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재생에서 대학의 역할

최은주(성공회대학교 산학전담교원)

지난달 국토교통부가 ‘내 삶을 바꾸는 도시재생 뉴딜 로드맵’을 발표했다. 보도자료의 제목에서 풍기는 이미지는 개발시대를 살아오면서 만났던 수많은 도시 재건축, 재개발과는 다른 도시재생이 전개될지도 모르겠다는, 그래서 정말로 우리들의 삶을 더 활기차고 평화롭게 만들어줄지도 모르겠다는 기대를 가지게 한다. 국토교통부는 ‘지역공동체가 주도하여 지속적으로 혁신하는 도시조성, 살기 좋은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주민과 지역이 중심이 되어 도시공간을 혁신하고 도시재생 경제조직을 활성화함으로써 일자리 창출뿐만 아니라 공동체를 회복하고 사회를 통합하겠다는 아름다운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올해 기본적인 생활 인프라의 최저기준을 정비하고 내년부터 현황조사를 실시하겠다고 하니 가시적인 성과가 나는 데까지는 아직 몇 년을 더 기다려야하겠지만 로드맵에서 제시한 방향대로 실천이 된다면 청년이나 영세상인이나 살맛나는 도시를 만나게 될 것이고 사회적경제도 지역의 풀뿌리 조직으로 쑥쑥 성장할 것이다.

서울시에서 추진하는 캠퍼스타운사업(주1)에 발을 담그고 있는 사람으로서 도시재생 로드맵을 보며 도시재생에서 대학의 역할은 무엇일지 생각해보게 된다. 지난 해 11월 한국을 방문했던 미국 콜롬비아대학 리차드 플런즈 교수와 영국 코벤트리대학교 키이쓰 제프리 사회적기업 센터장이 들려주었던 그들의 도시재생 사례를 들어보자.

콜롬비아대학은 교육과 학문연구기관으로서의 과거 위상을 회복하기 위해 우수한 인재를 발굴했지만 이들에게 충분한 공간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학교를 확장하기 위한 일명 맨해튼빌프로젝트를 계획한다. 대학측은 이 프로젝트가 학교에도 도움이 되지만 지역사회에도 낙후된 산업과 쇠락한 할렘지역을 재생할 수 있는 유익한 기회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런데 북쪽으로 캠퍼스를 확장하려고 하면 할렘지역 주민들이 연안에 있는 공원으로 가는 길을 차단하게 되기 때문에 주민들은 이 개발계획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공원이 할렘 주민들에게는 귀하게 얻어낸 곳이라 의미가 남다르기도 했지만 주민과 대학 사이의 불신이 이 대립을 키우는 데 한몫했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1968년 당시 대학은 할렘지역에 체육관을 짓고 할렘 주민들도 체육관을 이용할 수 있게 개방하겠다고 제안했다. 주민들이 이용할 입구를 따로 만들겠다고 했지만 재학생들이 적극적으로 반대하면서 점거농성을 시작했고 이를 강제해산하는 과정에서 부상자가 속출하였다. 이때부터 대학과 주민 사이에 불신의 골이 패이기 시작해서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던 것이다. 맨해튼빌프로젝트를 둘러싸고 다시 10여 년 동안 갈등이 계속되다가 결국 2010년 항소심에서 법원이 대학의 손을 들어줘서 2017년에 프로젝트의 첫 결실이 맺어졌고 두 개의 다른 건물도 건설 중에 있다고 한다. 어렵게 성사되긴 했으나 이 프로젝트를 통해 다양한 업체들이 새로운 건물에 입주하면서 7천 여 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지역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학교시설이 들어서는 등 낙후된 도시를 재생하는 데 기여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대학과 주민의 소통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못해서 기존의 불신을 해소하기에 역부족이었고 개발과정에서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었지만 주민들이 우려하던 대로 젠트리피케이션과 같은 지역의 흐름을 단절시키는 부작용을 막지는 못했다.

제프리센터장이 들려준 영국 코벤트리대학 사례는 신선하다. 2만4천명의 학생이 재학 중인 코벤트리대학의 특이한 점은 대학 내에 사회적기업센터를 설립했다는 것이다. 제프리센터장은 대학이나 병원과 같은 기업을 앵커기관이라고 하는데 미션이나 투자자본, 지역의 여러 이해관계자와의 관계 등을 통해 지역 커뮤니티에 든든히 뿌리를 내리고 있는 기관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재미있는 표현이다. 이들 기관들은 지역에 닻을 내리고 지역경제에서 재화와 서비스를 구매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며 비즈니스를 인큐베이팅하는 등의 역할을 한다. 2014년에 설립된 코벤트리대학의 사회적기업센터도 지역 주민들과 커뮤니티가 기업가적 가능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사회혁신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사회문제를 민간영역에 연결하는 사회혁신 노드(Node) 프로그램, 지역사회와 사회적기업가들을 학문연구와 연결해주는 소셜 임팩트 엔진, 비즈니스적 접근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회문제를 발굴하는 소셜 임팩트 챌린지 등은 대학의 지식과 자원을 지역사회에 연결하는 사회혁신 프로그램이다. 또한 비즈니스 스타트업 프로그램으로 사회적기업가 훈련 프로그램(EVOLVE), 젊은 사회적기업가를 위한 해외연수 프로그램(에라스무스), 인큐베이팅과 학생 스타트업을 위한 융자와 보조금 등이 있다. 이와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코벤트리 대학 사회적기업센터는 직원과 학생, 지역사회 주민들과 1만 번 이상의 강의, 이벤트, 훈련, 일대일면담과 워크숍을 통한 만남을 가졌다. 3년 동안 35개의 사회적기업이 창업을 하였다니 대학과 지역사회의 경계를 넘나들며 적극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대학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코벤트리시는 사회적기업도시라는 지위를 얻을 수 있었다.

두 대학 이야기는 대학이 지역사회 안에 존재하며 지역 구성원과 상호작용하는 조직이라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앵커기관으로서 대학은 내부의 인적 물적 자원과 외부와의 네트워크 자원을 활용하여 도시재생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나가려고 노력한다. 현재 각 대학들이 시도하고 있는 도시재생 참여모형은 매우 다양하며 어떤 모형이 지역주민들의 호응을 얻고 지속적인 역할을 해낼 수 있을지는 더 오랫동안 노력을 기울여봐야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다만 이에 참여하는 모든 주체들이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어느 누가 혼자서 일방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점에 대한 인식이다. 대학과 지역사회가 머리를 맞대고 방법을 찾아서 함께 실천해가는 것이 느리지만 가장 빠른 방법이 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지역에 이어져오던 흐름을 단절시키지 않고 재생의 열매를 지역주민이 누리게 될 때 재생의 진정한 의미가 실현되리라고 생각한다.

주1) 캠퍼스타운사업은 청년일자리 부족, 청년주거 빈곤 등 현실의 벽 때문에 청년들이 도전과 패기를 상실하게 되는 상황과 대학가 주변의 침체와 창조적 문화의 퇴조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울시와 서울시 소재 대학에서 2016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사업이다. 대학의 핵심자원과 동력에 공공의 지원이 더해져 지역사회 청년들의 기업가정신을 높이고 일자리를 창출함으로써 지역사회를 활기찬 도시로 재생하려는 사업으로 사업에 참여하는 대학들은 각자의 자원과 전략,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