도전에 응전하는 보통 사람들, 특히 노동자와 농민, 경제·사회적 약자들의 공동사업체로 등장했기 때문에, 점차 이들의 생활 수준이 향상되면 이 ‘지위 향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호해졌다. 민주공화국에서 시민은 평등하고 기회의 평등과 사회권도 상당히 보장되었다. 중산층은 더는 스스로를 “경제·사회적 약자”라고 인식하지 않고, 정책입안자들은 협동조합이 약자들에게만 필요한 조직처럼 치부하기도 했다. 심지어는, 약자들의 조직인데 그만큼 성공했으면 되었다는 식의 오해도 있다.
하여, 필자는 조합원의 지위 향상이란 용어보다 ‘조합원 가치 증진’이라고 표현해 본다. 앞서 말했듯이 조합원 가치는 협동조합의 조합원으로서 누리는 혜택과 이로움의 크기다. 조합원 가치가 낮다면 조합원으로서 협동조합에 남아있을 유인도, 새로운 조합원으로 가입할 매력도 적다. 조합원 가치가 높다면 그 가치는 거래되지 않지만, 조합원의 생활을 이롭게 하고 협동조합을 떠나지 않을 심리적·실재적인 닻이 될 것이다.
조합원 가치의 복합성
조합원 가치는, 조합원으로 가입하여 다른 조합원들과 함께 출자, 이용, 운영에 참여할 때 발생한다. 조합원이 출자자이면서 이용자라는 특성은 가장 독특한 특징인데, 이러한 특성은 협동조합 접근을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노동자협동조합이 쉽지 않은 이유는, 사업이 실패할 때 일자리를 잃을 뿐 아니라 출자금까지 잃기 때문이다. 하여, 노동자협동조합은 벼랑 끝까지 몰린 노동자들이 그 절박함을 뚫고 기업을 인수하거나, 노동의 질이 비교적 동질적이거나 사업의 변동 리스크가 적은 분야에서 탄생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 소비자 생협이나 금융협동조합, 보험협동조합은 어떨까. 이들 협동조합은 작고 용감한 물고기 스위미가 집단을 형성하여 큰 물고기에 대항하고 바닷속을 누비는 것처럼 다수의 이용자가 가입하고 이용할 때 성공할 수 있다. 협동조합의 특성이 출자, 이용, 운영 참여이지만 다수의 조합원이 실제로 운영에 참여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이어서 대표제 민주주의 방식의 대의원제도, 이사회를 중심으로 한 운영이 일반적이다. 그러면 많은 조합원은 대개 조합원 이용자(member user, member customer)로서 존재한다. 이들 조합원 이용자들이 느끼는 조합원 가치를 어떻게 정의하고 제공할 것인지가 그 협동조합의 핵심 가치이자 목표가 될 것이다. 이를 조합원 중심 전략, 또는 조합원 신뢰 관계 쌓기 경영이라고도 한다.4
협동조합의 나침반이 조합원 가치 증진에 있다면, 그 운영 평가의 척도는, 얼마나 벌었는가는 수익보다도 얼마나 조합원이 그 가치를 누리고 있느냐를 가늠하는 것이어야 한다. 아직 이러한 척도는 조합원 출자배당이나 이용실적 비례 환급(리펀드, 페이백), 이용시설 증가 등의 경제적인 척도로만 표시되고 그 외는 부차적으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조합원이 협동조합 활동에 참여하면서 얻는 사회적 성장과 교류, 귀속 의식, 교육·문화·체험은 측정되지 않을 뿐, 소중한 가치로 체험한 조합원들의 삶과 정서적 태도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많은 농협에서 여성 대학, 문화교실, 복지프로그램 등을 운영하는데, 만약 이런 프로그램들이 사라진다고 가정한다면 그 상실감은 상당할 것이다.
이처럼 조합원 가치는 경제적 가치뿐 아니라 다양한 무형의 가치들이 교차하면서 복합적으로 혼재하며 조합원 삶의 질 증진, 생활 향상에 작용한다. 조합원 가치 증진을 협동조합 사업의 중심축에 두어야 함은 시대가 바뀌어도 변함없다.
조합원 가치 증진과 신뢰 쌓기
조합원 가치 증진이란 협동조합 사업의 목적과 함께 더 주목할 점은 조합원 가치 증진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조합원과 협동조합이 신뢰 공동체가 되어 서로를 강화하는 관계에 있다는 점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는 협동조합의 공제사업이다.
현대사회는 방대한 계산능력을 구사하는 기술 덕분에 직업별·나이별·성별·인종별로 가입자가 어느 정도의 리스크를 지니는지 세분하여 보험을 설계한다. 이는 비례성 원칙을 따른 것이지만 이 제도를 악용한 도덕적 해이와 비효율(가령, 실손보험 도수치료 증가와 보험료 상승)이라는 딜레마에 시달린다. 반면, 협동조합 공제는 같은 조합원이라는 연대 의식과 신뢰에 기초하여 큰 구간으로만 적당하게 분류한 보장체계를 운영한다. 이러한 체계 덕분에 건강 상태가 안 좋거나 소득이 낮은 처지의 조합원들도 가입할 수 있고 문턱을 낮추더라도 상업 보험보다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지 않는다.
조합원의 신뢰는 협동조합이 시장 환경의 변화로 위기에 처했을 때 그 위기를 돌파하는데도 큰 원동력이 된다. 경영학에서 ‘충성도(loyalty)’라고 표현하는 이용자의 심리적 지향의 원천은 신뢰다. 그 기업을 믿어, 이 조직에 계속 남고 싶어 하는 애착과 믿음이 그 기업과 조직에 대한 애착을 낳는다.
핀란드 소비자협동조합 S그룹은 핀란드 가구의 78%가 가입한 대단히 탄탄한 협동조합이지만 1980년대에 심각한 침체를 겪으며 도산 위기에 처했다. 당시 프랜차이즈 모델을 도입하고 최첨단 소매업태를 추진한 식료품기업 Kesko가 시장을 선도했기 때문에 S그룹의 실적은 계속 떨어졌다. S그룹이 생존하기 위해선 경쟁 기업의 장점을 모방해야 했고 이에 새로운 경영진은 “전략적 쇄신”을 추진하여 202개였던 지역조합을 19개로 통합하고 일부 적자공장은 매각하고, 식료품점, 백화점, 호텔, 레스토랑과 같은 소매업의 기본에 충실하기로 정했다. 이러한 쇄신 과정은 경쟁 유통기업과 수단은 같지만, 고객이 조합원이므로 더 깊은 충성도를 소구한다는 점에서 경쟁 기업과 달랐다. 2000년대에 S그룹은 핀란드의 젊은 세대에게 “내 손 안의 스토어 Your Own Store”라는 슬로건을 제시하며 조합원 가치 증진에 힘썼다.5
협동조합의 약속(선언)이 행동으로 옮겨졌을 때 조합원은 조합의 임직원과 조직을 신뢰하게 된다. 귀속 의식을 지니게 되고 조합의 사업이 안정적이고 장기적으로 계속되기를 바라는 의식이 깊어질 것이다. 이러한 신뢰의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가령, 조합원 이용률과 반복 이용률(전 조합원 중 정기적으로 생협을 활용하는 조합원 비율), 증자 참여 조합원율, 대의원 후보 희망자 수, 조합원 설문조사 응답률 등. 순고객지수(NPS, net promoter score)를 측정하는 것도 좋겠다. NPS는 특정 브랜드나 서비스를 지인에게 추천할 의향을 측정하여 이용자의 만족도와 충성도를 가늠하는 지표다.
건강검진의 수치를 참고하듯이 주기적으로 조합원의 신뢰 정도를 비교하면서 이상징후를 발견하고 조합원 가치 증진을 축으로 사업, 활동을 개선하는 노력이 축적되면 협동조합은 신뢰 공동체로서 웬만한 환경 변화에도 잘 항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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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협동조합법(Genossenschaftsgesetz)」 https://dejure.org/gesetze/GenG/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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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Calvert, The Law and Principles of Co-operation (5th Ed., Calcutta,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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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ws and Objects of the Rochdale Society of Equitable Pione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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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bership oriented strategy, trust-building relation namagemen이란 표현은 이 논문에서 참조. Svenja Damberg(2023), Perceived Cooperative Member Value ? The Case of German Cooperative Banks, Review of International Co-operation, Vol.108, ICA CC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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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YAN COOPER, 핀란드 S그룹은 어떻게 핀란드 최대의 유통업체가 되었는가, The American Prospect (2023.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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