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건물주, 지역에서 함께 살아남기
유정아(사회적협동조합 사람과공간 이사)
지역에서 타 단체와의 동거
지역조합의 재정에 따라 규모의 차이는 있지만, 수도권 인근의 지역 생협들은 사무공간, 회의공간, 부엌시설, 그리고 좀 더 여유가 된다면 조합원 교육이 가능한 교육장을 가지고 있다. 강서아이쿱생협은 2017년 조합 사무와 매장 운영을 조합에서 분리하면서 공간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활동가는 매일 출근하지 않고, 그 당시 조합비 조합원 1,650여 명의 조합 살림에서 임차료 월 170만 원(5년간 낸 비용이 약 1억 원)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고민 끝에 방화교육장을 닫고 등촌점 옆 작은 사무공간으로 옮겼지만, 석 달 만에 등촌점 매장확대를 위해 또다시 짐을 싸야 했다. 매장을 이용하는 다수의 조합원을 생각하면 불가피한 결정이었다.
다행히 이런 사정을 알고 공간을 함께 쓰자 제안한 단체가 강서양천민중의집(이하 민집)이다. 민집은 자연드림 매장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조합원들이 드나들기에 교통이 좋고, 큰 홀과 부엌, 분리된 회의실이 있었다. 큰 홀을 사용할 때 아이쿱은 주로 오전과 오후, 민집은 퇴근 이후인 저녁 시간을 사용하다 보니 서로 겹치지 않았다. 이렇게 민집 안에서 동거가 시작되었다.
과연 가능할까
민집은 2016년부터 건물주가 바뀌며 이전요구를 받았고, 임대료 상승 등의 문제로 공간마련 중장기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17년 하반기부터 강서아이쿱생협과 빵과그림책협동조합이 민집에서 동거하면서 공유공간마련을 위한 준비모임을 함께하고 논의를 시작하였다. 그리고 1년 후 준비모임이 아닌 추진위를 구성하자 제안되었다. 추진위에 참가한다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지금처럼 민집이 관리하는 공간에서 얼마의 사용료만 내고 지내면 되는데, 함께 소유한 공간을 마련한다는 게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다. 자금 문제, 운영방식, 특히나 잘못되었을 때 그 책임은 어떻게 질 수 있을까. 내 임기가 끝나면 이 책임은 다음 이사회에 넘어가는데 이 무거운 짐을 넘기는 게 맞는 일일까. 주변에, 그리고 아이쿱 선배들에게 물어보니 대부분의 반응은 안 하는 게 낫다였다. 이사회의 논의와 함께 한동안 추진위 참여에 대해 고민하고 가슴 졸였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도 시작은 해보자. 지역에서 지속가능한 공간이 필요하다고 말로만 하고 한 발짝도 내딛지 않으면 후회할 거 같았다. 하다가 정말 안 되는 상황이 되면 그때 못하겠다 이야기하면 되겠지.
본격적인 논의, 법인설립과 출자금 확보
19년 3월부터 공유공간마련을 위해 구성된 추진위는 각 단체에서 대표 포함 2~3명이 참여하여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하였다. 한 달에 2번씩 정기회의와 부동산, 법인설립, 홍보분야로 분과 회의가 진행되었다. 다행히 서울시 마을공동체 종합지원센터의 ‘공동체공간 자산화’를 위한 공모사업에 2년 연속 선정되어 법인설립, 부동산, 재무 관련 컨설팅 및 각종 자문회의, 홍보물 제작, 교육, 주민설명회, 워크숍 등을 진행할 수 있었다.
2020년 5월 공간을 매입하고 운영할 주체를 사회적협동조합 사람과공간(이하 사람과공간)으로 창립하고, 8월에 행정안전부 인가를 받았다. 그리고 처음 시작한 3개 단체에서 평등사회노동교육원, 강서나눔돌봄센터가 합류하면서 5개 단체가 되었다. 출자금도 늘었고, 찾아야 할 건물 규모도 커졌다. 단체별 출자금 규모가 크기 때문에 사람과공간의 조합원 가입 문턱이 낮지는 않다. 단체가 생산자조합원이 되고, 임원 구성 및 회의 진행을 위해 단체의 대표가 자원봉사자조합원으로 들어오는 방식으로 건물매입과 운영안정을 위해서 최소한의 조합원으로 구성하였다. 추후 사람과공간이 안정되면 직원조합원, 소비자조합원 등을 확대하고, 출자금도 낮출 예정이다.
지금 사회적협동조합 사람과공간은
5개 단체가 함께 살 집을 고르고, 그 안에서 어떻게 함께 살아갈지 시스템을 만드는 일은 만만한 일은 아니다. 자금 조달, 공간구성 문제, 각종 세금 문제, 마땅한 부동산을 합의하는 일, 단체 간 협의 등 챙겨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컨설팅으로 추정된 매입 관련 자금 약 30억 원은 출자금과 임대보증금, (재)상생연대기금 공모사업으로 1억 원, 크라우드 펀딩(5월 진행 예정) 그리고 정책자금과 대출을 통해 마련할 예정이다. 늦어도 올해 10월에는 입주할 계획으로 이사장을 비롯해 이사들은 정기회의와 자문 등 다양한 방식으로 필요한 과정을 알아보고 그 하나하나를 확인하며 진행해 나가고 있다.
지역자산화(시민자산화)를 통해 지역공동체 활성화, 지속가능한 사회
시민자산화의 개념은 다양하지만 말 그대로 시민의 힘으로 공유자산을 만드는 것, 건물, 토지 등을 공동소유하고 그 이익을 지역에서 함께 나누는 것이다. 사람과공간 또한 건물매입을 통해 공유공간을 조성하고 운영하면서 지역에서 다양한 공익적 활동을 펼치려 한다. 한 개 층에는 문화복합공간을, 1층에는 마을 카페 또는 커뮤니티 비즈니스 공간으로 조성하고자 한다. 일부는 원리금을 갚아야 하므로 임대를 할 수도 있겠다. 그리고 단체들의 사무공간은 칸막이 설치가 아닌 개방식으로 하며 사물함을 통해 개인물건은 보관해서 공간을 최대한 넓고 가변성 있게 사용하려 한다. 옥상은 외부 라운지와 작은 정원, 그리고 햇빛 발전패널 설치를 구상하고 있다. 즐겁게 일하는 공간이고, 활동하는 공간이고, 지역을 위한 공간이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또 다른 시민자산화 성공사례를 만들어보고자 한다. 이후에 많은 활동가가 안정된 공간에서 편히 활동할 수 있기를, 이 공간을 통해서 그 지역에 활기가 돋기를, 그리고 여기를 오고 가는 사람들이 즐겁기를 상상해본다.
*공유공간마련 논의는 강서아이쿱 입장에서 보자면 만 4년이 되어간다. 조합원에게 총회에서 중장기계획으로 승인을 받고, 진행 과정을 소식지와 SNS를 통해 꾸준히 알리고 있다. 강서아이쿱생협은 출자금으로 약 1억 5천만 원을 약정하였고 현재 공유공간마련 목적출자금 증자운동과 조합 보유자금으로 1억 원을 마련하였다. 추가 자금 마련과 조합원과의 소통을 위해 현재 강서아이쿱생협 이사장 및 이사회가 올해도 노력하고 있다. 지역자산화를 진행하지 않더라도 지역에서 다른 단체들과의 동거, 함께 살기를 적극적으로 추천한다. 공간의 효율성을 높이고, 함께 살면서 생기는 시너지 효과는 정말 크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적 네트워크의 확장을 통해 강서아이쿱생협이 지역에서 아이쿱을 알리고 더 성장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