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 칼럼]기울어진 운동장을 바꾸어야 합니다.

최혁진(아이쿱생협 CSO)

 

사회적기업, 소셜벤처, 협동조합 창업에 도전하는 청년들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제 살길 찾기도 쉽지 않은 시절에 이웃을 위한, 마을을 위한 또 지구를 위한 비즈니스를 하겠다는 훌륭한 청년들이었습니다. 당시 관련 공공기관에서 일하던 저는 ‘여러분들이 일하면서 겪는 어려움은 무엇인지’ 질문을 해보았습니다. 정부 정책의 문제점 등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왔는데 청년들이 꼽은 가장 큰 어려움과 걸림돌은 놀랍게도 ‘엄마’였습니다.
협동조합, 사회적기업과 같은 사회적경제 조직들의 성장과 확산은 UN이 목표로 하는 지속가능한 미래를 준비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과제입니다. 인간의 경제활동이 ‘사람과 공동체의 삶’을 우선 고려하는 방식으로 바뀌어 나갈 때 그 기초 위에서 지속가능한 미래는 보장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작 이러한 활동에 도전하는 청년들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엄마’라는 암초를 만나고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 함께 참여했던 분들이 저마다 소위 대한민국 엄마들에 대해서 이런저런 말씀들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학원으로 아이들을 돌리는 엄마들의 모습, 엄마들의 욕심으로 기러기 아빠들이 많아졌고 급기야 다 큰 아이들의 직업 선택권까지 좌지우지 하고 있다는 이야기들이 오고 갔습니다.
문득 어린 시절 할머니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집안이 거듭되는 풍파로 계속해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자 할머니는 제게 분한 마음에 종종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너는 네 애비처럼 남 좋은 일만 하지 말고 살거라.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쓰면 된다’. 무작정 착하게 살면 너만 손해니 그러지 말라는 말씀인데요.
제 할머니의 마음과 요즘 엄마들의 마음이 별반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자기 자식이 착한 사람이 되길 원치 않는 부모가 몇 되겠습니까. 하지만 자식을 사랑하는 엄마들은 특유의 직관력으로 이미 우리 사회의 불공정성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기에 기꺼이 걸림돌의 역할을 맡게 된 것입니다. 불공정한 사회 즉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착하게 산다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이웃과 공동체를 위해 비즈니스를 한다는 일은 또 얼마나 허무맹랑한 일인지 엄마들은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인간은 선하기도 하고 또 악한 면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선한 사람들이 존중받는 사회 속에선 사람들은 보다 선한 삶을 선택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환경에 처하면 극소수의 사람들 소위 종교적 수행자와 같은 심성을 가진 분들만 선한 선택을 하게 되겠지요. 그러니 엄마들 개개인을 탓할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자녀들이 이러한 선택을 할 때 다소 불안하긴 하지만 그래도 대견하게 바라보고 지지할 수 있는 그런 조건과 환경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최근 아이쿱 생협은 다른 생협조직들과 협력하여 정부의 생협 주무부처를 공정거래위원회에서 기획재정부로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생협은 건강한 소비자들과 착한 생산자들이 협력하여 만든 협동조합 기업입니다. 하지만 그동안 정부는 생협의 소중한 가치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주무부처인 공정위에는 전담부서도 없고 심지어 전담인력도 없습니다. 당연히 관련 정책과 예산도 책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생협법에 명시된 공제사업 시행령도 6년이란 세월이 지나도록 마련되지 않고 있습니다.
정부의 영리기업들을 위한 지원체계와는 비교할 수 없는 환경입니다. 영리기업을 지원하기 위해서 중소기업청, 산업부 등의 정부 부처가 있고 기업의 설립부터 성장과 소멸의 시기까지 다양한 정부 정책과 예산들이 연계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일반 영리기업들이 내부 경영관리에 문제가 생기면 정부 지원으로 전문적인 컨설팅을 받을 수 있지만 생협은 스스로 해결해야 합니다. 혁신적인 제품을 개발하는 과정에서도 일반 기업들은 18조원이 넘는 정부의 R&D 예산과 다양한 연구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지만 생협은 소비자들의 주머니 돈으로 모든 문제를 개선해야 합니다. 이러한 불공정한 조건 속에서도 생협들이 현재와 같은 수준으로 성장해왔다는 것은 거의 기적과 같은 일입니다.
다시 청년들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과 같은 기울어진 운동장 위에선 저 역시도 협동조합, 사회적기업, 사회혁신에 도전하는 청년들의 앞날이 매우 걱정됩니다. 저는 협동조합운동의 선배로서 ‘우리도 정부지원 등에 의존하지 않고 여기까지 왔으니 너희들도 노려해봐’라는 무책임한 말은 결코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보단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보다 공정한 조건 속에서 청년들이 도전할 수 있는 제도 환경과 사회문화를 만들기 위해 다함께 노력하자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들이 성공할 수 있는 환경이 그리고 엄마들이 이런 자식을 기꺼이 자랑스러워 할 수 있는 그런 사회적 조건을 만들어 가는 일이 바로 지속가능한 미래를 준비하는 일입니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꾸는 적극적인 활동 즉 ‘사회적경제기본법의 제정, 협동조합 관계법령의 개선 그리고 정부가 사회적이고 공익적인 비즈니스에 대해서 공정한 지원체계를 구축하도록 하는 일’에 조합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지지를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