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매니아, 커피 농부들을 만나다!

이미옥(아름다운커피 공정무역 마케터)

 

커피의 대한 첫 기억은 열살 무렵이던가. 뭔가 소중한 보물이라도 되는 양, 고이 모셔놓은 높은 선반 위 인스턴트 커피 봉지 속에서 어린 나를 유혹하던 고소하면서도 쌉쌀한 그 향기! 손가락에 침을 묻혀 맛 본 짙은 갈색의 가루커피는 단박에 나를 사로잡아 버렸으며 커피에 대한 나의 애정도 그렇게 시작되었다.

아침에 출근하여 이메일을 확인하고 그날의 일정을 대략 체크하고 나면 물을 끓이고 원두를 갈아서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린다. 네팔, 페루, 르완다, 인도네시아 각기 다른 나라에서 건너온 커피들은 다른 향과 맛을 지니고 있다. 네팔 커피는 쌉쌀한 다크 초콜릿의 맛과 황토 흙, 건초 향이 난다. 페루 커피는 땅콩, 아몬드의 고소함과 체리 향이 나고, 르완다 커피는 건과일의 달달함과 잘 익은 포도의 신맛, 부드러운 입안의 감촉을 준다. 인도네시아 커피는 무화과, 정향, 계피의 향과 맛을 내며 입안에 뭔가 존재감을 남긴다. 동료들과 오늘 내린 커피 맛이 어떤지 얘기하며 시작되는 일상의 모습이다.

커피는 우리 현대인들의 생활 속으로 깊숙이 들어와 각종 회의와 미팅, 동료나 친구, 가족들과의 대화에 뭔가 부족한 부분을 채워준다. 카페인 덕분에 우리는 졸음을 쫓고 공부와 업무에 집중하며, 카페에서 혼자 책을 읽고 사색에 빠지는 순간에 커피 한잔은 좋은 친구가 되어준다. 커피는 무역에 있어 원유 다음으로 높은 가치를 창출한다고 알려져 있으며, 최근 10년 동안 중국, 한국, 동남아 및 커피 생산지의 수요가 늘면서 20% 이상 생산량과 거래량이 증가하고 있다.

2018년 발표된 보고서 “Coffee Barometer”[1] 는 고급화, 편리성, 싱글 오리진[2]등 최근 커피 트렌드와 함께 점점 더 많은 소비자들이 지속가능하고 윤리적인 방식으로 생산된 커피를 선호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변화하는 트렌드를 주도하고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네슬레, 스타벅스, JAB, 코카 콜라 등 글로벌기업들은 무수한 인수합병으로 계속 몸집을 불리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들 기업들은 저마다 커피 가치사슬 전체의 ‘지속가능성 sustainability’을 높일 수 있도록 커피 농부들을 지원하고 기후변화 대응 등 환경을 보호하는 각종 인증기준들과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는 점을 적극 홍보하고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2015년 전세계 커피산업의 가치가 2천억 달러(약 227조원)라는 엄청난 규모인 반면, 단지 10% 만이 생산지 국가에 남는다는 점이다. 공정무역 재단(Fairtrade Foundation)에 따르면, 1970~1989년에 소매점에서 판매되는 원두커피 가격의 20%가 생산자들의 몫이었다. 커피 가격이 급등락을 하던 1990~2001년 ‘커피 위기’ 때 농부들은 겨우 2~6%에 해당하는 가격 밖에 받지 못하며 소득이 절반으로 떨어지는 상황을 겪기도 했다.[3]

커피를 좋아하고 즐기면서 지내던 커피 매니아의 삶 속에 어느 날 커피 농부들이 처한 어려움과 이를 극복하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애쓰는 모습들이 들어왔다. 아름다운커피가 공정무역으로 커피를 거래하며 파트너십을 맺고 있는 네팔의 굴미(Gulmi), 신두팔촉(Shindupalchowk) 커피협동조합 마을들은 히말라야의 설산이 구름처럼 올려다 보이는 해발 1천 미터 높이에 자리잡고 있다. 출장을 통해서도 몇몇 마을을 방문하고 농부들을 만나기도 했으나, 2017년 2월에는 대학원 졸업프로젝트 보고서를 위한 인터뷰 목적의 개인적인 방문이었다.[4] 당시 13개 마을 25군데 농가와 조합 리더들을 만나 얘기를 들어본 결과, 꽤나 많은 농부들이 교사, 경찰, 공무원부터 목수, 건축현장일, 배관공 등 다른 직업을 갖고 있거나 해외로 이주노동을 다녀오는 등 농사일로는 소득이 부족한 상황을 메우며 사는 모습이었다. 이런 이유로 여성들이 농사일을 전담하는 경우도 많아서 어떤 마을은 커피 조합원의 70% 가량이 여성들로 구성되어 있는 경우도 있었다.

전체 인구의 78%가 농사를 짓고 있는 네팔에서는 농부들 대다수가 자급자족하는데 필요한 쌀이나 밀, 감자, 강황, 생강, 유채 등과 각종 채소류를 재배하며 염소, 닭, 물소 등 가축을 키워 우유와 계란, 고기를 얻기도 하고 유기농 거름을 위한 재료를 구한다. 교육열이 높은 네팔에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아플 때 병원에 가고 집을 짓는 등 보다 나은 삶을 꾸려가기 위해 농부들은 현금 소득이 필요하다. 그 동안 다양한 작물들을 키우고 시장에 내다 파는 등 해봤으나 제 가격 받는 일이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매년 어떤 작물이 잘 팔릴지 예측하기도 어렵다. 커피농사를 본격적으로 짓고 판매하기 시작한 지 20년 가량 지내오는 동안 지진, 산사태, 가뭄, 그리고 병충해 등으로 어려움도 많이 겪은 그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굴미, 신두팔촉 농부들은 커피라는 작물이나 커피협동조합 활동에 대해 믿을 수 없을 만큼 긍정적이다. 다년생 작물인 커피는 꽃이 피고 열매가 맺기까지 약 3년 정도 걸리는데, 이때까지 세심하게 잘만 키우면 그 이후부터는 꾸준히 보살피면서 20년 정도 수확이 가능하다. 물론 산비탈에서 커피나무를 키우려면 하나부터 열까지 손으로 직접 해야 하며 가족들과 이웃들의 도움을 받아야만 한다. 농부들은 커피를 재배하고 공정무역 거래를 시작하면서 커피 묘목부터 유기농 재배, 그늘나무 키우기, 가지치기, 병충해 관리를 비롯해 커피 가공과 수출, 마케팅, 교육 등 저마다 가진 능력을 계발하며 전문가가 된다는 자부심을 갖게 됐다. 마을단위 조합과 중앙 조합까지 묘목장, 가공시설, 생두 창고 등을 갖추고 역할을 나누면서 커피협동조합은 커피 재배부터 수출까지 전 과정을 처리하고 있다. 아름다운커피가 현지에서 지원하는 활동들도 이러한 커피협동조합의 역량과 전문성 강화에 중심을 두고 있다.

오랜 커피재배의 역사를 가진 생산국들과 비교할 때, 네팔 농부들의 경험은 길지 않으며 커피 맛과 품질의 수준도 아직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WSB라는 병충해 때문에 커피나무를 모조리 뽑아버릴 수밖에 없었던 굴미 농부들은 정부에 요청하여 ‘커피리서치센터’를 만들었고 현재 이 연구소에서는 네팔 기후에 적합하고 병충해에 강한 커피품종과 재배방법 등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대지진으로 가족과 이웃을 잃고 하루하루 재건에 힘쓰고 있는 신두팔촉 농부들은 열정적이고 젊은 여성 리더 먼두 타파 이사장을 앞세워 자체 브랜드 커피 출시와 해외 바이어 발굴 등을 시도하고 있다.

커피 농부들을 만나 그들이 살고 있는 집과 마을, 가족들과 이웃들의 모습, 그들이 가꾸고 있는 커피나무를 보고 돌아온 이후, 커피를 마실 때마다 농부들의 얼굴과 풍경들이 자동으로 연상된다. 전 세계적으로 재배되고 있는 커피의 70%를 네팔 농부들과 같은 소농들 2천5백만 명이 맡고 있다. 그들의 가족, 노동자들까지 1억 명의 사람들이 커피를 재배하고 가공하는 일에 관여하고 있다. 글로벌 커피기업들이 소비자들을 사로잡고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수십억 달러를 쏟아 붓고 반면, 농부들과 생산지 국가들에 대한 투자는 미미한 수준이다. 지속 불가능한 조건 속에 처해있는 커피 농부들과 젊은 세대들이 커피 재배를 포기한다면 글로벌 기업들의 커피 시장 확대를 통한 매출과 이익확보 또한 불가능한 일이 될 수밖에 없다. 커피의 생산, 유통, 소비라는 전체 가치사슬 속에서 함께 상생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방식을 고민하고 개선해 나가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고 더 많은 구매를 확대할 수 있는 길이 아닐까?

 

[1] Panhuysen, S & Pierrot, J., 2018, “Coffee Barometer 2018″, Accessed Apr. 16, 2019, https://www.hivos.org/assets/2018/06/Coffee-Barometer-2018.pdf, 이 보고서는 Conservation International, COSA, Hivos, Oxfam-Worldshops, Safe Platform, Solidaridad 등 커피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활동하는 기관 및 NGO들의 지원 하에 조사, 연구한 결과를 몇 년간 발표하고 있다.

[2]싱글 오리진(single origin)은 단일한 산지에서 재배된 커피를 의미하며, 최근에는 특정 국가를 알려주는데 그치지 않고 지역, 농장 혹은 농부가 누구인지 알려주는 경우도 있다.

[3] Fairtrade Foundation, 2012, “Fairtrade and Coffee – Commodity Briefing”, 1980년대 말까지 커피 생산과 공급은 국제커피협정(ICA, International Coffee Agreement)에 의해 일정 수준 관리가 되었으나, 냉전체제가 해체되고 자유무역이 확산되는 분위기 속에서 브라질, 베트남 등의 커피 생산량 급증 등으로 커피가격이 급등락하는 ‘커피위기’가 10여 년 간 지속된다. 당시 커피가격 하락으로 글로벌 커피기업들은 원가 하락에 따른 최대 수익 달성을 기록하기도 했다.

[4] 이미옥, 2017, 「공정무역 커피가 바꾸는 네팔의 마을들 : 굴미, 신두팔촉의 사례」, 한양대 국제학대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