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협동조합에 로그인하다] 6. 사라져버린 ‘학급회의’를 찾아서

이예나 (경남과학기술대학교 사회적경제 전문인력양성사업단 전담교원)

 

사회적경제에서 민주주의는 중요하다. 사회적경제 조직의 핵심적인 특성을 규정할 때, ‘민주적 경영’, ‘민주적인 의사결정’은 빠지지 않는 요소이다. 그러나 이러한 의사결정의 방식, 협동조합의 1인 1표 원칙은 단순히 운영상의 차이나 독특한 소유구조만을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그 바탕에는 건설적인 방식의 의견 표출, 타인에 대한 경청과 존중, 자발적인 참여가 있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이게 말처럼 쉽거나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작은 의사결정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시간과 노력을 들여 참여하는 것, 나와 반대되는 의견을 끝까지 경청하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다양한 상황에서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 중에 초,중,고교 시절 ‘학급회의’를 경험해 본 분이 몇이나 될지 모르겠다.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의 경우 고학년을 중심으로 ‘학급회의’가 꽤 철저하게 이루어졌었다. 반마다 총무부, 환경부, 도서부, 체육부 등등 부서가 있었고 모든 반 아이들이 특정 부서에 속했다. 각 부에는 부장에 있고, 각 부서의 의견을 취합하여 학급회의 시간에 대표로 발표한다. 일주일에 한 번 있는 학급회의는 반의 회장과 부회장이 진행하고, 회장은 학급에서 모인 의견을 가지고 전교 어린이회의에 참석한다. 전교 어린이회의에서 모인 의견은 회의록에 담겨서, 담당 선생님과 교감, 교장 선생님에게 전달된다. 회의록을 들고 담당 선생님의 사인을 받으러 가던 기억이 생생하다.

지나고 보니 초등학교 시절의 그 경험은 나에게 ‘민주적인 의사결정’의 과정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 내용이야 지금 보면 꽤 유치할 것이겠지만, 그 과정은 그리 가볍지 않았던 것 같다. 손을 들고 진지하게 건의사항을 이야기하는 친구들의 모습과 회의록을 찬찬히 읽어보던 선생님의 얼굴이 아직도 또렷한 걸 보면 말이다.

어릴 때의 나는 이런 학급회의의 기회가 중,고교에도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중학교 이후 HR이라고 적혀있는 시간에는 으레 자습이 이어졌다. 학생들은 성장해가지만, 오히려 자신들의 의견을 말할 기회는 점점 줄어든 것이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성인이 되어 대학이나 사회로 나가게 된다. 그러나 ‘말하지 않고’ ‘나서지 않는’ 청소년기를 체화한 청년들은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고 토론하는 데 익숙하지 않다. 오죽하면 20대에게 민주주의란 ‘허세’라는 단어로 연상되는 것이 되었을까. 20대가 되어 처음으로 행사하는 투표권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그만큼 이전에 ‘권리 행사’나 ‘의사표시’의 기회가 없었다는 방증이기도 할 것이다.

청년들이 사회적경제 영역에서 더 많은 기회를 찾고, 또 사회적경제 영역에서 청년들을 찾을 수 있으려면, 청소년기부터 민주주의의 경험을 체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학교협동조합의 확산은 긍정적이다. 수능이라는 경쟁적인 시험의 압박으로 사라져버린 학생자치활동들도 지속하여야 할 뿐 아니라, 더 많은 어른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 사회적경제의 조직들은 자신의 의사결정에 책임을 질 줄 아는 자유롭고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가는 조직이기 때문이다.

협동조합 경제학 분야의 석학인 스테파노 자마니 교수는 시민경제의 본질을 구성하는 상호성은 독립적이고 자발적인 행위를 기초로 하며, 스스로와 타인을 풍요롭게 하는 ‘관계재’를 생산하는 기반이 된다고 강조한다. 흔히 말하는 ‘자유로운 시장경제’ 안에는 자유롭게 경쟁할 수도 있어야 하지만, 자유로운 협동도 이루어져야 한다. 상호성을 바탕으로 한 협동은 구성원 각자의 자발성이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강제로 협동하게 하는 것은 폭력일 뿐이다. 일상 속에 협동과 상호성의 원리가 스며들기 위해서는, ‘발언’하고 ‘결정’하며 자아를 표현할 기회가 더 많이 주어져야 한다. 조금 오래 걸리더라도, 사회적경제 영역이 그러한 기회의 장이 되도록 함께 노력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