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곳으로부터의 연대와 혁신(8): 역사는 과연 진보하는가?
김종걸 한양대 글로벌사회적경제학과 교수
1. 역사의 진보라는 환상
역사가 진보한다고 믿었던 적이 있다. 언젠가 인류는 그 많은 문제들을 다 해결할 것이라는 믿음이다. 이런 생각이 자리 잡았던 이유는 어릴 시절의 독서 때문이다. 마르크스의 사적유물론의 세계 속에서 자본주의란 자연스럽게 사회주의로 대체되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더욱 생산력이 발전된다면 “능력에 따라 일하며 필요에 따라 분배받는” 공산주의 세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좌파이론의 책을 그럭저럭 읽어대던 나도 그 결론에 동의한 적은 없다. 그러나 역사가 무언가 궁극의 결론을 향해 달려간다는 진보사관은 항상 머리에 남아 있었다. 헤겔의 논리학, 정신현상학과 같은 저서들도 마찬가지였다. 변증법이란 단순한 사유의 사유발전방식, 역사발전방식을 설명한 것이 아니었다. 변증법은 결론(절대정신의 구현)으로 달려가기 위한 논리의 과정이었다. 영국 빅토리아 시대 특유의 낙관론에 입각한 담론들, 가령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에서의 인간이성에 대한 믿음도 이러한 진보적 역사관을 배경으로 깔고 있었다. 유물론자, 관념론자, 자유주의자 상관없이 인간은 긴 고난을 뚫고 마침내 역사의 도원향(桃園鄕)에 도달한다는 믿음을 많은 사람이 공유했다. 아마 이들에게 있어서 이러한 인류 진보에 대한 믿음조차 없었다면 그 엄청난 지적작업은 유지되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학에서 학자의 말석에 자리 잡고, 그럭저럭 50대 중반의 나이가 되고, 세상사 이꼴 저꼴 겪다보면, 어느 순간인가 역사가 정말 진보하는지 의심스러워진다. 역사란 퇴행하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방향성을 잃고 표류하기도 한 것처럼 보인다. 2016년의 촛불은, 2009년 노무현대통령의 장례식, 1987년 6월 항쟁과 오버랩 되며 나의 기억 속으로 다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그 시절부터 우리는 얼마나 진보하였던가. 권력과 이권의 단맛을 빨아들이던 인간들은 그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다. 한국만이 아니다. 바깥세상을 봐도 엉망인 것은 마찬가지다. 지구촌을 100명이 사는 마을이라고 생각하면 5명이 부의 32%를 가지며 20명은 매일 1달러 미만으로 생활한다. 1명이 대학을 가며 16명은 읽지도 쓰지도 못한다. 50명은 영양상태가 좋지 않으며 1명은 배고픔으로 죽어간다. 인류가 산업혁명을 거치며 적어도 기술적으로는 배고픔에서 해방된 지 어언 250여년이 지나가는데도 세상은 여전히 이 모양이다. 미국에서는 막말의 트럼프가 당선되고 이라크와 시리아의 마을에서는 백주대낮에 이슬람국가(IS)에 의한 양민학살이 자행된다.
대체 역사가 무엇이 진보했는가. 중세의 봉건왕조, 1930년대의 파시즘에 비하면 지금은 정치적으로 자유롭고 경제적으로 풍요롭다. 적어도 기술적으로라면 경제적 풍요가 가져오는 환경파괴도 충분히 제어 가능하다. 그래서 어쨌다는 말인가. 먼 과거와 비교해 더욱 좋아졌다고 만족한다면 그거야 말로 무책임한 일이다. 그리고 그것이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가져다주는 것도 아니다. 2016년 지금 내가 사는 세상은 여전히 가난하고 불평등하며 무도한 권력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그리고 내 아들이 살아가는 미래에 세상이 더 좋아질 것이라는 확신조차 서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이 때 다시 물어보게 되는 것은 “역사는 과연 진보 하는가” 라는 질문이다.
2. 성장과 분배의 실패
적어도 최근 30년간의 세계경제는 성장과 분배 모든 측면에서 실패했다. 1970년대의 스태그플레이션이 선진국경제를 뒤덮고 있었을 때 그 때까지의 케인스(Keynes)정책을 ‘무덤’ 속으로 보내고 새롭게 역사 속에 등장한 것이 바로 신자유주의였다. 정책기조는 간단했다. 국가의 역할을 줄이고 시장영역을 확대하는 것이다. 규제완화, 민영화 등이 그것이다. 이로서 자본주의는 자본주의 발생 초기의 순수한 형태, 즉 자본의 이윤추구와 개개인의 자기책임, 그리고 경쟁의 끝없는 압박 속으로 ‘역류(逆流)’해 갔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적 개혁에서도 세계경제가 활력을 가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레이건 시기 미국경제는 재정적자와 무역적자라는 쌍둥이적자에 시달렸으며, 경제성장률도 이전의 성장률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클린턴 시기의 소위 ‘신경제’에 의한 호경기도 실물투자의 증가와는 괴리된 일종의 IT 버블에 의한 호경기에 불과했다. 이것은 영국의 대처와 그 이후의 정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토니블레어, 얼마 전 관둔 데이비드 캐머런에 이르기까지 기존의 사회민주주의와 대처리즘의 결합을 꽤하고 있지만 성장력과 사회적 안정성의 회복에는 이르지 못했다. 일본 또한 2000년대 고이즈미의 신자유주의 구조개혁 정책에도 불구하고 경제성장률은 크게 제고되지 않았다. 2000년대의 경제성장률은 2% 정도에 불과했으며, 이것은 장기불황기라고 불리던 1990년대의 그것을 약간 상회할 뿐이었다. 한국 또한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에서 숨 가쁘게 진행됐던 재벌규제완화, 금융규제완화 등의 각종 조치들도 제대로 경제적 활력을 제고시키지 못했다. 거의 모든 나라에서 경제적 규제완화와 감세조치들이 새로운 경제성장을 가져올 것이며, 이로 인해 작금의 각종 사회문제가 중장기적으로 해결되어 갈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도 사실은 경제성장률자체가 한계에 부딪치면서 실현되지 못했던 것이다.
피케티(“21세기 자본”)와 스티글리츠(“불평등의 대가”)가 집요하게 지적하고 있듯이, 결과적으로 확대된 것은 빈부격차였다. 생각해보면 2011년 미국의 월스트리트 점령운동과 영국의 청년폭동은 그 원인이 같았다. 상위 1%가 지배하는 세상에 대한 불안감이었다. 세상살이의 출발점, 과정, 결과가 너무나도 불평등한 것에 대한 불만의 폭발이었다. 경제학자들은 오랫동안 낙수효과라는 ‘메시아’의 도래를 선전했다. 그러나 그 메시아는 오지 않았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폴 크루그먼 교수는 “자유주의자의 양심”(2007년)이라는 저서에서 낙수효과는 거짓말이라고 단언했다. 경제학적 논리를 떠난 정치적 선동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한국도 이와 다르지 않다. 세칭 금수저들은 혼맥/학맥/금맥의 동심원을 통해 사회적 지위를 겹겹이 쌓아갔다. 그 정점에는 재벌의 2세, 3세가 있다. 비상장주식의 양도, 부당한 내부거래 등 각종 편법을 통해 손쉽게 막대한 재산을 마련했다. 그리고 그것을 기반으로 주력업종만이 아니라 호텔업, 광고업, 패션사업, 건설업, 백화점, 심지어는 동네빵집과 길거리커피숍까지 다 장악했다. 그 어떠한 통계를 열거해도 이 추세에는 변함이 없다. 소득불평등의 증가, 노동소득분배율의 하락, 비정규직 비율의 증가, 가계소득과 기업소득 간의 격차확대, 절대빈곤율의 상승 등 한국과 미국 등 많은 나라에서 벌어지는 현실은 중산층이 몰락하고 빈곤이 대물림되는 세상인 것이다.
3. 경제안정의 실패
성장과 분배의 실패만이 아니다. 오히려 더 큰 문제는 지난 몇 년간 경제적 불안정성이 더욱 커졌다는데 있다. 가까이는 1997년, 2008년-09년 등 10년마다 벌어졌던 글로벌 금융위기는 시장이 경제학교과서에 나오는 것과 같은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 시장이 폭주하는 원인은 크게 2가지다. 하나는 금융의 규제완화, 그리고 또 하나는 빈부격차의 증대로 인한 수요능력의 한계 때문이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는 단순히 9.11테러 이후 미국의 저금리정책과 부동산버블에 기인하는 것은 아니었다. 불안요인을 더욱 증폭시키는 금융시스템 그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 저축대부조합, 상호저축은행, 상업은행 등의 주택담보 부실채권이 파생상품이라는 모양새를 가지고 거대투자은행 및 헤지펀드에 파급되는 경로, 즉 부실화된 채권을 ‘상품화(증권화)’하고, 몇 개의 상품을 다시 결합시켜 ‘재상품화(재증권화)’하는 과정이 금융위기를 더욱 증폭시켰다. 부실을 분산시키는 것이 아니라 부실의 규모조차도 파악 불가능할 정도의 복잡한 파생금융체계가 시스템 전체의 불안정성을 크게 했다. 심지어 파산하는 거대 투자은행들이 손실규모 조차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정도의 복잡함이었다. 그렇다면 금융으로 왜 이렇게 돈이 몰릴 수밖에 없었는가? 과도한 단순화의 위험을 무릅쓰고 말한다면 그것은 역시 경제 속에 존재하는 ‘과잉자본’, 혹은 ‘과소소비’ 때문이다. 중산층의 몰락과 빈부격차의 증대는 소비능력이 있는 중산층 이하의 수요를 크게 억제하며, 경제전체의 소비능력제한은 결국 설비투자의 제한으로 귀결되기 마련이다. 투자할 곳이 없는 자금들은 부동산과 금융으로 몰리게 되며, 끊임없이 실물경제와는 괴리된 채 금융과 부동산의 새로운 가공의 상품들, 소위 파생상품이라는 것을 만들어가며 수요를 창출해 나간 것이다.
금융의 규제완화와 경제적 불안정성의 근저에 있던 현실은 바로 빈부격차의 확대와 투자할 곳을 잃은 자본들의 ‘카지노’ 투기장을 만든 것이었다. 이 모든 것이 금융의 규제완화라는 미명하에 추진되어 갔다.
4. 4차 산업혁명과 인간의 위기
새로운 기술발전은 새로운 투자를 자극하며 다양한 사업기회를 만들어 간다. 그것은 그것대로 의미가 있다. 분명한 것은 제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는 기업들에게 있어서 진입장벽의 형태는 기존의 중후장대형 산업과는 상당히 달라질 것이라는 점이다. Apple, Google 등의 사례에서 보듯 한 천재에 의한 새로운 기술발전과 상품화가 바로 시장을 장악할 수 있게 한다. 시장이 그만큼 경쟁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시장이 경쟁적 이라는 사실은 반대로 독점화를 위한 끊임없는 합종연횡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양한 M&A와 전략적 제휴, 새로운 지적재산권의 확보를 위한 국가 간의 갈등 등 제 4차 산업혁명이 야기하는 새로운 산업경쟁지도는 앞으로 예의주시해야 할 대상이기도 하다.
직접적으로 인간의 위기가 예측되는 것은 바로 노동 측면에 있다. 인간의 근력만이 아니라 지력(知力)까지도 기계에 의해 대체되는 위협이다. 인공지능과 연애하는 영화(그녀, Her)와 같이 “인간이란 무엇인가” 라는 심오한 질문을 던질 의도는 없다. 당장 염려되는 것은 노동현장에서 쫓겨나는 사람들이다. 인공지능이 진료하는 병원, 인공지능이 제조하는 약국, 인공지능이 운전하는 택시, 인공지능이 생산하는 운동화 등 인간노동을 전방위적 위기로 내 몰수 있다. 최악의 경우 인간은 (1)자본을 조달/운영하는 사람, (2)인공지능을 개발하는 사람, (3)인공지능에게는 어려운 일을 하는 사람(예술가와 간병/보육노동 등)으로 단순화되어 갈 수 있다. 성장과 분배의 실패, 경제안정의 실패를 가져온 주원인은 사람보다 자본을 중시하는 경제였기 때문이다. 만약 이러한 경제가 그대로 유지된다면 4차 산업혁명은 ‘재앙’이 될 수밖에 없다. 정부의 별다른 관여가 없이 단순한 수요공급의 법칙에 의존한다면 대부분의 노동자가 일하게 되는 간병/보육 등의 사회서비스 영역의 과도한 노동공급으로 노동력의 가치(임금)는 크게 낮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5. 위험한 제국의 논리
유럽통합의 기운이 팽배했을 때 많은 이들이 이제는 국민국가를 넘어선 새로운 협력의 시대가 도래 했다고 믿었다. 국제정치학적 어법으로 말한다면 현실주의(realism)에서 점차 자유주의(liberalism)의 세계로, 즉 협력과 통합을 가능케 하는 시대로 전환된다는 것이다. 한편 베를린장벽의 붕괴(1989년), 걸프전쟁과 소련의 붕괴(1991년) 등의 냉전의 해체는 전 세계적으로도, 그리고 동아시아에서도 미국중심의 ‘단극화’된 국제질서가 실현되는 듯 했다. 미국식 자유주의 모델이 세계의 표준모델로 되며, 이에 대한 반발, 대안으로서의 실험은 이미 ‘종말’된 것처럼 보였다. 후쿠야마적 의미에서의 ‘역사의 종말’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후 역사는 전혀 다르게 흘러갔다. 영국의 브랙시트(Brexit), 거대독일에 대한 우려 등의 대변하듯 유럽연합은 근저부터 흔들리고 있다. 과거의 미소간 냉전도 미중간 신냉전으로 전환되어갔다. 한 때 ‘중국굴기(Rising China)’를 폄하하며 향후 수십 년간 중국이 군사, 정치, 경제 어느 면에서도 미국을 추월할 가승성은 없다고 주장했던 많은 논자들도 점차 논조를 바꾸고 있다. 미중의 대립만이 아니라 그것이 진영논리로 확대되는 것도 커다란 문제다. 동아시아에서는 미국, 일본, 한국의 동맹과 중국, 러시아의 동맹이라는 양 진영으로 분화되고 대립의 경계선에 선 한국은 사드(THAAD) 배치과정에서의 혼란과 같은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말이 좋아 균세(均勢)와 자강(自强)의 방략을 논의하나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제국의 본질이 인권과 평화와 같은 보편적인 가치라면 굳이 우리가 비판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실은 “인권과 평화”는 외피에 불과할 경우가 많다. 제국은 대부분 자국자본의 배타적 이익을 위해 움직인다. 미국의 저명한 국제정치학자 찰머스존슨은 2006년 “제국의 슬픔”이라는 저서에서 미국이 앞으로 ①대미테러의 증대로 항구적이며 파괴적인 전쟁상태를 계속할 것이며, ②’펜타곤화된 대통령‘(Pentagonized presidency)에 의해 독제가 이루어지고, ③대대적인 정보조작에 의해 진실이 외곡 되며, ④군비지출에 의한 재정파탄이라는 ’유감스런 결과‘(sorrows)에 직면할 것이라고 단언한 바 있었다. 그는 “미의회가 군산복합체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진정한 국민들의 통제력 하에 놓이는 것”이 바로 공화국을 재생시키는 유일한 길이라고 강조하나, 그 미래전망에 대해서는 상당히 비관적이었다. 제국의 지배자는 제국의 국민이 아니라 군산복합체와 같은 제국의 특권층이었던 것이다.
제국이 자본의 이익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특정한 ‘인종’의 이익을 위해 움직일 때 가장 위험하기도 하다. 미국 우파의 최대 이론가였던 사무엘헌팅턴은 죽기 전 마지막 남긴 저서, “Who are we?”에서 영어, 기독교, 종교적 헌신, 영국식 법치, 개인주의 가치관, 그리고 근로윤리 등을 기반으로 하는 앵글로-개신교 문화를 중심으로 미국을 재창조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스페인어가 아니라 영어, 이슬람교가 아니라 개신교, 공동체문화가 아니라 개인주의 가치관인 것이다. 서구 우파들의 반이민정책의 기반에 있는 뿌리 깊은 문화우월주의의 결과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은 한국을 둘러싼 국제정세에도 다를 바 없다. 중국에 있어서 동북공정, 유교중시 등의 일련의 움직임은 중화제국의 힘을 새롭게 결집하려는 노력이다. 일본의 평화헌법 개정, 자위대 증강 등의 움직임은 국가, 민족의 힘을 결집시키려는 의도다. 동아시아의 기본질서는 그렇게도 강조되고 있는 지역공동체를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국민적 내부역량을 극대화시켜 가며, 지역적 주도권을 잡아가려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6. 역사는 진보하는가?
한 때 전 세계 젊은이들의 심장을 자극했던 마르크스 이론에 있어서 자본주의란 ‘당연히’ 멸망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멸망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대답은 2가지였다. 하나는 일국 자본주의의 모순을 해외로 이전시킨다는 제국주의의 논리다. 또 다른 하나는 ‘국가’의 경제적 통제력이 자본주의의 붕괴를 막는다는 소위 ‘국가독점자본주의’의 논리였다. 이들은 모두 ‘당분간’ 자본주의의 모순이 완화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 ‘당분간’이 100년 이상 지속된다면, 또한 모든 사회주의 혁명이 다시 자본주의로 회귀하고 있다면 마르크스의 예언은 틀린 것으로 봐야한다. 그러한 면에서 사회주의란 필연적으로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윤리적 요청이라는 것, 따라서 그 실현에 힘을 집중해야 함을 주장했던 유럽사민주의적 사고방식(Bernstein)은 차라리 솔직했다.
필자 또한 역사는 스스로 진보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본가의 탐욕은 여전히 그 끝을 모르며, 지식인들의 곡학아세는 하늘을 찌른다. 제국은 일부 특권층에 의해 좌지우지된다. 언젠가 좋아진다는 막연한 믿음, 그거야 말로 가장 순해빠진 것이며 가장 무책임한 일이다. 자본이 아니라 노동이 중심이 되는 것, 기술이 아니라 일상생활의 행복이 중심이 되는 것, 제국이 아니라 모두의 평화가 존중되는 것, 그것은 저절로 해결되지 않는다.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노력만큼, 흘린 땀과 외친 함성만큼, 높이들은 촛불만큼 딱 그 만큼만 바뀌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