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협동조합에 로그인하다] 8. 협동조합 노동자의 주체성

주세운(동작신협)

 

어쩌다보니 만 5년을 협동조합에서 일하게 되었다. 이런저런 기대와 실망의 순간들을 지나치며 5년을 지내다보니 이제야 겨우 협동조합에서 일한다는 것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자각하게 되는 것 같다. 어쩌면 일반 기업과 크게 다를 것도 없는 노동, 그럼에도 불구하고 협동조합에서의 노동이 가지는 고유한 의미가 무엇일까.

무엇보다 내가 그런 고민을 가지게 된 것은 주위의 크고 작은 협동조합에서 만나는 또래 청년들 때문이다. 타 사회적경제 조직과 협업할 일이 많은 업무의 특성상 다양한 협동조합에서 일하는 청년들을 만난다. 물론 웬만한 중견기업 이상의 규모를 가진 생협에서부터 상근자 2-3명으로 꾸려나가는 작은 조직까지, 같은 협동조합이라 해도 규모와 업종에 따라 처한 현실은 천차만별이다. 큰 조직에서 일하는 이는 큰 조직대로, 작은 조직은 작은 조직대로의 고민이 있다. 큰 조직의 실무자로 일하는 청년 중에는 일반 사기업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위계적인 조직문화에 실망감을 토로하는 이도 있었다. 이는 내가 속한 조직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은 문제이기도 하다. 반면에 작은 조직에서 일하는 이들은 또 그 나름대로의 고민을 나누고는 했다. 구성원 간의 갈등으로 힘들어하거나, 협동조합의 지난한 의사결정 과정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협동조합을 주식회사와 구분하는 가장 큰 특성으로 1인1표의 동등한 의결권을 말한다. 주식회사의 1주1표제가 소수의 대주주에게 권력을 집중한다면, 협동조합의 1인1표제는 누구나 동등하게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협동조합에서 일하는 이들과 여러 고민을 나누다 보니 이 협동조합의 본질이라는 1인1표제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특히 조직의 규모에 따라 1인1표의 의미는 상반되는 듯 하다. 큰 협동조합의 구성원에게 N분의 1표에서 N이 너무나 거대해서 나의 의사가 너무나 미미하게 느껴진다면, 작은 조직에서는 구성원 간에 N분의 1표가 가진 평등성이 너무나 절대적이어서 많은 갈등을 겪는 것 같다. 결국 조직규모의 크기에 상관없이 협동조합에서 1인1표제가 가진 한계를 토로하게 된다.

그런데 협동조합에서 1인1표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단지 총회나 이사회 등 공식적인 의사결정 과정 안에서 동등한 N분의 1표를 행사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것은 현재의 대의민주주의가 선거 때에만 존재하듯이, 총회 시에만 존재하는 허울뿐인 민주주의일 것이다. 몇 년에 한번 조직의 대표자를 뽑을 때 행사할 수 있는 권리, 일 년에 한번 조직의 경영성과를 보고 받고 사업계획에 약간의 의견을 진술할 권리에 그치는 민주주의 일 것이다. 만약 그것 뿐이라면 협동조합의 1인1표제는 감히 경제민주화의 대안이라고 불리기는커녕, 주식회사에서 소액주주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과 그리 큰 차이가 없을지도 모른다.

내가 협동조합에서 일하면서 고민하고 느낀 1인1표의 의미는 단지 선거 날 투표권의 행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협동조합의 구성원으로 항상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권리 그 자체에 있었다. 출자액에 비례하지 않고 동등한 구성원으로써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 민주주의의 이념으로 비유하자면, 그것은 선거민주주의가 아닌 숙의민주주의를 뜻할 것이다.

조직 안에서 부여된 직책과 그에 따른 위계는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협동조합의 시스템은 조직의 의사결정권을 소수의 대주주에게, 혹은 대주주의 위임을 받은 최고경영자에게 부여하지 않는다. 협동조합의 임원도, 간부직원도 조합원의 총의를 대리하는 대리인일 뿐이다. 직원 또한 조합원의 한 사람으로써 목소리를 낼 수 있고 내야만 한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게 된 협동조합에서 1인1표의 의미이다.

물론 숙의민주주의에서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단지 의견을 진술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내가 바라고 원하는 이상적인 조직의 그림을 그려가기 위해서는 함께 하는 구성원들과의 지난한 설득과 동의의 과정이 필요하다. 그것을 일종의 정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조직 내에서 개인적 안위와 사적 이익을 위한 정치가 아닌, 조직의 중지를 모아나가는 과정으로써 일상의 정치 말이다. 그것은 다종다양한 구성원과 함께하는 조직의 일원으로써 수행해야 할 책임이기도 하다. 결국 협동조합에서 일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지난한 숙의민주주의의의 과정을 받아들이고 즐길 수 있는 협동조합적 주체성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