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주의와 사회적경제의 존재 이유

이예나(HBM사회적협동조합 팀코치)

최근 ‘능력주의’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젊은 야당대표는 ‘능력에 기반한 공정한 경쟁’을 이야기하고, 한 청소노동자의 죽음을 두고 노동의 가치에 대한 갑론을박이 벌어진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각자도생할 수밖에 없는 한국 사회의 냉혹한 현실이 드러나는 일면들이 아닐까 싶다.

능력주의가 주장하는 ‘각자의 능력에 따른 합당한 사회적 평가와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논리는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개인의 다양한 능력에 대한 있는 그대로의 존중은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능력주의에서 개인의 능력은 사회적 보상을 위한 평가의 대상이 된다. ‘평가’라는 말의 의미가 ‘공평하게 논하다’라는 뜻이지만 한편으로는 각양각색인 개인의 특성과 능력들을 어떻게 공평하게 논할 수 있는 것인지 근본적인 의문이 든다. 이런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쉽게 사용하는 방법이 획일화된 평가기준과 서열화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시험이나 양적 지표 등의 기준들은 인간이라는 복잡다양한 대상을 평가하기 위해 사용하는 상대적으로 쉬운 수단이지만, 그 기준에 부합하는 정도에 따라 평가의 결과는 분리와 배제의 근거가 될 수 있으며 혐오와 차별로도 쉽게 이어질 수 있다.

미디어를 통해 차별을 당연시하고 능력에 따른 서열화를 지지하는 주장들을 접할 때마다, 역설적으로 사회적경제의 존재 이유를 다시 한 번 되새긴다. 능력주의에서 ‘능력’이란 흔히 시장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노동력으로서의 능력을 말하지만, 사실 인간의 능력은 다차원적이어서 노동력만으로 함부로 평가받거나 평가절하될 수 없다. 즉, 시장에서 직업과 임금을 통해 인정받거나 보상받을 수 있는 것만이 능력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사람중심’의 가치를 지향하는 사회적경제는 우리 사회에 개개인의 다양성을 포용함으로써 생겨나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그동안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던 다양한 능력들이 ‘함께하기’를 통해 새로운 방식으로 재탄생할 수 있는 영역이다. 예를 들면, 우리는 사회적기업에서 장애인들도 충분히 훌륭하게 일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결혼으로 인해 한국에 이주한 이주여성들이 협동조합을 설립하여 그들의 고유한 문화와 자원으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 나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자활기업에서의 노동은 누군가에게는 삶의 동력이자 새로운 가능성이 될 수도 있다. 이처럼 사회적경제는 능력의 우월을 재단하기보다 여러 능력들이 모이고 엮여 새롭게 결합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데에 초점을 둔다.

시장 경쟁력 또는 기존의 ‘능력’ 관점에서 본다면 이러한 사회적경제 조직들은 그리 ‘성공적’이지 못할 수도 있다. 물론 사회적경제 조직들은 단순한 ‘결사체’가 아니기 때문에 사업체로서도 지속가능할 최소한의 역량을 갖추는 것은 필수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에서 언급한 사례들처럼 다양성에서 비롯한 차이가 차별의 근거가 아니라 가능성의 근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사회적경제의 중요한 존재 이유 중 하나이다. 그리고 그 사회적경제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능력은 ‘능력주의’ 시스템에서 흔히 사용하는 획일적인 평가기준으로는 쉽게 판단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것은 차이를 이해하는 능력, 타인과 소통하는 능력, 다양성을 인지하고 포용하는 능력, 조금 덜 완벽하더라도 누군가와 함께 일할 줄 아는 능력일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사회적경제를 이해하고 학습하는 것은 ‘공정한 경쟁’을 강조하는 능력주의 시스템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다양한 사회구성원들의 존재가치를 발견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한편으로는 사회적경제 영역에서조차 능력주의에 근거한 기준들로 자신들을 평가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러한 기준들로 볼 때 사회적경제의 현 주소는 열악하고 암울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회적경제가 오랜 역사에 걸쳐 이어져올 수 있었던 것은 시장에서 그 우월함을 인정받고 승승장구했기 때문이라기보다, 오히려 시장이 보듬지 못했던 인간적 가치로부터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사회적경제가 얼마나 소위 ‘잘 나갈’ 수 있을지, 치열한 시장경쟁 속에서 과연 우위를 차지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능력주의에 절망한 누군가에게 사회적경제가 선택할만한 삶의 방식이 된다면, 개인의 다양성이 빛을 발하고 존재 그 자체로 존중받을 수 있는 다채로운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