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를 다시 생각하다.

이예나(HBM사회적협동조합 팀코치)

내가 몸담고 있는 협동조합에서는 이번 연말 조금 색다른 방식으로 한 해를 마무리했다. 팀과 개인들이 참여하는 상호 피드백 시간을 가졌는데, 특히 개인별 상호 피드백 시간에는 360도 피드백 방식을 활용했다. 360도 피드백은 몬드라곤팀아카데미(MTA)에서 팀의 성과를 평가할 때에도 활용된다. (물론 그 전신인 핀란드 팀아카데미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진행방식은 단순한 듯 하지만 만만치 않다. 모든 팀원이 돌아가면서 서로에게 피드백을 주는데, 피드백을 받는 사람은 자신을 제외한 모두로부터 피드백을 들은 후에 피드백에 대해 반응할 수 있다. 피드백을 듣는 도중에는 오로지 경청한다. 피드백을 주는 사람은 자신의 피드백이 상대방에게 주는 선물이라는 생각으로, 상대방을 존중하는 마음을 담아 전달한다. 그렇다고 좋은 이야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단호하게 조언을 해주기도 하고, 서운함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러나 기본 전제는 상대방이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마음, 그리고 팀에서 함께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바탕이 된다.

예상할 수 있겠지만 팀의 규모가 커질수록, 360도 피드백은 길어질 수 밖에 없다. 올해 MTA의 학사학위과정 LEINN SEOUL에 입학한 14명은 이 개별 상호피드백을 진행하는 데에 하루 12시간을 온전히 사용해야 했다. 그러나 그 어떤 시간보다 지치는 기색없이, 서로가 온전히 몰입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일터에서 진행한 360도 피드백 또한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그간 잘 알지 못했던 서로를 이해하고 아끼는 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으로 채워졌다. 그리고 이는 자연스럽게 나 자신과 팀에 대한 성찰로 이어졌고, 이러한 성찰을 바탕으로 우리는 전사적 차원의 ‘전략수립의 날’을 기획하고 있다.

일반적인 조직에서는 이러한 방식의 상호평가를 흔히 발견하기 어려운 것 같다. 때로는 비효율적, 비생산적이라고 생각될만큼 조직 차원에서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하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방식과 문화를 시도하고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대화의 중요성에 대한 공통된 인식이 필요하다. 여기에서의 대화는 편한 친구와 만나서 나누는 이런저런 이야기와는 조금 구별되어야 할 것 같다. 경영학자이자 컨설턴트인 윌리엄 아이작스는 ‘대화의 재발견’이라는 그의 저서에서 “대화(dialogue)는 공유된 탐색, 곧 더불어 생각하고 반성하는 방법”이라고 정의한다.1) 덧붙여 그는 대화가 누군가를 변화시키거나 설득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우리 자신과 쌍방에 대한 더 큰 이해에 도달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과 관련되는 일이라고 설명한다. 즉, 조직 안에서의 대화는 미처 밖으로 꺼내어져 논의되지 않는 생각들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하고, 리더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복잡한 문제들을 다룰 수 있는 현명함을 제공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대화의 과정은 말처럼 쉽지 않다. 그는 개인과 집단의 대화를 위해 필요한 듣기, 존중하기, 보류하기, 말하기의 네 가지 기본 행위를 하나하나 상세히 설명한다. 이 네 가지 행위는 사실 어느 하나 우리의 일상과 동떨어져 있지 않은, 흔하디흔한 것이지만 막상 각각을 잘 실행하고자 염두에 두며 대화하는 일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여러분이 나누었던 좋은 대화는 어떠했으며, 그런 대화가 삶 속에서 자주 일어나는지 생각해보자. 좋은 대화의 의미를 이해하고 실천하려 할수록,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깨닫게 된다.

조직은 지시나 통제, 위계와 감시만으로 움직일 수 없으며 민주적인 조직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그런 측면에서 협동조합은 ‘좋은 대화’들이 끊임없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는 조직이다. 그 이유는 협동조합이 결사체로서 구성원들의 민주적이고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운영되는 조직이기 때문이다. 협동조합의 지배구조가 가지는 차별성은 민주적 운영과 분리될 수 없고, 대화는 민주적 운영을 위한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집단적인 대화와 이를 통한 의사결정과정을 빼고서 다수가 참여하는 협동조합의 민주적 운영은 쉽지 않다. 실제로 대화는 민주주의는 깊은 관련이 있다. 대화를 통한 근본적이고 심도있는 상호이해가 힘의 관계나 의미를 변화시키는 참여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학습하는 조직’으로 저명한 피터 센게에 따르면 대화는 집단적인 ‘팀 학습’을 이끄는 핵심 규율이기도 하다.) 협동조합이 단순히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조직이 아니라 결사체 구성원들의 공동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장(場)이라면, 더불어 생각하기 위한 성찰적 대화는 공동의 일관된 이해를 형성하고 이를 실행으로 옮기기 위한 본질적인 동력을 제공해줄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장기적으로 조직의 학습역량을 높이고 조직문화를 개선함으로써 성장의 원천이 될 수도 있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이를 위한 실천의 과정들은 길고 지루하거나 때로는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대화의 중요성과 의미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시도한다면, 협동조합을 조금 더 협동조합답게 만드는 상호이해와 민주적 운영이 일상적인 서로의 대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이라 믿는다.

1) 윌리엄 아이작스, 「대화의 재발견: 더불어 생각하고 반성하는 방법」, 정경옥 옮김, 에코리브르, 2012년

2) 피터 센게,「학습하는 조직: 오래도록 살아남는 기업에는 어떤 특징이 있는가」, 강혜정 옮김, 에이지21, 201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