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환율 90%의 사회투자기금을 기다리며
주세운(동작신협)
최근 몇 달째 대학원 수업을 청강 중이다. 성공회대에서 진행하는 ‘도시재생과 사회연대금융’이라는 과정이다. 강사는 캐나다 사회적금융 전문가인 크리스(Chris Dobrzanski) 선생님이다. 기존에 캐나다의 사회적금융 시스템에 대해 여러 번 강연을 들은바 있지만, 총16주차의 수업으로 듣는 것은 전연 다른 깊이이다.
아직 수업을 완강하지는 않았지만, 먼저 인상적인 부분을 공유하자면 캐나다의 사회적금융 시스템은 사회적금융 생태계(Ecosystem)라 부를 만큼 여러 금융주체의 역할분담이 명확하다는 점이다. 수업에서는 사회적금융의 주체를 크게 정부와 지역금융기관, 시민사회조직의 3가지로 구분한다. 정부는 정치적인 권한을 기반으로 지원금에서부터 대출, 보증 등을 직접 제공하거나, 세제혜택 등을 통해 시민사회의 기금조성을 간접적으로 지원한다. 지역금융기관은 신협이나 새마을금고 등으로 예금판매를 통해 규모화 있는 대출재원을 마련한다. 시민사회기금은 규모는 작지만 지역사회가 필요로 하는 수요를 맞춤형으로 유연하게 지원한다. 서로 다른 사회적금융 공급주체가 각자 잘할 수 있는 역할에 방점을 두고 상호협력한다는 느낌이다.
가령 밴쿠버 도심지에 저렴한 사회주택을 공급한다고 하면, 정부는 토지를 제공하고 초기 기획단계의 사업개발비를 무상으로 후원한다. 지역금융기관은 규모 있는 모기지대출을 제공하고, 시민사회기금은 부족한 자본금을 보충하는 후순위대출을 지원한다. 물론 국내에서도 일부 유사한 협력의 사례들이 발생하고는 있지만, 각 주체 사이의 체계적이고 구조적인 협력이라기보다는, 개별기관 담당자들의 선의(?)에 크게 의존하는 것이 현실이다.
개인적으로는 올해 들어 중단 상태인 서울시 사회투자기금의 상황이 많이 떠올랐다. 서울시 사회투자기금은 지난 2013년에 시작된 국내에서는 상징적이고 규모화 있는 첫 사회적금융 사례이다. 서울시가 대규모 기금을 조성하여 사회적금융 수행기관에 무이자로 대여하고, 수행기관은 이를 재원으로 기존 금융권에서는 자금조달이 불가했던 사회적경제기업에 저리로 대출을 공급한다. 시중 은행이 아닌, 비영리기관과 신협 등이 사업을 수행했기에 훨씬 더 낮은 문턱으로 사회적경제기업에 자금지원을 할 수 있었다. 다만 약간의 예대마진을 제외하고는 원금 손실에 대한 고려가 전무하여, 채무 불이행 리스크를 수행기관이 100% 부담해야하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었다. 이에 대해 수행기관들은 구조적인 불합리함을 역설해왔지만, 서울시의 대답은 항상 차후에는 고민해보겠다는 수준이었다.
한데 2022년 올해부터는 서울시의 사업계획이 변경되어 수행기관은 기금 상환을 보증하기 위해 최소 수천만원에서 1억원이 넘는 보험료를 새로 부담해야 한다. 보증보험 가입은 사회적금융의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해외에서도 종종 쓰이는 방법이다. 다만 금번에 서울시에서 강제하는 보증보험은 사회적금융의 리스크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서울시의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목적이라는 것이 차이이다. 지금도 온전히 채무불이행 리스크를 감당하는 것은 수행기관인데, 정작 한 번도 연체한 적이 없는 수행기관들을 대상으로 서울시는 새로운 수수료를 징수하는 것이다.
몇 년전 캐나다 퀘벡의 시민사회기금 담당자들이 직접 서울에 와서 사회적금융 워크샵을 진행한 적이 있었다. 퀘벡의 사회적금융이 재무적 가치만이 아닌 사회적가치를 어떻게 평가해서 대출을 심사하는지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귀한 자리였다. 하지만 그때 내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책 한권 분량의 두꺼운 심사가이드라인이 아니라, 강사가 지나가듯이 언급한 표현이었다. 그는 현재 본인들이 운용하고 있는 시민사회기금은 이러한 사회적가치에 대한 심도 깊은 평가를 통해서 상환율이 90%에 달한다며 자부심을 표했다. 그때 나는 단 1%의 연체도 감당 할 수 없는 상환율 100%의 한국의 사회투자기금 사업에 참여하고 있었기에 그러한 간극이 너무나 크게 다가왔다.
어떻게 하면 90%의 상환율, 즉 10%의 연체율이 용인 가능한 사회적경제기금이 이 땅에도 생길 수 있을까. 그러한 고민을 몇 년이 지난 지금 크리스 선생님의 수업을 청강하면서도 하고 있다. 그래도 공부를 통해 한 가지 단초를 찾았다면, 사회적금융의 각 주체들이 경쟁하지 않고 각자 잘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정부는 직접적인 자금 제공 뿐만 아니라 세제혜택을 통해 시민사회기금 조성을 지원하고, 지역금융기관은 규모화 있는 저리의 대출재원을 제공한다. 시민사회단체는 조성된 기금으로 다소 안전한 일반자금 대출이 아니라 상환율 90%를 목표로 조금은 더 위험한 후순위대출 공급에 집중한다. 나는 오늘도 이러한 김칫국을 마시며 수업 청강을 이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