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와 대응방식 : 진보적 경제정책의 성공조건

김종걸(한양대학교 국제학대학원 원장)

<요약>

1997년과 2008년 등 반복되는 경제위기는 시장이란 조화로운 곳이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혼란스럽게 폭주하며 수많은 사람을 고통에 빠트린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그 진앙이 세계금융의 본산지인 미국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그 파괴력이 더욱 컸다.

이 위기에 직면하여 각국은 ‘역사의 서랍’ 속에서 ‘케인스’와 ‘뉴딜’을 다시 끄집어냈다. 기본적인 논리구조는 1930년대의 ‘원조뉴딜’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 금융에 대한 규제강화와 대대적인 재정지출의 필요성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정책의 방향과 내용은 달랐다. 미국 오바마 정부는 동반성장과 그린뉴딜로 사회통합과 새로운 성장을 견인하려 했다. 일본 하토야마 정부 또한 국민의 가처분소득을 늘리는 진보정책을 실험하려 했다. 이에 비해 한국의 이명박 정부만 감세와 규제완화, 그리고 4대강 사업이라는 전통적 토건경제로 위기를 돌파하려 했다.

일단 각 정부가 실시했던 정책이 성공했는가를 따지는 것은 중요하다. 오마마 정부는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율로 2번의 임기를 마감했으며, 특히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그 인기가 더욱 커지고 있다. 하토야마 정부는 정부 출범시의 절정의 지지율을 다 까먹고 불과 9개월 만에 좌초했다. 그 이후를 책임졌던 칸 정부조차도 동북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폭발이라는 악재를 극복하지 못하고 표류했다. 그 이후 일본민주당은 당 자체의 존립이 위협받을 정도로 지리멸렬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장담했던 경제성장 실현에 실패했으며, 대통령 자신도 각종 이권에의 부정개입으로 재판을 받는 몸으로 전락했다. 이러한 측면에서 오바마 정부는 ‘성공’, 하토야마, 이명박 정부는 ‘실패’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정책체계 자체에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성공’과 ‘실패’가 아니었다. 이들 세 정부는 정책은 모두 달랐으나 각자 성공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다. 따라서 성공여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공의 조건을 따지는 것이다.

본고의 집필 의도는 2008년-9년의 정책 경험 속에서 진보적 정책이 성공하기 위한 조건을 정리하는데 있다. 진보적 경제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 본고에서 강조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진보의 정체성을 지키는 것이다. 낙수효과의 환상에서 벗어나야 하며, 서민의 가처분소득을 직접 올려주는 각종 정책은 필수적이다.

둘째는, 정책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확신을 국민에게 주는 것이다. 서민가처분소득의 증가가 실질소비의 증가로 이어지고, 그것이 경제성장을 발현되는 경로는, 소득증가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는 확신 속에서나 가능한 것이다. 특히 재정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국민에게 확신을 주는 작업은 중요하다.

셋째는, 미래지향적인 성장전략의 유무이다. 자국의 장점을 발견하고 미래의 신산업과 연결시키는 작업, 이 작업이 성공하도록 만드는 것, 이것이 진보정책 성공의 제3조건이다.

넷째는, 정책 실시과정 속의 민주적인 절차를 중시하는 것이다. 군사작전 식의 밀어붙임은 정책실행비용을 결과적으로 더욱 크게 한다. 민주성이라는 것은 진보정책의 창세기와 같은 것이다. 그리고 가장 강점이기도 하다.

다섯째로 국가와 시장만이 아니라 시민사회의 역량을 어떻게 증진시켜 갈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다. 당연히 시민사회의 경제적 표현인 사회적경제가 잘 발전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모든 정책들을 논리적으로 잘 연결시켜 하나의 정책패키지로 완성해 가는 것이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도 정책의 내용이 아니라 정책을 펴가는 사람일 것이다. 이들의 진정성과 실력이 국민에게 인정받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1. 2008-2009년 금융위기

언제나 그렇듯이 2008년의 금융위기도 갑자기 우리에게 닥쳐왔다. 그 직접적인 원인은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이라는 전형적인 부동산 버블의 붕괴였다. 1990년대 6%대 후반을 유지해왔던 미국의 장기금리는 2000년대에 들어와 4%대로 하락하였으며, 이러한 낮은 금리 하에서 나타난 과잉유동성은 그대로 부동산 버블로 전환되어갔다. 클린턴 정권시기 미국의 고성장을 이끌어왔던 IT 버블이 꺼졌을 때에도, 그리고 2001년 9/11테러 이후의 경기 침체국면에서도 미국 경제를 유지했던 것은 부동산 버블과 군사비 지출의 증대였다. 바로 버블과 전쟁이 미국 경제를 견인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미국 발 금융위기는 단순히 미국의 저금리 정책과 부동산 버블에 기인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그러한 불안 요인을 더욱 증폭시키는 금융시스템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 1980년대 이후 급속히 진행되어 왔던 금융규제완화는 파생상품이라는 통제 불가능한 금융상품을 양산해 갔다. 그리고 이것이 다시 경제의 불안정성을 확대시켜 갔다. 수많은 부실채권은 ‘증권화(상품화)’라는 논리로 시장에 급속히 유통되어 갔다. 개별부실채권의 유통만이 아니었다. 상환능력 등의 조건이 서로 다른 여러 건의 채권을 하나의 바구니에 넣어서 또 다른 상품을 만들어 유통시켜 가는 파생상품의 등장이다. 그 상품의 복잡성이 아주 커서 금융위기가 한참인 상황에서도 예측되는 부실규모조차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한 때 “황금알을 낳는 기법”으로 칭송되던 첨단금융기법들은 결국은 금융의 ‘카지노’화에 불과했으며, 경제전체의 모럴 헤저드와 불안정성을 크게 했다는 점이 당시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확실히 인식되기에 이르렀다(주1).

돌이켜보면 1980년대 이후의 세계경제는 신자유주의라는 시장만능주의가 팽배했던 시기였다. 1970년대의 스태그플레이션이 선진국경제를 뒤덮고 있었을 때 그 때까지의 케인스(Keynes)정책을 ‘무덤’ 속으로 보내고 새롭게 역사 속에 등장한 것이 바로 신자유주의였다. 레이건 미국대통령(1981년1월-1989년1월 임기), 대처 영국수상(1979년5월-1990년11월 임기)의 정책은 레이거노믹스(Reaganomics), 대처리즘(Thatcherism)이란 이름으로 전 세계를 지배했다. 일본에서는 나까소네(中?根康弘, 1982년11월-1987년11월 임기) 정부, 한국에서는 전두환 정부(1980년9월-1988년2월 임기)가 등장했던 것도 경제정책 차원에서는 크게 차이가 나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적 개혁에서도 세계경제가 활력을 가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레이건 대통령 시기 미국경제는 재정적자와 무역적자라는 쌍둥이적자에 시달렸으며, 경제성장률도 이전의 성장률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이것은 영국의 대처와 그 이후의 정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경제적, 사회적 양극화에 의해 안정된 수요를 창출하지 못하는 경제에서의 탈출구란, 실물과 괴리된 금융 부문에 의한 성장이거나, 부동산, 주식과 같은 자산시장의 버블에 의한 성장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것을 더욱 촉진시킨 것이 바로 금융규제 완화였다.

1980년대 말 미국에 있어서 2번에 걸친 저축대부조합(S&L)의 파산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1996년의 감독규제완화법, 1999년의 은행개혁법 등 주요한 금융규제완화법령을 제정해 나갔다. 2004년에는 증권거래위원회의 통합감독프로그램(CSE)에서 총부채가 순자산의 15배 이내여야 한다는 레버리지규제도 철폐했다. 여기에 신용부도스와프(CDS)와 같은 파생금융상품이 모기지금융회사, 대형금융기관(투자은행 및 은행)의 자회사(SPV), 연기금, 보험회사, 헤지펀드 등으로 유통됨으로서 금융시스템 전체의 위기를 조장시켜 갔다. 금융위기의 뇌관으로 작용했던 CDS의 경우, 2001년에는 거의 0에 가까웠던 것이 2007년에는 무려 62조 달러에 이를 정도로 급속하게 팽창되어 갔다(주2).

<그림 1> CDS 발행잔고(10억 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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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isda.org/statistics/historical.html

이제 뉴욕의 월스트리트의 위기는 런던 금융 중심가인 시티의 위기로 전파되고, 전 세계의 금융위기로 급속히 확산되어 갔다. 2007년부터 시작되던 미국의 금융 불안은 2008년 9월 15일, 세계 4위 투자은행(IB)이었던 리먼브라더스(Lehman Brothers)가 6,130억 달러의 부채를 감당하지 못하고 뉴욕 연방법원에 파산보호 신청을 하였다는 소식으로 전 세계 금융위기로 비화되기 시작했다. 이를 시작으로 많은 금융기관들이 연이어 도산위기에 빠졌으며, 급속한 자본유출로 아이슬란드 등 일부국가들은 국가부도의 위기가 보도되기 시작했다. 급속히 냉각되는 세계경제는 동아시아의 경제에게도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2008년 10~12월의 경제성장률(전년대비)은 중국이 6.8%로서 7년 만에 7%를 밑돌았으며, 태국 ▲4.3%, 대만 ▲8.4%, 한국 ▲3.4%, 홍콩 ▲2.5%, 싱가포르 ▲4.2% 등 각국은 심각한 경기 침체에 직면했다. 당시 아시아 ‘4마리 용’(four little dragons)이라고 일컬어지던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의 2008년 10~12월의 성장률은 ▲4.8%로서, 동아시아 금융위기 직후인 1998년7~9월의 ▲4.2%를 넘어서는 수준이었다.

2. 각국의 대응방식(1): 오바마의 그린뉴딜

1) 오바마의 동반성장

글로벌경제위기에 직면해서 각국은 ‘역사의 서랍’ 속에서 ‘케인스’와 ‘뉴딜’을 다시 끄집어냈다(주3). 기본적인 논리구조는 1930년대의 ‘원조뉴딜’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금융에 대한 규제강화, 사회보장지출의 확충, 그리고 대대적인 재정지출의 필요성이다. 그러나 차이도 분명히 존재했다. 1930년대 실시했던 것과 같은 테네시강유역개발(TVA)이라는 토건경제에서 벗어나 환경 친화적 청정경제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창출하려는 것이다. 바로 ‘그린뉴딜’의 태동이다.

오바마 정부의 지적 모태라고도 할 수 있는 싱크탱크, 미국진보센터(Center for American Progress)의 정책보고서, ‘미국을 위한 변화’(Change for America: A Progressive Blueprint for the 44th President)에서는 미국경제의 현황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주4). 지금의 미국은 1929년 대공황 이후로 초유의 경제위기에 직면하고 있으며, 미국의 중산층은 붕괴위기에 있다. 실업률은 증가하고 임금상승률도 정체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인들의 경제적 불평등은 1920년대 후반 이후로 최고수준에 달하고 있다. 지난 8년간 4백만 명 이상의 미국인들이 빈곤층으로 전락했으며, 7백만 명 이상이 의료보험미가입자로 떨어졌다. 이제 새 대통령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는 미국사회의 양분을 막고 번영을 공유할 수 있도록 ‘동반성장’의 기치를 높이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러한 동반성장적 성격은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09년1월20일) 직후 성립한, 총 7,872억 달러의 투입과 350만 명 이상의 고용창출을 목적으로 한 ‘미국재생·재투자법’(American Recovery and Reinvestment Act of 2009)에서도 잘 나타난다. 크게는 기업과 개인에 대한 감세조치가 2,880억 달러(37%), 교육과 의료보험에 대한 재정보조가 1,440억 달러(18%), 그리고 나머지 3,570억 달러(45%)는 공공투자와 같은 재정지출로 구성되어 있다.

특징적인 것은 중요한 수혜대상이 저소득층 및 중산층이라는 점이다. 최대항목인 감세조치는 노동자 및 중산층에 대한 감세가 중요한 내용이며, 의료 관련 지출에서도 저소득층에 대한 의료지원 및 실업자에 대한 의료보험 보조금 지급에 가장 많은 자원이 투입되고 있다. 교육지출(909억달러), 저소득층노동자 및 실업자에 대한 생활보조(825억달러) 등에 있어서도 중요한 수혜대상은 저소득층이다.

저소득자의 생활보호를 중시하는 성격은 오바마 대통령이 2009년 2월 26일 미국의회에 제출한 2010년도(2009년10월-2010년9월) 예산보고서에서 더욱 확연히 드러났다(주5). ‘새로운 의무의 시대’(A New Era of Responsibility)라는 제목을 가진 이 보고서에서는 부시 정권과는 달리 부유층과 일부의 기업에 대한 증세를 통한 재원 확보로 의료제도를 개혁하고, 환경·에너지 정책의 추진, 중·저소득층에 대한 지원강화 등을 추진하려는 계획을 분명히 했다.

구체적으로는 연 수입 20만 달러를 넘는 개인 혹은 부부합산 25만 달러를 넘는 사람들에 대한 소득세를 인상함과 동시에, 각종 세액공제의 상한을 인하하고, 자본소득 및 배당에 대한 세율을 인상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향후 10년간(2010-2019년) 6,367억 달러의 세입증대를 실현시킨다는 계획이었다. 기업에 대해서도 다국적기업의 해외소득에 대한 과세강화, 석유 및 천연가스기업에 대한 세제우대정책의 폐지 등으로 3,535억 달러의 세입증대를 예상했다. 2010년도 예산안에서 서민생활의 안정과 관련해서 눈에 띄는 것이 바로 의료보험 분야였다. 2009년 세계보건기구가 발표한 자료(World Health Statistics of 2009)는 미국의 일인당 의료비용은 캐나다, 프랑스, 독일의 거의 2배, 영국의 2.5배를 지불했지만, 기대수명은 가장 짧은 현실을 보여준다(2006년 기준). 제약업계와 병원, 그리고 민간의료보험업계의 강력한 로비에 힘입은 의료비의 상승이 이러한 결과를 가져왔던 것이다(주6). 여기서 오바마의 선택은 앞으로 모든 미국인들이 의료보험에 가입하고 충분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2010년도 예산안에서는 향후 10년간 6,300억 달러의 기금(reserve fund)을 마련하며, 이것을 부유층증세에 의한 자금(3,178억 달러)과 의료시스템개혁에 의한 절약(3,160억 달러)에 의해 충당한다고 발표했다.

이러한 오바마의 노력은 2010년3월 ‘환자보호 및 구입 가능한 의료제공에 관한 법률’(Patient Protection and Affordable Care Act)의 제정으로 귀결된다. 이 법률에 의해 모든 미국인은 동일한 조건으로 의료보험에 가입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저소득세대에 대한 보조금에 의해 2,000만 명이 새롭게 보험가입자가 되고, 무보험자의 국민은 10%미만으로 되었다(주7).

<표 1> 미국재생·재투자법의 개요 (2009년 2월 17일 성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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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United States House of Representatives, Summary: American Recovery and Reinvestment, 2009년2월13일.

2) 성장전략으로서의 그린뉴딜

양극화를 해소하는 동반성장 모델은 서민 및 중산층에 대한 안정화정책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 동반성장을 이끌어갈 새로운 산업의 창출이 필요하다. 바로 여기에 ‘그린뉴딜’의 특징이 있다. 원래 그린뉴딜이라는 표현은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2008년 국제기후변화협약(COP14)이 회의장에서 발표했던 표현이었다. 재생 가능한 에너지의 도입, 에너지절약기술에 대한 투자를 통해 불황으로부터의 탈출을 주장하는 것이었다(주8).

대통령 선거운동이 한참이던 2008년 8월, 오바마는 ‘미국을 위한 새로운 에너지’(New Energy for America)’라는 선거공약을 발표했다. ①석유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정을 긴급 구제하고, ②클린 에너지에 대해서 향후 10년간 1,500억 달러를 전략적으로 투자하여 500만 개의 신규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와 함께, ③향후 10년 내 중동과 베네수엘라에서 수입하는 석유보다 더 많이 절약해서 이 지역에 대한 석유의존도를 없애며, ④2015년까지 1갤런(3.785리터) 당 150마일(약 241.4킬로)을 주행 가능한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100만 대 이상 생산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또한 ⑤총발전량에서 차지하는 재생 가능한 에너지 비율을 2012년까지는 10%로, 2025년까지는 25%로 향상시키며, ⑥2050년까지 온실효과가스의 배출량을 80% 삭감시키기 위한 탄소배출권거래제의 도입을 공약으로 내걸고 있었다(주9).

이러한 공약이 구체화된 것이 앞에서도 검토한 ‘미국재생·재투자법’이었다. 총 7,872억 달러의 사업비 중 직접적인 에너지대책비용(613억 달러)과 노후화된 건물 및 교량, 고속도로, 철도 등을 개보수함으로써 장기적인 에너지효율을 높이려는 각종의 사회간접자본투자(총 809억 달러)가 ‘그린뉴딜’의 내용으로 될 수 있다.

이후에도 오바마는 집권 8년간 환경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왔다. 2011년 2월에는 ‘미국의 이노베이션전략’(A Strategy for American Innovation: Securing Our Economic Growth and Prosperity)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하고, 특히 미래의 중점산업으로 클린에너지, 생명공학, 나노테크놀로지, 우주공간이용, 의료기술, 교육기술 분야를 선정하고, 이에 대한 시장 환경정비 및 투자 촉진계획을 발표했다. 여기서는 연방정부의 재정 및 세제지원을 통해, ①신재생에너지(기존의 수력발전 포함 태양광·풍력·지력발전)를 2008년 대비 2012년에는 2배로 증가시키고, ②바이오에너지 혼합의무제(Renewable Energy Standard)로 2022년까지 36억 갤런의 바이오에너지 사용을 촉진하며, ③3개에서 6개 정도의 에너지 중점연구단(Energy Innovation Hub)을 운영하며, ④약 4억 달러의 예산으로 100여개의 에너지연구프로젝트를 지원하며, ⑤에너지효율화산업(에너지절약건물)과 친환경자동차 산업을 육성하는 계획이 포함되었다(주10).

또한 재선된 첫해인 2013년 3월에는 연방정부가 배출하는 온실가스를 2008년 대비 40% 삭감하는 목표치를 제시하고 향후 10년간 사용전력의 30%를 재생 가능한 에너지로 전환함으로서 연방정부 에너지비용을 180억 달러 절약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연방정부는 미국전역에 36만채의 빌딩, 65만대의 차량을 소유하고, 연간 4,450억 달러의 에너지비용을 지출하고 있는 미국최대의 에너지소비자였다. 연방정부부터 저탄소경제를 위한 전환을 시작했던 것이다.

한편 ‘그린뉴딜’ 사업이 양질의 안정된 일자리를 가져올 것이라는 것 또한 이 정책을 실시하는 중요한 근거였다. 미국진보센터의 보고서 ‘녹색재생’에서는 향후 2년간 에너지효율개선을 위한 건축물개축, 대량수송교통기관의 확대, 지능형전력망구축, 풍력발전, 태양광발전, 차세대바이오연료 등 여섯 분야에 1,000억 달러를 집중적으로 투자한다면 새롭게 200만 명의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음을 강조했다. 창출되는 직종도 단순노무직이 아닌 엔지니어와 같은 기술직 비중이 높았다고 판단했다. 같은 액수를 일반소비지출에 사용할 경우(1.7백만 명), 혹은 석유산업에 투입할 경우(54만 명)보다 훨씬 많은 안정된 일자리가 창출되는 것이다(주11).

<그림 2> 1000억 달러를 투입했을 경우 창출되는 직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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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각국의 대응방식(2): 하토야마의 진보 실험?

1) 하토야마의 정책체계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는 일본에게는 자유민주당(자민당) 장기집권의 종언으로 귀결되었다(주12). 1955년 이후 장기집권을 유지해왔던 자민당은 2009년 8월30일의 중의원 총선거에서 완벽히 참패했다. 선거전 308석의 의석은 119석으로 반 이하로 줄어들었으며, 자민당의 아이콘이었던 유력한 정치인들도 국회라는 정치의 ‘장’에서 추방되어갔다.

2009년 9월 성립한 하토야마(鳩山由起夫) 민주당 정부는 기존의 자민당의 신자유주의적 개혁과는 다른 새로운 진보정책을 실험하기 시작했다. 서민들의 가처분소득을 올려 안정된 국내수요를 창출시키며, 토건을 지양하고 복지를 증대시키려는 노력이 바로 그것이었다. 하토야마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우애(友愛)를 키워드로 하는 새로운 자본주의를 주창했다. 그는 2009년 8월 10일 일본의 ‘Voice’라는 잡지에 기고한 ‘나의 정치철학’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말한 적이 있다(주13).

‘우애’란 프랑스 혁명의 슬로건인 자유·평등·박애에서 말하는 박애(fraternity)와 같은 의미다. 그의 조부였던 하토야마 이치로(鳩山一?, 1954-56년 일본수상)가 유럽통합의 선구자였던 쿠덴호프 칼레르기(Nikolaus von Coudenhove-Kalergi)의 저서를 번역출판 했을 때, ‘박애’를 ‘우애’라고 번역한 것에 기인한다.

그 기본정신은 ‘개인의 자립’과 ‘타인과의 공생’을 같이 추구하는 것이며, 구체적으로는 ‘보충성의 원리’를 정책전반에 실현하는 것이다. ‘보충성의 원리’란 다음과 같이 요약가능하다. 개인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개인이 해결하고, 해결할 수 없는 일은 가족이 해결한다. 가족이 불가능한 것은 지역의 시민사회가 돕는다. 여기서도 해결이 안 되면 행정부서가 관여한다. 기초단위의 정부가 가능한 것은 모두 그들이 해결한다. 불가능한 것은 광역정부 혹은 중앙정부가 해결한다. 외교, 국방, 거시경제정책 같은 것은 중앙정부의 역할이다. 이러한 문제해결의 동심원의 가장 외곽에는 지역공동체(가령 동아시아공동체) 혹은 지구공동체가 존재한다. ‘공생의 원리’에 입각한 신자유주의 비판, 가족과 지역공동체, 그리고 시민사회에 대한 강조, 통화협력까지 포함한 동아시아공동체에 대한 비전 등이 전체적인 이미지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개인의 자립’과 ‘타인과의 공생’을 가능하게 하는 정책은 무엇인가? 이것은 2009년 8월의 일본중의원 선거당시 민주당이 내걸었던 정책 공약집의 내용을 통해 확인해본다.

<표 2> 민주당과 자민당의 2009년 선거공약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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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 민주당, 『Manifesto 2009』, 『민주당정책 INDEX2009』/ 자민당, 『Manifesto 2009』, 『해설자민당중점시책 2009』.

첫째로 민주당의 Manifesto에서의 경제정책의 성격을 보면 전체적으로 가계의 가처분소득 증대를 통해서 내수를 확대시키고 이것을 기반으로 경제성장을 이룩하려는 성향이 강하다. 새로운 성장산업, 특히 IT, 바이오, 나노테크, 환경관련 산업을 중시하는 전략은 자민당이나 별반 차이가 없었다. 자민당정권시기 특히 2000년대 후반에 들어와 이러한 산업을 중심으로 일본을 재편성하려는 시도는 많았으며, 그러한 시대적 필요성은 민주당에도 그대로 적용된다(주14).

오히려 자민당과 비교했을 때 확실히 드러나는 것은 서민들의 가처분소득의 증대 정책에 있다. 가장 대표적인 공약이었던 ‘자녀수당’은 중학졸업까지 모든 자녀에 대해서 일률적으로 월 2.6만 엔(2010년에는 1.3만 엔)을 지급한다. 이 외에도 출산보조금(2,000억 엔), 공립·사립 고등학교의 수업료 감면(5,000억 엔) 등 육아·교육과 관련해서 가계의 가처분소득의 증가액은 6.1조엔 정도라고 주장했다. 연금수급자에 대한 세금경감(2,400억 엔), 개호노동자의 임금상승(8,000억 엔)도 계획했다. 그 외에도 최저임금의 인상(2,200억 엔), 능력개발수당의 지급(5,000억 엔), 자동차관련세의 잠정세율 폐지(2.5조엔), 고속도로의 무료화(1.3조엔) 등 복지를 강화하고 서민들의 가처분소득을 늘려가려는 성향이 무척 강했다. 내수를 증대시킴으로서 경제성장을 유지하려는 것이다.

둘째로는 ‘콘크리트에서 사람으로’라는 공약에서 잘 나타나듯이 불필요한 공공투자는 극력 억제하려 했다. 이것이 상징적으로 나타난 것이 바로 군마현(群馬?)에 건설 중이었던 얀바(八ッ場)댐의 건설을 중지한 것이었다. 얀바댐은 건설을 시작한지 이미 15년 지났으며, 총 건설비 4,600억 엔 중 3,210억 엔이 이미 투입된 상태였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얀바댐 주변지역의 토반이 약해 댐 건설에 무리가 따른다는 점, 그리고 환경파괴 등을 이유로 건설 중단을 발표했다(주15).

물론 자민당정권에서도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토건사업을 억제하는 정책을 일관되게 실시해왔다. 그리고 이미 일본 내에서 토건사업의 경제효과가 거의 없음을 이미 많은 학자들이 지적한 바 있었다. 이호리 도시히로(井堀利宏), 요시다 가즈오(吉田和男)와 같은 재정학자들은 경제데이터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통해서 공공투자의 효과가 거의 없었음을 강조했다(주16). 이에 따라 경기대책으로서 토건사업은 그 의미를 잃어가는 중이었다. 그러나 동경, 그리고 주변의 5개현(?)이 관계된 거대토목사업을, 이미 상당히 공사가 진행되었음에도 과감히 중지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였다. 바로 하토야마 정권이 가지고 있었던 친환경적·반토목적 성격을 아주 잘 나타내는 사건이었다.

셋째로 연금·의료의 증대, 고용보장, 육아지원, 환경 및 농업호보, 중소기업지원 등에 있어서 상당히 적극적이었다. 연금·의료에서는 모든 국민에게 최소 7만 엔의 연금지급을 약속했다. 고용에서도 직업훈련기간 중 월 최대 10만 엔을 지급하며, 2개월 미만의 파견노동의 금지, 제조업분야 파견의 원칙적 금지 등을 약속했다. 육아(출산보조금 55만 엔 등), 환경(온실가스의 획기적 감축), 농업(주요곡물의 완전자급화 추진), 중소기업(예산의 3배 증액, 중소기업법인세율의 7%p 인하) 등 실현하고자 하는 정책이 자민당보다는 환경 친화적이며 복지 중심적이다.

넷째로 하토야마는 정책이 기존의 ‘관료주도’가 아니라 ‘시민’과 ‘정치’주도로 이루어지도록 했다. 이러한 인식의 기반에는 명치유신 이후 정책결정의 중요한 축을 형성하던 관료집단이 점차 기득권화되어 일본의 개혁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인식이 강하다. 특히 정책실시에서의 시민단체(NPO) 및 지역주민조직과의 협업을 강조했다. 그는 앞서 언급한 논문, ‘나의 정치철학’에서 한 국가 속에 존재하는 官(행정), 民(기업), 公(시민단체 및 지역조직), 私(개인 및 가정) 중 선진국이 될수록 公의 영역이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하토야마가 지향하는 공생(共生)의 기반이 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이들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예산(100억 엔)을 상정하고 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정책 실행과정에서 ‘정치’의 역할강화였다. ‘Manifesto 2009’에서는 구체적으로 다음의 5가지 방책을 제시한다. ①장차관, 정무관으로서 국회의원 100명을 정부에 배치하고, ②기존의 관료중심의 사무차관회의는 폐지하고, 소수의 각료로 구성된 ‘각료위원회’를 활용하며, ③총리 직속의 ‘국가 전략국’을 신설하고, ④업적평가에 근거한 새로운 간부인사제도를 실시하려 했다. 여기에 ⑤낙하산인사를 전면 금지 또한 강조되었다. 명치유신 이후 오랫동안 유지되어 왔던 일본의 관료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개혁하려 했던 것이다.

2) 하토야마 정책 실패의 원인

서민들의 가처분소득을 올려 안정된 국내수요를 창출시키며, 토건을 지양하고 복지를 증대시키려는 노력, 그리고 이것을 강력한 ‘정치주도’에 의해서 실행해가려는 하토야마의 구상은 성공여부를 가름할 절대적 시간이 부족했다.

하토야마는 오끼나와(沖?)의 미군기지 이전문제에 대한 조정실패로 불과 9개월만인 2010년 6월 수상직을 사임한다. 후임인 칸 나오토(菅直人, 2010.6-2011.9) 또한 정책을 실시할 겨를조차 없었다. 2011년 3월 11일의 동북지방대지진과 후쿠시마(福島) 원자력발전소의 폭발은 민주당 정부가 실시하고자 했던 정책의 가용공간을 크게 저해하게 된다. 혼란상황에서 수상직을 이어받은 민주당의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2011.9-2012.12) 또한 마찬가지였다. 거듭되는 혼란 속에 민주당 정부는 ‘아마추어’라는 비판을 받으며 2012년 12월 자민당에게 다시 정권을 뺏기게 된다.

이후 수상이 된 아베 신조(安倍晋三, 2012.12-현재)는 민주당 정부의 정책과는 전혀 다른 ‘아베노믹스’라고 하는 친기업노선을 채택한다. 대형재정투입과 물가상승률 2%를 목표로 하는 무제한적 금융완화, 엔저유도, 법인세 감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정식참여결정 등 기업에게는 아주 유리한 환경을 조성해 갔다. 그러한 면에서 복지와 서민의 가처분소득 증대라는 정책을 통해 일본경제를 재건시키려 했던 민주당정부의 정책은 아주 짧은 시간의 ‘실험’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민주당 정부의 진보정책의 목표와 한계를 잘 살펴보는 것은 한국의 진보정책의 구상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민주당 정부가 불안했던 이유는 미군기지이전과 관련된 국내정치의 불안, 동북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의 폭발 등 대형악재가 연이어 터진 까닭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들이 지향하고자 하는 정책이 국민에게 신뢰를 제대로 주지 못한 것도 사실이었다.

첫째, 하토야마의 모든 계획은 재원마련에 대한 구체성을 결여되어 있었다. 민주당의 ‘Manifesto 2009’의 내용대로라면 추가로 소요되는 비용은 2013년 16.8조 엔에 달했다. 이것은 2008년도의 국가예산인 83.1조 엔의 20%에 해당하는 액수다. Manifesto에서는 정부의 낭비를 줄임으로서 9.1조 엔 절감이 가능하며, 특별회계에 누적되어 있는 자금(埋?金) 사용과 정부재산의 매각에 의해 5조엔, 그리고 세제개정을 통해 2.7조엔 등 총 16.8조 엔의 염출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증세 없는 세출삭감의 노력은 자민당 정권하에서도 2000년대 내내 강조되어 왔던 것이며,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특별한 성과를 낼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었다. 16.8조 엔의 재원조달계획을 면밀히 검토한 한 보고서에 따르면 적어도 16.8조엔 중 5.1조 엔에 대해서는 상당히 무리가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주17).

둘째로 재정압박에 대응한 증세에 대한 결론도 또한 거의 ‘유보’되어 있었다. 적어도 자민당정부에서는 이 부분이 더욱 구체적이었다. 자민당정부는 2000년대 후반 개인소득세 감세의 폐지, 소비세율의 인상의 방향으로 정책을 조율했다(주18). 정부도 공식적으로 2005년 6월 ‘개인소득세에 관한 논점정리’라는 문건을 통해서 앞으로 소득세의 정률감세를 폐지함과 동시에 급여소득공제 및 배우자공제 등과 같은 각종공제제도의 정리 및 축소방침을 발표했다. 이후의 각종 발표에서도 ‘소비세율의 재검토’라는 단어가 빈번히 사용되었다(주19). 일본식 정치어법에서 소비세율의 ’재검토’란 소비세율의 ‘인상’이라는 의미이며 향후 소비세율의 인상은 적어도 자민당정권 하에서는 이미 예측된 것이었다(주20).

증세의 방식은 달랐으나 일본의 좌파정당들도 일단 증세에 대해서 적극적이었다. 사회민주당의 ‘Manifesto 2009’에서는 복지예산증대를 위한 재원으로서, 행정낭비(불필요한 공공사업중지, 방위비삭감, 미군주둔분담금 폐지 등)를 없앰으로서 연간 4조엔, 특별회계 상의 적립금·잉여금 활용에 따른 연간 6조엔, 증세(법인세, 고소득자의 소득세 등)를 통한 연간 4조엔 등 총 14조엔을 조달한다고 약속했었다. 일본공산당에서도 복지예산증대를 위해서 연간 5조엔에 달하는 군사비, 2,500억엔에 달하는 미군주둔분담금, 320억엔의 정당조성비를 줄이고 대기업 및 자산가를 대상으로 한 감세(7조엔)를 다시 복원시키면 충분한 재원을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는 인식이었다. 그러나 민주당의 ‘Manifesto’에서는 증세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다. 솔직하지 않았던 것이다.

셋째로 재정적자문제에 대해서 일본정부가 둔감한 이유는 그것이 현재 경제적 부담으로 즉각 작동되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이 앞으로 계속 유지될 것이라고 장담하기는 어려웠다. 일본은 현재 1,600조엔에 달하는 개인금융자산과 90조엔의 외화보유액을 가지고 있으며, 국채의 약 95%가 국내에서 소화되고 있다. 이것은 국채의 40% 이상을 해외에 의존하고 있는 미국, 그리고 이보다도 훨씬 큰 러시아 등과 같은 개도국과는 사정이 전혀 성격이 다르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단기금리가 이미 하한(제로금리)에 도달하고 있으며, 장기금리도 1%대까지 하락된 상황에서 금리하락의 여지는 상당히 제한되어 있다. 이러한 상태에서 계속 국채가 누적되어 간다면, 재정의 유지가능성에 대한 시장의 불신이 커져 결국은 금리가 상승할 가능성은 크다고 봐야한다. 국채증가→금리상승→이자지급금상승→국채증가의 악순환에 빠지는 것이다.

넷째로 복지 지향적 정책이 지속가능하려면 그것이 미래의 성장과 연계되어야 한다. 일본에 있어서 그 경로는 생활안정이 소비증진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재정건전성의 확보, 향후 성장 동력에 대한 확신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 단기적인 가처분소득의 증가가 소비촉진이 아니라 저축증가로 나타나게 되는 경우도 충분히 가능해진다. 특히 고령화 사회, ‘100살까지 살지도 모르는 불안감’이 팽배한 사회는 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책의 일관성, 정권의 안정성, 그리고 미래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확신이었다. 그러한 안심감이 국민의 호주머니를 열게 하며, 금고 속에 축적된 1829조엔(2017년말현재)을 소비증진에 전환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민주당 정부는 이러한 신뢰를 주기에는 너무나 역부족이었다.

4. 이명박 정부의 그레이 뉴딜

1) 감세·재벌규제완화와 경제성장의 논리

금융위기에 직면하여 한국의 이명박 정부는 부자감세와 재벌규제완화, 그리고 토건 경제로 위기를 극복하려 했다. 이것은 오바마, 하토야마 정부와는 전혀 다른 방식의 대응책이었다. 그러나 각각의 정책이 위기대응에 유효하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했다(주21).

2008년 2월 5일 발표된 이명박 정부의 국정과제는 소위 5대 국정지표, 21대 전략목표, 192개 전략과제로 요약된다. 192개 전략은 다시 43개 핵심과제, 63개 중점과제, 86개 일반과제로 정해진다. 여기서 많은 과제들은 이전의 노무현 정부 정책과 중복된다. 새로운 성장 동력의 창출, 서비스산업의 육성, 평생학습사회의 구축, 적극적 대외개방정책, 공공부분의 개혁 등과 같은 과제들은 이명박 경제정책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IMF환란 이후 한국경제에게 제기된 문제, 즉 세계화에 대응한 중장기적 성장 동력의 창출이라는 과제는 많은 경우 공통의 정책을 요구한다. 정략적 의도에 의한 ‘좌파정권 10년’이라고 비판하는 것을 논외로 한다면, 적어도 민주화된 국가에서 한 정권이 지향했던 이념, 정책, 정치행위는 일정 정도 국회와 언론, 그리고 시민사회의 견제 속에서 사회적 논의 과정을 겪었음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권의 차이’를 넘어서는 연속성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가 이전의 노무현 정부와 차이가 나는 점은 경제정책의 무게중심을 현저히 감세와 규제완화에 의한 성장으로 방향을 잡았다는 것이다. 거의 모든 우파정권에서 전가의 보도처럼 지향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경제 살리기의 주요한 정책수단으로 사용된 감세와 재벌규제완화가 어떻게 기업의 투자증대로 연결되는지, 그리고 새로운 일자리창출로 귀결되는지, 명확한 논리를 제시하지 못했다. 감세의 경제성장효과의 교과서적인 일반론 외에 구체적으로 한국사회에 적용되는 분석을 필자는 알지 못한다. 2008년 3월10일의 기획재정부의 대통령업무보고에서는 조세연구원의 연구(2008년1월)를 인용하며, 법인세율 1%p 인하 시 국내투자 2.8% 증가, 고용 4만 명 증가, 외국인투자 0.4조원 증가, 명목 GDP 0.2% 증가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러나 정확한 계산의 근거는 제시되지 않았다(주22).

첫째로 기업에 대한 법인세 등을 감면시키면 과연 투자가 늘어날 것인가는 한국경제의 주력 기업들이 이미 투자할 ‘돈’이 충분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리 실효성이 없었다. 증권선물거래소에 따르면, 유가증권 시장에 상장된 12월 결산 546개 제조업체의 2007년 말 현재 유보율(잉여금/자본금)은 675.57%이다. 조사 대상 업체의 잉여금(자본잉여금+이익잉여금) 총액은 358조1,501억원에 달한다. 10대 그룹(자산 기준)에서는 삼성의 유보율이 1,488%(잉여금 69조8,548억원)로 가장 높았고 현대중공업(1,398%), SK(1,378%), 롯데(1,194%), 한진(824%) 순이었다. 도대체 이러한 상황 속에서 법인세의 감세가 어떻게 투자의 증대로 연결된다는 것인가? 문제는 투자할 ‘돈’에 있는 것이 아니라 투자할 ‘곳’에 있는 것이다. 투자할 ‘곳’이 마땅치 않아 막대한 자금을 기업내부에 쌓아두고 있는 현실 속에서 기업의 자금여력을 확대시키는 정책은 기업의 투자증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둘째로 재산세, 부동산양도소득세, 상속세, 근로소득세 등의 각종 감세프로그램이 어떻게 민간소비지출 증대에 따른 경제성장으로 연결되는지도 분명하지 않았다. 한국의 소비부진은 특히 자영업자 등과 같은 서민계층의 소득부진에 기인하고 있는 바 크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한국의 서민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2008년 1/4분기 통계청의 ‘가계수지동향’에서 전국 가구의 소득 5분위별 소득과 지출(월평균)을 살펴보면, 하위 Ⅰ, Ⅱ, Ⅲ 분위의 가계(전체의 60%)들은 적자거나 아니면 아주 조금밖에 저축하지 못하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최하층은 월평균 87만원을 벌고 131만원을 써서 44만원의 적자를, 다음 계층은 8천원의 흑자를, 그 다음은 23만원의 흑자를 보이고 있다. 흑자라 하더라도 이들 계층이 각종의 주거, 교육, 사적보험지출 등에서 극히 열악한 상황에 처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생활비를 최대한 억제한 상황 속에서의 약간의 ‘흑자’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면 지금의 각종 감세계획이 이들에게 혜택을 줄 것인가? 또한 이들의 소비를 증대시킬 것인가? 상속세의 경우 기초공제, 배우자 상속공제, 가업상속공제, 금융재산 상속공제 등 각종 공제제도가 많아 10억원 미만에 대해서는 세율 30%와 관계없이 세금이 전혀 붙지 않는다. 부동산양도소득세도 현행법상 6억원 미만의 1세대 1주택에게는 비과세 혜택이 돌아간다. 소득세의 경우도 국민의 절반이 과세점 미달로 한 푼도 내지 않는다. 대다수의 서민들에게 있어서 세금은 내고 싶어도 낼 ‘돈’이 없는 것이다. 물론 상속세, 부동산양도소득세, 소득세 감면의 혜택이 부자들에게는 커다란 혜택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이미 ‘소비부진’의 상태가 아니다. 따라서 애초부터 각종 감세로 인해 서민들의 소비를 증대시키겠다는 시나리오도 크게 유효성이 없었던 것이다.

결국 실시된 것은 경제성장효과를 제대로 증명할 수 없는 단순한 부자감세라는 정책이었다. 정부의 ‘2008년 세제개편안’에 따르면 전체감세의 58%가 중산서민층·중소기업에 귀착된다고 말했다(주23). 그러나 기준으로 삼은 8,800만원을 중산서민층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2006년의 과세자료를 기준으로 한다면 8,800만원의 과세기준은 연봉 1억2600만원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표 3> 감세에 따른 조세부담 및 재정지출 혜택 변동

표_3

자료) 이종석, 「감세, 과연 모두에게 남는 장사인가?: 정부 세제개편안의 소득계층별손 익분석」, 진보신당정책보고서, 2008년.

당시 진보신당의 정책보고서의 분석에 의하면, 전체 근로소득자 1,259만5천 명의 47%인 597만4천 명과 전체 종합소득자(주로 사업소득자) 458만1천 명의 49%인 224만6천 명은 면세자여서 소득세율 인하를 통해 아무런 혜택도 볼 수 없었다. 세금감면 혜택을 보는 경우에도 서민층이라 할 수 있는 과세표준 1,200만원(연봉 3,735만원) 이하의 경우 1인당 감면효과가 5만 원인데 반해, 과세표준 8,800만 원을 넘는 최상위 소득자의 경우 354만 원에 달했다. 만약 감세된 만큼 복지관련 예산도 줄어든다고 가정한다면, 순혜택(감세액과 재정지출혜택의 차이)의 변동에 있어서 상위소득 30%만 늘어나며 나머지는 축소되는 것이었다(주24).자료) 이종석, 「감세, 과연 모두에게 남는 장사인가?: 정부 세제개편안의 소득계층별손 익분석」, 진보신당정책보고서, 2008년.

한편 금산분리완화 및 출자총액제한폐지와 같은 재벌규제완화가 어떻게 신규투자로 연결되는지도 명확하지 않았다. 만약 재벌규제완화가 경제성장으로 연결되려면 당연히 신규설비투자의 증대로 이어진다는 논리를 설명했어야만 했다. 그러나 이 또한 제대로 설명된 바 없었다. 실제로 공정거래위원회 자료에 의하면 2007년11월 현재, 총 11개 출자총액제한 기업집단 소속 399개사 중 397개사(99.5%)는 출자총액제한을 아예 받지 않거나 혹은 받더라도 자유롭게 출자할 수 있는 기업들이었다(주25).

출자총액제한 때문에 투자가 어렵다는 재벌들의 주장은 ‘현실’이 아니었던 것이다. 금산분리완화도 많은 경제학자들이, 재벌의 사금고로 은행이 전락하며, 이에 따른 부실화 가능성을 우려했음에도 불구하고, 또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의 세계적인 금융규제강화의 움직임에 역행하고 있음을 지적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국회에서 통과시켜 버렸다(2009년4월30일)(주26).

오바마, 하토야마의 동반성장 시도에 비해 한국 이명박 정부는 양극화성장의 길을 걸어갔다. 이명박 정부는 한국을 어떻게 복지사회로 만들어가겠다는 논리적 경로 혹은 비전이 존재하지 않았다. 2008년 3월 13일의 보건복지부의 대통령업무보고서에는, 이명박 정부의 키워드 중 하나인 ‘능동적 복지’를 “빈곤과 질병 등 사회적 위험을 사전에 예방하고, 위험에 처한 사람들이 일을 통해 재기할 수 있도록 돕고, 경제성장에 기여하는 복지정책”을 의미한다고 써져 있었다. 그러나 ‘능동적 복지’의 정책 속에서는 복지관련 예산은 가장 후순위로 밀려나있다. 같은 해 9월에 제출된 ‘2009년 예산안’에 의하면 보건복지가족부의 세출은 10.7%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증가된 예산 가운데 참여정부 시기 만들어진 법 집행을 위한 자연증가분 즉, 법정지출경비를 제외하면 재량지출은 오히려 1.4% 감소했다. 경제위기 속에서 복지예산은 대폭 증액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는 감소한 것이다(주27).

국민은 늙어가고 있으며 중산층이 붕괴되어가는 현시점에서 복지예산의 증가가 시급하다는 것은 상식적인 결론이었다. 그런데도 이명박 정부의 ‘능동적 복지’ 정책에서는 감세 및 규제완화를 통한 선(先)성장과 후(後)복지의 단순논리로 일관하고 있었다. 감세 및 규제완화가 한국적 상황에서 성장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이 글 전체의 논리에서 따진다면, MB의 경제정책은 단순한 부유층만을 위한 특혜성 정책에 불과했던 것이다. 따라서 후(後)복지라는 개념도 당연히 성립하지 않는다.

2) 토건경제와 비민주적 정책결정

이명박 정부의 감세와 재벌규제완화의 경제효과가 여의치 않았을 때 꺼내든 카드가 바로 대대적인 토건사업구상이었다. 이명박 정부의 토건지향성은 2008년 1월9일 발표된 한국형 ‘녹색뉴딜’ 사업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정부는 “녹색과 뉴딜을 함께 추진함으로써 저탄소,친환경,자원절약의 경제를 실현”한다고 발표하고, 4대강 유역개발 등과 같은 핵심사업 9개, 재해위험지구정비사업 등과 같은 주변사업 27개를 발표했다. 총 50조원이 소요되는 이 사업의 핵심도 역시 4대강개발이라는 토건사업이었다. 이후 6월8일에는 기존의 13조9천억원의 사업비를 22조2천억원으로 늘리고 토건에 의한 ‘경제살리기’를 본격화시켰다.

<표 4> 그린뉴딜사업의 개요

표_4

자료) 정부기관합동,「일자리창출을 위한 ‘녹색뉴딜사업’ 추진방안」, 2009년1월6일.

애초부터 ‘그린뉴딜’이란 단어가 포함하는 국제적 문맥은 양극화해소, 안정된 일자리창출, 청정에너지경제, 금융의 규제강화 등 다양한 내용을 포함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국제적 문맥이 한국에서 번역되었을 때에는 4대강개발이라는 토건경제로 탈바꿈했다. 2번(08년6월19일, 09년6월29일)에 걸쳐 한반도대운하를 포기하겠다고 약속했던 대통령은, 자신의 ‘토건입국’의 꿈을 4대강개발이라는 형태로, 더구나 ‘그린뉴딜’이라는 당의정(糖衣錠)을 입혀 계속 진행했다. 정부는 4대강개발이 물부족과 홍수피해를 근원적으로 해결하고, 수질을 개선할 것이라고 선전했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들은 하천준설과 보 건설을 중심으로 하는 이 사업이 물부족 해소에 전혀 도움을 주지 않으며, 중장기적으로 홍수피해를 더욱 크게 할 것이라는 우려를 강하게 제기했다(주28).

가장 큰 문제는 이 모든 사업이 제대로 된 검증작업을 거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우리의 국가재정법상에 규정된 예비타당성조사는 보통 5-6개월 소요되며, 이것을 통해 사업의 경제성, 문화재 및 환경에 대한 영향 등을 평가하도록 되어있었다. 그러나 정부는 작년 8월과 9월 국가재정법시행령을 개정하여, 4대강개발 사업에 대한 예비타당성조사를 대부분 면제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형식적 공청회를 거쳐 사업실시를 위한 토지보상에 돌입해 나갔다.

이러한 정책의 비민주적 태도는 정권초반기부터 계속 유지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정권초기 대대적인 촛불시위에 직면했던 쇠고기협상과 관련된 혼란과정이었다. 30개월 이상 된 쇠고기의 안전성에 대한 과학적 논란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변형 프리온, 특정위험물질(SRM), 크로이펠트야코프병 등과 같은 전문용어는 거기에 합당한 전문가들이 논의하면 된다. 2억5000만 미국인도 모두 먹는데 뭐가 문제냐는 논법도 국민들을 안심시키기에는 역부족이다. 중요한 것은 차분히 국민을 설득하는 과정이었다. 그런데도 이 모든 것이 생략되었다. 그리고 끊임없이 말과 태도를 바꾸어 나갔다. 한·미 정상회담이 시작되기 불과 몇 시간 전에 쇠고기협상이 서둘러 타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상회담과는 전혀 별개였다고 말을 했다. 어물쩍한 추가협상보다 더 엄격한 기준으로 재협상해야 한다는 국민의 의견이 74%나 되는데도(주29), 90% 잘된 협상이라고 박수를 쳤다. 비단 쇠고기문제만이 아니다. 감세, 재벌규제완화, 4대강사업 등 각종 논란 속에서 제대로 된 의견수렴은 생략되었었다. 그 흔한 공청회도 열리지 않으며, 반대진영을 설득하고 있다는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 국민들의 눈높이와는 전혀 다른 ‘그들’만의 세계 속에 갇혀버린 것이었다.

5. 진보적 경제정책의 전제조건

이명박 정부의 ‘그레이’뉴딜의 본질은 바로 ‘버블’을 ‘버블’로, 그리고 ‘양극화’를 ‘양극화’로 해결하려는 것에 불과했다. 부동산버블이 꺼졌을 때 꺼내든 카드는 바로 대대적인 부동산 규제완화와 토목사업 구상이었으며, 부자감세와 재벌기업의 성장이 국민경제 전체로 확산되지 않는다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양극화성장의 가속페달을 밟았다. 그리고 그 모든 정책에 대한 각계의 비판에 전혀 개의치 않고 자신들만의 세계 속에 갇혀 고집스러울 정도로 ‘홀로’ 달려갔다.

이에 비해 미국 오바마 정부는 ‘청정경제’와 ‘동반성장’을 통해 경제를 살리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이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평가되었다. 2008-2009년에 걸쳐 870만명이 일자리를 잃었으나 2010년-2014년까지의 5년간 1019만명의 고용을 창출했다(주30).

일본 또한 하토야마 정부가 발족하고 장기불황에 대한 대응으로 서민 가처분소득 향상을 통한 경제성장을 추진했다. 그러나 9개월 만에 정부가 무너지고 이후의 정치적 혼란과정에서 일본 민주당의 진보정책은 짧은 ‘실험’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2008년에 벌어졌던 세 나라의 금융위기 대응방식은 몇 가지 앞으로 우리가 한국경제를 생각하는데 있어서 고려해야할 중요한 시사점을 알려준다.

첫째로 복지란 중요한 성장정책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에 복지증가→내수증가의 경로를 따라 성장전략을 구상하려 한다면 복지의 지속가능성, 정권과 정책의 안정성 여부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2008년 경험에서 미국과 일본의 경우 복지강화가 중요한 경제위기 탈출의 수단이기도 했다. 오바마는 의료보험개혁과 서민감세를 통해 국민생활을 안정화시키려 노력했다. 일반노동자 및 중산층 대상으로 감세를 실시했으며,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의료·교육·생활관련 보조금을 확대시켰다. 가장 힘을 쏟은 것 중 하나는 의료보험을 서민층에 까지 확대시켜 가는 것이었다. 선진국 중 거의 유일하게 많은 국민들이 의료보험의 보호에서 벗어나 있는 상황을 개혁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이것을 위한 재원을 부유층에 대한 증세에 형태로 방향을 명확히 했다.

하토야마 정부 또한 각종 서민의 가처분소득을 늘려간다는 방식의 정책을 실시했다. 자녀수당, 출산보조금, 공립·사립 고등학교의 수업료 감면, 연금수급자에 대한 세금경감, 최저임금 인상,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연금지급 등 복지정책을 강화했다. 잘만 하면 1,800조엔 달하는 고령층을 중심으로 한 개인금융자산이 소비로 연결될 수 있었다. 이들의 자산이 유효수요를 통해 성장과 연결되는 것이다.

그러나 하토야마의 실험은 성공하지 못했다. 가장 큰 문제는 정권의 안정성과 관련된 것이었다. 하토야마-간-노다로 이어지는 잦은 총리 교체는 국민의 심리적 안정감을 저해했다. 100살까지 살지도 모르는 불안감으로 저축을 거듭하는 고령화된 일본에서 미래에 대한 안심감을 제공하는 것은 유효수요 진작의 최대 정책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었으나 실패했다. 복지정책의 지속성에도 의구심이 있었으며 국가예산의 20%에 달하는 추가재정지출 조달계획 또한 설득적이지 않았다. 여기에 2011년 3월 동일본대지진 이후 혼란상황은 일본경제를 더욱 축소균형의 세계로 달려가게 했다.

적어도 일본의 실패의 경험은 복지란 그대로 소비증가와 경제회복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려준다. 복지증대에 의해서 발생한 현재 가처분소득의 증가가 미래 지속가능할 것이라는 예측이 없는 한 사람들은 소비지출을 저축증가로 전환하는 경향 또한 강화된다. 정책의 유지가능성에 대한 신뢰가 중요한 이유다.

둘째로 ‘토건국가’ 체질의 전면적 수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건설업의 GDP 대비 부가가치 비중은 2006년 기준 우리나라가 7.7%로서 영국(6.8%), 독일(4.0%), 프랑스(6.3%), 미국(5.3%, 2005년), 일본(6.1%, 2005년)보다 높았다. 국민경제 전체에서 차지하는 건설업의 높은 비중, 그리고 한국의 가계자산 및 부채 증에서 부동산 관련 부분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측면을 고려한다면 부동산 관련 정책은 한국에서 상당히 민감한 경제적, 정치적 함의를 가진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의 경제위기에서도 정부는 2009년 9월21일의 건설업지원대책, 11월3일의 건설업체 소유토지와 미분양아파트의 매입, 각종의 부동산규제완화, SOC투자에 대한 대대적인 재정지출 등을 발표한 것이다. 부동산버블이 꺼졌을 때 경기대책으로서 다시 부동산버블을 조장해야만 하는 악순환의 고리에 한국경제는 빠져있다. 안정된 주거환경의 개선과 국토의 파괴를 막기 위해서는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과감히 끊어내야만 한다.

오마마 정부는 1930년대 루즈벨트 대통령 시절에 행해지던 테네시강유역개발(TVA)과 같은 토건경제에 의존하지 않았다. 그들은 건물과 도로를 새롭게 만드는 경우에도 에너지절약(에너지절약건물 및 친환경자동차 등)과 신재생에너지(태양광발전, 바이오연료 등) 사용에 연결시켰다. 친환경재생에너지, 각종 에너지절약기술을 미래산업의 중요한 축으로 만들고 이러한 산업육성에 적극적이었던 것이다.

일본에서도 토건사업의 경제기여도가 점차 작아지고 있음은 1990년대의 불황과정의 대응에서 충분히 검증된 것이었다. 따라서 보수적인 자민당 정부이던 진보적인 민주당 정부이던 간에 정부의 토건사업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었다. 일본의 하토야마 정부도 얀바(八ッ場)댐 건설을 중지하는 것과 같이 ‘토건’과의 결별을 분명히 했다. 하토야마 또한 기존의 IT, 바이오, 나노테크와 같은 첨단산업과 함께 환경관련의 녹색산업 속에서 일본의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려 했다. 그러나 한국의 경험은 4대강사업이라는 전통적인 공공투자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당시 스스로 토건사업의 전문가를 자처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시대착오적 상상력 빈곤일수도 있다. 아니면 임기 내에 무언인가 성과를 내야만 한다는 조급증의 반영일 수도 있었다. 한국의 선택은 그린뉴딜이라는 국제적 맥락과는 전혀 다른 구태의연한 경제위기 대응방식이었다.

셋째, 민주적 경제 거버넌스는 아주 중요하다는 점이다. 경제성장이란 단순한 양적인 성장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결과로서 나타나게 되는 성장은 바로 사회 전체 시스템의 정비의 결과이기 마련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한정된 돈과 사람 그리고 기술을 조직화하는 사회적 능력이며, 민주사회에서의 그것은 투명성하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져야만 한다.

그러나 당시 한국에서의 정책결정과정은 문제가 많았다. 금산분리완화, 감세, 환율정책, 4대강개발 등 민감한 정책사항에 대해서 제대로 된 공청회도 열리지 않았으며, 단지 자신의 논리에 대한 일방적 선전만 있었다. 각종의 국책연구기관을 동원하여 이들을 단순한 정권의 ‘마우스 탱크’로 전락시켜 갔다.

필자는 경제정책에 있어서 확실한 ‘정답’은 없다고 평소 생각하는 편이다. 그것보다는 오히려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파악한다. 이때 가장 필요한 것은 논의과정의 ‘투명성’과 정책실시의 ‘점진성’이라는 점이다. 일거에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는 환상을 버리고 이해관계자들의 토론과 합의에 의한 중간적 해결방안의 꾸준한 실시가 더욱 중요하다. 민주사회에서는 때로는 천천히 가는 것이 더욱 빨리 가는 것이다. 일사불란하게 돌진하는 것은 군대나 기업에서는 효율적일 수 있다. 명령에 의해 적진돌파를 감행하거나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것은 바로 그 명령을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민주사회는 다르다. 끊임없는 협상과 타협을 통해 중간점을 만들어 가지 않는 한, 사회구성원의 대립과 반목은 정책의 실효성을 떨어뜨리기 마련이다. 느리지만 차분한 방향설정과 견실한 일보전진이 목표에 더 빠르게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민주사회의 역설(逆說)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개혁은 할 수 있을 때 해야 한다는 정치 공학적 발상은 정책담당자들의 판단의 신성불가침적 오만과 독선을 나타낼 뿐이다. 그리고 그러한 오만과 독선으로 인해 우리는 그동안 막대한 경제사회적 비용을 지불해 왔다. 따라서 만약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이 아니라면 국민설득의 절차를 밟으며 천천히 진행시켜 가는 것이 옳다. 교과서적 민주주의론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느리지만 국민의 동의를 얻어가며 실시되는 정책만이 정책 실시과정에서 유발되는 경제사회적 비용을 최소화시키는 ‘현실적’인 요소임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국가와 시장만이 아니라 시민사회의 역량을 어떻게 증진시켜 갈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다. 핵심은 사회의 자기복원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우리는 노동하고 소비하는 단순한 호모에코노미쿠스가 아니다. 때로는 무상노동의 자원봉사자이며 좋은 일에 대한 기부자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다양한 시민참여를 잘 조직해야 한다. 기부관련세제의 재정비, 청년들의 혁신적 참여를 독려하는 청년국가봉사단 구상(미국의 Americorp), 하토야마 정부에서 한 것과 같은 국정 파트널로서의 제3섹터의 중요성 인식(새로운 공공)은 모두 다 시민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한 장치들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필자는 경제정책에 확실한 정답이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진보적 경제정책, 보수적 경제정책 모두 성공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중요한 것은 누가(능력) 정책을 펼치는가? 이며 정책과 정책 간(재정/금융/산업/지역 등)의 논리적 정합성이 얼마나 정비되어 있는가에 달려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하나의 키워드로 설명하는 것 또한 필요하다. 박정희의 잘 살아보세(새마을운동), 데이비드 캐머런의 빅소사이어티 등의 키워드는 정책의 목표, 수단, 실현가능성이 잘 표현된 사례이다.

많은 경우 정책의 실패는 ‘정책논리성’과 ‘정책패키지능력’의 부족 때문에 생긴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①성장전략으로서의 서민가처분증진정책, ②재정의 지속 가능성정책, ③그린 성장전략, ④민주적 정책실시, ⑤시민사회연계전략 등의 각개 정책들이 논리적으로 잘 연결되어 하나의 정책패키지로 완성해 가는 것, 그것을 단순한 ‘언어’로 국민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패키지화’시키는 것, 그것이 정책이 성공할 조건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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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80년대 이후의 미국 경제의 흐름에 대해서는 라비 바트라(Ravi Batra), Greenspan’s Fraud(황해선 옮김, ????그리스펀 경제학의 위험한 유산????, 돈키호테, 2006년), 앤드류 글린(Andrew Glyn) Capitalism Unleashed: Finance, Globalization and Welfare(김수행·정상준 옮김, ????고삐 풀린 자본주의????, 필맥, 2006년) 참조.

2. 미국의 금융규제 완화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의 관계는 유종일, ????위기의 경제????, 생각의 나무, 2008년의 제1장, 그리고 伊藤誠, ?サブプライム金融危機を考える: 日本の??と比較して?(????日本?士院紀要????, 63권2호, 2008년) 참조.

3. 이 내용은 김종걸, 「오바마의 그린뉴딜 vs. MB의 그레이뉴딜」(코리아연구원특별기획 26-2호. 2009년 6월)의 내용의 일부를 수정한 것이다.

4. Center for American Progress, Change for America: A Progressive Blueprint for the 44th President, 2008.11, http://americanprogress.org참조.

5. United States House of Representatives, Summary: American Recovery and Reinvestment, 2009.2.13., 참조.

6. 미국의 의료시스템, 제약업계의 로비실태 등에 대해서는 Marcia Angell, The Truth about the drug companies: how they deceive us and what to do about it, 강병철 옮김,「제약회사들은 어떻게 우리 주머니를 털었나」, 2004년(도서출판 청년의사)에 상당히 잘 묘사되고 있다.

7. https://www.gpo.gov/fdsys/pkg/PLAW-111publ14 8/pdf/PLAW-111publ148.pdf.

8. 일본의 환경정책전문가인 마에다 이찌로(前田一?)는 국제환경경제연구소 홈페이지에 2013년8월부터 2014년 10월까지 총 20회에 걸쳐 ‘오바마 정부의 환경에너지 정책’에 대해 연재하고 있다. 그린뉴딜에 대한 어원도 마에다의 설명이다. http://ieei.or.jp/2013/08/special201308_01_001/.

9. Barack Obama and Joe Biden: New Energy for America, 2008.8.3.,

http://www.barackobama.com/pdf/factsheet_energy_speech_080308.pdf

10. The White House, A Strategy for American Innovation: Securing Our Economic Growth and Prosperity, 2011.2.

https://obamawhitehouse.archives.gov/sites/default/files/uploads/InnovationStrategy.pdf

11. Center for American Progress, Green Recovery; A Program to Creat Good Jobs and Start Building a Low-Carbon Economy,2008.9, http://americanprogress.org 참조.

12. 이 내용은 김종걸, 『하토야마 민주당의 불안한 ‘진보’실험』(코리아연구원 참고자료, 2009년 6호)의 논의를 축약한 것이다.

13.?http://web.archive.org/web/20090814210523/http://www.hatoyama.gr.jp/masscomm/090810.html

14. 자민당정무조사회의 보고서(『力?い日本の復活に向けて』2008년6월4일), 일본내각의 결정사항 보고서(『日本??の進路と?略』2008년1월18일), 경제자문회의보고서(『??成長?略』2008년6월10일)에서는 첨단산업과 환경산업을 중심으로 일본의 산업이 재편되어야함을 누차 강조하고 있었다.

15. 「일 얀바댐 중단 논란은 4대강의 미래?」(오마이뉴스, 2009년11월16일).

16. 이호리 도시히로(井堀利宏 등), 「90年代の財政運?:評?と課題」(財務省財務?合政策?究所、『フィナンシャル?レビュ?』、2002년7월), 요시다 카즈오(吉田和男)、『日本??再建「?民の痛み」はどうなる』(講談社、2001년) 참조.

17. 쿠사바 요우가타(草場洋方 등),「民主?政?の政策と??へのインパクト」(『みずほ日本??インサイト』2009년8월31일).

18. 전체 세수입의 20%를 차지하는 법인세의 경우 전 세계적인 법인세인하 경쟁의 영향도 있어서 세율은 계속 인되는 추세에 있다. 일본의 법인세율은 1988년의 40% 정도에서 98년 이후에는 30%로 인하되어 왔다. 그럼에도 실효법인세율(법인세 및 지방세를 포함한 기업의 조세 부담률)은 2008년 일본은 41%로서 미국과 거의 동등한 수준이며, 영국 28% , 독일 30% , 프랑스 33%에 비해서는 무척 높다. 따라서 일본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에서 법인세율 인상과 관련한 어떠한 논의도 진행되고 있지 않다고 보인다.

19. 政府?制調査?、『個人所得?に?する論点整理』(2005년6월). 政府?制調査?、『?本的な財政改革に向けた基本的考え方』(2007년 11월). 日本閣議決定文、『??財政の中長期方針と10年展望』(2009년 1월).

20. 소비세인상을 통해 재정재건을 해야 한다는 것은 일본의 재정학자들의 주류담론이다. 현재의 소비세율 5%는 선진주요국 중에서도 최저수준이다. 저명한 재정학자인 이호리 도시히로(井堀利宏)는 『「小さな政府」の落とし穴』(日本??新新聞出版社, 2007년)라는 저서에서 소비세를 앞으로 8년 간 매년 1%포인트씩 올려 13%까지 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경우 새로운 세수는 매년 2~3조엔 증가하며, 철저한 지출 삭감노력이 더해진다면 2010년대 중반에는 기초재정수지가 GDP대비 3~4% 흑자로 돌아설 것이라고 예측한다.

21. 이명박 경제정책에 논리구조 및 비판은 졸고, ?MB형 신자유주의적 개혁의 우울한 미래?(코리아연구원 현안진단시리즈 132호, 2008년 12월) 참조.

22. 이명박 경제정책에 논리구조 및 비판은 졸고, ?MB형 신자유주의적 개혁의 우울한 미래?(코리아연구원 현안진단시리즈 132호, 2008년 12월) 참조.

23. 기획재정부, 「 일자리 창출을 위한 경제재도약 세제( 2008년 세제개편안)」(2008년 9월 1일), 「 2월 입법추진 세제개편안」(2009년 2월), 「경제활성화 지원 세제개편안(4월임시국회입법추진)」(2009년 3월 13일).

24. 이종석, 「감세, 과연 모두에게 남는 장사인가?: 정부 세제개편안의 소득계층별 손익분석」(진보신당정책보고서, 2008년).

25. 공정거래위원회, 「2007년 출자총액제한기업집단 출자동향 분석」(2007년11월).

26. 경실련, 「금산분리관련 경제·경영학자 설문결과」(2009년4월20일).

27. 통합민주당, 「09년 정부복지예산평가」, http://www.minjoo.kr

28. 이정전, 「삽질이 아니라 사람에게 투자해야 합니다」(프레시안, 2009년 6월 9일). 이상훈, 「4대강 사업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3가지 이유」(오마이뉴스, 2009년7월13일).

29. 한겨래신문, 2008년6월26일.

30.http://www.sojitz-soken.com/jp/send/tameike/pdf/tame609.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