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05월 칼럼]이제는 복지국가의 문이 열릴까?

이영환 (성공회대 교수, 사회복지학)

 

며칠 남지 않은 이번 대통령 선거는 여러모로 특별하다. 태블릿 PC에서 시작하여 최순실과 촛불, 탄핵과 세월호로 이어지는 수개월 동안 펼쳐진 드라마의 대미가 어떻게 장식될 것인지에 온 국민의 촉각이 곤두서 있기도 하지만, 사회복지 연구자로서 필자는 이번 대선이 대한민국을 복지국가의 반열에 올려놓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인지 기대가 많다.
대통령 후보들에 따라 조금씩 온도차가 있기는 하지만, 과거보다 훨씬 적극적인 복지공약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노인들을 위한 기초연금 30만원, 최저임금 시간당 10,000원, 아동수당 도입, 보육시설 확충, 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의 폐지 등 굵직한 복지이슈들에 대해서, 시간적 로드맵의 차이나 대상자를 보편적으로 할 것이냐 선별적으로 할 것인가 등 각론상의 차이는 존재하지만, 기본적인 지향에 대해서는 대체로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이 과거와는 매우 다른 모습이다. 기본소득 아이디어도 꽤 진지하게 논의되고 있고, 반려동물의 복지까지 부각되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러한 공감대 형성은 단순히 표를 의식한 경쟁 때문만은 아니고, 실제 문제가 그만큼 심각하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와 동시에 OECD 최고의 노인 빈곤율과 노인자살률을 보이고 있는 상황,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이 암울한 미래를 예고하고 있는데도 이제 겨우 보육문제에 대해 기초적인 국가개입이 이루어졌을 뿐이고, 청년실업의 만연과 비정규직의 참담함이 양극화와 헬조선으로 이어지고 있다. 학생들은 쉴 틈도 없이 공부하지만, 미래는 안개속이다. 과연 대한민국에서 행복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결국 후보들이 복지국가를 열심히 주창하는 것은, 경제상황이 좋으니까 이제 복지를 하자는 것이 아니라, 복지를 확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뒤늦게나마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어찌 보면 이번 대선의 공약들은 상당히 획기적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과연 이러한 심각한 문제들에 어느 정도나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까? 단적인 지표로 서구 복지국가들의 경우, 정부의 복지지출이 GDP 대비 20~30% 이상으로 우리의 2~3배에 달한다. 선진 복지국가들의 시행착오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아 보다 효율적인 복지국가를 만든다고 해도 지금보다 복지지출을 획기적으로 늘려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비약적 발전이 과연 가능할까?
또 다른 문제는 복지정책이 항상 뒷북을 친다는 점이다. 문제가 확대되는 속도에 훨씬 못 미치는 속도로 뒤좇기 바빴던 것이다. 복지국가의 중심제도인 사회보험은 정규직이 중심이 되는 평생직장 사회를 모델로 하는 것인데, 이미 사회는 비정규직과 실업이 만연한 포스트 산업사회, 나아가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대규모로 대체하게 되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 기왕에 사각지대가 엄청난 기존의 사회보험제도가 어떻게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을까? 보통가구를 전제로 한 사회복지서비스도 이제 막 시작인데, 이미 1~2인 가구가 전체 가구의 절반을 넘어섰다. 지금과 같은 허술한 복지제도로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예비하고 나아가 통일을 준비할 것인지 실로 막막하다. 준비 없는 재난이 가져오는 파국을 우리는 1997년 말 IMF 경제위기에서 이미 맛본 바 있다.
그동안도 복지정책이 점진적이나마 확대되어 나오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언제나 늦고 소극적이었다. 이번 선거는 모처럼 진보적인 분위기가 주도하는 선거이며, 복지공약들도 전향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욕심일지 모르겠지만, 내친 김에 복지국가의 문을 활짝 열어젖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뒤좇기만 하는 복지가 아니라 선제적으로 미래에 투자하는 적극적 복지가 시작되기를 원하는 것이다. 이를 위한 획기적인 복지재정 확대는 물론 쉽게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국가의 모든 기능을 복지중심으로 전환하는 파라다임적 변화를 필요로 할 것이다. 어렵지만 불가능한 일일까? 그렇지 않다고 본다. 우리가 당면한 문제들은 이미 이러한 변화를 불가피하게 만들 정도로 충분히 심각하다.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충분한 연구들이 존재하고, 서구 복지국가들의 앞선 경험도 충분히 알고 있다. 사회적 경제 등 민간의 자율적인 노력을 통해 보다 효율적인 복지국가를 만들어낼 경험과 자원도 있다. 급속한 고령화가 양산한, 노동의지와 능력이 충만한 수많은 조기퇴직자들의 존재도 복지국가를 위한 훌륭한 자원이다.
문제는 지도력과 의지다. 국민의 복지와 행복이 국가존립의 유일한 존재의미임을 수용하고, 이를 위해 국가의 모든 역량을 수렴해 낼 수 있는 정치지도력의 탄생이 이번 대선의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반대세력도 만만치 않을 것이지만, 촛불시민의 염원 앞에 불가능은 없을 것이다. 단지 정치지도자 한사람, 집권정당 하나를 바꾸자고 한겨울 내내 그 고생을 한 것은 아니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