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협동조합에 로그인하다] 11. 홍동이라는 모델

주세운(동작신협)

충청남도 홍성군 홍동면. 2016년 기준 1,629가구 3,772명이 살고 있는 면소재지의 작은 농촌마을. 통상 홍동마을이라 불리는 곳. 그러나 그곳이 내게는 알면 알수록 신기하고 놀라운 공동체의 역사를 가진 곳이다.

내가 처음 홍동마을을 알게 된 것은 2006년 유기농업과 마을만들기의 선진지로였다. 한 연구소 인턴으로 근무하며 답사 차 방문한 그곳은 국내 최초로 오리농법을 도입하는 등 유기농업을 선도하는 농촌마을이자, 백년 뒤를 내다보며 마을발전계획을 수립할 정도의 시야를 가진(21세기 문당리 발전 백년 계획) 마을만들기의 우수사례였다.

그때 곁다리로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이라는 곳을 방문하기도 했다. 복도 한 면에 고3학생들이 주체적인 목소리로 한미FTA 반대벽보를 붙여놓은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나중에 그 풀무학교가 실은 대안적 교육의 우수사례로써 입학경쟁률이 치열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외부에서 지원하는 학생들이 많아 지역 출신 학생의 입학이 어려울 정도라고 말이다.

몇 년이 흘러 대학 졸업 후의 진로를 한창 고민하던 때에는 그 풀무학교에서 만든 전공부 과정을 추천받기도 했다. 인문학과 유기농업의 결합을 통해 생태적 삶의 방식을 배울 수 있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나는 당장 도시의 삶을 포기할 자신이 없었고 대신 협동조합을 밥벌이의 수단으로 선택했다.

그리고 2016년 사회적경제 연수과정의 일환으로 10년 만에 다시 홍동마을을 방문하게 되었다. 이번엔 이곳이 ‘협동조합의 메카’란다. 작은 농촌마을에서 협동조합 혹은 협동조합 방식으로 만들어진 결사체가 무려 100여개에 이른다고 한다. 유기농업과 마을만들기에서 대안교육, 이제는 사회적경제까지. 매번 다른 이름으로 홍동의 이름을 듣고 찾게 되었다.

과연 대체 홍동에는 무엇이 있길래. 이러한 호기심으로 홍동마을에 대한 자료를 조금씩 찾아보기 시작했다. 젊은 사회적경제종사자의 눈으로 바라본 홍동마을은 알면 알수록 놀랍고 신기한 곳이었다. 첫째는 무려 1세기 전 일제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홍동마을 공동체의 역사성이었다. 1958년에 홍동마을 공동체운동의 기점이 되는 풀무학교를 설립한 밝맑 이찬갑 선생은 청년시절인 1920년대 평안도 정주의 오산학교를 중심으로 펼쳐진 이상촌운동에 헌신했던 조합주의자 중 한명이었다.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협동조합을 통해 공동체를 위한 경제모델을 꿈꿨던 그들의 이상은 풀무학교로 이어져 다양한 협동조합의 산파역할을 하는 사상적 배경이 되었다. 이러한 홍동마을의 역사성은 내게 사회적경제가 단지 최신의 트렌드가 아닌 근대 초기부터 이 땅의 선각자들이 꿈꾸었던 오래된 비전이었음을 알게 해주었다. 비록 해방 후 양극단으로 나뉜 정치체제 하에서 제3의 길(?)이었던 조합주의는 설자리를 잃게 되었고, 어쩌면 세계적인 흐름 덕분에 이제야 다시 사회적경제라는 이름으로 재조명받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홍동마을의 존재는 그것이 결코 단절된 유산이 아니었음을 60년의 역사 속에서 보여준다.

두번째는 그러한 홍동마을의 60년사가 주는 가르침이다. 홍동마을의 역사를 기록한 책들이 한결같이 증언하는 바는 홍동마을의 성공담이 아니라 숱한 도전과 좌절의 경험들이다. 수 십 년간 학교 자체의 존속을 위해 고군분투했던 풀무학교(와중에 처음의 중등과정은 폐교하기에 이른다)에서부터 심각한 경영위기에 봉착했던 풀무생협은 약과이고, 만들었다 사라진 수많은 조합들과 시도조차 못한 다양한 실패의 사례들이 부지기수였다. 이러한 홍동마을의 경험은 지역사회에 뿌리내린다는 것이 얼마나 지난한 과정임을,(물론 그것은 현재도 진행형일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내가 지금 꿈꾸는 많은 것들이 다음 세대에서나 가능할지인데, 과연 내게 그런 끈기와 비전이 있는지 되묻게 했다.

누군가 물었다. 홍동이 과연 성공한 모델인가 하고. 아직 잘 모르겠다. 성공의 기준을 어디에 두어야 할까. 홍동은 작은 규모의 농촌마을에 불과하고, 대단한 성공을 거둔 협동조합이 존재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홍동에는 귀농하려는 도시민들이 꾸준히 찾아오고 다양한 세대, 특히 젊은 세대가 공존하는 농촌마을이다. 그리고 다양한 주민모임이 활성화된 농촌, 생태적이면서도 인문학이 존재하는, 국내에서 보기 드문 농촌마을이 되었다.

사회적경제의 목적은 무엇일까. 적어도 사회적경제조직 자체가 목적은 아닐 것이다. 사회적경제는 수단이다. 구성원의 삶의 질을 높이고 사람이 존중받고 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수단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홍동이 이 땅의 자랑스러운 농촌마을이자 좀 더 탐구할만한 가치가 있는 모델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머나먼 외국의 퀘벡모델, 볼로냐모델을 잔뜩 접한 청년들에게 홍동모델을 함께 공부해보자고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