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협동조합에 로그인하다] 5. 디지털 금융 시대에 다시 생각하는 신협의 가치

주세운 (동작신협)

카카오뱅크 시대의 아쉬움

며칠 전 에 참석했다. ‘4차 산업혁명과 금융의 미래’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행사의 화두는 역시나 디지털 금융이었다. 은행과 같은 전통적인 금융기관이 독점했던 역할을 정보기술로 무장한 벤처기업이 빠르게 잠식하는 것은 세계적인 현상으로, 최근 카카오뱅크와 같은 인터넷전문은행의 등장이 큰 이슈인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이날 참석한 연사들은 금융과 핀테크가 새로운 경제성장의 동력이 될 것이라며, 기회를 선점하기 위한 각국 기업과 정부의 사례를 소개했다.

굳이 해외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출범 한 달 만에 300만 명을 유치한 카카오뱅크의 성공은, 과점 구조인 기존 금융시장에 핀테크가 메기효과 이상의 창조적 파괴가 될 것임을 예시해주었다. 다만 아쉬운 것은 디지털 시대에도 변치 않는 한국의 금융문화(?), 그 자체이다. 제1호 인터넷은행 케이뱅크의 ‘상식’이 내세운 것은 다른 무엇보다 금리였다. 카카오뱅크에 소비자들이 열광한 이유에는 공인인증서에 구애받지 않는 사용자편의성과 카카오톡과 연동되는 간편이체 등 여러 요소가 있었지만 그 중 가장 회자되었던 것은 결국 저렴한 대출이자였다. 물론 금리는 금융상품의 핵심 경쟁력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충분할까.

P2P와 크라우드펀딩, 간편결제에서 최근에 등장한 인터넷전문은행까지, 적어도 업종의 다양성 측면에서만 본다면 한국의 핀테크 산업은 세계적인 흐름에 결코 뒤쳐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금융의 지속가능성이라는 측면에 대해서는 어떠한가? 정보의 투명성이 중요한 디지털 환경에서는 자금운용의 사회적, 환경적 측면에 대한 고려가 예전보다 훨씬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이날 컨퍼런스에 초대된 해외연사들이 강조한 또 다른 메시지였다.

그러나 이미 전 세계 펀드상품 5개 중 하나는 사회책임투자와 연계된다는 통계나, 투자의 사회적 성과와 재무적 성과가 비례한다는 해외의 연구보고서를 인용한다 해도, 무슨 소용일까. 여전히 한국에서는 금리나 편의성 이외의 선택지를 발견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컨퍼런스가 끝난 후 미래에 대한 기대만큼이나 아쉬움이 남았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신협 운동의 힘

신협에서 활동한 5년, 그간 계속 마주한 것도 사회적 금융이라는 주제가 낯선 한국의 현실이었다. 굳이 외부를 탓하지 않더라도 신협 내부의 인식부터가 그렇다. 아직도 사회적 금융이라는 용어를 꺼내기에는 많은 수식어가 필요하고, 한국사회의 여건에서는 시기상조라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과연 그럴까? 아니, 사회와 시장은 준비되어 있는데 과점체제에 안주한 기존의 금융기관들이 그 니즈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실 사회적 금융을 수익성 이상의 관점으로 자본을 운용하는 것이라 정의한다면, 한국 최초의 사회적금융은 신협이 아닌가. 담보 없이는 은행거래가 불가능했던 서민들에게 공동유대에 기반을 둔 신용창출은 그 자체로 혁신이자 사회적 금융이었다.

최근에 접한 <한국신협운동에 관한 연구>(송보경, 1972)라는 자료에서 이와 관련하여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협동교육 연구원에서 1972년에 발간한 이 책자는 1960년 성가신협 설립으로부터 시작되어 1972년 신협법 제정으로 확산되던 한국신협운동의 초창기 15년사를 정리한 귀한 자료였다. 그리고 그곳에는 당시 신협조합원의 인식을 보여주는 설문조사 결과가 포함되어 있었다.

1970년대 신협이라는 이름으로 모였던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모여 있었을까? 놀라웠던 것은 초창기 신협이 사람들을 끌어들인 동기가 결코 경제적인 것만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조사에 응답한 신협 조합원의 66%가 ‘신협이 자랑스러운가? 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했는데, 그 이유의 대부분(응답자의 70%)은 조합원 사이의 친밀한 커뮤니티와 협동을 통해 가난한 조합원들을 돕는다는 신협의 사회적인 가치 때문이었다. 사채보다 이자가 싸기 때문이라는 경제적인 이유는 단지 7%에 불과했다. 신협의 발전방향에 대해서도 응답자의 70%가 지역사회개발에 선구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답했고, 신협이 금융단체로 성장해야한다는 응답은 19%였다.

초창기 한국 신협이 빠르게 확산된 이유로 흔히 고리대 척결과 그로 인한 서민들의 경제적 혜택을 떠올리지만, 실제 그 운동에 참여한 이들의 욕구는 훨씬 복합적이었고 사회적이었다. 그러한 복합적인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금융조직으로 조합원들은 신협을 바라보았고, 그것이야말로 신협 조합원이 가진 자부심의 근거였다. 신협이 순수민간의 자발적인 운동으로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짧은 시간에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힘의 원천에는 경제적 동기 이상의 무엇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지금 시대의 용어로 지칭한다면, 그것이 바로 사회적 금융이 아닐까.

디지털뱅킹 시대의 신협

사회적 금융은 인간의 복합적인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금융이다. 사회적 금융은 내가 맡기는 돈에 대한 자부심을 주는 금융이다. 반세기 전 신협 선구자의 목소리가 내게 준 성찰은 그것이었다. 지금 한국 신협의 현실이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조합원의 복합적 욕구를 외면한 채 금리로만, 세제혜택으로만 경쟁하는 모습이다. 단지 경쟁력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수익을 많이 창출한다 해도 조합원의 자부심이 사라진 신협에게 남는 것은 결국 제2금융권이라는 모멸적 자기규정 뿐이다.

디지털 혁신을 신협에게 위기가 아닌 기회로 만들고자 한다면, 먼저 그러한 비판적 성찰에서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금리와 인접성 등 기존의 장점이 무용지물이 되는 디지털 혁신이 신협의 가치를 다시금 고민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어떻게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여 지역 커뮤니티의 거점이 될 것인가. 어떻게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여 조합원에게 자부심을 줄 수 있는 금융기관이 될 것인가.

이제 단지 협동조합의 정체성을 부르짖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조합당 평균 조합원 수가 500명 남짓이었던 반세기 전의 상황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1975년 기준 전국신협 평균 조합원수 491명, 2016년 기준 6,400여명) 과거와 같은 관계금융의 노스탤지어를 꿈꾸기보다는 디지털 시대에 걸 맞는 새로운 금융의 사회화를 꿈꿔보는 것은 어떨까. 당신이 맡긴 예금을 사회변화의 마중물로 만드는 금융, 당신이 이용하는 금융서비스가 은행에서 소외된 이들에게 든든한 비빌 언덕이 되어주는 금융. 그런 신협으로, 그런 자부심을 주는 금융공동체로 신협을 다시 한 번 꿈꿔볼 순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