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조합의 진면목을 찾아서]
조합원 가치 실현과 협동조합연합회(1)
김형미(전 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장, 전 상지대 사회적경제학과 부교수, 제21대 한국협동조합학회장)
지난 호 칼럼의 주제는 협동조합의 목적이 조합원 가치 증진이라는 내용이었다.
많은 협동조합이 설립 후 목적 실현을 위해 경제활동이라는 거대한 바다에 입수하게 된다. 바다거북의 알이 부화하면 새끼거북은 본능적으로 바다로 이동하는데, 그 짧은 이동 기간에도 수많은 천적에 노출되면서 바다에 무사히 도착하는 새끼 거북은 1% 미만이라고 한다. 이와는 비교할 수 없지만, 신생 기업이 시장에서 성공하고 계속 생존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물며, 기술개발·금융·전문지식 등의 자원이 빈약한 상태에서 발기인들의 공통 필요나 목적을 쫓아서 설립된 협동조합이 시장에 진입해서 사업을 개발하면서 생존한다는 건 더더욱 그렇다.
그런데, 조사해보면 협동조합의 생존율이 영리기업에 비해 낮지 않다는 연구들이 적지 않다.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된 2012년에 설립된 협동조합의 5년 생존율은 54.3%인데, 이는 전체기업의 생존율보다 더 높다.1 사회적협동조합의 5년 생존율이 58%라는 연구2도 공개되었고, 영국에선 금융위기의 영향이 남아있던 2011년 설립한 신생 협동조합들의 5년 생존율이 80%라는 연구도 발표되었다. 영국도, 협동조합의 생존율은 영리기업보다 높았다.
[그림] 2011년 설립한 기업과 협동조합의 생존율 비교(영국)
출처: Co-operative Business Survival(2019), Co-operatives UK
왜 생존율을 주목하는가. 협동조합이 단기적으로 반짝 활동하다가 사라지면 조합원 가치 실현이란 목적 자체도 물거품이 되기 때문이다. 협동조합이 사업 활동을 해야 할 시장환경(바다)은 협동조합이 탄생했던 산업혁명기부터 협동조합에 우호적인 환경은 아니었다. 현대 국가에서 협동조합 법제가 정비되고 다양한 기업 형태들이 경쟁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하나 주류 시장 질서는 여전히 협동조합에 불리하거나 과소 기회 상태인 경우가 많다. 따라서 협동조합이 영리기업보다 더 높은 생존율을 보이는 이면에서는 개별 협동조합이 지닌 약점을 보완하는 어떤 기제가 작용하고 있다고 상상하게 된다. 역사 속에서 그 기제는 협동조합들이 연합회나 더 큰 협동조합 집단으로 단결하여 조합원의 가치 실현을 위해 시대의 변화에 대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업의 필요에서 시작된 협동조합연합회: 규모의 경제와 통합된 공급망
초기에 탄생한 협동조합연합회는 사업의 필요에서 결성된 경제사업연합회였다. 근대 협동조합의 성공적인 모델을 전파한 로치데일공정선구자협동조합과 인근 42개 협동조합이 단결하여 설립한 협동조합도매사업연합회(CWS)가 그렇다. 1863년 창립된 이 연합회는 명칭에 ‘도매’가 포함되었듯이 조합마다 따로 했던 상품 조달, 물류, 매장 운영을 통합, 표준화하여 효율화를 이루어냈던 사례다. 당시, 영국 북부의 협동조합 대부분은 조합원 50명 정도의 소규모 조합이어서 조합원에게 제공할 수 있는 혜택은 제한적이었다. 이러한 제약을 로치데일공정선구자협동조합이 주도하여 연합회를 이룸으로써 CWS는 산하에 보험, 농장, 제조기업을 두고 정직한 품질과 가격의 협동조합 브랜드 상품을 제조하여 매장에 공급하고, 산하 공장에선 8시간 노동제를 선구적으로 실현하고 조합원 주택도 건설하는 사업 생태계를 발전시켰다. 이후 소비자협동조합연합회는 대부분 CWS처럼 규모의 경제를 이루고 통합된 공급망을 실현함으로써 이용자인 조합원의 혜택을 최대화하는 방향으로 사업을 펼쳤다. CWS는 160여 년의 역사 동안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현재 영국에서 가장 큰 협동조합인 코업 그룹(Co-operative Group)으로 그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자금의 공동 저장과 리스크 감소를 위한 연합회: 중앙금고
신용협동조합의 발상지 독일에선 일찍이 중앙금고로서의 협동조합연합회가 만들어졌다. 19세기 중반 독일에는 도시 상공인들을 중심으로 사업자 간 융자로 자금을 조달하는 도시형 신용협동조합(슐체 델리치 계통)과, 빈한한 농민과 농촌 주민에게 급전과 마중물 자금을 대출하는 농촌 신용협동조합(라이파이젠 계통)이 탄생했다. 전자는 ‘서민을 위한 은행=국민 모두의 은행’이란 개념에서 Volksbank로, 후자는 라이파이젠 은행으로 불리며 현재도 독일 전역에서 지역경제를 지키고, 시민에게 봉사하는 금융기관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라이파이젠이 설립한 농촌 신용협동조합(Kreditgenossenschaften)은 현재의 협동조합 개념에서 보면 이채로운 모델이다. 19세기 중반 독일에는 영국보다 늦은 산업혁명의 물결이 도래했는데, 도시에선 중화학공업을 중심으로 한 자본축적의 경제가 빠르게 발전하여 사회 전체는 성장의 분위기였다. 하지만, 농촌에선 농민이 부를 축적할 틈도 없이 오랜 농촌사회 질서가 붕괴하고 마을 단위의 공동 경작제가 무너져 농민 대다수가 빈곤한 양극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흉작이 들면, 기아로 굶주리며 죽어 나가는 농민과 가족의 모습은 20세기 초 조선의 농민들과 마찬가지였다. 돈이 없는 이들은 살기 위해 상인 고리대에 의존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서 라인 지방의 촌장으로 부임한 F.W. 라이파이젠(1818~1888)은 농민의 기아·빈곤·고리대의 악순환을 끊어내고자 첫 부임지에선 빵조합(Brotverein, 1846년)을 세우고, 두 번째 부임지에선 빈농구제조합(Hilfsverein zur Unterstuetzung unbemittelter, 1849년), 세 번째 부임지에선 복지조합(Wohltaetigkeit-Verein, 1854년)을 설립하였으나 이들 조합은 오래가지 못했다. 당장은 유효했고 성과도 있었지만, 라이파이젠이 이임한 후에는 해산하곤 했다.
1862년 3월, 인구 3천여 명의 안하우젠 교구에서 라이파이젠의 자문을 기초로 대출조합(Darlehnskasse-Verein)이 설립되는데, 이 조합이 농촌신용협동조합의 출발로 본다. 조합의 원칙으로 자조·자치·자기책임(Selbsthilfe·Selbstverwaltung·Selbstverantwortung)의 3원칙을 정립하고, 사업내용은 신용대출에만 집중했다. 이후, 이 모델은 독일 각지로 전파되어 1898년 프로이센 지역에서만 1,792 조합, 독일 전역에선 2,907 조합으로 확산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 대출조합의 운영방식은 유럽 대륙에서도 도입된 로치데일 모델이나 프랑스의 노동자생산협동조합과는 달랐다. 우선 농민 조합원들은 출자금을 내지 않았다. 대신, 조합원 범위는 소교구 정도로 대출자의 일상생활을 파악할 수 있는 대면 유대 범위에 한정되었다. 조합의 대출금은 주로 외부 차입금을 재원으로 삼았는데, 이자 4.5~5% 정도로 충당한 차입금으로 농민조합원에게 5년 이하 단기대출 6.25%, 5~10년 중장기 대출 5.75%의 이자로 자금을 제공했다. 사회적 금리 수준으로 농민들에게 금융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고리대의 악순환을 끊어내어 농가의 경제적 몰락을 저지한 것이다. 이러한 방식의 대출조합, 즉 라이파이젠 협동조합은 현대의 상호금융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고 오히려 개발도상국에서 이루어지는 소액금융사업과 더 닮았다. 외부 차입금을 끌어오기 위해서는 신용이 필요했는데, 라이파이젠은 이를 마을의 공동토지 용익권과 사용 결정에 의결권을 지닌 주민(Buerger) 조합원 모두가 무한연대책임을 지는 방식으로 해결했다. 자조·자기책임·자율을 관철하기 위한 연대인 셈이다.
이러한 농촌신용협동조합이 보급되는 중에, 소교구 중심의 조합의 한계가 나타났다. 즉, 어느 마을 조합에선 돈이 남고, 다른 마을에선 돈이 부족한 상태가 발생하는 현상이다. 이에 각 조합의 자금을 효과적으로 조율해야 할 필요성에서 1872년 노이비트에서 라인농업협동조합은행이 설립되어, 작은 조합의 약점을 보완하는 연합회로서의 중앙금고를 광역 수준에서 건설하게 되었다.
이러한 라이파이젠 모델은 일본의 산업조합, 현재의 일본농협(JA)의 연합회에도 계승되고 있다. 알다시피, 일본의 농협은 우리나라 농협처럼 종합농협으로서 경제사업 외에 신용사업, 즉 조합원에게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을 수행한다. 일본의 농협 조합원은 지역의 JA 뱅크에서 금융 서비스를 받고 각 JA 뱅크는 자금을 광역 지자체 수준의 JA신용농업협동조합연합회로 모으며, 이들 모두의 중앙금고 역할을 하는 전국 금고인 농림중앙금고으로 자금이 모인다. 회원 출자금 4조 8천억여 엔, 자산 83조여 엔의 이 초대형 금융기관은 지역조합-광역단위 연합회-전국연합회의 구조인 셈이다. 이러한 중앙금고는 지역마다 조합 규모의 편차가 있더라도, 전국 어디에 살든지 농협 조합원들이 대등한 수준의 금융서비스를 누릴 수 있게 하는 자금의 공동 저장 기능, 조합을 대표해서 자금을 안전하게 운용하여 조합원 자금의 가치를 높이고, 개별 조합의 유동성이 부족하거나 건전성이 약화될 때 자금과 경영개선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리스크를 줄인다.
-
김민창·김재환·정도영, 「협동조합기본법」의 입법영향분석, 국회입법조사처, 2018.12.24.
-
최희성·민병익, 생존분석을 이용한 사회적협동조합의 생존 결정요인에 관한 연구, 『지방정부연구』 vol.22.no.3, 2022.
[협동조합의 진면목을 찾아서] 조합원 가치 실현과 협동조합연합회(2) 다음 호에서 계속됩니다.


![[협동조합의 진면목을 찾아서] 조합원 가치 증진, 협동조합의 목적](http://icoop.re.kr/wp-content/uploads/2026/03/KakaoTalk_20260312_172348838-500x383.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