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곳으로부터의 연대와 혁신(6): 사회적경제정책의 기본방향(2)

 

 

 

김종걸 한양대 글로벌사회적경제학과 교수

1. 사회적경제정책의 목적

지난 번 원고(사회적경제정책의 기본방향 ①)에서 필자는 성공하는 정책의 조건에 대해서 정리한 바 있었다. 정책의 목표, 대상, 수단을 명확히 규정할 것, 이에 맞게 부처별 사업을 교통정리 할 것, 민간과의 파트너십을 구축하며 이 모든 것을 알기 쉬운 메시지로 국민에게 전달할 것 등을 강조했다. 그리나 안타깝게도 한국의 경우 이 모든 것에 상당히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사회적경제영역이 정부지원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당연하다. 시장에서 해결 못하는 가난, 실업, 고독, 배제, 환경파괴 등의 각종 문제를 풀어야하는 책임은 정부에게도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기업, 마을기업, 협동조합 등에 대한 정부지원이 그 정당성을 가지는 이유다. 그러나 오해하면 곤란하다. 정부는 시민의 자발적 참여를 도와주는 역할에 한정되어야 한다. 사회적경제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자발적인 시민의 참여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스스로 살고자 하는 의욕(self-help)을 잘 조직하는 일이다. 과도한 정부의 지원 및 개입은 사람들의 자조능력을 상실시킨다. 국제협동조합연맹의 협동조합원칙 중 ‘자치와 자립’이 강조되는 것도 사실은 오래된 논쟁의 결과였다. 한때 협동조합에 대한 직접지원의 방식으로 후진국을 개발하려던 국제연합(UN)의 노력은 거의 실패한 것으로 평가되며, 지금은 협동조합에 대한 직접지원보다는 다른 기업에 비해서 역차별을 없애는 것, 그리고 교육 및 경영지원과 같은 간접지원체계를 구축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사실 사회적경제 성장의 가장 큰 자양분은 ‘정부’가 아니라 ‘사회’여야 한다. 기업, 종교, 학교, 일반시민의 기부와 자원봉사, 윤리적 소비와 투자는 사회적경제를 윤택하게 만드는 중요한 저수지 역할을 한다. 따라서 사회적경제가 잘 작동하기 위한 과제는 너무나 분명하다. 하나는 다양한 정부의 관련자원을 통합하고 관리하여 효율화시키는 것이다. 둘은 사회적경제 성장의 배후지로서 협력과 호혜의 ‘사회’를 잘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제부터는 정부정책 조율을 위한 법적근거로서 ‘사회적경제기본법’, 그리고 시민사회를 잘 만들어가는데 있어서 필수적인 투명성 제고를 위한 ‘시민공익위원회법’ 구상을 설명하기로 한다.

2. 사회적경제기본법

19대 국회에서 유승민(새누리당), 신계륜(새정치민주연합), 박원석(정의당) 등 총 142명의 국회의원들이 발의한 사회적경제기본법은 비록 임기만료에 의해 자동폐기 되었으나 상당히 의미 있는 시도였다. 정책조율의 최고단위로서 대통령직속 위원회를 만들며, 간사부처를 기획재정부로 하는 것, 마찬가지로 광역단위의 사회적경제위원회를 만들게 한 것, 실행기관으로서 중앙에 사회적경제원을 기존의 사회적기업진흥원을 확대·개편하는 방식으로 신설하며, 지역단위의 지원을 담당할 통합지원센터를 지정하게 하는 것 등은 그 동안 분산되어 있던 정책을 수미일관하게 논리화시키는 노력이었다. 사회적경제 발전을 위한 국가의 책무를 분명히 규정했다는 점도 법제정의 중요한 목적이었다. 국가차원에서 5년(혹은 4년) 단위의 사회적경제 발전을 위한 기본계획을 세우고 이에 입각해 각 부처는 매년 시행계획을 만드는 것, 지역단위에서도 국가의 계획과 조율되는 방식으로 지역계획을 만드는 것, 사회적경제 발전기금, 사회적경제조직에 대한 공공조달, 조세감면 및 재정지원, 민간자원 연계, 교육훈련지원, 사회적경제 조직간의 협력, 개별법 체계 하에서는 불가능했던 이종간 연합회 구성 등 사회적경제 발전을 위한 거의 모든 수단들을 종합시켰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컸다.
그러나 각론으로 들어가면 여야간에는 약간의 차이가 존재했다. 첫째 사회적경제의 개념은 거의 모두 일치하고 있으나, 그 범위를 어디까지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이견이 존재했다. 여야 모두 협동조합, 사회적기업, 마을기업, 자활기업 등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공통적이었다. 그러나 여당안은 여기에 중앙자활센터, 지역자활센터, 사회복지법인, 협동조합의 금융부문, 장애인사업장 등 사회적경제를 아주 넓게 잡은 특징이 있었다. 반대로 야당안은 이상의 조직들은 사회적경제의 범위에서 제외했다. 이것은 앞으로도 새로운 사회적경제기본법을 만드는데 있어서 상당히 논란이 될 소지가 있다. 필자는 사회적경제기본법의 애초의 목적에서 비추어서 사회적경제의 범위를 정해야 한다고 본다. 사회적경제기본법은 각각의 조직이 가지는 고유의 역할을 중시하면서도 전체의 발전과 상호협력을 규정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고 본다. 자활사업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사회적기업은 사회적기업육성법, 협동조합은 8개 개별협동조합법 및 협동조합기본법에 의해 규율되며 지원체계도 정비되어 있다. 따라서 개별법 체계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지금 요구되는 것은 각 제도간의 조율이 필요하다는 점이며 그 조율하는 법적근거를 사회적경제기본법으로 하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농·수·축산협, 사회복지법인, 장애인시설까지 포함해 굳이 그 포괄대상을 좁게 잡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둘째는 정책 거버넌스와 관련된 것이다. 대통령직속으로 사회적경제위원회를 신설하는 것은 아주 잘한 일이었다. 문제는 대통령직속 위원회의 역할이 어디까지인가에 대한 논점이다. 여당안은 전체적으로 대통령직속위원회의 권한을 정책을 조율하는 ‘단위’ 정도로 만들었다. 이에 비해 야당 안은 사회적경제위원회의 권한의 범위, 내용 모두 상당히 넓으며 구체적이었다. 18개의 사항에 대한 심의 및 조정권한을 부여하고 있으며 그 내용도 “사회적경제발전을 위한 국가전략”부터 타법과의 연계(국가균형발전법), 개별부처의 인증 및 지정제도의 정비통합, 사회적경제원의 점검·평가·개선사항까지 다 망라하고 있었다(15조2항). 당연히 상임위원, 직할사무국, 전문위원, 실무위원회 등 조직이 커지게 된다(16-17조). 부처 간 정책조율을 위한 중앙의 강력한 통제의 필요성은 인정된다. 따라서 새롭게 법안을 만들어간다면 대통령직속위원회의 권한에 대해서 19대 국회에서의 야당 안이 더욱 현실적일 수 있다.
다음은 소위 간사부처를 어디로 할 것인가에 대한 논점이다. 대부분 법안에서는 기획재정부로 하고 있다. 필자는 앞으로 사회적경제정책의 담당주체를 선정하는데 있어서 4가지의 원칙에서 따져봐야 한다고 본다. 첫째는 담당주체의 힘이다. 둘째는 조직으로서의 지속성이다. 셋째는 조직의 업무적합성이다. 넷째는 새로운 업무수행에 대한 열정이다. 사회적경제정책은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의 중간영역이다. 따라서 양쪽의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담당주체의 힘, 조직으로서의 지속성으로서는 기획재정부는 적합하다. 그러나 업무적합성, 업무수행의 열정 차원에서 보았을 때 과연 적합한가는 의문이다. 만약에 기획재정부가 담당주체가 된다면, 기획재정부는 사회적경제정책이 단순한 경제정책이 아니라 사회정책의 일환이라는 인식을 분명히 가져야 할 것이다. 중장기 경제정책방향의 설정, 조세 및 예산수립 등에서 보여주던 매크로의 사고방식만 가지고는 이 정책의 담당주체로 부적합할 것이다. 골목상권, 지역경제, 낙후된 농어촌 등을 세심하고 상세하게 점검하며 서민경제 곳곳을 자세히 살펴보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으로 본다.

3. 시민공익위원회법

사회적경제 발전의 또 다른 자양분은 바로 시민사회에서 나온다. 다양한 자원봉사와 일상적 기부행위가 사회적경제를 위한 윤리적 소비와 투자를 촉진하고 호혜협력의 사회를 만들어가기 때문이다. 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시민조직의 투명성 확보다. 시민조직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법적근거가 필요하며, 그러한 면에서 시민단체에 대한 규제기관으로서 ‘(가칭)시민공익위원회’의 설립은 상당히 시급한 과제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현재의 시민사회단체 회계장부는 과연 믿을 만한가. 정부의 비영리 단체 및 자원봉사 활성화 지원금은 투명하게 운영되는가. 아쉽게도 이 모든 것을 판단할 정보는 거의 없다. 한국의 시민사회단체는 각 부처 혹은 지방자치단체에 의해서 규제되고 있으나 일반시민이 그 활동내역을 판단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시민사회는 어떻게 규율되어야 하는가. 생각되어질 수 있는 것은 법원에서 시민사회단체의 비영리 여부만을 심사하는 미국식 모델보다는, 정부부처나 지방자치단체들로부터 독립된 하나의 기관이 시민사회단체의 비영리성과 공익성을 심사하는 영국식 모델을 고려해 볼만 한다. 영국의 자선위원회(Charity Commission)는 공익성을 가진 시민조직의 활동에 대한 보고를 받고 이를 인터넷에 공개하며, 정기적으로 철저한 조사도 실시한다. 또한 시민과의 대화를 1년에도 몇 차례씩 개최함으로써 시민사회단체의 책무성과 투명성을 높이며 일반 시민들과의 소통을 촉진하고 있다.
‘(가칭)시민공익위원회’를 구성한다면 일단은 국회소속기관으로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 행정부보다는 다양한 이해관계를 반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위원들은(시민사회단체 인사와 전문가들 모두) 여당과 야당이 절반씩 추천하는 것이 적합하다. 이곳에서는 공익법인법에 의한 모든 공익법인, 비영리민간단체지원법에 의한 비영리민간단체, 협동조합기본법에 의한 사회적 협동조합들의 모든 활동들이 홈페이지에 공개되어야 한다. 물론 정보공개를 법적인 강제를 통해 하게 하는 것은 시민사회의 자율성과 단체 운영의 유연성을 해칠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시민사회단체의 정보 공개를 독려하기 위한 방안으로도 경제적 유인을 제공하거나 ‘정보 공개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 등이 있을 수 있다. ‘정보공개에 대한 정보’는 각 시민사회단체가 어떠한 정보를 얼마나 구체적으로, 누구를 대상으로 공개하는지에 대하여 시민공익위원회 홈페이지의 정보공개 게시판에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공개하면, 시민들은 각 시민사회단체의 투명성에 대하여 스스로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정부가 주도하거나 지원하는 사업에 참여하는 시민단체를 선정할 때에 정보공개수준을 고려사항에 넣게 할 수 있다. 정리해서 말한다면 시민공익위원회는 서류작업을 하는 관공서이기보다 정보와 말이 오가는 아고라로, 그리고 제도적 권력보다는 민주적인 권위를 가진 위원회로서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20대 국회에서 사회적경제기본법과 함께 시급히 입법절차를 밟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