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5월 칼럼]아이쿱과 유어쿱의 만남

이정옥 (대구 가톨릭대 교수, 사회학)

 

유채꽃을 화두로 서로 만날 일 없던 사람들이 경산 하양 꿈바우 시장에서 만났다. 사회적 경제대학원 수업을 마친 학생들, 국립 식량과학원 연구진들, 일본의 유채 산업 개척자, 지역의 사회적 기업과 협동조합에 종사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한데 모였다. 화려한 유채꽃 앞에서 사진 찍는 것만 알고 있었는데 모임에 참여한 덕택에 유채꽃을 화두로 신재생 에너지, 유전자 변형의 문제, 대량 생산된 식용유의 문제, 연구자의 판단과 정부 정책의 긴장과 협력 등 평소 접할 수 없었던 여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유채꽃 밭을 조성하는 것이 에너지 문제의 대안도 만들 수 있고 건강한 식단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다보니 하나의 새로운 시작이 가져오는 ‘파장’이 경이로웠다. 모임 중간에 하양의 꿈바우 시장의 풍성한 점심 식사도 인상적이었다. 전혀 다른 분야에서 일하고 있었지만 마치 오래 전부터 알아온 지기라도 된 듯 금방 말문이 터졌다. 고민하고 추구하는 가치가 비슷했기 때문일까?
이번 4.13 총선을 지켜보면서 가장 인상적인 것이 여론 조사의 예측이 빗나간 점이었다. 의미를 논하지 않고 숫자만 중계하는 여론 조사 정치를 늘 아슬아슬하게 지켜본 입장에서는 터질 것이 터졌다는 생각이었다. 여론 조사는 조사에 협력하는 응답자들의 정직한 답변이라는 토대에 세운 건축물이다.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정치 문화가 조성되지 않으면 무선 전화 방식이든 유선 전화 방식이든 큰 차이가 없다. 결국 여론 조사가 우리의 정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 자신이 밝히는 정치적 지지의사가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는 유권자가 많아 질 때 여론 조사가 조금이나마 더 예측력이 있을 수 있다. 여론 조사를 위한 토양 조성이 필요한 것처럼 협동조합도 마찬가지이다. 경쟁의 논리가 지배적인 가운데서 협동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깨우친 사람들이 있을 때 비로소 협동조합의 성공이 가능하다. 협동의 가능성을 믿는 사람들이 만들어지게 되면 그 위에 여러 가지 집을 지을 수가 있다. 협동조합은 무엇을 주제로 하건 협동하는 사람들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다. 협동조합간의 상생이 당연한 이유이다. 협동조합이 많아지면 그만큼 협동의 테리토리가 넓어진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1990년대에 만난 멕시코의 노건축가는 우리 앞에 협동조합형 세계은행에 대한 거창한 계획을 발표한 적이 있었다. 도시빈민을 위한 건축 협동조합도 만들었고 출판 협동조합도 해 보았다. 이런 ‘협동’의 경험들이 축적되면서 협동공동체의 삶의 비전이 가능하다는 것을 눈을 빛내며 얘기하였다. 건축을 잘하는 사람, 피아노를 잘 치는 사람, 요리를 잘하는 사람이 전통적인 우리식 어법대로 품앗이 방식을 도입하면 된다고 했고 실제 자신이 멕시코에서 실행하고 있노라고 얘기했다. 공동체 차원에서 교환의 그물망을 잘 짜게 되면 ‘대안’이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유럽에서 협동조합이 발달하게 되면 가지를 쳐서 협동조합의 생태계가 조성되는 것을 여럿 보아왔다.
경쟁의 논리에 매몰되었기 때문에 하나의 협동조합이 뿌리를 내리면 협동의 기적을 맛본 셈이 된다. 협동조합 하나는 경쟁이라는 척박한 땅을 협동의 지대로 개간한 셈이 된다. 척박한 땅을 비옥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거기에 다른 씨앗을 뿌려도 잘 자랄 수밖에 없다. 아이쿱은 그간 수많은 ‘아이(I)’를 만드는데 바빴다. 이제는 눈을 돌려 ‘유어(your) 쿱’을 조성하고 그들과의 관계 맺기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