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조합을 위한 벤처캐피탈
주세운(동작신협)
최근에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요즘 온 국민이 한다는 주식투자다. 처음에는 핀테크기업의 최신서비스를 체험해본다는 생각으로 휴대폰에서 비대면계좌를 개설했고, 마침 모아둔 약간의 알바비(?)가 있어 이름을 대면 알만한 유명기업주식을 몇 주 구매했다. 확실히 클릭 몇 번으로 각종 금융서비스와 정보조회, 보험가입, 머나먼 미국기업 투자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핀테크서비스의 편리함은 대단했다. 쿠팡이 우리네 소비의 습관을 바꾼 것처럼, 이러한 핀테크기업들이 향후 금융시장을 어디까지 바꿀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스마트폰의 보급 이후, 이러한 IT기반의 플랫폼 기업들이 점점 더 일상을 잠식하고 있다. 우리가 지역에서 개별적으로 소비하던 수많은 상품과 서비스들이 스마트폰 어플에 자리를 빼앗기고 있다. 이미 우리의 여행패턴은 에어비앤비와 부킹스닷컴과 같은 예약 앱이 무수한 여행업체들의 자리를 대체하고 있고, 동네서점 대신 인터넷서점이, 수많은 케이블채널은 유튜브와 넷플릭스 같은 거대 콘텐츠플랫폼에 빠르게 잠식당하고 있다. 비록 이러한 변화가 코로나 사태로 가속화되긴 했지만, 그것은 코로나 이전부터 이미 우리 앞에 와있던 변화의 과정이었다.
이러한 플랫폼기업들의 특징은 시장선점을 위한 엄청난 초기 비용투자에 있다. 지금까지도 수조원의 적자를 감수하고 있는 쿠팡은 물론이고, 배달앱 시장의 독과점기업인 배달의 민족도 창업초기 5년간은 매출성장을 위해 수백억원을 쏟아 부었다. 그들이 이러한 비용을 감수 할 수 있는 것은 벤처캐피탈의 존재 덕분이다. 벤처캐피탈이란 성장성이 높은 초기기업에 투자하여 큰 투자수익을 추구하는 금융자본이다. 중국의 알리바바에 투자하여 2,500배인 수익을 올린 손정의의 소프트뱅크가 대표적이다. 금융자본 입장에서는 시장을 한번 선점하기만 하면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플랫폼기업의 비즈니스모델은 엄청난 투자기회이다. 성장성이 담보되기만 하면 엄청난 자본이 플랫폼기업에 몰린다. 주식거래소의 기업공개(IPO)라는 시스템이 이러한 금융자본의 초기투자를 수백수천배로 보상해주기 때문이다.
우리네 일상을 점점 재편하고 있는 플랫폼기업의 출현 앞에 협동조합운동은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짐짓 생각해봐도 개별 협동조합이 맞서기에는 쉽지 않은 문제다. 플랫폼기업이 제공하는 강력한 소비자경험에 맞서서 대안적인 협동조합플랫폼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마찬가지로 창의적인 기술개발을 지원하고 초기비용을 보전해줄 수 있는 금융자본이 필요하다.
하지만 협동조합에게는 주식회사처럼 수천수백배로 보상받을 수 있는 지분가치란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플랫폼시대의 협동조합이 주식회사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의 벤처캐피탈과는 다른 논리로 움직이는 금융자본이 필요하다. 그 논리란 물론 주식회사의 이익사유화가 아닌 연대의 논리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개별협동조합을 넘어선 협동조합운동 전반의 과제이다.
현재 정부주도로 사회적경제기업을 위한 벤처캐피탈이 일부 조성되어 있으나 협동조합은 투자대상에서 소외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주식회사와 협동조합의 차이를 고려한다면 협동조합을 위한 전용 투자자본의 조성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그러한 과제는 꼭 플랫폼협동조합이 아니더라도, 협동조합을 위한 금융자본의 존재는 중요하다. 그러나 플랫폼시대의 도래로 그 필요성은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타협동조합에 대한 출자를 허용하는 신협법 개정안이 이번 국회에서는 꼭 통과되기를 바란다. 협동조합을 위한 금융자본을 조성하는 것은 결국 선배협동조합인 신협과 타금융협동조합, 그리고 생협 등이 앞장서서 고민해야 할 과제일 것이다. 협동조합운동의 성장, 아니 당장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협동조합을 위한 금융자본의 존재가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단지 정부의 지원이나 대기업의 사회공헌에만 의존하는 것은 협동조합운동 진영의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