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협동조합에 로그인하다] 2. 신협 청년위원회라는 실험

주세운 (동작신협)

 

 

작년 봄 지역의 뜻 맞는 청년들과 함께 동작신협 내에 작은 모임을 하나 시작했다. 모임 이름은 <동작신협 청년위원회>. 처음엔 청년프로그램을 한번 해보려했다. 요즘 은행권을 포함해 웬만한 대기업들은 다 한다는 청년서포터즈나 홍보대사 같은 프로그램들 말이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조합원이 주인인 협동조합이라면, 청년프로그램도 뭔가 달라야하지 않을까.

말은 거창하지만, 결국 아무 것도 정해진바 없이 시작했다는 뜻이다. 다행히도 동네에는 이미 은행과 신협의 차이를 알고 흥미를 가진 청년들이 있었다. 사회적경제영역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이들은 물론이고, 그저 신협에 계좌를 만들었다가 은행과는 조금 다른 활동 모습이 궁금해서 찾아온 청년들도 있었다. 편의성을 생각하면, 다소 뒤떨어진 금융서비스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신협 운동의 독특한 역사와 출자금과 같은 번거로운(?) 제도에 의미를 부여하며 자발적으로 신협 계좌를 이용해주었다.

월1회의 정기모임을 통해, 신협과 은행의 차이와 사회적금융이라는 개념을 알아보고, 해외의 우수사례도 함께 학습했다. 충남 홍성으로 다녀온 워크샵에서는, 풀무학교의 홍순명 교장선생님께 일제식민지시기부터 내려온 홍동마을 협동조합공동체의 살아있는 역사를 배웠다. 그리고 청년조합원을 위한 재무강좌와 독립영화상영 등의 신협 행사를 직접 기획해보기도 했다.

최고의 교육은 참여할 수 있는 구조

이 과정에서 참고했던 것이 생협의 조합원제도였다. 내가 직간접적으로 만난 생협의 조합원들은 협동조합의 주인이라는 자의식으로 충만한 분들이었다. 조합의 경영을 걱정하며, 조합의 활동을 내 일처럼 여기는 분들이었다.

사실 신협의 조합원제도는 이미 형해화(形骸化)된 지 오래다. 신협을 협동조합으로 의식하는 조합원은 극소수이며, 출자금은 예금보다 이자가 쏠쏠한 투자상품일 뿐이다. 조합원에 대한 봉사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신협의 직원강령은 ‘고객을 왕으로’ 모시는 주식회사의 문화와 별다른 차별점이 없다. 신협 내에서 협동조합이라는 자의식은, 조금 심하게 표현한다면 일부 임직원의 머릿속에만 존재할 뿐이다.

물론 이러한 상황에 위기의식을 느끼며, 조합원 교육의 필요성을 자성하는 내부의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내가 지난 1년간의 경험으로 느낀 바는, 최고의 조합원 교육이란 다름 아닌 의사결정구조에의 참여라는 사실이다.

조합원 교육을 통해서 조합원 참여를 이끌어낸다는 전제는 잘못된 것이었다. 참여할 수 있는 구조 속에서 조합원의 주인의식은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내가 이해하기에 생협의 높은 조합원의식 또한 다양한 소모임과 위원회를 통해, 조합원이 일상적으로 협동조합의 의사결정구조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화하였기 때문이었다.

금융협동조합에 걸맞은 조합원참여모델을 고민하다

이제 만 1년 남짓 된 신협 청년위원회는, 매월 빠지지 않고 정기모임을 꾸려나가는 것만으로도 아직 힘에 부친 것이 사실이다. 청년들을 위한 자체행사 기획을 넘어서, 타 협동조합과는 또 다른 금융협동조합만의 조합원들의 참여구조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도 고민이다.

그래서 사회적금융 대출심사에 조합원들이 참여하는 이탈리아의 ‘방카에티카’나, 지점마다 조합원이 참여하는 지역개발위원회를 구성하는 캐나다의 ‘밴시티’신협 등 궁금한 해외 사례가 많다. 협동조합의 조합원 제도를 금융협동조합이라는 특성에 걸맞게, 더 나아가서는 사회적금융이라는 새로운 비전에 어떻게 접목할 수 있을까. 가야할 길이 멀지만 일단은 즐겁게 꿈꿔보려 한다.

협동조합이라는 선택지를 청년에게

마지막으로 사족을 덧붙이자면, 청년위원회 활동소식을 들은 생협의 몇몇 젊은 실무자들은 오히려 우리를 부러워하기도 했다. 말인 즉슨 생협에 청년조합원들을 위한 교육이나 만남의 자리는 많지만, 청년들이 주체적으로 조직의 의사결정구조에 참여 할 기회는 흔치 않다는 거였다. 이미 활성화된 생협 내부의 소모임이나 위원회에는 40-50대의 기혼 조합원들이 다수여서, 1-2인 가구의 20-30대가 기존 조합원활동에 자연스레 결합하기가 쉽지않다고 했다. 그래서 청년세대의 목소리를 모으는 청년위원회라는 실험에 공감을 표해주었다.

물론 이것이 협동조합 영역만의 현실은 아닐 거다. 소위 거창한 세대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지금 청년들이 처한 상황이 녹록치가 않은 것은 분명하다. 사회로 진입하는 문이 너무나 좁아져서 취업은 물론이고, 사회의 어느 영역에서도 목소리를 내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이런 고민을 주위 활동가들과 나누면서 생각했다. 협동조합 영역만이라도 청년들이 주체로 참여할 수 있는 장이 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꼭 협동조합과 관련된 일을 하지 않더라도, 일상 속에서 잠깐이라도 청년들이 협동조합이라는 경험을 향유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것은 협동조합운동이 오랜 세월 품어온 ‘일상의 민주주의’라는 가치가 지금 이 시대에 큰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특히 사회 각 영역의 밑바닥에서 고군분투하는 청년들에게 협동조합이라는 모델이 매력적인 신세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였다. 우리의 작은 활동에 조금이나마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 것은. 청년들에게 협동조합을 의미 있는 선택지로 전달하려는 또 하나의 실험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