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와 경제발전② 국가와 시장을 넘어서: 호혜적 이타성의 재발견

 

김종걸 한양대 글로벌사회적경제학과 교수

1. 국가와 시장의 실패

대한민국은 지금 거대한 시대적 전환의 한복판에 서있다. 전 세계적으로 경제적, 사회적 위기가 심화되고 있는 것은 시대전환의 창조적 파괴가 이미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위기의 시대는 기존에 믿어왔던 모든 것을 근저로부터 뒤흔들고 있다.

미래한국의 과제를 도출하는데 있어서 하나 확인해야 할 것은 시장이든 정부든 제대로 작동시키기는 너무나 어렵다는 점이다. 확실히 시장은 무수히 많은 개인들의 행동을 조정하는 가장 좋은 장치다. 그러나 현실은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 시장이란 무수히 많은 참여자가 진검승부를 겨루는 곳이 아니라 강자가 약자를 착취하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며(독점의 문제), 때대로 거짓말이 난무하는 곳이기도 하다(계약실패의 문제). 시장에서의 거래가 한 사회의 사회적 비용과 편익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경제학에서 이야기하는 ‘외부성’의 문제다. 더구나 시장은 거래에 참여할 능력이 없는 사람을 애초부터 배제시킨다. 인간이라면 당연히 누려야할 ‘권리’를 시장이 제대로 보장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는 “불평등의 대가”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정치시스템은 시장의 실패를 바로잡지 못하며,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경제시스템과 정치시스템은 근본적으로 공정하지 못하다”(27쪽). 그는 시장이 잘 작동되며 불평등을 완화시키기 위한 정책으로서, 규제강화, 기업지배구조개선, 누진세강화, 중하위 계층에 대한 지원강화 등을 강조한다.

시장에서 해결할 것과 해결하지 말아야 할 것을 사고하는데 있어서 일본을 대표하는 경제학자, 우자와 히로후미(宇澤弘文)의 ‘사회적 공통자본’이라는 개념은 상당히 유용하다. 우자와는 신고전파 주류경제학에서 말하는 단순한 ‘공공재’의 사고방식(비배제성과 비경합성을 가진 재화로서의 공공재)에서 벗어날 것을 주문한다. 주류경제학에서는 재화/서비스를 소비하는 것에 대한 배제비용이 너무 큰 경우(비배제성), 혹은 여러 사람이 그 재화/서비스를 소비해도 제품자체가 줄어들지 않는 경우(비경합성)의 경우에 시장에 그 공급을 맡기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정부가 직접 공급해야 한다고 말한다. 완벽히 비배제성과 비경합성을 가진 재화/서비스의 사례는 없을지 모르나 치안, 도로, 방파제 등과 같은 것들은 단지 시장에서 공급되기에는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재화의 속성에 따라서 공공재를 규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으로서의 권리다. 사회구성원이 누려야 할 기본적이며 보편적인 권리를 보장한다는 차원에서 ‘공공재’를 재규정해야 하는 것이다. 우자와는 “설령 사적소유 또는 사적관리가 인정되는 희소자원으로 구성돼 있다고 해도 사회전체의 공동재산으로서 사회적인 기준에 따라 관리, 운영”되어야 하는 사회적 공통자본은 상당히 있다고 말한다. 구체적으로는 자연환경(대기, 물, 산림, 하천 등), 사회적 인프라(도로교통, 상하수도, 전력가스, 주택 등), 제도자본(교육, 의료, 금융 등)을 사회적 공통자본이라고 부르며 이것의 안정적인 공급을 강조하는 것이다. <주1>

이후 제기되는 문제는 과연 이러한 사회적 공통자본을 구체적으로 누가 관리/운영/생산해야 하는 것인가이다. 통상적으로 먼저 생각되어질 수 있는 주체는 정부다. 그러나 여기에도 문제는 발견된다. 정부는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니다. 공무원과 정치인의 목적함수는 “국민행복에 이바지하는 공복”이 되는 것이 아닌 경우가 많다. 초선의원은 재선이 목적이고 공무원은 자리보신과 승진이 목적인 경우가 많다. 그렇지 않더라도 특유의 관료주의적 속성은 변화에 둔감하고, 문제를 수시로 파악하고 해결하지 못하는 조직이 될 수도 있다.

정부가 시장이 해결하지 못하는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경우를 우리는 ‘정부실패’라고 말한다. ‘시장실패’에 대한 염려가 팽배함에도 여전히 시장의 결정에 많은 것을 위탁하는 이유는 바로 ‘정부실패’가 ‘시장실패’보다 더욱 크다는 인식 때문이다. 그러한 면에서 많은 비판을 받고 있는 신자유주의도 하늘에서 그냥 떨어진 것이 아니라, 바로 자본주의의 전개과정 속에서 그 문제점을 해결하려고 했던 ‘기획’ 중의 하나였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은 중요하다. <주2>

적어도 1929년 대공황에서의 미국의 성공적인 탈출, 그리고 2차 세계대전 이후 1960년대까지의 고도성장은 케인스주의의 성공을 보장하는 듯했었다. 그러나 1970년대에는 케인스 재정정책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지 않아 결국 물가상승으로만 귀결되는 스태그플레이션의 시대였던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생각한다면 신자유주의를 단순히 거대자본과 주요 선진국의 ‘이권 확대 기획’으로만 폄하하는 것을 공정하지 않은 사고방식일 것이다. 자본주의의 전개과정 속에서 ‘고전적 자유주의’(A.Smith)에서 ‘사회적 자유주의’(J.S.Mill), ‘케인스(J.M.Keynes)주의’로 이어지는 국가역할의 증대과정은, 재정팽창, 국민부담의 증대, 인플레이션, 사회시스템의 관료화와 경직화 등의 문제를 노정했으며, 이것이 또 다시 시장원리로의 귀환이라고 하는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불러왔음은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등장했던 신자유주의의 최대 문제점은 ‘정부의 실패’를 단지 ‘시장화의 확대’로 해결하려 했던 점에 있다. 그리고 그러한 ‘시장화의 확대’가 바로 경제사회적 불안정성을 더욱 증대시켜 간 것도 사실이다.

2. 유능한 정부

여기서 역사가 단순히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면 앞으로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작지만 똑똑한 정부를 만드는 일이다. 그리고 모든 정책이 정책의 수혜자인 국민중심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다.

과거 한국의 우수한 관료체계는 우리 경제발전의 원동력이라고 일컬어져 왔다. 세계은행의 대대적인 보고서였던 ‘동아시아의 기적’(1993)에서 한국의 산업정책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로 우수한 관료체계가 강조된 바 있다. 미국의 저명한 정치학자 찰머스 존슨의 ‘개발 국가(Developmental State) 담론’도 결국은 효율적인 관료체계에 대한 강조와 연관된다. 이렇듯 국제적으로 본다면 한국의 관료는 상당한 칭찬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지금 한국의 중층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지금의 관료체계가 효율적인지는 상당한 의문이 있다. 중앙부처의 조직이기주의를 타파하자는 부처 간 칸막이 제거과제는 모든 정부의 중요한 국정과제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

필자는 지금의 시대정신은 새로운 정책의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정책을 일정한 원칙에 따라 통폐합시키고, 그것을 국민에게 잘 전달하는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2016년 실시된 청년일자리 지원 사업은 중앙정부 사업만으로도 총 224개나 난립하고 있는 현실, 여기에 각 광역 및 기초지자체 차원의 대책까지 포함시키면 우리의 청년들 머리 위에는 수백 개의 정리되지 정책이 혼잡하게 널려있는 있는 것이다. 제대로 정책효과를 측정해서 실시한다면 이렇게 많은 정책이 나열될 수는 없다. 그러니 당연히 주변에 물어봐도 정부대책을 아는 청년이 거의 없다. 정책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거나 별로 의미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정책의 초점을 분명히 하고 전달체계를 재정비해야 한다. 그러한 면에서 영국의 이른바 ‘난감한 이슈(wicked issues)’를 해결하기 위한 ‘연계유닛(joined-up units)’ 구상은 우리에게도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부처 간 공동대처와 시민사회와의 협력이 필요한 이슈에 대해서 영국에서는 총리실 및 내각사무처에 이른바 ‘연계유닛(joined-up units)’를 두고 이 유닛들이 부처 간, 그리고 정부와 시민사회 간 협력 네트워크의 집합점이 되게 하였다. <주3>

정부의 일하는 방식도 획기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예를 들어 구글(Google)은 새로운 기획서 작성 시, 실무자, 타부서, CEO 등이 기획단계로부터 바로 의견을 제시하고 수정하면서 함께 보고서 작성한다. 그러나 정부는 장관지시→실·국장 전달→실무자 작성→실국장 보고→장관보고의 흐름이 단선적이다. wikipedia 식의 지식공유, 참여와 협력을 통한 일 효율성 증대필요하다. 오피스 환경도 지식공유/협력을 키워드로 하는 형태로 바꾸는 것도 생각해야 한다. 각자의 자리를 없애버린 영국정부의 ‘open space’ 운영 사례도 참조할 만하다. 이를 위해 민간과 정부와의 활발한 인사교류는 필수적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장차관의 상당수를 공무원으로 임명하는 나라는 없다. 고위 공무원, 하급 직원 모두 시선이 바로 윗사람에게만 가 있는 것, 그것이 문제인 것이다. 장차관 및 1급 이하 공무원의 외부 충용의 전면 확대 등을 포함한 다양한 인사제도의 개혁이 필요하다.

3. 권력의 하방, 시민참여, 지방분권

그러나 유능한 정부를 위한 노력이 꼭 성공한다고 볼 수는 없다. 뷰캐넌(James Buchanan, 1986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은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그레샴 법칙에 빗대어 정치에서의 그레샴 법칙을 말한 적이 있다. 개인적 욕심이 많은 정치인은 더욱 맹렬히 권력쟁취에 힘을 쏟으며, 그래서 더 좋은 정치인을 몰아낸다는 것이다. 이것은 관료체계라고 변함이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근본적인 해법은 기존의 시장과 정치·관료체계의 외곽에 시민사회의 거대한 저수지를 만드는 것이다. 또한 정책을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변화시키는 것, 즉 시민의 참여공간을 확대시키는 것이다.

첫째는 관(官)에서 민(民)으로의 과감한 권력이양이다. 우리는 노동하고 소비하는 단순한 호모에코노미쿠스가 아니다. 때로는 무상노동의 자원봉사자이며 좋은 일에 대한 기부자이기도 하다. 지역사회 속에 존재하는 각종 선의의 자원들이 통상적인 경제활동과 잘 어울렸을 때 우리는 살 만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

둘째는 지방분권이다. 참여를 통한 혁신이 벌어지는 공간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경제활동의 주체이며, 복지의 수혜자인 지역주민 스스로가 경제 및 복지행정에서 자기결정권을 확대하는 것, 이것이 지역차원에서 새로운 혁신의 기반이 된다. 이것을 위해서는 중앙의 행정 및 재정권한을 지방으로 대폭 이양해야 한다.

지방분권의 또 하나의 장점은 강고한 관료국가 대한민국을 그 뿌리부터 바꾸게 한다는 점이다. 경제와 복지정책의 구상 및 실행권한의 상당 정도를 기초 및 광역지자체로 넘긴다면, 그리고 정책결정 및 실행과정에서 시민참여가 활발히 된다면, 대한민국의 관료체계는 밑동부터 바뀌게 된다. 지금 대한민국의 시대적 과제는 새로운 정책을 만드는 것에 있지 않다. 오히려 일정한 원칙에 따라서 기존의 정책을 통폐합 시키고 효율화시키는 것에 있다. 그 최대의 비법은 정책을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바꾸는 것이다. 지방분권이 가지는 최대 의미다. <주4>

4. 시민사회 경제조직으로서의 사회적경제

시장과 정부가 실패하는 곳에서 사회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다양한 자조조직을 발전시킨다. 일반적으로 비영리단체와 사회적기업의 발전이 강한 미국에서는 ‘비영리(non-profit) 섹터’라는 용어가, 협동조합, 공제조합 등이 발전되어 있는 유럽의 전통 속에서는 ‘사회적경제’, ‘연대경제’라는 용어가 많이 사용된다. <주5>

필자는 시민사회의 경제조직이 바로 사회적경제조직이라고 규정한다. 사회적경제조직의 첫 번째 구성요소는 그 조직이 사회적 문제 해결에 집중하는 조직이라는 점이다. 사실 모든 합법적 상품은 사회적으로 유용한 것(사용가치) 중 화폐와 교환 가능한 것(교환가치)을 생산한 것이다. 따라서 사회적으로 유용한 것을 생산한다는 차원에서는 일반경제조직과 사회적경제조직과 크게 차이가 없다. 그러나 이 두 조직 간에는 그 활동의 주요목적에서 분명히 차이가 난다. 영국통산성(DTI)의 정의, “사회적기업이란 사회적 목적을 실현하는 기업으로서 기업의 이익이 주주 및 소유주들에게 귀속되기보다는 사업의 고유목적 혹은 지역공동체에 재투자되는 기업”이라고 정의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성격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주6> 사회적경제조직의 두 번째 구성요소는 사람중심의 민주적 거버넌스를 가진다는 점이다. 나라마다 상법상 규정의 차이는 있으나 기업의 지배자는 자본소유자인 경우가 일반적이다. 돈에 의해 지배구조가 결정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경제조직은 사회적 소유(비영리법인), 공동소유(협동조합), 사회적 통제(이해관계자의 영향력) 등 민주적 소유 및 지배구조가 강조되는 경향이 강하다.

사회적 목적의 실현, 그리고 민주적 거버넌스라는 2가지 축에서 본다면 유럽의 대부분의 논자는 이 2가지를 모두 갖춘 조직을 사회적경제 조직으로 생각한다. 유럽을 기반으로 한 사회적경제의 최대 연구조직인 EMES에서는 다음과 같이 사회적기업(경제)을 개념 규정한 바 있었다. <주7> ①재화를 생산하고 용역을 판매하는 지속적인 활동, ②높은 수준의 자율성, ③상당 정도의 경제적 리스크, ④최소한 이상의 임금노동, ⑤공동체에 혜택을 주고자 하는 명시적인 목표, ⑥분담금액수와 비례하지 않는 의사결정구조, ⑦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참여, ⑧제한적 이익분배, ⑨일반시민 주도성이 그것이다. 이들의 논의를 정리한다면, 사회적경제조직이란 시민의 주도 하에(②⑨), 사회적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⑤⑧), 시장 속에서 활동하는 조직이며(①③④), 민주적 지배질서(⑥⑦)가 작동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다르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사회적 목적을 잘 실현하는 것에 있을 뿐이다. 소유/지배구조의 민주성과 같은 사람중심성은 부차적인 조건에 불과하다. 미국 하버드대학의 디즈(Dees) 교수는 사회적기업이란 사회적 목적과 비즈니스의 수법을 결합한 조직이라고 말한다. <주8> 그 속에는 상업 활동을 전개하는 비영리조직만이 아니라 영리목적과 사회적 목적을 동시에 추구하는 이중목적기업, 그리고 영리기업의 사회공헌활동까지 모두 포함한다. 이러한 인식은 미국의 사회혁신과 관련된 각종 재단의 사고방식과도 큰 차이가 없다. 가령 아쇼카(Ashoka)에서는 전 세계 3,000명이 넘는 아쇼카펠로를 선정하고 지원한다. 그 분야도 교육, 인권, 시민참여, 환경 등 다양하다. 이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제기하는 사회문제의 심각성이며, 그 문제를 잘 해결하고 있다는 혁신성이다. 소유/지배구조, 법인격의 종류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필자가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그 어떠한 기준에서든 사회적경제의 규모는 이미 상당 수준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협동조합은 전 세계에서 매년 2.2조 달러의 매출을 실현한다. 미국에서만 3만 개의 협동조합이 200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어낸다. 프랑스에서도 2만 1000개의 협동조합이 10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한다(국제협동조합연맹 통계). 최근에는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새로운 거대한 자금이 투여되고 있다는 연구도 많다. 한 연구에 의하면 사회적기업 등에 투자되는 자금(임팩트 펀드)은 세계 총 자금의 1% 정도, 즉 5,000억 달러(약 605조원)로 추산된다. <주9> 규모가 이러하니 전 세계 사회적기업가는 그 자금을 받기 위해 자신을 능력을 증명하려 노력한다. 하버드(Harvard), 스탠퍼드(Stanford), 옥스퍼드(Oxford) 등 세계 유수의 경영대학원에서도 우수한 사회적기업가를 키우는 별도의 교육과정을 개설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5. 지방자치법 개정 및 지방발전법 제정

1980년대 후반 민주주의 이행 과정에서 지방자치제도가 부활한 이후 지방분권 개혁 시도는 1990년 중앙행정권한의 지방이양 촉진 등에 관한 법률, 2003년 지방분권특별법, 2008년 지방분권촉진에 관한 특별법, 2013년 지방분권 및 지방행정체제개편에 관한 특별법 제정으로 이어져왔다. 그러나 애초부터 지방자치는 지방자치가 작동하기 위해 필요한 전제조건, 즉 재정, 인사, 조직, 입법 등 핵심 영역에서의 자치권이 보장되지 않는 불완전한 제도로 출발했다. 이후 중앙정부 주도의 지방분권 개혁은 재정분권이 동반되지 않는 행정기능의 지방이양이라는 기형적인 형태로 진행되어 우리나라의 지방자치를 전반적 위기상황으로 몰아갔다. 앞으로 개혁해야 할 것은 다음과 같이 정리 가능하다. <주10>

첫째로 재정권과 조직/인사권 등 주요 권한과 국가사무를 지방으로 이양하는 것이다. 재정과 사무의 지방이양의 목표치는 각각 50대50으로 설정하는 것도 방법이다. 실질적인 지방자치를 실현하기 위한 물적 토대로서 세입의 지방분권은 지방의 재정 자립과 재정 책임성을 높이고, 현재 지역의 특수성을 반영할 수 없는 획일적 재정 운영이 초래하는 비효율성을 개선하는데 기여할 것이다.

둘째는 재정권의 지방이양과 동시에 지자체간 격차를 줄이기 위한 수직적/수평적 재정균형화 제도의 전면적 개혁이 요구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운영되고 있는 수평적 재정 형평화 수단에는 2010년 지방세 도입과 함께 설치된 ‘지역상생발전기금’이 있다. 향후 세입 분권의 진전에 따라 그 역할을 확대 강화할 필요가 있다.

셋째는 재정권과 조직/인사권 등 핵심 권한을 지방으로 이양하면 그에 따르는 책임도 강화되어야 한다. 지방의 책임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으로 상향식과 하향식을 결합한 중층적 감시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여기서 하향식 관리체제는 지방재정에 대한 중앙정부의 관리감독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다. 지방공기업을 포함한 통합적인 부채관리, 지방재정영향평가제, 공기업경영효율화, 긴급재정관리제 등의 관리강화방식이 필요하다. 지방자치단체가 방만하게 운영되면 소속 지방공무원의 인건비조차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긴급한 재정관리 상황을 불러올 수 있다. 이런 상황이 실제 발생할 경우, 국가는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행위능력을 일시 제한하여 하부조직으로 운영하는 것도 검토해야 하는 것이다.

상향식 관리체제는 주민소환제도의 요건을 완화하여 실효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하향식 관리체제는 이미 도입되어 운영되고 있는 재정위기관리제도를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2007년에 도입된 주민소환제도는 지방자치단체의 장 및 지방의회 의원의 위법·부당한 행위, 직권 남용 등에 대한 주민의 직접적인 통제장치다. 이외에도 주민의 직접적인 행정통제제도에는 주민소송제도가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위법한 재무회계행위에 대해 주민이 직접 공익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제도의 오남용을 차단하기 위해 도입된 이중 삼중의 방어 장치들로 인해 유명무실한 제도로 전락했다. 따라서 제도의 오남용과 실효성 사이에 적절한 균형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

넷째는 실질적인 주민자치가 활성화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주민자치위원회는 1999년부터 추진 중인 읍면동 행정기능 축소와 연계하여 읍면동사무소 폐지에 대한 대안으로 제안되었다. 2010년 제정된 지방행정체제개편에 관한 특별법에는 시군구 통합에 따라 읍면동 단위의 주민자치기능을 보완하는 주민자치회의 설치 조항이 포함되었다. 이후 행정개혁위원회의 근린자치분과위원회는 실질적인 주민자치 강화를 목표로 현재 운영 중인 주민자치위원회의 태생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주민자치회 모델 개발에 착수했으며, 2012년 5월 법적 지위와 권한에서 차등을 둔 협력형, 통합형, 주민조직형의 세 가지 주민자치회 모델을 제시하고 이 중 협력형 모델을 시범실시 대상으로 선택했다. <주11>

그러나 앞으로 주민자치위원회는 실질적인 주민자치의 강화를 위해 지금과 같은 ‘협력형’이 아니라 ‘통합형’ 혹은 ‘주민조직형’의 형태로 발전해야 할 것이다. 주민자치회 구성에 있어서도 개인만이 아닌 지역의 다양한 조직(자생단체, 기업 등)이나 등의 조직까지 포괄해야 하며, 주민자치회의 구성과 자치위원회 대표의 선출방식도 좀 더 다양한 주민참여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대표성을 강화하기 위해 일정 수 이상 지역 주민들의 추천을 받아 자치회 위원들의 리스트를 작성하고 추첨에 의해 자치회를 구성하고, 그 자치회에서 대표를 선출하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표 1> 주민자치회의 세 가지 기본모델과 차이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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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지방행정체제개편추진위원회(2013), 「대한민국 백년대계를 향한 지방행정체제개편」p.210

다섯째로 지역발전계획의 수립과 실행을 기초자치단위로 이양하는 (가칭)지방발전법을 제정하는 것도 필요하다. 지금의 국가균형발전특별법에서는 광역 단위의 발전 계획을 세우고(제7조), 이것을 지역발전위원회가 심의(제22조)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혁신 공간으로서의 기초 단위(군·구·읍·면·동)에 대한 계획은 부재하다. 주관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의 성격은 공단 설비조성 등과 같은 대형 사업에 치중할 가능성을 크게 한다. 주민참여, 골목상권, 지역복지 등의 각종 과제는 마을과 기초 단위에서 제대로 계획되고 실행될 수 있다. 마을 주민 스스로 마을경제와 복지의 발전 계획을 세우는 것, 그리고 기초지자체가 각각의 계획을 종합하는 것이 지방발전의 선결과제가 되는 것이다. 중앙정부는 지자체의 성과에 따라 지방교부세 및 보조금 배분을 차등화 하는 견제 수단만 가지고 있으면 된다. 이 모든 것을 (가칭)지방발전법이라는 형태로 정리해야 한다.

6. 한국판 OCS(office of civil society) 및 CC(charity commission)의 설치

우리의 시민사회가 서구 선진국에 비해서 아직 열악하다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시민사회 연구로 유명한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 시민사회연구소의 연구에 의하면 시민단체 상근인력 및 자원봉사자의 노동시간은 전체 경제활동인구의 9.80%(미국). 8.54%(영국), 2.43%(한국)으로 그 격차는 크다(www.ccss.jhu.edu). 그러나 한국의 시민사회에 대한 정부의 지원규모가 특별히 작아 보이지는 않는다. 현재 한국의 비영리단체의 법적 규정은 민법 32조에 따른 사단법인/재단법인(인가제), 비영리단체지원법(2000년)에 따른 비영리단체(등록제)가 근간이 된다. 기본적으로는 면세이며 각종의 보조금 등이 지급된다. <주12> 옆의 나라 일본에서 비영리단체에 대한 면세조항이 일부 신설된 것이 2012년이었던 것을 보면 ‘적어도 일본보다는’ 폭넓게 보호받고 있는 것이다. <주13>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첫째는 정부의 비영리단체에 대한 지원 전체에 대한 정확한 실태 파악이나 법적 기준, 공정한 표준절차 또는 절차적 일관성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현재 각 부처별로 시행되는 지원 사업을 종합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조사나 자료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지방자치단체로 내려가면 더욱 극명히 드러난다. 2003년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가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파악한 바로는, 비영리단체에 직접 지원을 실시하는 정부부처(당시 부처명)는 농림부, 문화관광부, 보건복지부, 법무부, 여성부, 재정경제부, 통일부, 행정자치부, 환경부, 과학기술부 등 10개 부처였으며, 외교통상부는 산하기관인 한국국제협력단을 통해서 지원하는 것이었다. <주14>

둘째는 비영리단체에 대한 재무자료 및 성과지표를 파악할 수 있는 자료가 거의 공개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사회적경제를 논의할 때 비영리단체를 거론하는 이유는 이들이 사회적경제의 중요한 수입수단인 사회적 선의(기부, 자원봉사 등)를 조직하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투명하지 않은 비영리조직의 존재는 사회적 선의를 조직할 방법을 차단시켜 버리며 결과적으로 사회적경제의 자율적인 발전을 저해한다. 영국의 경우 사회적경제 영역으로 흘러오는 자금의 상당 부분은 각종 자선기금으로부터 나온다. 17만 개가 넘는 자선단체가 자선위원회(Charity Commission)에 등록되며, 자선단체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각종의 기부금 등이 자선단체에 몰릴 수 있는 기반이 되는 것이다. <주15> 이러한 자금들이 300여 개 있는 전국 단위의 사회적경제 중간지원조직, 수천 개에 달하는 광역별, 기초지자체별, 마을 단위의 사회적경제 중간지원조직을 통해서 사회적경제 현장에 투입되는 것이다. <주16>

<표 2> 영국 OCS 조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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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 영국 내각부 자료

앞으로 시민사회 및 사회적경제의 발전을 위해서는 먼저 이 분야 전체정책의 미래전략을 수립하고 조율하며 지원해 나가는 담당주체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영국의 경우 총리 직속의 OCS(Office for Civil Society)에서 관련된 정책을 조율한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시민사회 및 사회적경제와 관련된 부처는 사방에 산재되어 있다. 시민사회 관련 사업들은 총리실에서 관장하고 있다고 하나 정확히 그 사업내용이 알려진 바 없다. 사회적기업과 관련된 정책만 하더라도 사회적기업(고용노동부), 마을기업(행정안전부), 농어촌공동체회사(농림수산부) 등 비슷한 사업이 부처별로 쪼개져 있으며, 자활(보건복지부), 협동조합(기재부, 행안부, 금융위, 농림수산부 등) 모두 각개로 진행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정부의 관련정책이 통합된 원칙과 전달체계를 정비하지 못해 사회적경제 영역의 네트워크 자원을 분단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즉 복지정책의 전달체계가 각 부처로 쪼개어져, 최악의 경우, 각 부처 간 사업이 중앙부처의 담당 국/실/과, 지방정부의 담당 국/실/과로 나누어지며, 경우에 따라서는 중간지원조직까지 별도로 운영됨으로써 나타나게 되는 비효율성이다. 정부지원을 전제로 이러한 사업들이 추진될 경우, 지역사회의 기존의 네트워크 구조는 정부지원을 받기 위한 조직으로 분단되어 버리고, 결국 시민사회와 사회적경제 영역의 발전 가능성의 싹을 없애버리는 것이 된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둘째는 시민조직의 투명성 확보를 위한 법적근거가 필요하며, 그러한 면에서 시민단체에 대한 규제기관으로서 ‘(가칭)시민공익위원회’의 설립은 상당히 시급한 과제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현재의 시민사회단체 회계장부는 과연 믿을 만한가. 정부의 비영리 단체 및 자원봉사 활성화 지원금은 투명하게 운영되는가. 아쉽게도 이 모든 것을 판단할 정보는 거의 없다. 한국의 시민사회단체는 각 부처 혹은 지방자치단체에 의해서 규제되고 있으나 일반시민이 그 활동내역을 판단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시민사회는 어떻게 규율되어야 하는가. 생각되어질 수 있는 것은 법원에서 시민사회단체의 비영리 여부만을 심사하는 미국식 모델보다는, 정부부처나 지방자치단체들로부터 독립된 하나의 기관이 시민사회단체의 비영리성과 공익성을 심사하는 영국식 모델을 고려해 볼만 한다. 영국의 자선위원회(Charity Commission)는 공익성을 가진 시민조직의 활동에 대한 보고를 받고 이를 인터넷에 공개하며, 정기적으로 철저한 조사도 실시한다. 또한 시민과의 대화를 1년에도 몇 차례씩 개최함으로써 시민사회단체의 책무성과 투명성을 높이며 일반 시민들과의 소통을 촉진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영국의 자선위원회와 같은 ‘(가칭)시민공익위원회’를 구성한다면 일단은 국회소속기관으로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행정부보다는 다양한 이해관계를 반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위원들은(시민사회단체 인사와 전문가들 모두) 여당과 야당이 절반씩 추천하는 것이 적합하다. 이곳에서는 공익법인법에 의한 모든 공익법인, 비영리민간단체지원법에 의한 비영리민간단체, 협동조합기본법에 의한 사회적 협동조합들의 모든 활동들이 홈페이지에 공개되어야 한다. 시민공익위원회 홈페이지에 이러한 정보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된다면 시민들은 각 시민사회단체의 투명성에 대하여 스스로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정부가 주도하거나 지원하는 사업에 참여하는 시민단체를 선정할 때에 정보공개수준을 고려사항에 넣게 할 수 있다. 정리해서 말한다면 시민공익위원회는 서류작업을 하는 관공서이기보다 정보와 말이 오가는 아고라로, 그리고 제도적 권력보다는 민주적인 권위를 가진 위원회로서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7. 사회적경제기본법

19대에 이어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사회적경제기본법은 상당히 의미 있는 법률이다. 정책조율의 최고단위로서 대통령직속 위원회를 만들며, 간사부처를 기획재정부로 하는 것, 마찬가지로 광역단위의 사회적경제위원회를 만들게 한 것, 실행기관으로서 중앙에 사회적경제원을 기존의 사회적기업진흥원을 확대·개편하는 방식으로 신설하며, 지역단위의 지원을 담당할 통합지원센터를 지정하게 하는 것 등이 주요 내용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 동안 분산되어 있던 정책의 실행체계를 수미일관하게 논리화시켰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사회적경제 발전을 위한 국가의 책무를 분명히 규정했다는 점도 법제정의 중요한 목적이었다. 국가차원에서 5년(혹은 4년) 단위의 사회적경제 발전을 위한 기본계획을 세우고 이에 입각해 각 부처는 매년 시행계획을 만드는 것, 지역단위에서도 국가의 계획과 조율되는 방식으로 지역계획을 만드는 것, 사회적경제 발전기금, 사회적경제조직에 대한 공공조달, 조세감면 및 재정지원, 민간자원 연계, 교육훈련지원, 사회적경제 조직 간의 협력, 개별법 체계 하에서는 불가능했던 이종간 연합회 구성 등 사회적경제 발전을 위한 거의 모든 수단들을 종합시켰다는 점도 의미가 크다.

그러나 각론으로 들어가면 구 여당(유승민) 법안과 구 야당(윤호중) 법안 간에는 약간의 차이가 존재했다. 첫째 사회적경제의 개념은 거의 모두 일치하고 있으나, 그 범위를 어디까지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이견이 존재했다. 여야 모두 협동조합, 사회적기업, 마을기업, 자활기업 등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공통적이었다. 그러나 유승민 법안은 여기에 중앙자활센터, 지역자활센터, 사회복지법인, 협동조합의 금융부문, 장애인사업장 등 사회적경제를 아주 넓게 잡은 특징이 있었다. 반대로 윤호중 법안은 이상의 조직들은 사회적경제의 범위에서 제외했다. 이것은 앞으로도 새로운 사회적경제기본법을 만드는데 있어서 상당히 논란이 될 소지가 있다.

필자는 사회적경제기본법의 애초의 목적에서 비추어서 사회적경제의 범위를 정해야 한다고 본다. 사회적경제기본법은 각각의 조직이 가지는 고유의 역할을 중시하면서도 전체의 발전과 상호협력을 규정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자활사업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사회적기업은 사회적기업육성법, 협동조합은 8개 개별협동조합법 및 협동조합기본법에 의해 규율되며 지원체계도 정비되어 있다. 따라서 개별법 체계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지금 요구되는 것은 각 제도간의 조율이 필요하다는 점이며 그 조율하는 법적근거를 사회적경제기본법으로 하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농·수·축산협, 사회복지법인, 장애인시설까지 포함해 굳이 그 포괄대상을 좁게 잡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둘째는 정책 거버넌스와 관련된 것이다. 대통령직속으로 사회적경제위원회를 신설하는 것은 아주 잘한 일이었다. 문제는 대통령직속 위원회의 역할이 어디까지인가에 대한 논점이다.

유승민 법안은 전체적으로 대통령직속위원회의 권한을 정책을 조율하는 ‘단위’ 정도로 만들었다. 이에 비해 윤호중 법안은 사회적경제위원회의 권한의 범위, 내용 모두 상당히 넓으며 구체적이었다. 18개의 사항에 대한 심의 및 조정권한을 부여하고 있으며 그 내용도 “사회적경제발전을 위한 국가전략”부터 타법과의 연계(국가균형발전법), 개별부처의 인증 및 지정제도의 정비통합, 사회적경제원의 점검·평가·개선사항까지 다 망라하고 있었다. 당연히 상임위원, 직할사무국, 전문위원, 실무위원회 등 조직이 커지게 된다. 사실 칸막이 행정이 극심한 대한민국에서 부처 간 정책조율을 위한 중앙의 강력한 통제 필요성은 당연히 인정된다. 따라서 새롭게 법안을 만들어간다면 대통령직속위원회의 권한에 대해서 윤호중 법안이 더욱 현실적일 수 있다.

다음은 소위 간사부처를 어디로 할 것인가에 대한 논점이다. 대부분 법안에서는 기획재정부로 하고 있다.

필자는 앞으로 사회적경제정책의 담당주체를 선정하는데 있어서 4가지의 원칙에서 따져봐야 한다고 본다. 첫째는 담당주체의 힘이다. 둘째는 조직으로서의 지속성이다. 셋째는 조직의 업무적합성이다. 넷째는 새로운 업무수행에 대한 열정이다. 생각해보면 사회적경제정책은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의 중간영역이다. 따라서 양쪽의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①담당주체의 힘, ②조직으로서의 지속성으로서는 기획재정부는 적합하다. 그러나 ③업무적합성, ④업무수행의 열정 차원에서 보았을 때 과연 적합한가는 의문이다. 이러할 경우 영국과 같이 새롭게 시민사회청(office of civil society)을 설립하여 사회적경제도 이곳에서 담당하게 하는 것도 방법이다. 만약에 기획재정부가 담당주체가 된다면, 기획재정부는 사회적경제정책이 단순한 경제정책이 아니라 사회정책의 일환이라는 인식을 분명히 가져야 할 것이다. 중장기 경제정책방향의 설정, 조세 및 예산수립 등에서 보여주던 매크로의 사고방식만 가지고는 이 정책의 담당주체로 부적합한 것이다. 골목상권, 지역경제, 낙후된 농어촌 등을 세심하고 상세하게 점검하며 서민경제 곳곳을 자세히 살펴보는 노력, 그리고 시민의 자발적 참여의 힘을 어떻게 증진시킬까 하는 것에 신경을 써야 한다.

8. 호혜적 이타성의 재발견

인간은 이기적이며 또한 이타적이다. 이기적인 욕망을 잘 조직하는 것이 시장에서의 활력을 유지하는 것이며 이타적인 따뜻한 마음을 잘 조직하는 것이 무너진 사회를 제대로 복원하는 길이다. “거대한 전환”을 쓴 칼 폴라니는 자기조정적인 시장이 인간본성에 내재한 사회성 혹은 공동체성을 해체하고 파괴하는 “악마의 맷돌”이며, 바로 그 해체 위에서만 가능한 것이라고 말하다. 시장기구란 인간사회와 필연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것이며, 인간 삶을 유지시키는 사회의 안전을 맷돌로 갈아버리는 시장이란 계속 유지될 수 없으며, 결국은 필연적으로 사회(공동체)의 반격을 받게 됨을 강조한다. 시장기구 속에서 작동되는 인간의 이기심은 공동체를 유지시키려는 호혜적 이타성(reciprocal altruism)에 의해서 제어 받게 되는 것이다. <주17>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과제를 다음과 같이 설정할 수 있다. 어떻게 하면 호혜적 이타성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의 총량을 늘릴 수 있을까. 해결의 실마리는 과감한 권력의 하방에 있다. 시민들이 중앙 및 지역사회의 각종 문제를 풀어가는 주체로 되는 것이다. 민주주의자 밀(J.S.Mill)도 그의 『대의정부론』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보통 사람들이 공공문제를 다루는데 서툴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일단 공적인 영역에 들어와 일을 취급하게 되면 그들의 생각이 깊어지고 정신 또한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똑 같은 일에서 벗어나게 된다. 하류 계층 사람도 공공문제에 관여함으로써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커지고 안목도 높아진다. 지적 수준이 높은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보고 들으며 그 자신의 지식도 넓어진다.” <주18>

필자는 민주주의자란 민중에게 주어진 더 큰 권력에 의해서 더 활기차고 더 행복한 나라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러한 민주주의에 의해서 이타적 호혜성을 실현하는 시민들의 의지가 잘 조직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인간이 가지는 이타성이 무한정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등가성의 원칙이 아니더라도, 장기적으로 나에게 도움을 줄 것이라는 확신, 즉 호혜성이 잘 작동될 때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자원봉사자가 많은 나라, 기부가 일상화되어 있는 나라는 이러한 호혜성의 원칙이 잘 작동되는 나라다. 협동조합이 잘 발전되어 있는 나라도 그렇다. 1인=1표의 민주주의 원칙을 고수한다는 것은 부담(출자금)과 권한(지배력)의 등가적인 교환을 포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장기적으로 자신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확신(신뢰)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필자가 오늘 결론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이 점이다. 시민사회, 그리고 그 경제적 표현으로서의 사회적경제는 무척 중요하다. 시장과 국가의 실패가 너무나 명확한 곳에서는 그 필요성이 점점 더 커진다. 앞에서 말한 지방자치법 개정, 지방발전법 제정, 한국판 OCS(office of civil society) 및 CC(charity commission)의 설립, 사회적경제기본법의 제정 등은 호혜적 이타성이 작동되는 사회를 잘 만들어가는 초석이 될 것으로 믿는다.

<각주>

1. 우자와 히로후미, 『사회적 공통자본: 진보적 공공경제학의 모색』(필맥 출판, 이병천 옮김, 2008년).

2 이근식, 『신자유주의』(기파랑, 2009년).

3. 김종걸 등, 『인구구조 변화와 지속가능한 행정기능 발전방안』(행정자치부, 2015년), 제1장.

4. 지방으로 상당 정도의 권력이 이양되는 것을 아주 극단적으로 사고한다면 한국의 중앙부처는 재정과 조직권한을 가진 기획재정부와 행정자치부 이외에는 필요가 없어진다. 노동, 복지, 산업 등 기획과 조정기능만을 가진 위원회 혹은 청(廳) 정도로 축소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외교, 안보, 대외통상 부처 등은 별개다.

5. 사회적경제 개념과 관련된 논의는 後藤和子, 『市民活動論』(有斐閣, 2005); 宮澤賢治. 川口淸史, 『福祉社會と非營利. 協同セクタㅡ: ヨㅡロッパの挑戰と日本の課題』(日本評論社, 1999).

6. U. K. DTI(Department of Trade and Industry), Social Enterprise: A Strategy for Success(2002).

7. EMES는 Emergence of Social Enterprise in Europe의 프랑스어 식 약자이다. Defourny and Nyssens, “The EMES Approach of Social enterprise in a Comparative Perspective”, EMES European Research Network Working Paper, no. 12/03(2012).

8. Dees, Enterprising Nonprofit, Harvard Business Review, Vol.76/1, 1998년.

9. Monitor Institute, Investing for social and environmental impact, 2009년.

10. 김종걸 등, 『인구구조 변화와 지속가능한 행정기능 발전방안』(행정자치부, 2015년), 제3-4장 참조.

11. 협력형 모델은 행정기능을 담당하는 읍면동 사무소의 존치를 전제하고 주민자치회는 협력기구의 위상을 갖는다. 통합형 모델은 주민자치회가 지자체단체장 직속 의결기구로 그 지위가 격상되고 읍면동 사무소는 주민자치회 산하 집행기구로 기능하게 된다. 주민조직형은 위의 두 모델과는 달리 읍면동 사무소 폐지를 전제로 한다. 그에 따라 읍면동 사무소가 담당했던 행정기능은 지방자치단체로 이관하고 주민자치회는 산하에 독자적인 사무기구를 두고 주민자치 사무에 관한 의사결정 권한과 집행 권한을 갖는 형태이다.

12. 한국의 비영리단체에 대한 지원금은 ① 행정안전부의 비영리단체지원법에 의한 지원, ② 특별법에 의한 예외적 지원(한국예총, 대한노인회, 한국소비자연맹, 체육회, 상이군경회, 전몰군경유족회, 전몰군경미망인회, 대한무공수훈자회, 지방문화원, 광복회, 새마을단체, 바르게살기운동단체, 한국자유총연맹), ③ 각 부처의 보조금 예산 및 관리에 관한 법률, ④ 지방자치단체의 민간단체에 대한 보조금, ⑤ 비영리단체에 대한 조세감면제도, ⑥ 우편료 감면제도 등이 있다.

13. 일본에서 특정비영리활동촉진법(1993년)에서 규정된 NPO를 ‘일반 NPO’와 ‘인정 NPO’로 나누는 것, 그리고 민법 제34조에 의한 사단/재단법인을 ‘일반법인’과 ‘공익법인’으로 구분하고, 사업에 대한 비과세와 기부에 대한 소득공제를 ‘인정 NPO’와 ‘공익법인’에 한해 인정하게 된 것은 2012년이다. 자세히는 김종걸, 『일본의 사회적경제: 현황/제도/과제』(일본정경사회학회 발표논문, 2013년 8월 28일).

14. 2002년 현재 부처별 지원단체수와 지원액은 농림부(26개, 536억 원), 문화관광부(16개, 42억 원), 법무부(4개, 7억 원), 여성부(48개, 17억 원), 재정경제부(4개, 33억 원), 통일부(4개, 7억 원), 행정자치부(175개, 75억 원), 환경부(8개, 18억 원), 과학기술부(3개, 55억 원), 외교통상부(22개, 52억 원) 등 총 330개, 905억 원이다.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NGO법제위원회 회의자료』(2003, 미발간) 참조.

15. 2012년 8월의 영국 자선위원회에 대한 필자의 방문조사에 의하면 여기에 등록된 자선단체들은 모든 회계가 홈페이지에 공개되며 수시 점검에 의해서 부정이 발각될 시에는 등록 자선기관으로서의 지위를 박탈당하게 된다.

16. 영국의 사회적기업 전문컨설팅그룹인 OPM과 Compass Partnership에서는 중간지원조직을 “일선의 자발적, 공동체적 조직(voluntary and community sector)들이 그들의 과업을 더욱 효과적으로 수행하도록 지원(support), 개발(develop), 연계(co-ordination), 대표(represent), 촉진(promote)하도록 물적 자원과 인적자원, 그리고 지식을 제공하는 조직”이라고 규정한다. 이러한 규정에 의거 OPM/Compass Partnership에서는 ① 국가 차원, ② 광역 차원, ③ 준광역 차원, ④ 기초 차원, ⑤ 마을 차원의 5개 층위에서 수천 개의 중간지원조직을 추출하고 있다. OPM & Compass Partnership, Working Towards an Infrastructure Strategy for the Voluntary and Community Sector(Feb. 2004). 한국과 영국, 일본의 사회적경제 중간지원조직의 비교분석은 김종걸, 『한국 사회적경제 중간지원조직의 발전방향』(전국중간지원기관 정책토론회 기조발제논문, 2013년 7월 3일) 참조. 간단한 요약은 김종걸, 『사회적경제를 위한 중간지원조직』(『국민일보』 경제시평, 2013년 7월 23일).

17. 이러한 사고방식은 연민(pity)과 동정심(compassion)을 강조한 아담스미스에게도 마찬가지다. 이기심의 정당성을 설파했던 아담 스미스조차도 인간 본성에 가지고 있는 이타적 심성에 대해 충분히 강조한다. 아담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한다. “인간이 아무리 이기적인 존재라 하더라도, 그 천성에는 분명히 이와 상반되는 몇 가지가 존재한다….연민(pity)과 동정심(compassion)이 이런 종류의 천성에 속한다.” 아담 스미스가 상정했던 인간의 삶이란 시장에서의 인간의 이기심만이 작동되는 세상이 아니었다. 인간은 윤리적인 존재이며, 따라서 이기심이 조정되는 “보이지 않는 손”은 이타심이라는 “보이지 않는 가슴”에 의해 보완되는 것이었다. 문제는 인간이 가지는 이타성이 무한정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등가성의 원칙이 아니더라도, 장기적으로 나에게 도움을 줄 것이라는 확신(사회적 신뢰)이 있었을 때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일종의 호혜성의 원칙인 것이다. 아담 스미스, 『도덕감정론』(비봉출판, 박세일·민경국 옮김, 2009년).

18. 서병훈, 「좋은 정치, 이상적 민주주의: 현실정치에 묻다」, 자유주의연구회, 2016년6월10일 발제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