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과나무의 단상 – 경비원과 예술이 만날 때
이정주, (재)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 이사장
“딩동”, “누구세요?” “경비원입니다”
문을 열자 우리 아파트 경비 아저씨가 우편물을 전해 주었다. 전 날 택배 온 것을 맡았다가 가져다 주신 것이다. 죄송한 마음에 “어제 갔을 때 안계셔서 그냥 들어 왔네요. 죄송해요.”
그런데 아저씨는 갑자기 환히 웃으시며 말씀하신다.
“오늘은 기타치러 안가세요?” “네?”
“아, 네…ㅎ”
나는 순간, ‘아저씨가 평소에 내가 기타 가방을 들고 뛰어가는 모습을 보고 계셨구나.’ ‘정말 나이 들어 뒤늦게 이 무슨 기타 바람인가’하는 생각에 쑥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아저씨는
“나중에 기타로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꼭 한 번 쳐 주세요.”
하고는 웃으시며 계단을 내려가신다.
“네? 아, 네..ㅎ”
생협 동아리에서 통기타를 배우기 시작한지 채 한 달도 안 되었다. 왕초보자 수준인 내가 갑자기 대단한 연주가나 된 듯 여겨져 당황스러운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다른 이유로 나는 한동안 아저씨와의 대화가 잊혀지질 않았다. 뭔가 특별했다. 평소에 경비 아저씨와 나는 지나칠 때 인사정도를 주고 받으며, 택배를 받거나, 쓰레기를 버리거나, 명절 때 간단한 먹을거리를 나누는 정도의 관계였지, 이런 사적인 이야기를 해 본 적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얼마 전 멋진 경비원을 또 한 분 알게 되었다. 어버이날 온 가족이 모여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어머님이 무슨 생각이 나셨는지 ,냉장고에 있던 달걀 한 개를 들고 오셨다. 그 달걀은 비닐로 잘 싸여서 냉동되어 있었다.
“너희들 오면 보여 주려고 보관한 건데, 이거 봐라. 경비아저씨가 달걀에 그린 그림이다.”
“와, 정말요? 만화 캐릭터처럼 잘 그리셨네. 그림 솜씨가 있으시다.?”
우리들이 눈의 휘둥그레 달걀을 돌아가면서 보고 있는데, 어머님께서 덧붙이신다.
“이 아저씨는 아파트 주민들이 내 놓은 물건들을 잘 분리해서, 작품들을 만들거나 수리하거나 전시도 한다”는 것이었다. 말만 들어도 참 독특한 취미를 가지고 계신 분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아저씨가 궁금해졌다.
‘어떤 인생을 살아오신 분일까?’
경비아저씨는 오며 가며 하루에 한 번 이상은 만나는 분들이다. 어쩌면, 가장 가까운 이웃이 아닌가 싶다. 그동안 우리 아파트에는 많은 경비아저씨들이 근무를 하다 떠나 가셨다. 한동안 낯익고 반갑다 싶으면 어느 날 인사도 없이 떠나고, 다음 날엔 다시 새로운 경비아저씨가 앉아 있다. 한 때 얼굴이 익숙한 아저씨의 경우는 명절 때 간단한 선물을 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그 조차 하기가 애매할 정도로 교체가 잦다. 최근 들어 더 이동이 잦은 것 같다. 그나마 올 해부터 시작하기로 되어 있었던 최저임금제 도입은 인건비 상승이라는 이유로 2015년으로 유예하였다. 대신, 인원 감축을 하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만든 최저임금제도의 결과가 결국 일자리 퇴출과 중노동이라면 이것은 모순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집값이 한창 높이 뒬 때도 임금인상은 제 자리에 있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아파트 주민들의 책임이 없다고 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주민들도 언제 바뀔지 모르는 경비 아저씨에게 마음을 주기란 점점 쉽지가 않다. 최근엔 아예 무인 경비 시스템을 갖춘 곳도 많아졌으니, 그럴 필요조차 느끼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하지만, 경비아저씨와의 대화가 있고 난 뒤, 아저씨와 나는 관계에도 변화가 생겼다. 특별한 둘 만의 이야기거리가 생긴 것이다.
“아저씨, 기타를 치실 줄 아시나요?”
“아뇨, 제가 클래식을 좀 좋아합니다… 슈베르트 교향곡도..좋죠.”
“제가 가타를 시작한지 얼마 안된데다. 일주일에 딱 한 번만 가거든요… 연주하려면 한참 기다리셔야 되는데요..?”
“아, 네. 그래도 기타 배우시길 잘 했어요. 미루면 평생 배우기 힘들어요.“
“네, 맞아요. 그래서 일단 시작했어요…ㅎ”
이번에는 내가 기타로 곡을 제대로 연주할 수 있을 때까지 경비 아저씨가 계속 있어주면 좋겠다. 음악을 아는 경비아저씨, 정말 멋있지 않나? 그림을 그리고 물건을 뚝 딱 만드는 재주를 보는 즐거움도 크지 않은가? 나는 멋진 경비아저씨, 아니, 멋진 사람들을 만나서 참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