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협피플’이 되어 보시렵니까?

이예나(HBM사회적협동조합 팀코치)

지난 해 이사해 새로이 자리를 잡은 동네에는 두 생협의 매장이 서로 가까이에 있다. 이사한 집에서 각 매장까지의 거리도 5분밖에 안 걸리다보니, 가장 가까운 장보기 장소가 생협이 되었다. 이미 여러 생협의 조합원이었고 꾸준히 생협을 이용해 온 나로서는 이 곳이 그 어떤 역세권, 숲세권, 슬세권만큼이나 매력적인 위치이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이 동네를 ‘협세권’이라고 부르며 열심히 생협을 이용하고 있다.

나는 부모님이 일찍 생협을 이용하셔서 어릴 때부터 생협 물품들을 만나왔던 ‘생협키즈’는 아니지만, 결혼 이전부터 생협을 이용해왔고 결혼 후 아이가 생기기 전에도 되도록 생협 물품들을 이용하고자 애썼다. 그런데 아이를 낳아 기르다보니, 생협의 편리함과 소중함은 이전의 생협 이용 경험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유식을 만들어 먹일 즈음부터 생협을 더 자주 이용하게 되었는데, 아이에게 안전하고 좋은 먹거리를 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을 아는 것처럼 이유식 재료와 아이용 간식들이 잘 준비되어 있었다. 아이가 없을 때에는 미처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물품들이다. 덕분에 다들 인터넷을 이용하거나 일반 마트에서 성분표를 확인할 때 나는 곧장 생협으로 달려갈 수 있었다. 생협에서의 장보기는 시간도 많이 걸리지 않는다. 필요한 물품들의 종류와 수량이 너무 모자라지도, 너무 과하지도 않게 구비되어 있다. 물론 원하는 모든 것을 다 구하기는 어렵지만, 두 개의 생협을 교차이용하다보니 웬만한 것들은 거의 구입할 수 있다.

아이와 함께 생협을 이용하는 또 다른 장점은 언제나 아이를 반갑게 맞아주신다는 것이다. 육아휴직을 하며 혼자 아이를 돌볼 때, 생협은 혼자 아이를 데리고 편하게 들를 수 있는 유일한 ‘쇼핑장소’였다. 매장에 가면 언제든 아이에게 관심을 가져주시고 아이 이야기를 물어봐주시는 직원분들이 계셨다. 혼자 육아하느라 지치고 가끔 우울한 마음이 들 때에는 생협에서 만나는 직원분들과의 짧은 대화와 환대가 큰 힘이 되곤 했다. 장을 보느라 유아차를 끌기 어려울 때에는 계산대 근처에 유아차를 잠깐 세워두면 직원분들이 눈을 맞추며 말을 걸어주셔서 안심하고 재빨리 장보기를 마칠 수 있었다. 잠깐이지만 어찌나 감사한지, 어떤 날은 딱히 구매할 게 없는데도 괜히 마실가듯 아이와 함께 생협 매장으로 발길을 향했다. 이제는 아이가 조금 커서 매장을 걸어다니는데, 문득 ‘아, 이렇게 생협과 함께 아이가 자라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위 ‘생협키즈’가 되는 것이다!

생협 조합원들이 생협에 가입하게 되는 주된 동기가 ‘아이와 가족을 위한 안전한 먹거리’라는 것은 대학원에서 생협을 공부할 때 알게 되었지만, 막상 내가 그 입장이 되어보니 생협을 이용하는 이유가 단순히 ‘안전한 먹거리’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얼마 전 아주 오랫동안 생협에서 활동하신 분이 ‘내가 처음 아이를 낳아 기를 때 생협에서 많은 도움을 받아서, 생협에 은혜를 갚는 마음으로 활동을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나도 조금은 알 것 같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경력단절 때문에 고민하던 ’생협키즈‘인 동갑내기 친구도 지역생협의 마을모임에 나가기 시작하더니 얼마 전부터 이사로 활동을 시작했다. 활동하며 생긴 이런저런 에피소드를 들려주는데 그 이야기가 참 반가웠다. 실제로 다수의 경력단절 여성들이 생협을 통해 활력을 얻고 사회생활을 다시 시작하고 새로운 일을 찾기도 한다. 엄마들의 삶에, 생협은 단순한 ’친환경먹거리 매장‘ 그 이상이다. 동네에 가까이 자리잡은 생협은 어린 아이와 마음 편히 갈 수 있는 쇼핑몰이자, 아이의 성장을 함께 지켜봐주는 커뮤니티이자, 다시 사회로 나아갈 수 있게 힘을 실어주는 동료집단이다. 눈에 보이는 매장과 물품들 이면에 존재하는, 눈에 크게 띄지는 않지만 여러 조합원들의 삶 속에 조금씩 스며드는 생협의 가치를 사람들이 더 많이 알게 되면 좋겠다. ’엄마‘가 되어야만 알 수 있는 게 아니라 아이가 없는 사람에게도, 1인 가구에도, 청소년에게도, 노인에게도, 생협이 좋은 쇼핑몰이자 커뮤니티였으면 좋겠다. 그래서 ’생협키즈‘도 더 많이 생기고 ’생협피플‘도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일상적인 소비에서 시작한 조용하지만 강력한 힘이 사람들의 삶 속으로 더 널리 퍼져가서, 나의 아이도 ’생협피플‘들 속에서 즐겁고 건강하게 자라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