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만드는 생활의 실천을 위하여

김정희(아이쿱생협연합회)

나는 운전을 하지 않는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못하는 건 아닌가요?’ 하는 질문이 늘 따라서 온다. 맞다. 운전을 못 하기도 한다. 오래전 운전면허를 따고서 실제로 운전을 하지는 않았기에 흔히 말하는 ‘장롱면허’다. 운전하지 않는 여성들에 대한 사람들이 갖는 생각은 운전에 대한 두려움을 많이 꼽는다. 나도 겁이 많다. 하지만 내가 운전을 하지 않겠다, 나아가서 내 소유의 자동차를 가지지 않겠다고 결심한 것은 다른 계기가 있다. 1990년대 초 대학생이었던 나는 정홍규 신부님의 환경 관련 강좌를 들었다. 한국도 산업화로 인한 공해 문제가 심각했고, 생수를 사 먹는 것이 점점 자연스러워지던 때 앞으로 지구는 어떻게 될까? 하는 고민이 생겼다. 그렇다, 그때 결심한 것이다. 나는 자동차를 소유하지 않겠다고, 오염된 지구를 한번 지켜보자고.

그때 결심한 소소한 생활의 실천들은 더 있다. 생활용품에서 최대한 화학물질의 사용을 하지 않겠다거나 화장이나 미용도 최대한 소박하게 하겠다거나 채식을 주로 하겠다거나…… 물론 이런 결심들을 확고히 잘 지키지 못했었다. 예쁘게 꾸미고 싶은 마음에 향이 강한 샴푸도 자주 썼고 멋을 내느라 염색도 주기적으로 하던 시절이 있었다. 채식을 주로 한다는 것도 매우 주관적으로 판단해서 실천한다고 착각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꾸준히 실천할 수 있었던 것 하나는 자동차를 소유하지 않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살겠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불편하지 않냐고 자주 묻는다. 특히 자녀가 어릴 때 많은 짐을 이고 지고 아이를 데리고 다니면 ‘차를 사, 운전해’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다. 차가 없다는 것은 대한민국에서 불편할 때가 많다. 수도권은 지하철이나 광역버스가 제법 잘 되어 있어서 자동차보다 빠르게 이동하기도 한다. 그러나 지방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확실히 늦을 때가 많았다. 우리나라 관광지는 자동차 여행에 적합하게 개발되어 있다. 그래서 가족여행도 기차여행을 중심으로 계획할 수밖에 없었고 한계가 많았다. 그래도 어릴 적 나만의 그 약속을 30여 년간 지키며 살았다는 것에 대해 스스로를 칭찬하는 마음도 컸다. 그리고 우리 집은 왜 차가 없냐는 딸에게 엄마의 이런 결심을 들려주고 강요된(?) 존경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2020년 여름을 지나면서 이러한 실천이 과연 환경에 어떤 도움이 되었을까?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지난 30년 내가 혼자만의 약속에 취해 있던 동안 지구는 확실히 더 나빠졌다. 한 세대가 막 지난 정도의 세월인데 세상이 점점 악화되고 있다는 것을 50일간 내리는 비를 보면서 확인하는 것은 좀 우울했다. 생협 활동을 열심히 하는 이유는 내가 추구하는 가치를 실천할 수 있도록 일상을 조직한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 일에 동참하는 사람들을 계속 만들어나가고 그것을 통해 우리가, 세상이 조금씩 변하는 것을 체험하는 것이 좋았다. 나의 환경실천도 이런 생협 운동처럼 이웃들과 ‘함께’ 일상을 조직하는 일이어야 했지 않았을까? 자동차를 소유하지 않았으니까 하는 이유로 많은 다른 실천에서 나는 나 자신에게 너무 너그러웠던 것이 아닐까? 점점 더 뜨거운 지구 속에서 우리의 일상이 위협받고 있다. 외출할 때마다 마스크를 쓰는 생활을 몇 달째 지속하면서 우리는 그 일상의 소중함을 알고 있다. 그리고 나는 이제 그 일상의 소소함 속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다. 단순히 건강한 밥상을 차리고 싶은 소망에서 시작했지만 식품산업의 생산·유통·소비의 전 과정에 대한 관심과 관여가 없으면 식탁의 자율성이 상실된다는 것을 알게 된 생협 조합원들과 이제는 우리 일상을 채우는 에너지를, 식품의 원재료 생산을, 우리가 만드는 쓰레기를 다시 돌아보려는 것이다.

‘기후위기’의 원인과 해법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면 위기의 실상에 암담하고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것 같다는 경험을 자주 한다. 그래서 작은 첫 발걸음을 내딛는 것조차 힘들고 어렵다. 독일의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는 “가장 비극적인 형태의 상실은 ‘안전의 상실’이 아니다. 그것은 ‘세상이 달라질 수 있다고 상상할 수 있는 힘의 상실’이다.” 라고 했다. 그의 말대로 코로나로 또 기후위기로 상실된 우리의 안전이 우리를 비극으로 몰아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마 그 속에서 우리의 힘으로 다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상상력까지 잃어버리는 것이 21세기 인류의 비극 아닐까.

다시 달라질 수 있는 세상을 꿈꾸자. 그리고 그 세상을 위해 바로 지금 내 삶터에서 시작하자, 바로 내가 실천할 수 있는 것을 가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