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곳으로부터의 연대와 혁신(7): 두 눈을 똑바로 뜨지 않으면 당한다
김종걸 한양대 글로벌사회적경제학과 교수
이번에도 내 생각은 틀렸다. 온 국민을 자괴감에 빠지게 한 지금의 최순실 사태에서도 그랬다. 나는 상대방이 선한 의도 속에 있다고 가정한다. 그들의 의견이 나와 다르더라도 우선은 그렇게 본다. 갈등을 회피하는 성격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엉망인 사람들이 참 많다. 탐욕으로 가득차고 오만으로 응어리진 사람 말이다. 이들은 가진 돈과 권력, 그리고 빌붙은 지식인의 도움으로 세상을 어지럽히고 국민을 현혹시킨다. 일반인들과의 공감능력은 결여한 채, 그들만의 리그 속에서 혼맥, 학맥, 인맥의 동심원을 통해 겹겹이 사회적 지위를 안정화시킨다.
그래도 최소한 권력을 가진 자가 이렇게까지 무식할리는 없다고 생각했었다. 불통과 독선도 마키아벨리식 통치술의 일환이라고 생각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최고의 군주란 “우호세력을 만들고, 무력이나 속임수로 정복하고, 백성으로부터 사랑과 함께 두려움을 품게 하며, 해를 끼칠 가능성이 있는 정적은 모두 제거해야” 한다고 말한다(7장). 악랄할지 모르나, 15세기 말 교황과 왕과 귀족과 시민의 권력이 뒤엉켜진 나라, 혼돈의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바라본 최선의 권력 유지 방식이었다. 그리고 그가 최고의 군주라고 칭했던 체사레 보르자(1475~1507)의 삶의 방식이기도 했다. 독선도 통치방식 중 하나였던 것이다. 비록 그것이 나와 생각이 다를지 모르나 인류사회를 유지해 왔던 중요한 통치술 중 하나였다는 점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은 박근혜 대통령의 통치에 독선조차도 들어갈 여지가 없다는 것을 알려준다. 판단능력, 공감능력, 표현능력 모두 부족한 그냥 무지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전여옥 전의원이 평가했던 것, “정치적 식견, 인문학적 콘텐츠가 부족하고 신문기사를 깊이 이해 못하며 이제 말 배우는 어린 아이 수준에 불과하다”고 한 것은 사실이었던 것 같다. 대통령은 국정을 이끌어 나갈 능력이 애초부터 없었던 것이다. 이제야 이해가 갔다. 수많은 사건과 이에 대한 허접한 대응을 말이다. 국정원 대선개입, 세월호 침몰, 메르스 사태, 국방비리 등 우리를 절망스럽게 했던 사건사고는 너무나 많았다. 그 대응도 너무나 허접했다. 국정원 대선개입의 수사과정에서 갑자기 불거진 검찰총장의 혼외자 문제, 세월호 유족에게 향한 비판의 칼날 등 가해자와 피해자가 혼동되고, 진실이 은폐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그 최종적인 결정판이 지금의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인 것이다.
역시 선한 의도를 가정하는 것은 나이브한 일이다. 권력을 가진 자들의 행동을 볼 때는 특히 그렇다. 두 눈을 똑바로 뜨고 감시하고 요구하지 않으면 이번같이 황당하게 당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많이 토론하고 같이 행동해야 한다. 그래야 권력과 돈, 그리고 학식이라는 힘을 가진 자들이 그 힘을 남용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힘 있는 자들의 선의에 의해 세상이 언젠가 좋아진다는 막연한 믿음, 그거야 말로 가장 순해빠진 것이다. 생각해보면 프란체스코 교황께서도 같은 표현을 쓴 적이 있다. 취임 이후 첫 공식문서였던 ‘복음의 기쁨’(2013) 제54항에서, 낙수효과를 믿는 것은 지금의 주류경제를 장악하고 있는 사람들의 ‘선의’를 믿는 아주 ‘순해빠진’(naive) 행위에 불과하다고 말씀하셨다.
나 스스로도 이제 그만 순진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은 무거우나 현실은 그렇다. 아이쿱생협 조합원들의 모임도 권력의 속성과 행동들을 잘 이해하고 두 눈을 부릅떠 견제해 갈 수 있는 좋은 모임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