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 협동조합의 거버넌스를 다시 생각하다

주세운(동작신협)

협동조합은 조합원이 소유하고 통제하는 기업이다. 정의상 협동조합은 1인1표의 동등한 의결권을 조합원 누구에게나 부여한다. 그리고 이러한 협동조합의 의사결정 원리는 내가 협동조합에 자부심을 갖는 근거이다.

물론 1인1표의 이상적인 원칙을 현실에서 구현하는 것은 만만치 않은 과제이다. 협동조합이 대형화되면 될수록 다종다양한 조합원들의 의견을 수렴하기는커녕 1년에 한번 모이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협동조합 관련법은 대의원 제도와 같은 상향식 의사결정 장치를 갖고 있다. 나 또한 그런 상향식 의사결정 제도가 협동조합에 걸맞는 거버넌스 모델이라고 생각해왔다. 특히 대의원제도에서 나아가, 조합원 간의 각종 소모임과 위원회 조직을 장려하고, 이 과정에서 훈련된 조합원들을 대의원과 이사회 멤버로 충원하는 상향식 구조야말로 협동조합의 1인1표 정체성을 구현할 수 있는 최적의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덧붙여 한국사회에서 이러한 모델을 구현하고자 가장 노력하고 잘 실천하는 조직은 생협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미증유의 코로나 펜데믹이 일어났다. 아직도 현재진형인 이 전염병은 모든 인간 대 인간의 만남을 잠재적인 위협으로 만들었다. 모든 대면 활동이 금기시 되었기에 협동조합의 각종 조합원 모임과 위원회, 그리고 이를 통해 구현되는 거버넌스 활동 또한 멈춰버릴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일부 활동들이 비대면으로 전환되어 진행되고 있기는 하지만 코로나 이전에 비하면 크게 위축된 것이 현실이다. 코로나 펜데믹 기간에도 나는 평범한 한 사람의 조합원으로서 여전히 생협 매장에서 재화를 구매하고 신협의 금융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하지만 기존의 협동조합 거버넌스 구조 안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는 이제 극히 제한되어버린 상황이다.

물론 인류 역사가 그래왔듯이, 기술에 의해 백신에 의해 코로나는 극복될 것이며, 빠르면 1~2년 안에 우리는 코로나 이전의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렇게 되면 지금과 같은 위기는 회복되고 다시금 협동조합의 거버넌스 모델은 잘(?) 작동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나는 금번의 코로나 위기를 겪으면서, 협동조합 거버넌스가 이러한 상향식 의사결정 모델만으로는 불충분하다는 인식을 하게 되었다. 가령 코로나를 겪으면서 상당수 상장 주식회사 기업들은 주주총회와 분기별 성과보고회 등을 비대면 온라인방식으로 전환하고 있다. 그 주식회사의 주주들은 단1개의 주식만 갖고 있어도 이러한 자리에 참여할 수 있고 발언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발표된 안건지들 또한 온라인에 공개되어 주주 누구나 확인할 수 있다. 기업에 따라 정도의 편차는 있지만, 기업의 사업성과 경영방향에 대해 주주 및 이해관계자들과 직접적인 소통의 창을 열어두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반대로 내가 이용하고 있는 규모 있는 협동조합 기업(여기서는 주로 생협과 금융협동조합 등을 뜻한다)들은 어떠한가. 총회를 온라인으로 중계하기는커녕, 구체적인 총회 안건지와 의사록을 확인하기도 어렵다. 물론 나도 할 말은 없다. 나는 협동조합의 상향식 거버넌스 구조에 참여하지 않은 ‘비활동’ 조합원이기 때문이다. 매달 생협 매장에서 수십만원치를 소비하지만, 조합원 모임 한번 참여하지 않은 비활동 조합원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떤 위화감을 떨쳐버리기 어렵다. 내가 자부심을 갖는 협동조합의 의사결정 과정에 조합원인 내가 참여할 수 있는 문턱이, 오히려 주식회사보다 높은 느낌이라니. 여기서의 참여란 그리 거창한 것을 원하는 것도 아니다. 한사람의 조합원으로서, 이사회와 경영진은 어떤 방향으로 이 조합을 경영하고 있는가. 어떤 고민을 가지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자 노력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런 노력의 연속선상에서 어떤 안건을 상정하고 있는지를 조합원의 입장에서 알고 싶을 뿐이다. 대외적인 홍보물이나 연차보고서를 통해서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의사결정 과정 안에서 말이다.

결국 코로나가 종식되더라도, 나의 이러한 궁금증이 쉬이 해소되긴 어려울 것 같다. 지금과 같은 거버넌스 방식 안에서는 비활동 조합원인 내가 각종 소모임과 위원회에 참여하는 활동조합원이 되고, 나아가 대의원 정도는 되어야만 이러한 내부(?)정보들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풀타임 노동자인 내가 조합원 활동을 병행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그것이 내가 조합에 그만큼 애정이 부족해서 일수도 있다. 그만큼 헌신적이지 못해서 일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같은 비활동 조합원이 이미 협동조합에 상당수를 차지한다면, 그리고 그 비율이 갈수록 늘어 간다면, 그들을 기존의 상향식 거버넌스 모델으로 끼워 맞추기보단, 다른 방식도 찾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조합원활동의 틀이 아니면서도 협동조합과 소통할 수 있는 방식을, 내가 1인1표를 가진 협동조합원임을 직접적으로 느끼게 할 수 있는 또다른 거버넌스 방식을 찾아볼 필요가 있는 것이 아닐까.

적어도 총회 과정과 안건 내용은 조합원 모두와 공유하자. 적어도 1년에 한두번은 임원과 경영진이 조합원과 직접 소통하고 대화하는 자리를 마련해보자. 홈페이지와 모바일 어플에서 쉽게 확인하고 피드백 할 수 있게 하자. 기존의 상향식 방식 뿐만 아니라 직접 민주주의를 구현할 수 있는 거버넌스 방식을 고민해보자. 이것이 코로나가 내게 준 하나의 질문거리이자 새로운 기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