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콩으로 기억하는 2019 여름

김정희(율목아이쿱생협 이사장)

“쌤, 이런 법이 어디 있어요!,”

“어! 어! 어!…… 안 돼!”

“와! 또 놓쳤어”

불평과 비명과 탄식이 오가는 이곳은 중학생들과 함께 하는 공정무역 수업 교실이다. 공정무역이 대안무역으로서 발생한 배경과 운영원칙에 관한 2차시 특강을 주로 한다. 청소년들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이 문제를 어떻게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올해는 ‘어서와 커피 농장은 처음이지?’라는 이름으로 커피콩 옮기기 게임을 해보았다. 커피콩을 옮기는 것을 수확이라고 정하고 조별로 나눠 준 플라스틱 수확 컵 1개당 마스코바도 사탕을 5개씩 쳐 준다.

게임을 하는 규칙은 간단하다. 첫 번째 시도에서는 모든 조가 똑같은 작은 스푼으로 커피콩 옮기기를 한다. 그렇게 협동게임으로 조원들이 릴레이로 커피콩을 옮기는 것이 좀 익숙해지면 두 번째 방법이자 본 게임에 들어간다. 조장들이 나와서 가위바위보를 하여 진 팀에게는 각각 젓가락과 작은 스푼을, 최종적으로 이긴 팀에게는 큰 밥숟가락을 나눠 주고서 다시 커피콩 수확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 본격적으로 불평과 비명과 탄식이 나오기 시작한다.

처음엔 호기롭게 젓가락질을 하던 친구들은 이제 아무리 애를 써도 젓가락 사이를 빠져 나가는 커피콩에 화가 난다. 그렇다고 스푼으로 옮기는 조가 여유로운 것도 아니다. 처음에 모든 조가 똑같은 도구를 가지고 게임을 할 때와는 다르게 옆에서 커다란 숟가락으로 천천히 커피콩을 옮겨도 금방 금방 수확 컵을 채워가는 조를 보면 조급해 지기 마련.

이 두 버전으로 게임을 하고 나서 느낀 점을 나누는데 아이들은 이 게임을 통해 이야기하려는 여러 장치들에 대해 이것저것 잘도 끄집어낸다.

공정하지 않은 게임을 통해 ‘공정’에 관한 개념을 이야기하는 것은 기본이다. 아마도 선생님이 젓가락으로 커피콩을 옮기는 어려운 규칙을 통해 커피 재배 농부들의 힘든 노동을 생각해 보라는 것 같다는 이야기도 들려준다. 그저 속상하다는 말, 억울하다는 느낌만을 발표하기도 하지만 더러는 가위바위보라는 단순한 게임으로 우리 조가 젓가락을 사용하게 되었으므로 수확의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항의를 한다. 이 때 커피 벨트 지역의 많은 농부들이 숙명과도 같이 그 나라에서 태어나서 커피 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해보자고 하면 금세 상황을 이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면서 현재의 관행무역은 누구나 동등하게 무역시장에서 자유롭게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숟가락과 젓가락만큼의 차별적 요소가 있고 그것을 없애거나 줄여보려는 생각이 공정무역 속에 들어있다는 주제로 다가가는 것이다.

통상은 이렇게 흘러가는 수업으로 올해도 많은 학생들을 만났지만 그 중에서도 특별히 기억에 남는 친구들이 있다. 게임을 하는 5분여 시간에서 처음 2~3분 게임에 열심히 참여하다가 갑자기 활동을 중단하는 친구들이 생긴 것이다.

“어라? 왜 커피 콩 옮기기를 안하고 있는 걸까?”

“저희는 숟가락이 너무 커서요. 금방 컵이 차요.”

“근데 우리는 너무 유리하니까……” “그만하는 게 좋을 거 같아서요.”

큰 숟가락을 사용하는 행운을 얻은 소년소녀들은 그 행운의 결과를 스스로 적절하게 제어함으로써 작은 감동을 만들었다.

교과 수업의 지루함을 벗어난 새로운 주제라고는 하지만 아이들에게 수업이란 다 똑같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몸으로 하는 활동을 추가해서 흥미를 돋게 하려는 목적으로 게임을 셋팅한다. 그러한 게임에서 불공정함을 스스로 고쳐보려는 결정을 할 것이라는 건 교안을 짜면서 전혀 고려하지 못했던 변수였다. 하지만 당황스럽거나 돌발적이라기보다는 신선하고 흥미로운 상황이었다.

중학생이라면 게임 상황에서 누구나 집단적 이기심으로 주어진 환경에 대해 성찰적으로 생각하기보다는 결과에 집착할 것이라는 고안이 깨진 그 수업은 올 한해를 통틀어 잊지 못할 순간 중 하나이다. 물론 한 차례 밖에 목격하지 못하기는 했지만 더불어 사는 삶, 공정함에 대한 생각들을 그 짧은 순간에 해내고 함께 더 이상 수확물을 독점하지 않기로 결정한 합의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경제에서 생산자와 소비자라는 대척점에 있는 주체들이 상대방의 상황을 고려하여 자신의 이익을 줄일 수도 있다는 사고는 너무나 순진하다. 그러나 생산과 유통, 소비 전 과정에 대한 윤리적 요소를 고려하는 소비자 운동은 공정무역에서 또 한국의 생협 운동에서 아주 잘 발견할 수 있는 특징이기도 하다. 이러한 현상을 반복적인 거래관계에서 장기적으로는 그러한 점이 유리한 선택이 된다는‘반복-상호성 가설’로 설명하기도 하고, 협동의 방식을 실천하는 사회적 본능이라는 관점으로 풀어내기도 한다.

사실 거창한 학문적 설명이 없어도 우리 모두는 자신의 경제적 이득만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물론 숨겨진 의도와 목적, 장기적인 기대 등이 작용하는 점도 부인할 수 없겠다. 그러나 많은 경우 이득이 전혀 없거나 장기적 기대가 너무나 불확실한데도 우리는 평등, 공정만으로 행동하기도 하는 것이다.

학문적 설명이나 제도적 장치, 정치적 운동으로서가 아니라 살아보니 좀 손해 보는 것이 외려 이익이 될 수도 있다고, 이타적인 선택이 매우 큰 의미가 있더라는 소박한 삶의 지혜는 오랜 경험으로 배우게 된다.

그러나 그런 체험이 부족해도 청소년기의 뛰어난 감수성으로 좋은 결정을 보여준 어린 친구들이 있다. 사람이라는 존재 자체의 존엄함, 타인의 삶과 연결된 관계에 대한 민감성은 많은 지식이 없어도 그러한 결정을 이끌게 할 수 있지 않을까? 2019년에 어느 여름날에 발견한 꾸밈없는 청소년들의 아름다운 행동을 오래오래 소중한 선물로 간직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