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협동조합은 무엇인가요

이예나(HBM사회적협동조합 팀코치)

지난 2021년 12월, 서울 워커힐호텔에서 국제협동조합연맹(International Cooperative Alliance, 이하 ICA)의 학술컨퍼런스와 제33차 세계협동조합대회(World Cooperative Congress)가 개최되었다. 쉽게 말해 전 세계 협동조합 관계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국제적인 협동조합 운동의 현재를 점검하고 미래의 방향성을 논의하는 자리이다. 대학원 재학 시절 학술대회 발표를 위해 많은 시간을 들여 해외로 간 적이 있었는데, 이 행사가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열리게 되니 참 반가운 마음이었다. 2년 여 동안 온라인으로만 만나야했던 소회를 풀어놓듯, 코로나 시국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어려움을 뚫고 1000여명의 협동조합 관계자들이 행사에 참석했다. 필자 역시 설렘과 기대를 안고 행사에 참석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에 약간의 기여를 할 수 있었는데, 협동조합 박람회 한켠에 자리한 세계협동조합대회 역사 전시(History Wall)의 번역을 맡은 것이다. 전시는 영국 런던에서 열렸던 제1회 세계협동조합대회가 개최된 배경과 주요 협동조합대회의 기록, 협동조합 정체성을 수립하고 다듬기 위해 이루어졌던 역사적 논의들을 사진과 문헌으로 보여주었다. 또한 세계 각국에서 모인 협동조합 운동의 기록물들을 통해 국가별 협동조합 운동이 시작되었던 순간들을 담아내기도 하였다.

번역작업을 하며 세계협동조합대회의 시작과 ICA의 탄생 과정에 많은 이들의 의지와 열망이 담겨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제1회 대회가 1895년에 개최되었으니 교통과 통신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던 당시에 전 세계에서 다수의 사람들이 첫 모임을 가지는 데 정말 많은 노력이 들었을 것이다. 그들을 모이게 하고, 또 모임을 조직화하여 100년 넘게 존속하게 만든 원동력은 무엇일까? 이쯤 되면 ‘대체 이들에게 협동조합이 무엇이었기에?’라는 생각도 든다. 이번 대회의 주제가 ‘협동조합 정체성에 깊이를 더하다’였는데, 125년 전 협동조합을 생각하고 행동했던 사람들에게 협동조합은 어떤 의미였을까?

뒤집어 생각해보면, 수많은 어려움들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연결되고 연대하고자 하는 의지, 서로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공동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려는 노력 그 자체가 협동조합이 가진 정체성 중 일부가 아닐까 싶다. 이는 협동조합이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단순한 기업조직이 아니라, 결사체로서 나름의 고유한 국가적, 국제적인 운동(movement)에 참여하는 행위자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바로 이 점이 협동조합을 다른 사업조직들과 구별하는 독특한 점일 것이다. ICA가 오늘날 UN이나 국제노동기구(ILO)와 상호작용하는 국제 비정부기구로서 자리매김한 것은 협동조합이 사업체 그 이상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으며 협동조합 운동이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한 방법임을 보여주는 방증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대회에서 오간 여러 논의들 또한 오늘날 협동조합 운동이 직면한 시대적 흐름과 과업을 반영하고 있는 듯 했다. 기후위기와 팬데믹에 대응하는 협동조합의 고민과 사례들이 공유되고, 청년의 목소리를 반영할 필요성이 강조되며, 미래 세대를 위한 협동조합의 역할을 촉구하기도 하였다. 뜨거운 대회의 열기만큼, 기후위기나 다음 세대를 위한 비전이 담긴 역사적인 선언이 나오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도 갖게 되었다. 현재 널리 통용되는 협동조합의 가치와 7원칙이 담긴 ‘협동조합 정체성 선언’이 만들어진 곳이 세계협동조합 대회였으니 말이다.

아쉽게도 대회는 코로나로 인해 현장에서 마무리되지 못하고 온라인에서 폐회를 맞이하였지만, 대회의 결론 및 서울 선언을 위한 논의는 여전히 진행 중이라고 한다. 이제는 역사 속 ‘그들’이 아니라 ‘대체 우리에게 협동조합이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한번쯤 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일상에서 매번 협동조합에 대한 역사적 사명감이나 당위성을 느낄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모두에게 가능한 일도 아니다. 다만 어떤 방식으로든 협동조합에 맞닿게 될 때, 이따금씩 ‘우리는 왜 협동조합에서 일하거나 협동조합을 이용하며, 협동조합을 통해 누군가와 연결되려고 하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져보면 어떨까? 아마도 그것이 ‘협동조합 정체성에 깊이를 더하기’위한 진정한 논의들이 더 활발해지는 계기가 될 지도 모르겠다. 그러다보면 또 다른 100년이 지난 후에 누군가가 역사 속에서 ‘대체 2021년 이 사람들에게 협동조합은 무엇이었을까?’라는 질문을 던질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