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재료에 대한 끝없는 탐구생활
이미옥(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 이사)
이 커피, 초콜릿, 바나나, 사과와 한 그릇의 밥, 각종 채소, 나물들과 반찬, 된장찌개의 재료는 어디서 어떻게 오는 것일까? 이건 왜 이렇게 비싸고 이건 또 왜 이렇게 싼 걸까? 매주 나와 내 가족들이 먹을 식재료들을 구매하며 이런 궁금증을 갖고 있는 소비자들이 제법 있을 거라 생각한다. 식품과 농업, 공정무역과 기후위기 등을 주제로 연구와 생활실천을 해나가고 있는 필자 역시 언제나 이와 관련한 주제에 눈과 머리가 집중되고 마음이 쏠린다.
한달 전 여수에서 열린 공정무역 토론회의 어떤 참가자가 했던 말이 계속 머리 속에 남아 있다. 필자는 강의 중에 “이 초콜릿은 대체 어디서 온 어떤 재료로 만들었길래 이렇게 쌀 수가 있지?”라는 소비자로서의 의문을 갖는 것이 공정무역의 시작점이라고 강조를 했었다. 그 참가자는 본인이 왜 그 동안 그런 생각을 안 했는지 그야말로 갑자기 현타가 왔다는 소감을 얘기했다. 농작물 생산자와 소비자의 물리적, 심리적 거리가 멀어지고 그 틈을 다양한 유통채널들이 채워 나가는 동안, 특히 도시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이 식재료에 대해 갖는 감각은 너무나 쉽게 무뎌진다.
코로나19로 달라진 풍경 중 대표적인 것으로 이름도 생소한 외래어 ‘밀키트’를 들 수 있다. 대형마트에 생긴 전문코너를 포함해 동네 곳곳에 들어선 무인 밀키트 가게들 대부분은 프랜차이즈 형태로 제조, 공급되는 곳들이다. 각각의 식재료들이 편리하고 깔끔한 모양으로 다듬고 세척되어 먹기 좋은 한 입 크기로 포장된 밀키트에는 필요한 양념까지 들어있어서 그대로 냄비와 프라이팬으로, 전자레인지와 오븐으로 조리하여 먹을 수 있다. 피곤한 일상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미 반정도 준비된 상태의 음식이 우리를 유혹하는 새로운 세상이다. 그나마 배달 음식보다 조리과정에서 음식하는 사람이 좀 더 개입할 여지가 있기 때문에 분명 밀키트의 미래는 다양한 확장의 모습을 갖출 것이다. 그런데 삐딱한 시선으로 압축 포장되어 있는 각종 채소며 삼겹살, 오징어, 소시지에 송송 썰려있는 대파와 다진 마늘까지 재료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원재료 전체 모습은 사라지고 어딘가 공장에서 한 입 크기 모양대로 인쇄하듯 찍어서 담아낸 게 아닌가 하는 공상이 떠오른다. 어떤 재료들을 어떻게 가공하고 포장했는지 보다 상세하게 설명해주는 일부 제품들의 경우는 조금 다를 수 있겠으나, 어쨌든 이렇게 고도의 편리함을 장착한 음식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어느 날엔가 대파가 어떻게 생겼는지 오징어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너무 나간 걸까?
우리가 매끼니 사람들과 어울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즐거운 대화를 나누는 시간들은 고단한 삶으로 쌓인 스트레스를 풀어주고 건강과 기쁨을 채워주는 소중한 순간들이다. 골고루 가리지 않고 음식을 섭취해야 건강하다는 얘기가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고 있지만, 고도로 가공된 음식들, 육식과 단백질 섭취에 대한 과도한 믿음, 시각과 혀를 자극하기 위해 각종 양념과 첨가물 범벅인 음식 등 가려먹어야 할 것들이 많은 게 우리의 현실이다. 맛있게 먹는 것이 우리 삶의 큰 행복 중 하나이긴 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먹을 지 찾아보고 생각하면서 제대로 된 음식을 가려서 먹는 것은 또 다른 만족을 가져다 준다.
육식 위주의 식문화를 갖고 있던 영국이나 독일 등에서 ‘비거니즘의 생활방식’[1] 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전체 인구의 10~20%까지 증가하고 있으며, 조사에 의하면 국내의 채식 인구도 20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난다. 몇 년 전부터 서양의 채식인들과 유명 셰프들이 한국의 사찰음식에 관심을 가지면서 국내 사찰과 스님들을 찾아 템플스테이와 발우공양[2]을 체험하고 배우며 큰 감명을 얻어 간다고 한다. 2년 전부터 채식 위주의 식단으로 바꾼 이후 100%까지는 아니지만 비건 지향의 삶을 살려고 노력 중인 필자 역시 한국적인 방식의 비건 라이프를 만들기 위해 사찰음식을 배우고 있다. 식물성 고기와 햄버거 패티 등 고기 맛과 풍미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하는 서양식 비건 문화와 달리, 다양한 채소와 나물, 해조류, 곡물, 견과류 등의 풍부한 식물성 재료를 기반으로 한 식문화 역사가 존재하는 우리나라에서 그 전통을 가장 잘 이어가고 있는 것이 바로 불교의 사찰들이다.
서울에서 사찰음식으로 유명한 진관사 주지 계호스님은 ‘자연에서 수확한 제철 재료로 최소한의 양념과 조리를 통해 재료 본연의 맛과 영양을 살리는 절제 味[3]‘에 대해 얘기한다. 사찰 주변에서 스님들이 직접 농사짓는 농작물들을 주재료로 사용하고, 간장, 된장, 고추장과 천연 양념을 만들어 간을 맞추는 한국의 사찰음식은 심플한 조리법이지만 담백하면서도 재료의 다양한 맛이 우러난다. 채소가 풍부하지 않은 겨울철을 위해 제철 재료들을 말리고 저장하고 발효하여 준비해둔다. ‘자연의 흐름과 함께하며 모든 자연의 생명이 나와 하나라는 깨달음을 통해 자연을 배려하면서 먹는 것’[4]이 사찰음식의 기본적인 생각이다. 불가에서 밥을 먹는 일을 식사라고 하지 않고 공양이라고 하는 것은 음식의 재료가 잘 자라도록 만들어 준 자연의 은혜, 땀 흘려 노동한 많은 사람들의 은혜, 그것을 보시한 시주의 은혜 등 모든 것에 감사하고 공경하는 정신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쌀 한 톨, 상추 한 장은 물론 쌀뜨물까지도 함부로 버리지 않는다.[5] 필자가 최근 경험한 월정사 발우공양 담당 스님은 전체 과정을 마무리하며 ‘내가 먹은 음식과 남긴 음식을 구분하여 음식물 쓰레기로 쉽게 내다 버리는 것의 차이’에 대한 질문을 남겼다. 농업과 식품시스템이 전체 온실가스의 26%를 발생시키고 있는 기후위기 시대, 우리의 먹거리를 구성하는 재료의 출처와 제조, 유통, 소비 방식에 대한 더 넓고 깊이 있는 탐구가 계속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1] 비건vegan은 육류,생선을 비롯해 계란, 유제품, 벌꿀 등을 먹지 않으며, 식재료나 화장품, 가죽제품 등 동물 기반의 제품을 사용하지 않는 생활방식을 의미한다.(필자 정리)
[2] 발우공양은 스님들이 평소 식사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발우는 스님들이 공양할 때 사용하는 식기로서 밥, 국, 찬, 물 등을 담는 그릇 4개가 한 조로 되어 있다.(출처:『사찰음식 표준교재』, 대한불교 조계종 한국불교문화사업단, 2018)
[3] <내 몸을 살리는 사찰레시피>, 한국불교대표방송 BTN, 2020.6.9
[4] <EBS 초대석 – 모든 깨달음은 음식에서 나온다, 선재 스님> EBS, 2017.5.12
[5] 『사찰음식 표준교재』, 대한불교 조계종 한국불교문화사업단,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