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칼럼]협동조합의 새로운 시도 : 이종협동조합
김기태 ((사)한국협동조합연구소 소장)
2011년 농협 관련 해외조사로 이탈리아 레가협동조합을 방문했을 때 담당자가 설명을 하면서 자주 soci라는 말을 사용했다. 대략 짐작하기에는 ‘조합원’이나 ‘회원’ 정도로 짐작하기는 했는데, 회원조합이 연합회의 soci라고 말하다가 연합회가 어떤 협동조합의 soci라고 말하기도 하니, 당시로서는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 여러 번 질문을 했지만, 결국 명쾌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당시 개별법 협동조합의 구조는 연합회는 회원조합의 상급단체라는 하나의 구조만 존재했지, 연합회가 회원조합의 조합원이 된다는 상상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법인이 협동조합의 조합원이 될 수 있도록 하며, 자유롭게 연합회를 만들 수 있어 작은 연합회가 자기 업무의 일부를 협동조합에 위탁할 수 있는 협동조합기본법이 작동되고 나서야 레가의 설명을 경험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연합회는 상급조직이 아니라, 여러 협동조합들이 공동의 목표나 사업을 위해 만드는 수평적인 조직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제도적인 제약에 따라 협동조합을 만들거나, 연합회를 만들 때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모이는 것으로 암암리에 상정하고, 이런 조합원의 균질성을 잘 지키는 것이 협동조합의 성공요인이라고 생각해 왔다. 따라서 다른 종류의 조합원들이 모이면 의사결정 비용이 많이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동종 사업자협동조합이나 업종연합회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시장이 단순한 상황에서는 이런 설명이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시장이 복잡해지고, 상품의 경쟁력이 가격만이 아니라 다른 다양한 가치가 반영되는 경우, 혹은 복잡한 분업체계를 갖추어야만 상품을 생산할 수 있는 경우에 동종 사업자협동조합만을 가지고 시장에 진입하기는 시도할 수 있는 방법상의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상업이나 소매업 영역에서 협동조합을 만들어 가격경쟁력을 추구할 때에는 동종 협동조합이 강력하겠지만, 제조업에서 높은 부가가치를 추구하는 제화나 가구를 함께 만들어 낼 때에는 각각 다른 역량을 가진 조합원들의 업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조율할 수 있는 이종 협동조합이 유리하다. 이탈리아 제화협동조합은 수백만원을 넘어가는 구두를 만들어 수출까지 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이종사업자 협동조합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사업자협동조합은 기본법협동조합의 75%에 이른다. 대부분이 같은 사업을 추구하는 조합원들로 만들어져 있어 부가가치를 높이거나 새로운 사업기회를 만들어내는 데 부족한 실정이다.
각각 다른 사업을 하고 있는 협동조합들이 모여 의 공동사업을 만들면 협동조합 전체에 새로운 활력을 가져다 줄 것이다. 굳이 업종연합회가 아니더라도 공동프로젝트를 안정적으로 수행하는 컨소시엄은 이종협동조합간의 협동을 이끌어 줄 수 있다. 이탈리아의 사회적협동조합, 건설협동조합, 급식협동조합이 함께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카라박 프로젝트는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아이쿱이 생협의 매출능력을 바탕으로 상품을 생산하는 여러 협동조합과 독자적인 협동조합생태계를 구축하려는 시도도 이종협동조합을 추구하는 하나의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주민생협의 조합원들이 작은 협동조합을 만들어 매장을 운영하는 것도 좋은 이종협동조합 혁신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종협동조합의 가지는 가능성과 장점이 있지만, 그 특징을 이해하고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면 오히려 단점만 부각될 수 있다.
이종협동조합은 조합원들의 필요와 이해관계가 각각 다르기 때문에 더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협동조합을 만드는 명확한 목표에 대해 동의해야 하고, 조합원이 협동조합의 사업에 참여하는 방법이 동종협동조합에 비해 복잡하기 때문에 구체적인 사업방법을 합의해야 한다. 성과의 분배방식도 사전에 합의할 필요가 있다.
협동조합을 운영하면서는 실제 조합원들의 역량이 기대한 것과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이런 경우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빠르게 판단해야 하고, 이를 조율할 수 있는 지도자의 조정역량이 중요하다. 전체 사업과정의 핵심을 담당하는 조합원이 지도자의 역할을 함께 맡아야 협의비용을 줄이기 쉽다. 동종협동조합에 비해 더 복합적으로 검토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미 보석산업 관련 협동조합이나 사회적기업이 결혼식 공동사업 등 여러 시도가 있었다. 이들의 성공과 실패사례를 검토하면서 이종협동조합의 성공모델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협동조합은 상상력이다. 동종협동조합이 튼튼한 방어막을 구축하는 풀백의 역할을 한다면, 이종협동조합은 새로운 사업영역을 개척하는 공격수의 역할이라고 비유할 수 있다. 이종협동조합의 상상력을 높일 때만이 협동조합 방식의 새로운 혁신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